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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6 11:01
여러 분야에서 혁신이 한꺼번에 일어나 세상을 바꾸는 경우가 있다. 혁신 기술들간의 시너지효과 때문이다.
20세기를 전후해 일어난 2차 산업혁명이 바로 그런 사례다. 19세기 후반 이후 철도, 석유, 자동차, 전기,
전신전화 등의 혁신기술들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인류는 지난 세기에 천지개벽의 경험을 했다. 지금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는 4차산업혁명론에도 디지털, 바이오, 나노 등 각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혁신의 성과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돼 있다.
4년후에 맞을 2021년은 이 혁신의 물줄기에서 하나의 변곡점이 형성되는 때가 될지도 모르겠다.
자동차, 바이오, 디지털 등 몇몇 분야에서 이 때를 도약의 해로 잡고 기술개발에 한창이다.
2021년 경쟁이 가장 뜨거운 분야는 자율주행차다. 이 분야에는 전통의 자동차제조업체들 뿐 아니라
구글 같은 IT업체들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미 캘리포니아주 교통당국으로부터 자율주행
도로시험 승인을 받은 업체만도 구글, 폴크스바겐, 벤츠, 애플, 삼성 등 43개에 이른다. 주요 자동차
제조업체 중 유럽의 베엠베와 볼보, 미국의 포드, 중국의 바이두 등이 2021년이라는 명확한 목표
시점을 잡고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엠 등 일부에선 일정을 더욱 당겨 2020년 출시를
공언하기도 하지만, 업계의 대체적인 개발 로드맵은 2021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포드는 지난 2월 2021년부터 레벨4 단계의 자율주행차를 판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레벨4는
비포장도로 등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 일반 포장도로 환경에서 인간 개입 없이도 자율주행을 할
수 있는 단계를 말한다.
포드는 차량공유 서비스용 콜택시를 첫번째 적용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9월
서비스 업체 리프트와 제휴협약을 맺었다. 우선은 몇몇 지정된 지역에서만 운행할 계획이다.
애초 핸들과 가속 및 브레이크 페달도 없는 말 그대로의 자율주행차를 내놓는다는 구상을 밝혔지만,
지난 5월 시이오가 교체된 이후엔 다소 조심스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포드의 새 시이오 짐 해킷은
일단 내년에 미국내 여러 도시에서 자율주행차 시험운행을 시작할 것이라고 최근 밝혔다.
독일의 베엠베(BMW)도 회사 창립 100돌을 맞은 지난해에 2021년 자율주행차 출시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 모빌아이, 세계 최고의 컴퓨터칩 제조업체 인텔 등과
손잡고 아이넥스트(iNEXT)란 이름으로 자율주행차를 내놓는다는 구상이다. 그에 앞서 올 하반기
중 시제품 차량 40대를 제작해 주행 테스트를 한다.
자율주행차 경쟁에서 특히 눈여겨 봐야 할 곳은 중국이다. 자동차산업 후발주자인 중국은 뒤처져
있는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 대신, 자율주행과 전기모터라는 차세대기술로 자동차시장의 판을
한꺼번에 뒤엎을 태세다. 이 야심찬 청사진을 들고 앞장선 기업이 중국의 구글로 불리는 인터넷
기업 바이두다. 바이두는 베이징자동차(BAIC)와 손잡고 2021년까지 레벨4 수준의 자율주행
자동차를 대량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두 기업은 1차로 2019년에 100여대의 양산형 차량을
선보일 예정이다.
중국, 인공지능 자신감으로 공격적 행보바이두의 이런 공격적 행보는 자율주행차의 핵심인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온다.
바이두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쌓은 인공지능 기술과 빅데이터로 이미 음성인식, 이미지 식별
등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이두 자율주행
시스템의 또다른 핵심은 오픈소스형 플랫폼이다. 바이두는 인공지능 신경망 기술을 기반으로
개방형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플랫폼 ‘아폴로’(Apollo)를 구축해 시장의 표준을 장악하겠다는
생각이다. 300여 업체가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세계지식포럼에
참석한 장야친(51) 바이두 총재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인공지능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가운데 하나이며, 자율주행차는 인공지능이 적용되는 가장 중요한 영역”이라고 말했다.
