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의 젖줄 낙동강~(*선주문학 32집의 글) -- ♣12.11.7
(지난 10월 27일 토요일, 비가 오는 가운데, 선산중.고등학교 옆 단계쉼터에서
故여영택시인 시비 제막식을 가졌다. 여영택시인은 1984년 선산중.고 교감으로
계시면서, 선주문학회를 창립하신 시인이었는데, 금년 1월, 89세로 별세하셨다.
이어서 선산 갈매기회 식당에서 오찬을 하고, 선주문학 32집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선주문학회 32집 227~235면에 내 수필 두 편이 실렸다. 그 중 하나인
“구미의 젖줄 낙동강” 글로써 오늘 수요 목사칼럼으로 대신 한다. **사진 참조)
구미의 젖줄 낙동강
박태원(善山)
무남독녀 딸을 다 키우고 나니 지천명 고개를 넘었다. 딸이 결혼해서 아들 둘을
안겨주었다. 외손자 둘과 친구하며 즐겁게 지냈는데 어느 정도 컸나 했더니 부모
따라 서울에 가버렸다. 그 놈들이 없어서 허전하던 중 낙동강이 구미보를 선물해
줬다. 집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4대 강개발공사와 함께 완공된 구미보(洑)가
있다. 종종 구미보 3층 전망대에 올라가서, 강물이 가득한 낙동강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안해 진다. 사막지역과 가뭄의 때를 생각하면 많은 강물이 보물 같다.
지난해 봄 구미지역은 4일 간의 단수 사고로 인해 심한 고난과 불편함을 겪었다.
낙동강이 아닌 사람의 잘못으로 일어난 사고였지만, 그런 와중에 낙동강과 물의
고마움을 더욱 절실히 느꼈다.
사람의 몸은 70%가 물이며, 사람의 가슴에도 강물 한 자락씩 품고 산다. 그래서
강을 따라서 사람이 모이고 도시가 형성되고, 서울도 한강이 있어서 형성되었다.
강의 젖줄이 있는 지역마다 생동감이 넘치고 아름답다. 사막에 오아시스와 같이,
밤하늘에 달과 별들과 같이 구미에는 낙동강이 흐르고 있어서 산야가 더욱 풍성
하고 아름답다. 낙동강은 천년을 흘러도 돌아서지않고 겸손히 낮은 곳으로 흐르
며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강물은 모든 생명의 어머니이며, 멈추지 않고 말없이
젖줄을 물린다. 능라주단 같은 낙동강이 구미 옥토를 촉촉이 적시며 흐르고있다.
멀리 왜관철교를 흐르는 낙동강은 6.25동란 때 인민군의 파상공격을 저지함으로
써 나라가 풍전등화 위기를 맞았을 때 낙동강전선의 최후 보루로 교두보 역할을
훌륭히 해 냈다. 낙동강은 농경시대에 이어 산업시대까지 구미들판과 공단에 계
속 고마운 젖줄이 되고 있다. 거대한 구미 보(洑)가 갈무리되어서 낙동강은 구미
지역에 새로운 젖줄이 되고 있다. 무언가 더 크고 좋은 것을 잉태하고 있다.
구미는 선산군에 속한 면(읍)이었다가 1978년 시로 승격되어 선산군에서 분리되
었다. 그리고 1995년 시군통합으로 선산군의 읍면들은 구미시에 속한 읍면이 되
었다. 한동안 구미 선산은 낙동강 때문에, 동서(東西)로 분리돼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선산군 중간을 흐르는 낙동강으로 인해, 강동 쪽 장천면 해평면 산동면
도개면 주민들은 강서 쪽 선산면 군청(郡廳)과 구미면 기차역에 가려면, 나룻배
를 타고 낙동강을 건너야 했다. 지금도 낙동강 곳곳에 나루터 흔적들이 있다.
