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문화기획 - 잊혀져가는 사찰음식을 찾아서>는 자연 재료들로 빚어내는 사찰음식을 통해 우리 전통 음식 문화의 원형을 되짚어 보고자 마련했다. 이를 위해 깊은 산골 암자 등을 찾아 아직도 오롯하게 지켜지고 있는 절집의 숨은 맛을 발굴하고, 사찰음식 전문가 스님들의 자문을 받아 복원, 소개함으로써 우리 사찰 공양의 전통문화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이 기획은 격월로 실린다. _편집자
어려운 시절 주식이나 다름없던 도토리
들판의 알곡들이 얼추 익어갈 즈음이면 옛 사람들은 다투어 산을 찾았다. 아직 익지도 않았건만 임자 없는 산열매를 차지하려니 한 걸음 먼저 나서는 것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밤, 감, 머루, 다래, 도토리를 찾아다니는 사람들로 산골짝이 시끄러웠고, 그
중에서도 도토리는 반양식이라 알이 채 여물기도 전에 아이들을 시켜 서로 많이 따 나르도록 채근하곤 했다. 그렇게 치열하게(?) 확보한 도토리로 밥도 해 먹고 죽도 해 먹고 수제비도 해 먹었다. 그 유명한 도토리묵과 전, 떡 같은 것은 조금 여유가 있을 때의 이야기였고, 그냥 떫은맛만 우려낸 채 맷돌에 대충 갈아 알갱이는 밥에 넣어 먹고 가루는 죽과 수제비를 만들어 먹는 그런 식이었다. 떫은맛을 우려내기는 했어도 밥에 넣은 도토리 알갱이는 그리 좋은 맛이 아니어서 배고픈 그 시절에도 아이들은 시커먼 알갱이들을 골라내기 일쑤였고, 그러면 어른들은 그것을 개밥에 넣어 주는데 개한테도 그 맛은 별로였던지 그야말로 ‘개밥에 도토리’만 수북하게 쌓이곤 했다. 불과 40~50년 전의 이야기다.
도토리를 곡식 못지않게 중히 여긴 것은 승속이 다르지 않아, 그 시절엔 스님들도 가을이면 도토리 줍기를 큰 울력으로 치르곤 했다. 우리나라 산 중에 도토리가 열리는 참나무과의 나무(상수리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가 자라지 않는 산이 없으므로 산속에 사는 가난한 스님들에게는 이 도토리가 주식이나 다름없었고, 그래서 갈무리에 더 신경을 쓰곤 했다. 따지고 보면 도토리가 어려운 시절의 우리 스님네들을 크게 구황한 셈이다. 물론 지금도 도토리 줍는 대중 울력을 하는 절집이 더러 있긴 하지만 옛날처럼 양식으로 삼기보다는 도토리에 들어 있는 우수한 영양소를 취하기 위해 묵이나 전 등 별식의 재료로 쓰는 정도이니 세상 달라진 느낌이 도토리 한 알 속에도 오롯하다.
도토리는 구황(救荒)의 영물
때가 때인지라 이름도 정겨운 도토리 음식을 찾아보기로 했다. 묵이나 전과 같은 별식은 오히려 호시절의 각광을 받아 많이들 해 먹고 있으니 빼놓고, 그렇다고 먹을 것 넘치는 요즘 세상에 흉년의 개도 안 먹던 도토리밥을 찾을 수도 없고, 해서 수제비나 죽을 수소문하고 있는데 마침 공주 철승산 홍복사와 인연이 닿았다.
연세도 지긋하신 수행 스님이 홀로 은거하고 있는 조그마한 암자인데, 스님도 절집도 아무런 격이 없다. 조촐한 법당에 산신각 하나, 충청도 두메산골 집 닮은 요사채 앞 텃밭에는 고추, 호박, 들깨가 익어 가고, 석간수 옆 바위에는 가지째 부러진 도토리 몇 알이 널려 있다. 그러고 보니 절집을 싸안고 있는 철승산 한 자락이 온통 상수리나무 숲이다. 수령이 백 년 가까운 거목들인데도 올려다보니 아직 푸릇한 도토리들이 올망졸망 달려 있다. 올해는 유난히 장마가 길어 일조량이 모자라 안 그래도 늦익는 도토리들이 아직 영글지를 못하고 있다고 스님이 설명해 준다. 더하여 도토리는 올처럼 장마가 길거나 가뭄이 심해 흉년이 드는 해에는 열매들이 유난히 많이 열리고, 농사가 풍년이 드는 해에는 현저하게 적게 열리는 영물이라고 한다. 도토리 앞에 붙어 다니는 ‘구황(救荒)’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스스로 그러하여 ‘자연(自然)’이라고,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가 피고 지는 것의 이치 속에 부처님의 법 공부가 다 들어 있다.