자율주행자동차는 전기차와도 궤를 같이한다. 2021년 엔비디아 GPU 기술을 기반으로 한
자율주행차 출시 방침을 밝힌 스웨덴의 볼보는 2019년부터 내놓는 신차에 무조건 전기모터를
달기로 했다. 전기차가 가솔린차에 비해 내구성도 좋고 정비부품이 적어 차량 유지 및 운행에
드는 비용이 훨씬 덜 들기 때문이다. 현재 우버에 자율주행 테스트용 차량을 공급하고 있는
볼보는 2021년까지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는 자율주행차를 내놓겠다고 한다. 자율주행 옵션 장치
가격은 1만달러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의 독립 싱크탱크인 리싱크엑스는 2021년을 자동차산업의 빅뱅이 시작되는 해로 규정한다.
보고서는 자동차산업의 새로운 핵심 경쟁요소로 전기차, 자율주행차, 호출차 세 가지를 꼽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은 승객이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자율주행 전기차를 호출하는 데서
나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소비자 입장에선 자동차가 소유 대상물이 아닌 이동성 서비스
도구로 바뀐다는 걸 뜻한다.
다른 자동차업체들도 2020년을 전후해 자율주행차 출시를 공언하고 있다. 지엠은 2020년대
초반에 50만대의 자율주행차를 생산한다는 로드맵을 2년 전에 발표한 바 있다. 2018년엔
리프트에 일정 지역 안에서 운행하는 자율주행차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지엠이 리프트의
주식지분 9%를 5억달러에 사들인 건 이런 이유에서다. 혼다는 구글의 웨이모 등과 협력해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에 고속도로를 자율주행할 수 있는 자율주행차를 내놓을 계획이다.
도요타는 애초 큰 관심을 보이지 않다 2015년부터 태도를 바꿨다. 도요타연구소를 통해 인공지능
분야에 5년간 1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것. 도요타 역시 2020년에 맞춰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는
자율주행차 출시를 계획하고 있다. 최근엔 2020년 사람과 대화를 하는 인공지능 ‘유이’를 장착한
자율주행차 시험주행 계획을 공개했다. 르노-닛산은 2020년까지 시내주행, 2025년까지 완전 자율
주행이 가능한 차를 내놓겠다는 구상이다.
폴크스바겐그룹의 아우디는 최근 그래픽 개발업체인 엔비디아와 협력해 2020년 자율주행차를
출시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다임러는 2020년대 초반에 시내 주행이 가능한 레벨4 또는 레벨5의
자율주행차 출시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임러는 우선은 자율주행 트럭에 초점을 두고 있다.
다임러의 프라이트너 인스피레이션 트럭은 이미 미국 네바다주 고속도로를 자율주행 시스템으로
달리고 있다.
피아트-크라이슬러는 공식적으로 자율주행차 출시 로드맵을 밝히지는 않고 있다. 다만 지난해
세르지오 마르치오네(Sergio Marchionne) 회장이 한 언론 인터뷰에서 5년 안에 자율주행차가
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전기차업체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회장은 올해말까지 로스앤젤레스에서 뉴욕까지 운전자 개입
없이 자율주행차 시험주행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현대자동차는 한 외국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20년
고속도로 주행, 2030년 시내주행이 가능한 차를 내놓을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배양육이란 고기를 목장이나 축사가 아닌 실험실에서 생산하는 방식을 말한다.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8%는 인류에게 고기를 공급하는 축산업에서 나온다. 그러나 동물 세포를 배양해 만들어
낸다면 살아 있는 동물을 도축하지 않고도 고기를 먹을 수 있다. 이 부문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미국의 멤피스 미츠는 2021년 배양육 치킨을 일반에 시판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8월 1700만달러의 개발자금을 유치했다. 여기엔 곡물 대기업 카길을 비롯해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 잭 웰치 전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 등 유명인사들이 참여했다. 브랜슨 회장은
이 업체에 투자를 결정한 직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30여년 후에는 더 이상 동물을 죽일 필요가
없으며, 모든 고기는 식물에서 추출하거나 청정한 것이면서도 똑같은 맛을 내고 건강에는 더 좋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2016년 이 회사는 배양육으로 만든 미트볼을 선보인 데 이어 올
3월에는 배양육 치킨과 오리고기 시식회를 연 바 있다.
