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서로는 학지록.초학지남.관서록.기자사적.소대비요.가범.이기론.역대사상.
상산지(청대본).학성지(울산지).일기(15책).청대선생문집(18권)이 있다.
*가계
6대조 휘대기 호는인제 생원 퇴계문인 유학행 증사헌부집의.
5대조 휘우 호는 송소 진사 왕자사부 퇴계문인 유학행 노림서원 경주 경광서원
에 배향 증승정원 좌승지
고조 휘익린 호는 금곡 생원 여헌(장현광)문인 유학행.
증조 휘구 호는 구학제 생원 상주(산북면 서중리 근암) 입향조 유학행문장
증좌승지
조 휘이미 예학에 밝은 효자 청대교육에 각별함 증이조참판
부 휘심 유학행 증이조판서 모 경주이씨 부사 달의의딸.
*학문개요
1 학통;선생의 학문은 가정에서 얻은 것이나 가정의 학문은 도산의 지결이었다.
선생의 5세조 송소선생이 일찔이 도산에서 배워 학문하는 큰 방법을 깨닫게
되었다 (조석철 청대문집)
2 학문태도;선생이 곧 가훈으로써 우리 유학을 알았고 타고난 자질로 말미암아
유도에입문 하였다 정확하고 깊이 앎(진지)을 귀하게 여기되 널리 박학함에는
힘쓰지 않았고 자신을 반성함에는 늘 실천을 위주로 하되 명예를 추구함을
부끄럽게 여기었다 연구하고 체험함에는 정밀하고도 간략히 함을 지극히하였고
은미하고 조용히 홀로 지냄에는 더욱 반성하여 살핌(성찰)을 더하여 공경경 (敬)
한 자에 힘을 다 하였다(정종노 청대문집 서)
*청대선생의 선비적 면모
사상면에서 본 청대
1 우국우민의 충신--일직신 문치주의 말폐비판 탕평론 역설
지금 말해야 할 기회를 맞고서도 단지 입을 다물고 말 아니하고 병을 핑계삼아
사직하여 그친다면 이는 전하를 버람이요 신 또한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없는
일이옵니다.(사집의소,1746년.68세)
2 여학육영의 교육자--울산 구강서원 중창.임호서원 학규제정.
권부.이수항.이세택.이맹휴.조석철.이식춘.전광재.등 59인(청대선생 문인록)
3 탕평의 선구자--왕의 탕평책 촉구 붕당타파에 솔선.
4 인간성 옹호자--선량인 발굴.
박열부 배열부 허열부 열부고씨 만경현효자열부 이효자 김효자 등의 기사는
다 무명인임 인성은 누구나 고귀하다고 봄.
5 영남인의 대변자--유림초선 어필공신전권.영남 선비고을에 성품이 맑고 곧은
신하가 있음을 익히 알았노라 특별히 예관을 보내어 잘 살피도록하라(81세연보)
*학문면에서 본 청대
1 실천유학자--사서중시 주경 지행겸전. 실득위주
2 퇴계학의 성리학자--퇴계 이기론 옹호.
3 이승위주의 문학자--문이재도관 견지
문장은 순리로서 주를 삼으니 리 가운데 기가 따르게 된다.
성현의 글은 의리에서 나온 까닭에 품격이 높다(관서록)
4 문헌을 중시한 사(史)가--후세귀감으로 남긴 일기.
<청대일기>는 20세(1698.숙종24)로 부터 81세(1759년.영조35)
7월 1일(별세 10일전)까지의 일기 가문의보배요.사회사 국사임
*결론
청대 권상일(1679~17590선생은 명문의 후예로 태어나 가학으로써
퇴계학에 연맥이 닿은 실천유학자요 성리학자이며 문신으로서 탕평에
솔선한 당대 영남을 대변할 대유였다 사상면의 다섯 특성과 학문면의
네 특성은 청대연구의 대과제가 되리라 믿는다.
*가계도*
1 익인 대명공의 3자
구 구학재--근암(산북면 서중리 입향조)
2 구 구학재의자
첫째 이이--산북면근암 성문안
둘째 이임--약석
세째 이기--영순면 사근절
3 이이(근암)의자
첫째 심--청대 권상일(종가)
둘째 숙--상원(금당실댁 집안) 상열(기호댁 집안) 상여(용산댁 집안)
세째 한--상기(하회댁 집안) 상용(송촌댁 집안) 상호(매산댁집안)
*한글로 기록.젊은이도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족친 및 필요 하신 분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