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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처작주隨處作主 - 저마다 자신의 길을 가도록 돕는다
스님, 목사, 시인이 함께 펼치는 야단법석
박두규 -지금 평화학교는 대안 학교라는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의 사회체제, 삶을 그대로 사는게 좋은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대안학교를 꿈꾸게 되었는데 아이들 교육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궁금합니다.
김민해- 저는 ‘대안 학교’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성인이 스스로 ‘나는 성인이다’고 말한다면 얼마나 우스운 꼴이겠어요. ‘대안’을 말하는 것 보다는 모두가 우선 상식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굳이 말을 한다면 마땅하다고 여기는 일을 그냥 하는 거지요.
아이들이 저마다의 생명의 꽃을 잘 피우면 좋겠습니다. 학교의 교육목표를 수처작주(隨處作主), 저마다 자신의 길을 가도록 돕는다로 삼았는데, 그보다 더 높은 교육 목표가 있을까 싶어요. 있다면 그것을 향해 가도록 해야죠. 지금 인류가 직면한 위기, 가야할 길이 평화학교의 교육과 동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함께 고민하고, 고뇌하고, 손잡고 가야지요. 그래서 첫째로는 정부에서 주도하는 왜곡된 학교, 정신이 메말라버린 사립학교가 아니라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겁니다. ‘당신이 있어 내가 있고, 나는 너다’라는 정신을 바탕으로 온 인류가 한 가족이라는, 만물이 한 몸이라는 것을 눈뜨도록 하는 교육이어야겠지요. 둘째는 인간의 영혼을 잠재우고 죽이는 교육이 아니라 영혼을 살리고 지속시킬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셋째는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서로 배우고 자라는 교학상장敎學相長, 이런 교육의 바탕정신을 더 살려 봐야겠습니다. 이와 같은 것은 저 혼자서 생각해 낸 것이 아니고 어르신들이 들려주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름대로 정리한 것입니다. 저마다 자신의 생명의 꽃, 신성한 불꽃을 발산 할 수 있도록 일상에서 배우고 익히고 연습하는 교사, 학부모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가짓껏 실험도 하고 연습도 해보며 한 걸음씩 가고있습니다.
박두규-현재의 삶에 대한 문제의식 속에서 대안교육이 나왔는데, 스님께서 대안 교육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거들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도법-글쎄요. 살아보니 인생에 대안이 있던가요? 요만큼 살아보니 인생이 대충 이만큼 이겠구나~안보이든가요? 인간이 살아온 역사가 끊임없이 대안을 찾아온 역사이지 않겠습니까? 농촌사회는 대안을 찾아 도시로, 농경 사회는 산업사회로 간 거잖아요? 육체적 노동이 고통이어서 기계화를 이루었고..지금은 대안을 찾은 최첨단 아닙니까? 그런데 또다시 대안을 이야기 하고 있는 거죠. 대충 보이지 않아요? 빨리 그것을 깨닫는게 대안이라고 생각 합니다. 불교가 2600년, 기독교가 2000년 넘게 끊임없이 하느님 나라, 부처님 나라 하면서 대안을 찾아온 세월입니다. 대안, 희망이라고 꿈꾸었던 극락세계가, 하느님 나라가 어디에서 어떻게 실현되었는지 저는 본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 짚어보면 별 인간, 별세상 있지 않습니다. 이제는 헛된 욕심과 헛된 꿈을 버리는 것이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헛된 욕심과 헛된 꿈을 붙들고 있으면서 대안을 찾고 있습니다. 지금의 도시 사회에서 이제 달나라, 우주사회로 가게 될까요? 그것이 이루어 질 거라고 착각하고 있는 거죠. 착각으로부터 깨어나야 합니다. 부질없는 욕망, 부질없는 꿈을 깨지 않는 한, 끊임없이 대안을 찾는 것을 거듭할 뿐이죠.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아이들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과연 아이들을 신뢰하고 있는가? 아이들의 무엇에 대한 믿음인가? 꽃씨가 싹트고 자라고 열매 맺는 것을 봐보세요. 한 꽃에서 한 존재로 완성해 가는데 인간이 하는 일이 많은가요? 많지 않습니다. 꽃씨는 싹 틔워 열매 맺을 수 있는 능력을 꽃씨 스스로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약간 돕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거죠. 꽃씨 자체가 꽃으로서의 자기완성을 이룰수 있는 모든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가장 건강하고 가장 빛나게 자라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봐요. 지금 교육의 문제는 이런 믿음이 없는거죠. 이런 믿음이 있다면 아이들로 하여금 자기 스스로 찾아 가도록 하고, 그것을 도와 줘야 합니다. 국가나 사회가 존재에 대한 신뢰가 없고, 스스로의 삶을 살도록 하지 않으면서 국가가 필요로 하는 사람, 어른들이 생각하고 있는 사람을 만들려고 하고 있죠. 스스로의 인생을 살아가게 해야 하는데 말이지요. 아이들을 국가가 생각하는 대로, 어른이 생각하는 대로 키우려니 어른도 아이도 고달픈거죠.
