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 맨 왼쪽은 월출산, 해는 제암산 왼쪽 어깨 너머로 솟았다
눈이 녹으면 뭐가 되냐고
선생님이 물으셨다
다들 물이 된다고 했다
……
소년은 봄이 된다고 했다
―― 윤선민, 「윅슬로 다이어리」에서
▶ 산행일시 : 2017년 3월 11일(토), 맑음
▶ 산행인원 : 19명
▶ 산행거리 : 도상 14.0km(1부 11.1km, 2부 2.9km)
▶ 산행시간 : 8시간 44분(점심과 이동시간은 불포함)
▶ 교 통 편 : 대형버스(45인승) 대절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0 : 00 - 동서울터미널 출발
04 : 22 ~ 04 : 34 - 해남군 화원면 후산리 당포재, 산행준비, 산행시작
05 : 20 - 금굴산(金掘山, 223.1m)
06 : 05 - 229m봉
06 : 20 - 211m봉, 송전탑
07 : 05 - △325.7m봉
07 : 56 - 운거산(雲居山, 318.0m)
08 : 46 - 후산(厚山)저수지
09 : 35 - 화원지맥 주릉 진입
09 : 56 - 220m봉, Y자 능선 분기, 왼쪽은 화원지맥
10 : 42 - △202.3m봉
11 : 04 - 화원중고교, 1부 산행종료, 점심, 이동
12 : 24 - 유달산 달성공원 주차장, 2부 산행시작
12 : 40 - 유달산(儒達山) 노적봉(64.9m)
13 : 03 - 유선각
13 : 39 - 유달산 일등바위(229.6m)
14 : 00 - 유달산 이등바위
14 : 38 - 유달산 달성공원 주차장, 산행종료
14 : 52 ~ 17 : 40 - 목포시내, 목욕, 저녁
21 : 50 - 동서울터미날, 해산
1. 유달산 입구에서
2. 유달산 이등바위
▶ 금굴산(金掘山, 223.1m)
산행인원 19명. 45인승 대형버스로 간다. 무박산행이라는데 한 사람이 좌석 두 서너 개씩 차
지하고 어떻게 하면 잠을 편히 잘 수 있을까 자세 잡느라 부산하다. 나의 경우, 가로로 누워
보고 세로로도 누워보고 쉬이 잠들지 못한다. 고속도로휴게소를 들리는가 보다. 일어나기 귀
찮아 요의를 꾹 참고 만다. 금세 금굴산 들머리로 잡은 화원반도 당포재(唐浦-)다. 고개 너
머 당포는 신라 때 당나라로 가는 포구였다고 한다.
04시 22분. 어쨌든 차내에서 여태 잤던 터라 더 자지 않고 바로 산행을 시작한다. 차문 열고
한 움큼 들여 마시는 새벽 공기가 차디차다. 열나흘 둥근 달이 우리를 맞이한다. 하늘은 맑
다. 마츠오 바쇼의 하이쿠와는 달리 구름 한 점 없다.
달구경 하는 사람에게
구름이 잠시
쉴 틈을 주네
(くもおりおり ひとをやすむる つきみかな)
두툼한 겉옷 껴입고 종종 걸음한다. 이 잘 난 길이 임도인가 했더니 성묫길이다. 金始瑄의 무
덤이 나오고 길은 끊겼다. 우왕좌왕한다. 가시덤불을 헤치기 시작한다. 주등로가 형극의 길,
곧 가시밭길이다. 어둠 속이라 잠시 이러다 말겠지 하는 예단은 틀렸다. 가도 가도 가시밭길
이다. 특히 명감나무덩굴은 가시철조망보다 더 질기고 날카롭다.