그런데 선산사람인 박정희대통령이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일환으로 1964
년 6월 6일 1억7천5백만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3년 사업으로 선산군의 낙동강 동
쪽과 서쪽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설하도록 했다. 그리고 1967년 3월 27일,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서, 낙동강 다리의 준공식을 가졌다. 당시는 고속도로도 없
는 불편한 교통 임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대통령이 친히 낙동강의 다리 준공식에
참석했으니 대단했다. 준공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그 다리를 일선교(一善橋)라
명명하고, “一善橋 竣工記念 朴正熙” 친필 휘호를 남기셨다. 그 친필 휘호는 돌비
(碑)로 새겨져, 지금도 일선교 옆에 세워져서 낙동강과 일선교를 지켜보고 있다.
일선교 다리로 인해 다리 밑 낙동강 변은 지역주민들의 즐거운 휴식처가 되었다.
수영 팬티만 입은 알몸으로, 강의 물살을 조심하면서 강물에 풍덩 뛰어들면 내가
강물이 되고, 강물이 내가 되는 사랑의 절정이 되곤 했다. 어릴 때, 산골 연못과
시냇물에서 목욕하던 친구들이 생각났다.
6.25 전쟁이 막 끝난 가난한 때에, 군위군 산골에서 태어나, 산골 개울물을 친구
하며 자랐다. 물이 풍성한 강이 보고 싶었고, 초등학교에서 지도를 보며, 가까이
산 넘어 낙동강이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라디오를 통해, “낙동강 강바람에 치마
폭을 스치며~” 처녀 뱃사공 노래를 들으며 낙동강을 동경했지만 옆 마을에 심부
름하러 가는 것이 소풍이었을 만큼 어렵던 때라, 고향 면 지역을 벗어날 수 없었
다. 다행히 중학교 진학을 대구로 했지만, 대구와 고향 길만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면서 벗어날 수 없었다. 대학생 때, 대구에서 완행기차를 타고 처음 부산에 갈
일이 생겼다. 기차가 삼랑진역에서 구포역까지 낙동강 변의 철로를 달렸다. 많은
물을 품은 낙동강을 보면서, 그리던 이산가족을 만남 같이 감격했다. 수 백Km를
달려 온 낙동강 물이 넓은 바다로 들어가기 위해 심호흡하며 준비하고 있었다.
이렇게 낙동강을 처음 만난 것은 낙동강 하류에서였다.
낙동강을 두 번째 만난 것은 낙동강 상류에서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ROTC 장교
가 되어, 광주에서 4개월 교육을 받고 강원도 동해안 최북단 부대 소대장으로 명
받아 부임하게 되었다. 중앙선 철로로 영주역에 내려서 다시 영동선 철로를 달렸
다. 봉화군 현동역부터 기차는 산 계곡 강을 따라 강변 철로를 달렸다. 강물이 몹
시 맑고 풍부했다. 그 강은 태백산의 정기를 머금은, 태백시 황지에서 시작된 낙
동강 상류이었다. 경상도 곳곳의 모든 물은 이 강에 합류하여, 낙동강의 큰 물이
되어 먼 여행을 한다. 고등학교 때 그 철로로 해서 설악산 수학여행을 갔는데 나
는 가지 못했다. 철로 곁으로 풍성히 흐르는 낙동강 물을 보며, 돈이 가물어서 수
학여행 못 갔던 그날의 아픔을 달랬다. 가물어서, 말라붙은 들판과 내 마음을 적
셔 주는 낙동강의 젖줄이 고마웠다.
군 제대를 하고, 선산에 삶의 터전을 삼아 30년을 살았는데, 선산 곁에 낙동강이
있어서 좋았다. 산이 좋아 산에 갔다가, 산을 흐르는 계곡의 물을 만나서 산이 더
좋아진 것같이, 구미가 좋아 구미에 왔다가 구미를 흐르는 낙동강을 만나서 구미
선산이 더 좋아졌다. 구미지역 낙동강에는 일선교가 무녀리 되어 몇 개의 다리가
더 생겼다. 이런저런 일로 낙동강 다리들을 수없이 넘나들었으니 곧 낙동강을 넘
나든 것이었다. 그때마다 낙동강을 보며 기뻐하였고, 낙동강은 내게 젖줄과 행복
비타민이 되었다.