대안 교육 하려면 아이가 갖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 그것을 현실로 가꾸어 낼수 있는 믿음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안교육에 대한 환상을 갖는 것이 대안교육을 망치는 것입니다. 별수 없다고 봅니다. 별 수 있다고 생각 하는 것, 헛된 욕망, 헛된 꿈을 버려야 합니다. 좀 더 냉철한 성찰이 필요하고, 착각으로부터 깨어나고, 대안교육에 대한 지나친 환상과 욕심도 내려놔야 길이 분명히 보일 겁니다.
박두규-헛된 욕심, 헛된 꿈을 버리는 것이 대안이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꿈을 꾸고, 욕망을 갖고, 얻고 이루어 내야 만족하고, 못 얻을 때는 불행해 지잖아요?
도법-정부 수립당시 국민소득 100불이었는데 50-60년 사이에 2만불 시대가 됐어요. 엄청나게 많은 것을 얻은 거예요. 그런데도 불만족스럽잖아요? 얻는다고, 이루어진다고 우리의 삶이 행복해 지는 것이라면 우리는 지금 200배 더 행복해 져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기계화로 인해 육체를 안써서 더 문제가 되는 세상입니다. 더 소유하고, 더 이루어 낸다고 만족스러워 진다는 것은 착각입니다. 문제는 이겁니다. 더 이루어 진다고 삶이 만족스러워 지거나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불안하고 초조하고 그것이 반복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새로운 길을 찾는게 필요합니다. 욕망이 얼마나 허망한지? 옥망이 우리 삶을 얼마나 고단하게 하는지 빠른 깨달음이 요구됩니다.
박두규-깨달음의 근저에는 영성이라는 것이 있는데요. 목사님이 영성 공동체를 생각하는 것도 그런 문제 해결의 한 축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은 영성이 다양한 의미로 이야기 돼고 있는거 같아요. 영성 즉, 깨달음을 얻는 것과 관련된 부분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김민해-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스스로가 수행자인지 아는 사람과 수행자인지 모르는 사람. 이 말은 모든 사람이 수행자인데 어떤 사람은 자기가 누구인가를 알면서 살고, 어떤 사람은 모르고 살고있다는 거죠. ?잠자는 왕자보다 깨어있는 도둑이 더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수행자는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를 더 중요하게 여기며 산다는 겁니다.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그렇게 살아야한다는 거죠. 복잡고 어려울 게 없습니다. 제가 볼 때는 ‘밥 먹을 때 밥 먹을 줄 알고, 잠 잘 때 잠 잘 줄 아는 것’, 다시 말하면 무엇을 하든 깨어서 사는 삶, 이것이 영성에 있어 기초이면서, 가장 높은 삶의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자기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는 알고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자기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 깨어있음. 이것을 평화학교 교육의 근본의 하나로 삼고 있습니다.
박두규-스님도 무슨 메모를 하시던데요?
도법- 저도 잘 모르겠드라고요. 이 사람한테 들어도 그렇고, 저 사람한테 들어도 그렇고. 한번은 걷기 영성에 대해 써달라는 주문이 들어와서 이슬람 수피 이야기를 썼어요.
수피가 하느님을 상대로 물어요.
?신이시여! 정직하게 좀 이야기 해 주세요. 당신은 누구십니까??
신이 대답하여 이르기를 ?너? 라고 이야기 해요. ?가라사대! 너!?
이런게 영성이라면 충분히 동의가 돼요.
