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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깊은 교제생활이 이루어 지기를 소망합니다. |
그러나 부하들이 급하게 뛰어왔는데, 나중에 보니 한 명이 빠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화가 난 상관은 그 빠진 부하를 데려오게 하더니 “야 임마, 너는 뭔데 모이지 않는거야?”하며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그 사병은 이렇게 당당하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멍청이들이 이만하면 됐지 않습니까? 더 많아야 합니까?” 은혜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을 통해 당신의 양자됨을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가치는 진정 주님 안에서 인정되고 진실해질 수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당신에게 부족한 것은 당당함이나 세상을 밝게 볼 줄 아는 자신감이다., 당신의 가치는 세상 사람들이 아닌 하나님이 평가하실 것이다
(창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1. '주님의시선' 카페와 카페지기가 섬기는 '마산시민교회'가 더 풍성해 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합니다. 2. 마산시민교회가 개척 1주년을 맞았습니다. 자립하는 날까지 기도와 물질의 후원이 필요한 교회입니다. 개척교회를 후원할 수 있는 교회나 성도님들의 도움을 기다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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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를 담은 질그릇
어린 시절부터 철저하게 사람들의 외면을 받으며 살아 온 아이가 있었습니다. 13살이 되었을 때 그를 상담했던 선생님이 그에게 <사랑>이라는 단어의 의미조차도 모르는 아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사춘기가 되었어도 아이들은 그와 사귀려 들지 않았고, 그는 늘 남자아이들과 싸움판을 벌이곤 했습니다. 지능 지수는 매우 높았지만 학교 공부는 늘 하위권에 머물렀고,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마침내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내는 그가 할 수 없는 일들을 날마다 더 요구했습니다. 이 가혹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아내가 자기의 동료가 되어 주기를 바랐지만, 아내는 가장 심술궂은 적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세상에는 아무도 그를 원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배척을 받은 자가 되어 버렸고 그의 자아는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버렸습니다. 어느 날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차고로 가서 숨겨 두었던 총을 꺼내 들었습니다. 그리고 새로 얻은 직장에 있는 서적 보관 창고로 갔습니다. 그 날 오후, 1963년 11월 22일, 그는 건물의 6층 창문을 통해서 두 발의 총알을 날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머리를 명중해 버렸습니다. 사람들의 배척을 받고 사랑 받지 못한 자 [리 하비 오스왈드]는 평생동안 비참하게 살아오면서 배운 단 한 가지 기술을 사용해서 자신이 소유하지 못했던 성공, 아름다움, 부, 행복, 그리고 가족의 사랑을 모두 가졌던 자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누가 내게 관심이나 보이는가?" 외로운 어린 시절부터 텔레비전에 방영된 대로 죽음을 당하는 그 순간까지 그는 열등감에 시달렸고, 마침내 그 슬픔은 분노로 변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스왈드]의 비극보다 더한 비극은, 현재도 많은 사람들이 오스왈드의 비극을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이 <열등감(劣等感 : inferiority feeling)>이 문제입니다.
첫째는 신체적인 열등감이 있습니다.
둘째는 정신적인 열등감이 있습니다.
셋째는 사회적인 열등감이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열등감을 가진 사람의 성격은 소극적이고 주저주저하며 내성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매우 공격적이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그 보상을 하려고 합니다. 학력에 대하여 열등감을 가진 사람이 부자가 되어 여봐란 듯이 행동하는 경우나, 학교 성적이 나빠 교사로부터 무시당하는 학생이 범죄행위를 하여 주시의 표적이 되려고 하는 것이 바로 그 보기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열등감을 보상받으려고 하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대부분 열등감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머리가 나쁘다. 자란 환경이 나쁘다. 직업이 좋지 않다. 학력이 없다. 말을 잘하지 못한다. 의지력이 약하다. 몸이 약하다. 집중력이 없다. 등등....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나폴레옹]이나 [베토벤], [뉴턴], [에디슨], [처칠]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열등감의 덩어리]라고 할 만큼 열등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성경의 인물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모세]도 이 열등감을 지니고 있었고 (출 4:10) 영적 거장 [바울]도 사도들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습니다 (고후 11:6). 그러나 그들이 열등감에 잡힌 일반 이들과 다른점은 그 열등감에 사로 집힌 노예의 삶을 살지는 않았다는 점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들을 위대하게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신비롭게 만드셨습니다. 어떤 종류의 열성을 가지면 다른 능력이 개발되게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이 어딘가에 열성을 가지면 그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바꾸려는 마음의 활력이 강하게 작용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바른 사람이라면 자신의 관심 속에서 열등감을 몰아내고 강점을 살리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 예 화)
그렇습니다. 여러분, 자기 안에 확실히 자부할 만한 보배가 있을 때는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우습게 생각해도 별 문제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자부할 만한 뭔가를 갖지 못한 사람일때 열등감이 들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 이게 오늘 말씀을 생각해 볼시다 우리는 먼저 무엇보다 우리는 자신의 본래 모습을 자각해야 됩니다. 본문 7절의 바울의 표현을 빌리자면 <질그릇의 모습>입니다. 질그릇이란 진흙으로 만든 거친 그릇입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질그릇의 특징이 있습니다.
① 먼저는 연약함입니다. 쉽게 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질그릇인 우리는 그 분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가 우리들입니다. 한 시라도 보살핌이 없이는 깨어지고 부숴지는 자라는 자신을 알아야할 것입니다. 마음을 먹고 각오를 해도 잘 되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질그릇인 우리입니다. ② 또 다른 질그릇의 특징은 비천합니다. 비천하다는 것은 특별하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한 마디로 평범하다는 것이지요. 우리들의 본래 모습이 이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바로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교만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본래 모습을 잊고 살아가는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시103:14-16 보면 우리를 가리켜 <진토(dust)>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은 마치 풀과 같고 그 영화가 바람이 불면 사라져버리는 들꽃과 같다고 말합니다. 이런 실상을 모르고 그저 지금의 내 모습이 천년만년 계속될 "영원한 내 모습"으로 생각하면 큰 오해입니다. 겸손하게 나 자신의 본래 모습이 연약하고 비천한 질그릇과 같은 존재임을 고백할 수 있어야 교만하지도 않을 수 있습니다.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은 그것이 무엇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값진 것이라 할지라도 다 <임시 보관용>이요 <위탁물>일 뿐입니다. 시간 차이일 뿐 언젠가 다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재산도, 지위도, 학식도, 재능도, 젊음도, 건강도, 목숨까지도 말입니다. 자, 그러면 우리의 인생이란 가치 없는 생을 살다가 가는 단순한 것일까요? 결코 아닙니다.
그렇다면 질그릇 같은 우리 인생의 가치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질그릇에 담긴 내용물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질그릇은 질그릇인데 무엇이 담긴 질그릇이라고 합니까? 그렇습니다. [보배를 담은 질그릇]입니다. 같은 그릇이라도 기왕이면 좋은 재질로 만들어진 것이면 좋겠죠. 그러나 그릇의 재질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그 안에 무엇이 담겨지느냐가 중요합니다. 즉 <내용물>이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비싼 도자기라 할지라도 그 안에 오줌이 들어 있으면 요강이 되고, 쓰레기가 들어 있으면 쓰레기통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보잘 것 없는 질그릇이라도 보물이 담겨지면 보물 단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내용물에 최우선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보배>는 무엇을 가리킵니까? 이생과 저생의 모든 키를 가지신분. 바로 그분이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