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7대 총선에서 탄핵 역풍으로 고배를 마신 뒤 절치부심 3년만에 당 대표로 복귀한 4선 관록의 베테랑 정치인.
서울법대 재학 중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 20년간 판.검사를 지내다 순천지청장을 마지막으로 지난 13대 총선에서 '평민연(平民硏)' 케이스로 김대중(金大中.DJ)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 정계 입문했다.
서경원(徐敬元) 전 의원 밀입북사건때 당시 야당총재이던 김 전 대통령의 변호인을 맡아 활약했고 야당 대변인을 거쳐 여야 원내총무 3차례, 국민의 정부 초대 법무장관, 민주당 대표 등 주요 직책을 두루 거쳤다.
국민회의 원내총무 시절인 97년, 대선을 앞두고 박희태(朴熺太) 당시 신한국당 원내총무와 담판을 벌여 여당 후보였던 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총재와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의 TV토론을 성사시킨 일화는 유명하다.
13대부터 내리 4선을 기록한 중진의원으로 지방자치법, 통합선거법, 안기부법 개정 등 굵직굵직한 입법 실적이 많아 `법안 제조기'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2003년 9월 민주당 분당 사태 때 '정통모임'을 만들어 사수파 선장을 자임했고 분당후 대표직을 승계, 68일간 공중분해 위기에 처한 어지러운 당 상황을 수습했다.
이듬해 4월 17대 총선에서 개혁공천을 공언한 `추미애(秋美愛) 선대위'로부터 `호남 물갈이' 대상으로 낙인 찍혀 공천이 취소되는 등의 우여곡절 끝에 결국 출마했으나 낙선한 뒤 야인으로 지내며 재기를 노려왔다.
민주당내 대표적 구주류 인사로, 뚜렷한 계보는 없지만 지난 2003년 대표시절 구주류 정통모임 일색의 인사를 단행, 비판을 받기도 했으며 호남색채가 강하다. 직선적인 어투에 논리력이 탁월하며, 다혈질에 호불호(好不好)가 분명하다는 평. 하루흡연량이 2갑을 넘는 애연가이기도 하다. 부인 김금자(金琴子. 57)씨와 1남1녀.
▲전남 고흥(69) ▲광주고 ▲서울법대 ▲순천지청장 ▲13.14.15.16대 의원 ▲평민.신민당 대변인 ▲국민회의 원내총무 ▲법무장관 ▲민주당 원내총무 ▲민주당 최고위원.상임고문 ▲민주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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