물론 맛, 가격 등에서 아직 넘어야 할 벽들이 많이 있다. 제일 관건은 가격이다. 멤피스 미츠의
배양육 치킨 생산단가는 올해 초 1파운드(453g)당 9000달러(약 1천만원)에서 현재 2500달러(약
280만원)로 내려왔다. 미국 시중에서 파는 치킨 가슴살 가격 3.22달러에 비하면 아직도 턱없이
높은 수준이지만 생산단가 하락속도가 빨라지고 있어 2021년에는 가격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양육 시장에서는 멤피스 미츠 말고도 모사미트(MosaMeat), 모던 메도우(Modern Meadow),
슈퍼미트 등 이스라엘 스타트업 3개사 등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셋째는 가상/증강현실 기기다. 가상현실은 현실과는 전혀 다른 가상의 상황인 반면, 증강현실은 현실
상황 위에 가상의 이미지나 디지털 콘텐츠를 덧붙인 것을 말한다.
가상현실은 그러나 지난해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VR, HTC 바이브, 오큘러스 리프트 등 강력한 기기가
나왔음에도 아직 대박을 치지 못하고 있다. 아이티 시장 조사업체인 IDC는 올해부터 도약대에 올라선
것으로 진단한다. 올해부터 2021년까지 해마다 2배 이상 커질 것이란 예측이다. 기기와 서비스를 합친
시장 규모가 2017년 114억달러(13조원)에서 2021년 2150억달러(243조원)으로 4년새 19배로 늘어난
다는 것이다. 전용 헤드셋 기기 판매만 2021년 9200만개로 지난해의 10배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지금까지의 시장은 가상현실이 주도해 왔지만, 앞으로는 증강현실의 성장세가 두드러질 전망이다.
지금은 가상현실 시장에 못 미치지만 3D 모델링 같은 기술을 채택하는 기업들이 채택하면서 사정이
달라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본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 메타의 메타2 같은 헤드셋이 증강현실
시장을 이끌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3000달러에 이르는 홀로렌즈는 아직 개발자용 기기로만 이용
가능하지만, 지난 여름에 출시된 메타2는 949달러로 크게 낮아졌다.
증강현실은 지난 9월 출시된 아이폰 운영체제 iOS-11에 편입됨으로써 주류 콘텐츠의 일원으로 올라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증강현실 전도사를 자임하고 있는 애플의 최고경영자 팀 쿡(Tim Cook)이 밀어
붙인 결과다. 그는 “수억명이 처음으로 증강현실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옷을
한쪽 면만 아닌 사방으로 둘러보며 고르는 건 누구나 원하는 쇼핑 방법”이라며 “전 세계 사람들이 삼시
세끼를 먹듯 매일 AR을 경험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팀 쿡의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미국 최대 온라인 쇼핑업체인 아마존은 11월1일부터 아이폰용 앱에 ‘에이알 뷰’(AR View)라는 이름의
증강현실 쇼핑 기능을 추가했다. 고객들은 스마트폰 카메라를 이용해 자신의 생활 공간에 가구, 가전,
장난감, 커튼 등 쇼핑할 제품을 온라인 상에서 가상배치해 볼 수 있다.
업체들의 로드맵대로 이런 기술들이 대중에게 확산된다면 이는 인류 생활 패턴의 큰 반전이다. 자동차는
구입 항목에서 서비스 항목으로 옮겨가고, 도축에 대한 죄책감 없이 고기를 섭취할 수 있으며, 현실과
상상이 뒤섞인 생활공간이 열린다. 그러나 신기술의 정착 여부는 기술 완성도 자체보다는 기존 관행에
익숙한 사람들의 마음을 얼마나 훔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에 대한 불안감, 실제
축사의 가축이 아닌 실험실 고기에 대한 거부감, 실제 현실이 아닌 가상 이미지에 대한 이질감 등의 심리적
장벽이 성패의 관건이 될 수 있다.
신기술이 가져온 생활 혁신의 대표적 성공사례는 아이폰이다. 2007년 나온 아이폰은 10년도 안돼 전
세계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꿔놓았다. 4년후 출발 라인에 서게 될 자율주행차, 배양육, 증강현실기기는
어떤 길로 들어설까?
곽노필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