얼마전 한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깨달으면 뭐가 달라지느냐?? 물으니
?옆에 사람이 보인다.? ?옆에 부처가 보인다.? 사람이 부처님으로 보인다는 거죠. 존재 자체가 가장 귀한 것이라는 말씀이죠. 나도 귀하고, 너도 귀하다. 이 사실을 사실대로 인식하는 것. 그것을 영성이라고 하면 동의가 됩니다. 우리 사회에 대한 대안을 실현 하는 것도 존재 자체가 어마 어마한 존재라는 것에 눈을 뜨는 것이 대안 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박두규-이제 여러분의 질문을 받겠습니다.
청중1 -여기에서는 아이들이 잘했을 때 어떻게 칭찬하나요? 그리고 꼴통 부릴땐 어떻게 교육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김민해-글쎄요, 칭찬이 좋겠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칭찬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요. 오히려 물끄러미 바라봐 주는 게 좋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칭찬을 한다는 것은 늘 반대편에 꾸중을 해야될 아이가 있다는 거잖아요. 물론 모든 아이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교사라면 모르겠지만, 칭찬할 아이를 그저 바라볼 수 있다면 문제를 일으킨 아이도 그냥 볼 수 있을 거예요. 바라보면, 물끄러미 바라보면 그의 부모가 보입니다. 부모를 보면 그를 둘러싼 사회가 보여요. 그러면 아이의 문제는 부모의 문제요 사회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문제아라고 보는 그 아이의 아픔이 어디에서 왔겠어요? 아이의 문제는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 사회가 주는 억압으로부터 왔다는 게 보이죠, 교사도 한 몫 거들었겠지만. 물끄러미 바라보면 그러면 절로, 문제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안아줘야 할, 돌봐줘야 할 아이로 바뀝니다. 문제가 상처로 슬픔으로 보이는 거죠. 교사는 이렇게 따사로운 눈, 깊은 안목을 가져야된다고 봅니다.
도법-저는 교육을 해 본적도 받아본 적도 없어요. 교육 받아서 살아왔다. 이런 생각 없구요. 헤매면서 살아왔는데요. 저 스스로가 교육에 의해 뭐가 이루어 졌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교육자는 아니지만 본질적인 문제를 짚어서 교육문제를 다루어야 한다고 봅니다.
청중2-어떤 생각으로 오셨고, 평화학교를 어떻게 운영하고 싶으신지요?
김민해-놀고 있는데 오라고 해서 왔습니다. 처음 몇 분을 만나 이야기했는데 건강한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왔습니다. 계획은 없어요. 내가 경험하고 할 수 있는 거, 그걸 해 보는 거죠. 무얼 어떻게 해야겠다는 마음은 없어요. 물론 바람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한 걸음씩 해가야지요. 아무리 훌륭하고 좋은 일이라 해도 내 자신을 속이고 거짓말하며 살 수는 없잖아요. 내 인생의 바람이 있다면 그냥 그렇게 주어진 곳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정성을 다해 하루를 사는 겁니다.
청중3-아이들을 믿는다는 것에는 공감을 하겠는데 현실에서는 늘 못 믿어요. 꽃이 피는 과정, 저도 이해는 돼요. 그런데, 아이들을 뭘보고 믿어야 되는지 모르겠어요. 아이들의 무엇을 믿으라는 건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도법-제가 관찰한 바로는 아이들을 상대하는 부모는 다 환자예요. 아이 문제를 객관적으로 다루지 못합니다. 이게 아이들을 골병들게 하는 한국사회의 문제입니다. 자식에 대한 지나친 욕심, 열정, 그런 부분에 있어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어요. 또 하나는 부모의 시선이 환자의 시선이라는 것을 되짚어 보면 좋겠어요. 침착하지도 않고, 냉철하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고, 객관적이지도 않아요. 이것을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아이들만 공부 시키지 말고 부모들도 공부 좀 하면 좋겠어요.
나는 내 자식에 관한한 환자야. 내 자식에 관한 한 냉철하지 않아. 그런 생각으로 깨어나는 것이 수반 되어야 합니다. 아이에 대한 믿음이 분명해 지고, 기다리기도 하고, 지켜봐 주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아이 스스로가 자기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두규-오늘 교육 이야기만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모처럼 도법스님이 오셨고, 살면서 가슴에 품고 있는 문제, 의문 그런 질문도 좋을거 같습니다.
