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판지로 만든 의자 ‘이지 엣지스’
“한국인들은 이런 건물이 있다는 걸 감사해야”
6일 오전 8시50분 서울 종로구 훈정동 종묘 앞. 두 대의 차에서 벽안의 외국인들이 내렸다.
프랭크 게리와 그의 가족들이었다. 전날 삼성 미술관 리움에서의 강연에 이은 만찬이 밤늦게까지 계속됐지만 그는 가족들에게 재삼 당부했다고 한다.
“이번 여행에서 다른 일정은 다 빠져도 좋은데 종묘 참관만은 반드시 우리 가족 모두 참석했으면 한다”고.
원래 종묘는 직원들의 안내를 통한 단체 관람만 가능하지만 그는 단독 관람을 원했다.
문화재청 종묘 관리소는 삼성 문화재단의 요청을 받고 “세계적인 명사가 요청하거나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할 경우 가능하다.”며 단독 관람을 허락했다.
직원들의 안내에 그는 막바로 정전(正殿)으로 가겠다며 부인의 손을 꼭 잡고 휘적휘적 발걸음을 옮겼다.
정전. 19실(室)에 조선 왕조 19위의 왕과 30위의 왕후 신주를 모신 곳. 증축을 거듭한 기다란 맞배지붕이 순간 시야를 온전하게 채웠다.
문득 그가 합장을 하며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고개를 움직였다. 종묘를 감싼 공기 한 모금조차 깊게 음미하는 듯했다.
이윽고 그가 말문을 열었다. “15년 만에 보아도 감동은 여전하군.”
소감을 묻는 질문에 그는 조용히 대답했다.
“정말 아름답지 않은가. 아름다운 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마치 아름다운 여성이 왜 아름다운지 이유를 대기 어려운 것처럼.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누구나 그것을 느낄 텐데.”
남문에서 박석이 촘촘하게 깔려 있는 월대(月臺)로 올라가는 계단도 그는 성큼 내딛지 않았다.
종묘 관리소 직원이 “올라가시겠습니까?”라고 물었으나 그는 “아니, 아직”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큰며느리에게 말했다. “이 아래 공간과 위의 공간은 전혀 다른 곳이란다. 그 차이를 생각하면서 즐기렴.”
동양의 목조 건물 중 가장 길다는 정전을 보면서 그는 “민주적”이라고 했다.
똑같이 생긴 정교한 공간이 나란히 이어지는 모습에서 권위적이지 않고 무한의 우주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같이 장엄한 공간은 세계 어디서도 찾기 힘들다.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곳을 굳이 말하라면 파르테논 신전 정도?”라고 덧붙였다.
“재미있는 것은 이것은 미니멀리즘이 아니라는 것이다. 심플하고 스트롱하지만 미니멀리즘이 아니다. 간단한 것은 미니멀리즘이라고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데, 미니멀리즘은 감정을 배제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살아 있는 느낌이 든다. 당시 이것을 만든 사람들의 감성과 열정이 느껴지지 않는가?”
임금님이 드나들었던 동문에서 정전을 바라보며 그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건축가로 일하고 있는 둘째 아들 샘에게 말했다. “이 문의 스타일을 새로 짓는 집에 적용해 보는 게 어때?”
그때 일본 관광객 수십 명이 우르르 들어왔다.
그는 “15년 전 처음 왔을 때는 이곳을 구경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라며
“한국 사람들은 이런 건물이 있다는 것을 감사해야 한다. 자기만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경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나오는 길에 종묘 내실을 재현해 놓은 공간과 종묘 제례 DVD를 10여 분간 관람한 게리는 매년 5월 첫째 일요일 종묘 제례가 열린다는 소리에 “그때 오면 볼 수 있느냐?”라며 관심을 내비쳤다.
1시간 가까운 투어를 마치고 나오는 길. 게리가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종묘는 세계 최고의 건물이다. 그런데 여기서 보는 서울의 스카이라인은 형편없군요. 좀 정리됐으면 좋으련만.”
그는 친구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청계천 입구에 설치한 소라 모양의 설치물을 보고 난 뒤 호텔에서 이야기를 나누자며 차에 올랐다



첫댓글 우리가 몰랐던 걸 세계최고의 거장이 알려주고 있네요.
역시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이면서 소중한 유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말 이토록 자랑스런 문화유산인지는 미처 몰랐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