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로운 날>
임보
그제는 혼례식에 참석했고
어제는 장례식에 다녀왔다
오늘은 아직 일이 없으니
몇 줄의 글을 읽으며 빈둥거려도 된다
내 자리가 높지 않아 찾아오는 이 없고
내 가진 것 많지 않아 욕심내는 이 없고
각별히 사랑하는 이 없으니 시새움 걱정 없고
지나치게 미워하는 이 없으니 원망에도 자유롭다
아침엔 세 평의 채소밭에 나가 물을 주고
낮에는 뜰의 풋고추, 씀바귀 잎을 따다
향긋한 된장에 찍어 물 만 밥을 씹는다
저녁엔 잘 익은 매실주 둬 잔이 기다리고…
늙은 소나무엔 아침저녁 까치들이 지저귀며
감나무 매화나무엔 종일 참새들이 드나들고
호박덩굴엔 호박벌, 능소화엔 개미 떼들
찾아오는 사람은 없어도 온종일 손님들로 북적댄다
세상에 지천인 이 평화를
나누어 가질 사람이 없어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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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보의 잠언시집 [산상문답]에서
첫댓글 한가로움이 곧 평화네요.
욕심이 없으면 날마다 평안할 것 같습니다.
그래요. 욕심 부리지 않은 마음이 곧 평화인가 봅니다.
잘 보았습니다.
오늘도 활기차고 행복한 시간 이어 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