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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각경강의 1
1. 원각경 개요
『원각경』은 문수보살, 보현보살 등 12명의 큰 보살과 그들의 권속 10만 여명과 자리를 함께 하고, 불타와 12명의 보살간의 대화를 통하여 원각(圓覺)의 자리를 설하는 경전입니다. 원각이라는 궁극적 자리에 이르는 수행의 방편과 그 궁극의 자리가 어떠한 것인가를 상세히 조명해 보는 경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12장의 현선수보살장에서는 이 경의 성격을 오로지 여래의 경계만을 드러낸 것이며, 오직 여래만이 능히 다 설할 수 있는 것으로서 만약 모든 보살과 말세 중생이 이를 의지하여 수행한다면 점차 증진되어 부처의 경지에 이른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그럼 여기에서 이들과의 대화를 통한『원각경』의 개요를 먼저 요약해 보겠습니다.
맨 먼저 등장하는 제1장의 문수보살장에서는 문수보살이 부처님께서 보살로서 인지(因地)에 계실 때 어떻게 수행하여 여래가 되었는지를 질문하고 부처님이 답변하는 형식으로 법문이 진행됩니다.
『대승기신론』에서는 보살의 인지(因地)수행을 시각(始覺)부분에서 불각(不覺), 상사각(相似覺), 수분각(隨分覺) 및 구경각(究竟覺) 등 사위(四位)로 설명합니다. 이는 시각(始覺)이 본각(本覺)과 합일되는 네 가지 수행단계를 말합니다. 지금 문수도 이와 같은 인지(因地)에서의 법행을 설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일체의 부처님께서는 본래 수행지인 인지(因地)에서 지혜로 깨달음을 이루어 무명(無明)이 무엇인지 알게 되어 바로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제2장의 보현보살장에서는 보현보살이 문수보살에 이어 두 번째로 부처님께 원각의 청정경계를 어떻게 수행하여 대승(大乘)의 위대한 마음을 찾을 수 있는지를 질문합니다.
그 질문의 요지는 ① 일체가 환(幻)과 같고 몸과 마음도 역시 환(幻)과 같다면, 어떻게 환(幻)으로서 환(幻)을 닦을 수 있는가. ② 환의 성품이 일체 다 없어진다면 바로 마음도 다 없어진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누가 수행을 하고, 어떻게 다시 그 수행이 환(幻)과 같다고 설하는가. ③ 중생들이 그것이 환(幻)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그 망심을 어떻게 해탈시킬 수 있는가라는 세 가지입니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께서는 일체의 모든 중생의 환 무명도 원각묘심(圓覺妙心)에서 나온다고 설하고, 마치 허공 꽃이 허공에서 생겼지만 허공 꽃이 사라지면 그대로 허공이듯 그 환이 원각에서 생겼지만은 그 환이 사라지면 원각은 그대로라는 것입니다. 중생들의 망심(妄心)도 중생 스스로의 수행으로 없애는 것이지만, 그 망심(妄心)이 모두 사라져도 본체의 원각 묘심은 그대로 움직임 없이 제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제3장의 보안보살(普眼菩薩)장에서는 부처님에게 원각을 이루기 위해 ① 어떻게 점진적인 수행을 해야 하고, ② 어떻게 사유(思惟)하며 ③ 어떻게 거기에 머무는 것인지 그 방편을 설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께서는 여래의 사마타(奢摩他)수행에 의지하여 정념(正念)으로 모든 미혹(幻)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설하고, 모든 중생의 몸과 마음은 덧없는 것으로서, 몸은 사대(四大)로서 지(地)수(水)화(火)풍(風)의 모임이고, 마음은 경계 따라 이리저리 오고 간다는 것을 알고 이를 바르게 염하여야 한다고 설합니다.
이와 같이 차츰차츰 그 수행을 계속하면 ‘환(幻)이 무엇인지’를 증득하게 되어 허망한 영상(影像)인 일체의 번뇌와 그 환(幻)의 더러움이 사라져서 마음이 맑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부동(不動)의 청정심이 온 법계에 두루 퍼져 네 가지 수행병인 작(作)병·지(止)병·임(任)병·멸(滅)병에서 벗어나게 되고 증득하는 당체도 대상도 사라져 마침내 얻는다는 증득이란 용어마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제4장의 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에서는 ① ‘중생들이 본래 성불하고 있다면 어찌하여 다시 온갖 무명이 있고, ② 온갖 무명이 중생에게 본래 있었다면 어찌 다시 본래 성불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합니다.