오랜만에 만나 보는 중생이어서인지 스님의 법문이 신이 났다. 그러면서 작년에 주워 와 갈무리해 둔 도토리 가루를 꺼내오고, 여름내 묵혀 두었던 가마솥을 닦고, 텃밭의 애호박과 고추, 들깻잎을 따 와 수제비 끓일 준비를 하고 있다. 이미 수확을 끝낸 올밤과 상수리나무 등걸에 키운 표고버섯, 감자, 당근, 느타리버섯, 그리고 국물용 다시마와 무가 곁들여졌다. 된장과 고추장도 꺼내 놓는다. 수제비 재료 치고는 왠지 좀 거창하다. 이름하여 도토리 야채 수제비란다.
몸이 먼저 알고 행복해하는 맛
요즘은 도토리를 곱게 갈아 가루를 물에 가라앉혀 떫은맛을 우려낸 다음 그 전분을 말려서 식재료로 쓰지만 옛날에는 겉껍질만 벗긴 도토리를 그대로 물에 우려 떫은맛을 없앤 다음 그것을 다시 말려 가루로 빻는 식이어서 아무리 여러 번 우려내어도 떫은맛이 조금 남아 있었다. 먹을 것이 귀하다 보니 한 줌이라도 양을 늘려 먹기 위해 그렇게 했다. 그런 도토리 가루에 밀가루를 절반쯤 섞어 수제비를 만들면서 가을 밭에 남아 있는 끝물 소채들을 이것저것 되는 대로 넣고, 이것들과 궁합이 잘 맞는 된장과 고추장으로 간을 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된장과 고추장을 푼 국물의 구수하고 얼큰한 맛에 도토리 가루의 텁텁함이 걸리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것이다. 당연히 반찬도 필요 없다. 옛 스님들의 지혜가 만들어 낸 소박한 식물성 보양식인 셈이다. 거기에 더하여 오늘날의 스님은 밤까지 곁들였다. 공주가 밤의 고장이라 절 주변에도 밤이 흔하므로 한 번 조화를 시켜 보기로 했단다.
스님의 진진한 설명을 들으니 과연 어떤 맛일까, 오늘 얻어먹게 될 도토리 야채 수제비의 맛이 기대되기도 하고, 또 속인의 습이 꿈적거려 가만히 지켜보지 못하고 거들고 나서는데 스님이 허허, 손사래를 친다. 속가에서도 그렇고 승가에서도 그렇고, 어려운 시절을 살아오느라 수제비 정도는 이골이 났다며 소채 씻고 반죽 반대기 치는 일을 어느 결에 척척 해치운다. 절집의 역사는 일천하지만, 스님이 만드는 도토리 수제비는 꽤나 관록이 있어 보인다. 도토리 많은 홍복사의 대표 음식이라고나 할까.
스님 한 명에 속인 손님 두 명 분의 수제비를 끓이는데 스님은 기어이 가마솥에다 국물을 안쳤다. 모처럼의 대중공양(?)이니 제대로 갖추어서 하겠단다. 남는 것이야 식혀 두었다가 내일 먹으면 된다고. 그러면서 남은 수제비를 숨겨 두었다가 밤중에 몰래 먹던 속가 시절의 추억담을 들려준다. 이 세상에서 식은 수제비 이상 맛있는 음식이 없다고 생각했던, 참으로 배고팠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꿀맛처럼 넘어가던 식은 수제비의 추억 속에 가마솥의 김이 오르기 시작한다. 속인은 장작불을 돌보고, 스님은 부뚜막에 걸터앉아 수제비를 뜯었다. 한소끔 끓어오르자 준비해 놓은 소채들을 집어넣고, 고추장과 된장을 1대 1의 비율로 섞어 국물의 간을 맞춘 다음 다시 한소끔을 더 익혔다. 도토리의 쌉싸래한 향에 가을 들깻잎의 짙은 향과 된장의 구수함, 고추장의 얼큰함이 어우러져 벌써부터 회가 동하기 시작했다.
큼직한 막사발로 두 그릇씩 담아놓고, 저 아래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마루에서 늦은 점심 공양을 했다. 매끄러운 음식만 먹어 온 속인의 혀끝에 도토리 가루의 알갱이가 쌉싸래하게 씹히는 맛은 매우 특별했다. 얼큰하고 구수한 국물과 향긋한 야채 맛이 배어든 밤을 골라 먹는 재미도 좋았다. 무엇보다 몸에 좋은 자연 영양 덩어리들을 먹고 있다는 그 사실을 몸이 먼저 알고 행복해하고 있었다. 행복 속에 먹는 음식이니 감사함도 절로 치솟았다. 본시 먹는 일이 다 그러하였음에도 어느 결에 우리는 그것을 깡그리 잃어버리고, 이제는 믿을 수 있는 한 끼의 밥상을 찾아 이리 동분서주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첫댓글 귀한 음식이군요^^ _()_
그러내요...스님!*^^*~~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