청중4-인생을 사는데 버릴게 있고, 욕심 안 부리면 영생할 수 있다는 것은 공감하겠습니다. 여기서 이야기를 나누며 참 평화롭습니다. 그런데, 문을 나서는 순간 현실 세계에 부딪치면 다 무의미해 져 버려요. 평상시 속세에서 살면서 가장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수행이 있으면 알려 주시겟습니까?
도법-그런걸 뭐라고 하냐면 도둑놈 심뽀라고 해요. (웃음) 쉬운 길, 편한 길, 그런거 봤어요? 그런거 없습니다. 나는 이 도둑놈 심뽀때문에 안된다고 봅니다. 그런거 존재하지 않습니다. 꿈 깨세요. 제 경험으로는 절에서도 평화롭지 않아요. 제가 경험한 바로는 제 욕심을 비우거나 줄인만큼 꼭 그만큼 편안했어요. 법당이든 선방이든 길거리든, 비운 만큼 내 삶도 편안해 졌다. 이런 말이죠.
저는 자랑거리가 없는 사람이예요. 그런데 최근에 자랑거리가 생겼어요. 그것은 제 어머니의 죽음이었습니다. 돌아 가셨는데 집에서는 연락도 안 와요. 다른 사람이 알려줘서 전화 했더니 웃는 소리가 들려요. "집에 가겠다"고 했더니 오지말래요. 어머니가 너무 깨끗하게 돌아가셨다고, 정신도 초롱초롱하고, 깨끗하게, 미음도 드시고, 다쳐서 몸은 못 쓰셨지만 집안 식구들도 다 편안하게 보내 드렸어요. 어째서 그렇게 편하게 돌아 가셨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머니에게는 욕심이라는게 없었어요. 버리고 비우고 이런 것이 그 분의 삶을 편안하게 하고, 죽음도 편안하게 느끼면서 가신게 아닌가 생각해요.
청중5-스님은 무슨 욕심이 있어서 힘드실까? 궁금하고요. 지금 정부의 정책을 보면 답답함이 많은데 그런 답답한 심정을 어떻게 푸시는지 궁금합니다. 교직에 20년 넘게 있었는데 지금 교육의 문제, 어디서부터 실타래를 풀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스님이 걷는 걸 보면서 걷기 속에서 무슨 교육의 해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도법-중이 무슨 욕심이 있을까? 중이 욕심이 있다는게 이해가 안가죠? 세상엔 두가지 욕심이 있죠. 첫째는 물질에 대한 환상 둘째는 정신적 환상이죠. 정신적 욕심이 있는 거예요. 깨달음 이라는 특별한 무엇. 부처라는 무엇에 매달려 있어요. ?깨달음 병? 이죠. 별인간이 있을 것이다. 부처, 불국토, 늘 그것에 매달려 추구했는데 만날수가 없는 거예요. 별인간, 별세상 어딘가에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안 보이고, 안 만나지고하니 힘이 들죠.
돈이 안 벌리는데 고민이 많죠. 그런데, 벌어도 별거 없어요.
정신적 가치에도 환상이 있습니다. 특별한 인간, 불국토가 존재한다는 생각으로 갑갑한 거죠. 그러한 과정속에서 그것도 역시 착각이었고, 환상이었고, 잘못된 욕망, 꿈이었다는 것이 나름대로 터득이 되었어요. 내려 놓기도 하고, 비워 내기도 하고. 아~붓다라는게 이런거구나..홀가분하게 와 닿는 경험이 있습니다.
수행이야기 하셨는데 걷는 것이 많은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됩니다. 제대로 걷는 것이 삶의 문제에 대한 많은 해답을 줄 수 있습니다. 길은 어디를 가기위한 것인데, 둘레길은 걷는게 목적입니다. 수단이 아니고, 걷는걸 목적으로, 수행이라는 말과 연결 시켜서 생각해도 좋겠고, 걸음에 집중해서 온전하게 걷는다면 삶의 문제에 대해 많은 대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청중6 -죽음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자연스런 죽음과 선택된 죽음, 차이가 있는지?
