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처 눈에는 부처가 보인다네.(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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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無學)대사는 고려말 조선초기 승려로
태조 이성계의 왕사로 이성계와 친구처럼 절친했습니다.
그래서 가끔 서로 농담도 주고받았습니다.
하루는 이성계가 무학대사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내가 대사를 보니 꼭 돼지 같아 보인다오.
그런데 그대가 보기에 나는 어떻게 보이오?”
그러자 무학대사는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대왕께서는 부처님같이 보입니다.”
이에 이성계는 정색을 하며 물었다.
“대사, 나는 그대를 돼지라고 하였는데
그대는 나를 어찌 부처님으로 본단 말이오.”
이 말에 무학대사가 말했습니다.
“대왕님, 본래 부처 눈에는 부처가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답니다.”
이에 이성계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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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하는 만큼 말하게 됩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사고의 틀을 <고정관념>이라 합니다.
이것은 세세생생 내려온 그 사람의 업식(業識)입니다.
깨달음이란 이 업식을 바르게 ‘알아차림’하고
시시각각으로 나타나는 자신의 업식을 ‘알아차림’하고
이 업식을 참회하고 그 업식을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매 순간 깨달아가는 것이 진정한 수행입니다.
# 그래서 자기만이 가지고 있는 색안경을 벗고, 편견을 벗어나
보편타당한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의 원리와 인연과법의 원리로
세상만사를 비추어 봅니다.
그러면 변견에서 벗어나 중도실상의 자리에 들게 됩니다.
나의 무지(無智)인 어리석은 생각에서 벗어날 때
자신이 바라보는 모든 사람과 동물과 식물과 자연이 모두
있는 그대로 보입니다.
“내 것이다 내 소유다 아니다 내 생각이 옳다.’라는 집착과 애욕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평안한 마음이 들게 됩니다.
그러면 마음에 걸림이 없고, 두려움도 없습니다.
세상을 한 없이 자비롭게 바라봅니다.
그리고 고통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을 구해주게 됩니다.
나와 남이 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해탈입니다.
해탈의 마음으로 보면 세상만사가 다 아름다운 꽃입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보는 세계를 화엄세계라 합니다.
너와 나 모두 대립이 없고 평등하며 오순도순 잘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나무아미타불
자비불교정토회
정인(正印)합장
2017년 6월 29일
아미타불천일기도 7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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