처음 몇 번 느닷없이 팔다리에 가시 맛을 볼 때는 마조히즘적 쾌감을 느꼈으나 걸음걸음 자
꾸 반복되다보니 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다. 그래도 신가이버 님은 확실히 강했다. 넌지시 물
어봤더니만 이 정도는 약하다고 반바지를 입을 것을 아쉬워했으니. 명자 붙은 산을 오르면
나아지겠지 더킹모션하며 나아간다. 악전고투. 선두가 휴식하고 있기에 금굴산 정상인 줄 알
았는데 그 전위봉이다. 정상은 아직 멀었다.
잡목의 밀림은 더욱 극성이다. 야성을 그대로 드러낸 야산이다. 이런 길은 270m 거리라도
무척 멀다. 금굴산 정상. 다만 키 큰 나무숲속이다. 정상 표지판 주변에 달린 산행표지기 수
로만 따지자면 명산반열이다. 13개나 달렸다. 소위 화원지맥을 종주하는 산꾼들의 그것이다.
화원지맥(花源枝脈)은 땅끝기맥 첨봉(尖峰, 352m)에서 서북으로 분기해서 해남의 화원반
도를 관통하여 목포 앞바다에서 그 맥을 다하도록 도상거리 83.5km를 잇는 산줄기를 말한다.
3. 황해 건너 영암군 삼호면, 왼쪽 멀리는 무등산(?)
4. 황해 건너 영암군 삼호면, 앞은 큰봉산(199.5m)
5. 황해 건너 영암군 삼호면, 현대삼호중공업, 앞 조그만 섬은 어도
6. 현대삼호중공업
7. 황해 건너 신안군
8. 황해 건너 신안군
9. 황해 건너 신안군
10. 일출, 맨 왼쪽은 월출산, 해는 제암산 왼쪽 어깨 너머로 솟았다, 오른쪽 앞은 지령산(294.0m)
▶ 운거산(雲居山, 318.0m)
우리는 화원지맥 끝부분을 해작이는 셈이다.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던 어둠이 마침내 물러가
고 고개 드니 가야 할 장릉이 가로로 놓였다. 잡목과 가시덤불은 어둠을 틈타서 우리를 괴롭
힌 것이 아니었다. 날이 밝자 아예 노골적이다. 앞사람과 안전거리를 철저히 준수한다.
211m봉. 송전철탑이 있다. 갑자기 눈앞에 펼쳐지는 가경에 탄성을 저절로 합창한다.
금호호(錦湖湖) 건너편 엷은 운무에 싸인 첩첩 산이 다도해다. 왼쪽 우뚝한 산은 월출산이고
오른쪽은 제암산이다. 제암산 가까운 왼쪽 너머가 해 뜨는 부상(扶桑)이다. 암릉 위에 일렬
로 도열하여 일출을 목도한다. 삼호면의 일출은 네 개다. 굳이 우리 눈동자 속의 해는 세지
않더라도 삼호(금호호, 영암호, 영산호)에도 해가 뜨니 그렇다.
안면 블로킹한 풋워크를 계속한다. 예전에 송전탑을 내느라 뚫은 운재로(지형도에는 임도로
표시되어 있다)는 가시덤불의 세상이다. △325.7m봉 정상은 가시덤불 등쌀에 들르지 못하
고 지나친다. 가은 님이 삼각점을 확인했는데 1등 삼각점으로 ‘화원 11’이더라고 한다. 안부
께부터 등로가 나아진다. 여태 변별력이 없던 발걸음이 족쇄에 풀린 듯 줄달음한다.
운거산. 경점이다. 왼쪽은 금호호 건너 영암이, 오른쪽은 황해 건너 신안이 대륙처럼 길게 뻗
어 있다. 양쪽으로 번갈아 눈 돌리며 오래 휴식한다. 그만 가경에 취했음인가. 가야 할 길을
놓치고 만다. 무인산불감시시스템 지나 남진해야 할 것을 서진한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회복불능인 상태다. 어떻게 첨단장비인 GPS로 무장한 19명이 똑같이 진작 알아채지 못
했을까 기이한 일이다.