도법-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명분과 신념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는데,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도 있어야 합니다. 자살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생명에게 부여된 천부의 권리는 죽음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부여되어야 합니다.
스무살 무렵에 죽음의 문제에 부닥치면서 비로서 제 인생을 구체적으로 고민했어요. 왜 살아야 하는가? 내 존재의 의미가 무엇인가? 죽음의 문제에 직면한 이후 존재의 이유에 대한 해답을 찾는게 의미가 있었어요. 그런데 아직도 시원한 해답은 찾지 못했어요.
논리적으로는 생은 기쁨이고 죽음은 싫은것이라고 보는데, 실상을 짚어보면 생은 좋은 것이다. 죽음은 슬픈 것이다. 그것은 관념일 뿐입니다. 그런 생, 죽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용적으로 생과 사는 다르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삶으로서의 심리, 정서로는 아직도 죽음의 문제에 대한 해답 시원하게 못 얻고 있습니다.
박두규- 죽음은 두려움이 큰 문제인거 같은데 건강에 대한, 자식에 대한, 노후 걱정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데 근저에는 죽음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 두려움을 없애는 방법이 뭐, 없습니까?
도법- 생각이나 지식의 노예가 되지 말고 끊임없이 사실을 확인 하는 것, 불교에서는 실상을 봐라고 하죠. 우리의 불안과 공포는 사실과는 관계 없는 것이 많습니다. 사실을 확인해 보면 죽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두려움의 죽음은 생각으로만 존재합니다.
끊임없이 진실을 확인하는 거죠. 개인적으로 이론적, 경험적으로 모색해 보는데요. ?삶은 늘 현재 삶이 전부다.? 오늘을 잘 살면 내일도 괜찮아진다. 삶을 잘 살면 죽음도 괜찮아진다. 뭐 그런거죠. 걱정할 일이 없다. 는 거죠.
청중7 -성적을 비관해 자살한 여중생들, 그 아이들을 어떻게 구할수 있을까요?
도법-(김민해 목사님을 보며) 하느님 한테 물어 보세요.
김민해-(스님을 바라보며) 부처님께 묻고 있는데요.-웃음
도법-결국 자연 스러움을 잃어 버린 것이 그런 결과를 확대 재생산 시킨다고 봅니다. 편한 인생, 쉬운 길 있을까요? 절대 없어요. 아픔이 없는 삶은 존재 하지 않습니다. 씨앗이 썩지 않고 싹이 나오는거 봤습니까? 꽃잎이 떨어지지 않고 열매가 맺습니까?
그런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법칙입니다. 아픔이 없는 삶, 고통이 없는 삶은 착각이고 환상입니다.
한 생명이 생명으로 살아가려면 여름에는 더위와 함께 해야 하고, 겨울에는 추위와 함께 해야 합니다. 정상적으로 싹트고 열매 맺는 과정입니다. 추위? 고통이죠. 더위? 고통이죠. 온 몸으로 이것을 익히도록 하면서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씨앗이 싹트고 열매를 맺으려면 끊임없는 인내와 기다림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지식으로 되어지지 않습니다. 온 몸으로 익히고, 온 몸으로 젖어 들게 해야 합니다. 몸으로 터득할 수 있다면 이런 현상은 줄어들 거라고 봅니다. 그러려면 가급적 아이들을 자연에서 키워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자연에서 너무 멀어져 있어요.
생이 건강해야 하고 튼튼해야하는데 아이들에게 성적을 비관할 수 밖에 없게 하는 것, 이 사회가 만들어 낸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을 자연과 함께 자연스럽게 성장하도록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할 때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나옵니다.
청중8 - 아까 실상을 바로 본다고 하는 것, 감정을 배제했을 때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도법-욕심을 배제 시키는 거죠.
청중9 -그런 감정을 배제 시킬수가 없잖아요? 저를 둘러싼 제도, 원칙, 약속들이 불가피하게 파기 되었을 때 변화를 느꼈을 때, 별거 아닌거처럼 느껴질 때 어찌해야 하나요?