이미 문수보살장에서는 ‘영원히 무명을 끊어야 불도를 이룬다’고 하였고, 보현보살장에서는 ‘시작을 알 수 없는 허망한 무명이 원각심에서 세워진다’고 하였으며, 보안보살장에서는 ‘중생이 본래부터 성불하고 있어 생사와 열반이 어젯밤 꿈과 같았음을 비로소 알았다’고 하여, ① 문수장에서 무명을 끊어야 성불한다고 하다가 ② 보현장에서는 그 무명이 원각심이 세우는 것이라 하였고 ③ 보안장에서는 본래부터 성불하고 있다고 설하고 있으니, 앞뒤의 설법이 상반된 듯 보여 중생들로 하여금 의심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금강장보살이 그 의심을 풀기 위하여 ① ‘중생들이 본래 성불하고 있다면 어찌하여 다시 온갖 무명이 있고, ② 온갖 무명이 중생에게 본래 있었다면 어찌 다시 본래 성불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 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께서는 금광석(金鑛石)과 금(金)과의 관계를 비유로 들어, 마치 금광석을 녹여 진금(眞金)이 생기는 것이지만 그 금은 본래부터 금광석에 들어 있었던 것으로서 녹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설하고, 진금(眞金)이 한번 되면 다시 광석이 되지 않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시어, 부처의 성품이 본래 모든 중생 속에 있었음을 설하고, 한번 본래대로 성불하면, 중생이 분별하던 생사 열반이 어제 밤 꿈과 같았음을 알게 된다고 설합니다.
따라서 생사(生死)와 열반(涅槃)이나, 범부와 부처 등 그 모두는 동일한 허공에서 피어나는 꽃과 같이 실제로 생기고 멸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를 생각으로 사유한다면 바로 그것이 미혹이고 번뇌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 유작(有作)의 사유(思惟)는 유위(有爲)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어서 진실한 심체(心體)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므로 이러한 사유를 이용해서 부처님 경계를 찾는다면, 마치 허공의 꽃이 다시 허공의 열매를 맺는다고 하는 것과 같다고 설하면서, 지금 질문하고 있는 성불과 무명의 분별은 진정한 질문이 되지 못하고 망상만 더해 갈뿐이라는 것입니다.
제5장의 미륵보살장에서는 ① ‘윤회의 근본’이 무엇인가라는 주제 질문과 더불어 ② ‘윤회에는 몇가지 성품’이 있는가. ③ ‘불보리(佛菩提)를 닦는 데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④ 깨달은 이가 다시 중생 속에 돌아와 중생을 제도하려면 ‘어떠한 교화방편’이 있는가라는 주제를 질문하고 법을 청합니다.
부처님은 이에 대하여 ① 윤회의 근본은 애욕이다. ② 윤회에는 다섯 가지 성품이 있다, 애욕(愛慾)으로 말미암아 윤회하여 생명(生命)이 상속된다. 그래서 ③ 탐욕의 경계 따라 업을 지으니 ④ 모든 윤회를 벗어나려면 먼저 탐욕을 끊고 애욕의 갈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⑤ 더 나아가 탐욕과 애증을 끊고 여래의 원각경계를 부지런히 구해야 청정심에서 문득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6장의 청정혜보살장에서는 부처님께 ① 원각의 자리가 어떠한 것인지, ② 일체 중생과 모든 보살, 그리고 여래께서 증득한 그 원각의 자리가 각각 어떠한 차별이 있는지, ③ 점진적인 수행으로 어떻게 여래지에 들 수 있는지를 질문하고 법을 청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원각(圓覺)은 성품 아닌 성품으로 있는 것이며, 일체는 그 평등 본성의 성품을 좇아 일어나 차별이 있다고 설하고, 깨치고 못 깨치는 그 수행에는 차별이 있는 것으로서 ① 중생은 깨닫겠다는 알음알이가 바로 장애가 되고, ② 보살은 깨달음에서 못 떠나는 장애가 있으며, ③ 이를 극복한 보살은 각성(覺性)이 있으며, ④ 영원한 적멸자리는 여래지로서 그 자리에 들어서면 모두가 평등하여 일체상이 머물 수가 없는 크나큰 깨달음의 자리가 된다고 설합니다.