생사면을 치고 내린다. 골을 건너고 능선을 갈아탄다. 소득이라면 올해 봄을 처음 본다. 진달
래는 꽃망울을 터뜨리기 직전이고 생강나무꽃은 활짝 피었다. 덤불 숲 빠져나오자 후산저수
지 윗녘이다. 농로 따라 후산저수지를 돌고 후포재 갈림길에서 휴식한다. 후포재는 발파공사
중이라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산행계획을 수정한다. 일단 화원지맥 주릉에 올랐다가 화
원중고교 쪽으로 내리기로 한다.
선두는 대간거사 님. 잡목 숲 돌진한다. 생사면 누벼 어렵사리 붙든 엷은 능선에는 고분이 연
달아 보이고 인적이 흐릿하다. 무릇 쉬운 산은 없는 법인데 기껏해야 200m 내외라 우습게
여기고 들입다 오르다보니 화원지맥 주릉 232.8m봉 옆이 금방이지만 힘은 곱절로 든다. 주
릉에는 운재로가 잘 났다. 이왕 금 간 사발인데 깨진들 대수랴. 화원지맥을 버리고 남동진한
다. 제법 통통한 능선이다.
하늘 가린 숲속 밀림을 지나고 Y자 갈림길에서 일행 점호한다. 오른쪽은 챌봉 넘어 신덕저수
지로 빠지고, 왼쪽이 △202.3m봉 넘어 화원중고교로 간다. 완만하게 길게 내렸다가 ╋자 갈
림길에서 바닥 치고 모처럼 산을 가는 것처럼 오른다. 가파른 오르막이다. 길은 좋다. 등로
주변에는 누군가 쌓아올린 돌탑이 수두룩하다.
△202.3m봉 정상. 삼각점은 ‘화원 406, 2001 복구’다. 나무숲 가려 아무 조망이 없다. 하산.
오른 터수 이상으로 급박하게 떨어진다. 고도 200m를 다 소진할 것이니 간단히 볼 게 아니
다. 철조망 튼튼하게 두른 시설물 왼쪽으로 돌아 자갈 깔린 사면을 우르르 내린다. 멧돼지들
의 내습을 방지하게 위한(?) 산자락 그물을 넘고 묵밭이다.
매향이 가득한 산기슭이다. 밭두렁에 매화 서너 그루가 온몸으로 피었다. 커다란 매화 꽃다
발이다. 반갑다 말을 다할까. 류시화 시인의 ‘이 산수유’가 아니라도 “한 살이든 스무 살이든
백 살이든/앞 다퉈 핀다”. 사실은 매화에 이끌려 밤을 도와 남도 여기까지 왔다. 수로를 암릉
타듯 넘고 화원중고교다. 교정 화단에는 빙 둘러 동백나무를 심었다. 학교를 빠져나와 대로
옆에 거목인 동백나무 그늘 아래에서 점심자리 편다.
11. 황해 건너 영암군 삼호면, 현대삼호중공업
12. 다도해 구경 중
13. 앞 능선을 아침에 우리가 지나왔다
14. 앞 왼쪽이 지령산, 가운데 멀리는 월출산
15. 멀리 왼쪽이 월출산, 오른쪽은 제암산
16. 봄의 전령사인 생강나무
17. 드물게 이런 숲길도 지나간다
18. △202.3m봉을 향하여
19. 매화, 남녘은 매화가 끝물이다
▶ 유달산(儒達山, 229.6m)
화원지맥을 따끔하게 질리도록 맛보았으니 그만두어도 조금도 서운하지 않다. 사계 님이 진
작 유달산 유람에 대해 운을 땠던 건 시간이 지날수록 탁견이다. 하여 2부 산행은 유달산이
다. 목포대교 건너고 유달산 자락을 서북쪽으로 돌아 달성공원 주차장에 주차한다. 떼로 배
낭 매고 스틱 치켜들고 나침반 걸고 지도 들여다보며 간다면 뭇 사람들이 우리를 정상이라고
보지 않을 것을 우려하여 몇 명만이 술병 든 배낭 매고 다수는 빈 몸이다.