도법-하고 싶은대로 하세요. 내 인생 내가 사는데 누가 뭐라고 합니까? 부처님과 중생의 차이가 뭔줄 아세요? 그것은 부처님은 제 2의 화살을 맞지 않는다는 거예요. 중생은 제2, 제3, 제4의 화살을 맞는데 말이예요..예를 들면 부처님은 저 꽃 참 아름답다! 하면 부처님은 거기까지만 가요. 그런데 중생은 저 꽃 아름답다는 감정이 생기면 저 꽃을 내 방에 가져 가고 싶은 욕심이 생겨요. 욕심과 감정은 다르죠. 분리 시켜서 생각해야 합니다. 누구 눈치 볼거 없는 거예요. 인생에서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된다고..누구에게 피해, 고통 주는거 아니라면 멋대로 해도 괜찮다. 저는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청중9 -뭔가 의미가 있어서 시작했는데, 하다가 힘들면 그만 두고 싶잖아요? 그만 두고 싶은데 체면 때문에 그만두지도 못하고 끙끙 앓을 때가 있어요. 처음 마음을 잃지 않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도법- 저는 하다가 만 일이 너무 많아요.(웃음) 끝까지 한 일이 별로 없어요. 딱 하나 ?태어난 이상 죽을때까지 살다가 죽는다.? 이거 하나는 확실합니다. 그거 말고는 이랬다 저랬다 하죠. 멋진 일이라고 했는데 체면 때문에 계속 가는 경우도 있고, 끝까지 가보면 체면 때문에라도 잘 왔다. 그런때도 있고, 괜히 왔네. 그럴때도 있지요. 하나의 공식이 있는건 아닌거 같아요. 별세상, 별사람, 별 일, 별 길 있지 않아요 대부분 대동소이한게 인생이다. 그렇게 생각해요. 자기학대 하지 말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청중10 -마지막 질문이 될거 같은데요. 감동적이고 기억에 나는 이야기로 마무리 하면 좋겠습니다.
김민해-마무리를 하는 시간 같은데, 스님께서 멀리 오셨으니 최근에 출간된 책을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는 것으로 감사의 말씀을 대신 하겠습니다. 제목은 <시인과 스님, 삶을 말하다.>입니다. 스님과 김용택 시인, 두 분의 일상적인 삶을 잘 풀어 놓았어요. 꽤 정성을 드려 만든 책으로 보입니다.
음, 감동적인 이야기는 떠오르지 않고, 오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반 일리치라는,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사제직을 박탈당한 분인데 ‘인류의 비극은 환대의 문화와 시적 상상력의 부재’라고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우리가 직면한 위기의 바탕도 이와 다르지 않고 봐요. 오늘 이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 우리의 만남이 우정의 환대와 상상력을 발산하는 아름다운 순간이었다고 봅니다. 한 길을 가는 도반, 동지, 동무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렇죠? 이런걸 놀이삼아 하면 좋겠어요. 이러면서 놀 수 있지 않겠어요? 재미있게, 풍성하게, 놀면서도 의미있게.... 이런 일을 조금씩 마음을 모아 인연 따라서 해보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도법- 제 2의 화살을 맞지 않는다. 그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구체적 진실을 끊임없이 확인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실상을 보고 실상대로 할것인가? 아까와 반대로 예를 들면~ 쌍놈을 봤어요. 부처님도 똑같이 ?저 놈 참 고약한 놈이네.? 그러면서 고칠건 고치고 가죠. 그런데 중생은 ?저 놈 참 고약한 놈이네.? 그러면 미운 마음이 생기고 화가나고 패 주고 싶어져요.
좋은 것에 대한 욕심, 나쁜것에 대한 증오, 내용은 다르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가 좋은 것을 보면서도 욕심으로 빠지지 않고, 마음에 안 드는 것을 보면서도 화내지 않고, 그게 쉽게 안됩니다. 인생에는 쉬운 길이 없습니다. 제 2의 화살을 맞지 않는 것이 수행이라고 보고 이 말을 좋아합니다.
박두규-10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멀리서 오셔서 스님한테 질문이 쏟아진거 같아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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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진이랑 있으면 지루하지 않을텐데..제가 사진은 찍었는데, 올릴지를 몰라요. 어쨌든 19세기 사람이라서 공책에 베끼고 독수리타법으로 친겁니다.
청중들과 시인 그리고 스님, 목사님을 곁에서 지켜보듯이 잘 읽었습니다. 좋은 내용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