특히 이제는 한적해진 일선교를 걸으며, 흘러가는 낙동강을 바라본다. 일선교는
42년간 낙동강의 다리가 되어주었고, 홍수 때, 강의 거센 물살에도 그 사명을 쉬
지 않았다. 시나브로 낡아진 일선교를 대신하여 선산대교가 개통되었다. 그래서
그동안 낙동강을 건너게 하는 역할을 하던 일선교가 이제는 낙동강 위에 머물러
서 낙동강과 깊은 사귐을 갖고 친구 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일선교 위에서 다
리 아래로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보면, 물기 머금은 강바람이 신선하게 감겨온다.
봉화군 산계곡을 흐르던 낙동강 상류 물이 생각난다. 고향마을을 흐르는 시냇물
도 군위군의 대동맥인 위천(渭川) 물이 되어서, 의성 안계면을 지나 상주 중동면
으로 흘러서 낙동강 물이 된다. 결국 일선교 밑을 흐르는 낙동강 물에는 고향 시
냇물도 합쳐져 있다. 이 강물이 흘러, 경남 삼랑진역과 구포역 사이 낙동강 하류
를 흘러갈 것이니, 대학생 때 처음 만난 낙동강이 생각났다.
내 입에서 한 노래가 흥얼거려진다. 이 노래는 어릴 때 나를 위로해 주던 동요이
었다. 고향 산촌에 살 때 강물이 보고 싶고, 넓은 바다가 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마을을 흐르는 시냇물과 위천을 보며 이 동요를 불렀다. 이제 낙
동강 일선교 위에서 위천과 낙동강 물이 흐르는 모습을 보며, 그 동요를 소리 내
어 불러본다. 낙동강 천년의 세월과, 내 반백의 인생을 함께 노래한다. 낙동강은
고향집 어머니같이 마음의 젖줄이 되고 구미의 젖줄이 되어 삶의 깊이와 부요함
행복 에너지를 더해 준다.
“졸졸졸 시냇물아 어디로 가니, 강물 따라 가고 싶어 강으로 간다.
강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
◆.사진; ①.시비 제막식 현수막이 우리교회 앞길에도 걸렸다.(*2012.10.26)
②.③.④.⑤.⑥. 雨中 여영택님 시비 제막식을 가졌다.(*2012.10.27)
⑦.⑧.⑨.선주문학 32집 출판기념회를 했다. 책과 글~.(2012.10.27)
⑩.선주문학회원들 같이 선산 교리 유림회관을 방문~.(2012.10.27)
첫댓글 "조회수" 오해(*해명, 추측)- 글 올린 지 겨우 5시간인데, 조회수 68회를 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종종 있습니다. 회원들이 제 글을 찾아서 읽은 것이 아니고, 글 내용 중에 시사성이나 이슈가 되는
낱말이 있으면 이렇게 됩니다. 그렇게 추측합니다.(*낙동강, 구미시, 박정희, 군위군, 시비제막식,~)
^^일반인들이 낱말을 검색하다보면, 그 검색이 제 글로 연결되어서, 조회수가 올라가고는 합니다.
선주문학 32집에 실린 '구미의 젖줄' 낙동강 수필은 박목사님의 낙동강을 향한 어머니같은 향수의 마음이 담뿍 실려 있는 것 같습니다. 늘 아름다운 글로 카페회원들의 마음을 옥토로 만들어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목회하랴, 선주문학회 활동하랴 바쁘시군요. 구미의 젖줄 낙동강을 읽고 갑니다. 사랑방 이야기처럼 도란도란, 구수합니다.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
★.박태원목사 "개인 카페"로 스크랩 해서, 옮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