어느 정도 저녁에 맞추려고 하는 시간 보내기가 또한 어렵다는 것을 절감한다. 노적봉 돌고,
‘목포의 눈물’ 노래비 참견하고, 유선각에서 신선놀음하며 탁주 권주하고, 일등바위 요모조
모 뜯어보고, 이등바위 너럭바위에서도 술판 벌이고, 자생식물원과 난초전시관 들르고 수림
속 동백꽃 찾아 일일이 눈맞춤 하여도 2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껏 게을러진 걸
음이라 유달산 왕복을 포기한다.
유선각(儒仙閣)은 1932년에 세웠다. 현판이 보기 드문 해공 신익희 선생의 글씨라 ‘비 내리
는 호남선’이 더욱 애절하게 느껴진다. 1951년에 선생이 목포의 갑부 정병조를 만나기 위해
목포에 왔다가 유달산 유선각에 들러 기념으로 이 글씨를 남겼다고 한다. 유선각 표지석 뒤
에는 이 고장 문인인 차재석(車載錫) 선생의 유선각 설명을 각자하였다.
“흰 구름이 쉬어가는 곳입니다.
세 마리의 鶴이 고이 잠든 푸른 바다의 속삭임을
새벽별과 함께 귀를 기우리고 있습니다.”
‘목포의 눈물’ 노래비도 유달산의 명물이다.
문일석(文一石) 작사, 손목인(孫牧人) 작곡, 이난영(李蘭影, 1916~1965)의 노래다. 1935
년에 발표되었다. 그해 초에 『조선일보』에서 향토노래 현상모집을 실시했고, 이때 당선된
가사에 곡을 붙여 9월 신보로 발매되었다고 한다. 작사자인 문일석의 행적은 알려진 바가 없
다. 가사를 문제 삼은 일본 순사에게 끌려가 모진 고문을 겪은 후 함흥의 산골 광부로 살다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고도 추측한다.
유달산. 예부터 영혼이 거쳐 가는 곳이라 하여 영달산이라 불렸다. 동쪽에서 해가 떠오를 때
그 햇빛을 받아 봉우리가 마치 쇠가 녹아내리는 듯한 색으로 변한다 하여 유달산(鍮達山)이
라 하였다. 이후 구한말 대학자인 무정 정만조가 유배되었다가 돌아오는 길에 유달산에서 시
회를 열자 자극을 받은 지방 선비들이 유달정(儒達亭) 건립을 논의하게 되었고, 그 때부터
산 이름도 유달산(儒達山)이 되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가람 이병기 선생이 1931.9.22.자 동아일보에 발표한 시조 「木浦 儒達山」이다.
山마루 험한 길을 요리조리 돌아오다
높은봉 바위머리 긔어잡고 올라서니
조고만 뫼요 물이요 바다 아니 보이더라
어대를 바라보나 물과 물 뫼와 뫼이
또한 그 뫼마다 섬이요 섬이라네
그럴사 그럴듯하다 多島海라 이름도
20. 유달산 노적봉
21. 유달산 이등바위와 삼등바위(오른쪽)
22. 유선각 현판, 해공 신익회 선생의 글씨다
23. 유선각 앞에서 기념사진
24. 유달산 이등바위
25. 앞이 유달산 일등바위
26. 뒤가 유달산 이등바위
27. 일등바위 뒷모습
28. 유달산 일등바위
29. 유달산 일등바위, 앞은 이등바위에서 휴식 중
30. 동백꽃
31. 설화(시베리아바위취, Bergenia cordifolia), 자생식물원에서, 원산지는 시베리아, 몽고
지역, 유통명은 베르게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