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2층에서 창밖으로 물을 버렸는데 마침 그 밑으로 지나가던 내가 뒤집어쓴다면? 나는 2층 사람의 몰상식함에 대해 따질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 물을 버린 사람이 내 남편이라면?
그렇게 나는, 남편이 하필이면 전 경인방송 노조원, 현 희망조합원이라는 이유로 어느날 갑자기 날벼락을 맞은 모든 아내의 자격으로 이 글을 쓴다. 지난해 11월15일. 남편은 그렇게 좋아하던 일을 놓았다. 무노동 무임금 무기한 파업에 돌입한 것이었다.
마침 딸이 다니던 YMCA 아기스포츠단 마지막 4분기 등록기간이 닥쳤고, 등록할 배포가 나에겐 없었다. 아들에겐 겨울방학을 핑계 삼아 그렇게 좋아하던 검도를 끊었다. (남편은 그 일에 대해 방학 내내 마음 아파했으면서도 이런 얘기를 하면 진짜 힘든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회사는 용역 깡패로 가득 채워졌고, 남편과 노조원들은 회사 문밖에서 매일 떨었다. 어떻게든 합의를 볼 줄 알았던 노사는 대주주인 동양화학측의 (위장)폐업조치로 말미암아 결별하기에 이르렀다.
실직이란 모아놓은 돈 없이 대출로 늘 허덕이던 월급쟁이 생활에 상상해 본 적도 없던 일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건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모든 게 명확해 지고, 그동안 이런 날을 기다렸다는 듯이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는 것이었다. 남편의 대의를 위한 투쟁과 경인방송노조의 순수성과 하나됨을 보며 나는 비로소 물질만능주의, 세속주의가 만연한 이 세상에서 참가치에 투신할 수 있는 행운을 얻은 것이었다.
‘공익적 민영방송’이라는 한국방송사에 전무한 모델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현 불가능한 이상주의라고 혀를 차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삶으로 뭔가 보여줄 수 있었다. 우리가족의 경인방송생활은 창사 때부터 살았던 18평 전세아파트에서의 7년 반으로 대변된다. 동네에서 PD 월급이 얼마냐고 늘 궁금해 할 정도로 우리는 허름하게, 누구의 도움 없이 정직하고 검소하게 살았는데 급기야 돈도 직장도 없는 가정이 된 것이었다. 우리는 친척들로부터 김치와 쌀을 원조 받아야 했지만, 어쩌다 고기라도 먹을라치면 동료가족을 불렀다. 또 우리 동료의 아내는 패물을 팔아 우리에게 밥상을 차려 주었다.
우리 모두는 인생의 소중한 동시대를 함께 보내는 동지였다. 그 겨울, 우리는 실제로 가난했고 가난과 추위는 너무나 어울렸다. 그 추운 겨울, 아이들을 데리고 매주 거리로 나가 촛불집회를 하고 나면 밤 9시. 예전처럼 마음껏 식당에 가는 대신 아이들과 교회로 향하며 내가 믿는 것은 단 하나였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 하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도 아니 하느니라….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26∼33)
하나님의 공의를 생각할 때, 나는 감히 사측 사장으로 부임했던 YMCA 회장님께 게시판 편지를 쓸 수 있었고, 회장님 역시 주님의 뜻이라는 명목으로 하루 만에 그 자리를 사임하시는 용기를 보여주셨다. 우여곡절 끝에 퇴직금도 받아냈고, 덕분에 우리는 석달 전에, 계획대로 ‘생애 최초의 우리집’으로 이사도 할 수 있었다. 이사하고 20%를 다시 조합에 내고 나니 퇴직금은 바닥난 지 오래, 실업급여도 끝났다. 그러나 남편과 희망조합이 경인지역에 제대로 된 새 방송사를 만들고 공익적 방송을 제작해 대한민국의 방송역사를 바꿀 역사적인 과업을 기대하며 그 정도는 기쁜 마음으로 감수하고 싶다.
나는 내 남편의 생각이 올바르며 그것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남편이 또 다시 나와 아이들에게 물벼락을 뒤집어씌운다 해도 그가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지 이해해 내는 아내이고 싶다. 이것은 아마 희망조합 모든 아내들의 마음일 것이다.
(* 필자는 김인중 전 iTV PD와의 사이에 두 아들 9살 선훈과 6살 이현 군을 뒀다.)
첫댓글 역시 내 가장 큰 아군은 내 가족이 입니다.
이현이는 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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