중생들이 헛된 마음을 내지 않고 그러한 망심도 없앤다는 생각마저 사라지면 이런 사람을 일체종지를 이룬 보살이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제7장의 위덕자재보살장에서는 여러 가지 수행방편에 대하여 질문합니다. ‘일체의 보살들이 원각을 이루는 데도 여러 가지 방편이 있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이를 위한 ① 일체의 수행방편과 ② 점진적인 수행방법, 그리고 ③ 수행하는 사람의 부류 등을 설하여 줄 것을 요청합니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께서는 ‘위없는 큰 깨달음의 마음(大覺心)은 본래 두 모습이 없는 것이어서 그 원각(圓覺)의 모습을 아는 방편은 한량없이 많은 것이지만 여래가 보이는 것은 바로 ‘사마타(靜觀)’와 ‘삼마발제(幻觀)’ 그리고 ‘선나(滅觀)’ 등 세 가지 선(禪)수행이라는 것입니다.
사마타(奢摩他)수행은 마음이 적정(寂靜)을 이루기 때문에 시방 세계의 모든 여래의 마음이 그 가운데 나타나 마치 거울 속의 영상과 같아진다고 설하고, 삼마발제(三摩鉢提) 수행은 인연(因緣)으로 생멸하는 환(幻) 같은 모습을 관하는 것으로서, 이 수행은 싹이 터서 자라나는 것과 같다고 설하며, 선나(禪那)의 적멸(寂滅)을 닦으면 마치 종속에 있는 종소리가 밖으로 나가는 것과 같이, 번뇌(煩惱)와 열반(涅槃)이 서로 걸림이 없어, 바로 적멸(寂滅)의 편안함이 그 안에서 나온다고 설합니다.
이 수행으로 시방세계의 모든 여래가 성불했으며 보살들도 이를 의지하여 성불하는 것이라고 설하고, 이 세 가지 수행이 원만하게 완성되면 마침내 이를 일러 열반이라 한다는 것입니다.
제8장의 변음보살장에서는, 앞의 위덕보살장에서 적정(寂靜)의 사마타, 변화(變化)의 삼마발제, 그리고 적멸(寂滅)의 선나라는 세 가지 기본적인 방편으로 원각의 자리에 이르는 내용을 설해 왔으나, 지금 변음보살장에서는 이 세 가지 방편을 어떻게 조화시켜 수행해야 할 것인가를 설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25가지의 방편이 있다고 설합니다.
그 25가지 수행방법은 사마타, 삼마발제 및 선나의 세 가지 방편을 각각 개별적으로 닦거나, 이 세 가지를 전후 또는 전후 중간에 닦기도 하고, 전후에 쌍으로 닦기도 하는 등 조합하여 25가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들 세 가지 수행은 돈(頓)과 점(漸)의 수행으로 시방의 모든 여래와 삼세의 모든 수행자가 이 법에 의하여 성불하였음을 설합니다.
제9장의 정제업장보살장에서는 정제업장보살의 청법으로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 등 사상(四相)을 설합니다. 일체의 중생들이 아상(我相) 등 이 사상(四相)으로 말미암아 나만을 좋아하여 미움과 사랑에 집착함으로서 모두가 시작 없는 과거로부터 망(妄)분별을 일으키어 유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상(四相)의 번뇌를 버리지 못하면 보리열반을 이룰 수 없으며, 이로 말미암아 사랑과 미움 등이 마음에서 생겨나고 아첨과 사악함이 생각 속에 남게 되어 미혹으로 번뇌 망상만 늘어날 뿐 깨달음의 바다에 능히 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깨달음의 세계에 들려고 한다면 탐(貪) 진(瞋) 치(癡) 등 삼독(三毒)의 마음을 버려야 하고, 법이란 그 애착도 마음에서 내던지면 점차로 보리열반을 성취할 수 있다고 설하고, 좋은 선지식을 찾아내어 도반으로 삼아 삿된 견해에 떨어지지 않게 하여야 한다고 설합니다.
그러나 불도(佛道)를 구함에 있어 별달리 생사(生死)를 싫어하고 열반(涅槃)을 좋아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바로 그것이 아상(我相) 등 사상(四相)에 매이게 되는 것이므로 구경(究竟)의 보리열반을 성취하지 못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제10장의 보각보살장에서는 네 가지 선병(禪病)에서 벗어난 선지식을 통하여, 그 병(病)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그 네 가지 병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발심하여 수행할 것인지를 설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네 가지 선병(禪病)이란 작(作) 지(止) 임(任) 멸(滅)이라는 병으로서 앞에서 설한 사마타, 삼마발제 및 선나의 삼관(三觀)수행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병입니다.
지금 ‘네 가지 병’이라고 일컫는, 작(作) 지(止) 임(任) 멸(滅) 등은 ‘여러 가지 수행으로 원각을 구하고자 한다’, ‘내 마음에서 모든 생각을 영구히 멈추게 하여 원각을 구하고자 한다.’는 등의 말로서 언듯 듣기에는 하나도 어색한 말들이 아니지만, 이런 말들이 모두 병(病)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 말속에는 아상(我相)의 망념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이러한 네 가지 선병(禪病)에서 벗어난 선지식을 찾게 되면, 교만하지 아니하고 목숨이 다할 때까지 섬겨야 한다는 것이며, 내 곁을 떠난다고 해서 원망하해서는 안된다고 설하고, 선지식에 대하여는 온갖 경계에서도 부처 보듯 마음을 내야 한다고 설해 갑니다.
그리고 나와 남, 미움과 사랑 등을 설하여 어떤 사람이 원수 보기를 자기 부모와 같이 하여 마음에 둘이 없는 경계에 이르면 모든 병에서 벗어나게 되고, 아상(我相)과 인상(人相) 등이 모두 그곳에서 사라져야 깨달음을 증득하여 적정열반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제11장의 원각보살장에서는 일체 중생들이 위없는 도를 구하려면 먼저 120일, 100일, 80일 등 세 기간 중 하나를 선택하여 한없는 세월 동안 지은 죄업을 참회하고, 삼칠일(21일)이 지난 뒤에 올바르게 사유하되 성문(聲聞) 등에 의존치 아니하고, 시방의 여래와 보살 등과 함께 안거하면서 청정경계를 닦는 것을 설합니다.
그리고 위에서 설한 세 가지 정관(淨觀) 중 사마타 수행으로 적정(寂靜)을 이루고, 삼마발제 수행으로는 바른 사유를 유지하며, 선나의 수행으로 마음속에서 생각이 일어나고 머물다가 사라지는 갈피의 머릿수를 살피어, 이것이 고루 미치게 되면 행주좌와(行住坐臥)의 일상생활 속에서 분별하는 망념의 수효를 알지 못하는 것이 없게 되고, 이를 점진적으로 수행해 나아가면 백 천 세계의 한 방울의 빗방울까지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근기가 낮고 전세(前世)로부터 업장이 많은 이도 부지런한 성심으로 끊임없이 뉘우치고 참회 하면, 모든 업장도 소멸하여 부처님의 경계가 문득 앞에 나타난다고 설합니다.
제12장의 현선수보살장에서는 마지막으로 현선수보살이 일어나 이 경에 대한 명칭(名稱)과 성격, 수지(受持) 독송의 공덕 및 보호 그리고 유통 등의 문제를 제기하고 질문합니다. 앞에서 11명의 보살에게 설한 법을 마무리 짓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원각경』이 부처님이 설하신 12부 경전 중 핵심이라고 말하고 그 이름을 크고 넓고 심오한 ‘대방광원각다라니’ 등 5가지 뜻을 가진 이름을 제시하고, 이 경전이 여래의 모든 경계를 나타내고 있어 모든 보살과 말세 중생이 이를 의지하여 수행한다면 점차 증진되어 부처의 경계에 이를 수 있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이 경을 설하는 공덕은 삼천대천세계에 칠보를 가득 채워 보시하는 것보다 더할 뿐만 아니라 무량한 중생을 다 가르쳐 그 모두를 아라한이 되게 했다 하더라도 그 공덕은 이 경의 게송 반쪽을 따라함만 못하다고 찬양하고, 영원토록 이 경을 지켜 후퇴하지 않게 보호하라고 당부합니다.
마지막으로『원각경』은 위대한 대승의 마음을 능히 지니는 이들에 대하여 스스로의 안목(眼目)을 보호하듯 수호하고, 수행하는 도량에 이르기까지 아침저녁으로 금강신중(金剛神衆)과 제천(諸天) 및 귀왕(鬼王)의 수호발원(守護發願)을 끝으로 대단원의 설법을 마칩니다. 이 같은 신중(神衆)과 제천(諸天) 그리고 귀왕(鬼王)들의 수호발원으로『원각경』의 귀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우며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동안 필자는 이 카페를 통하여 금강경과 법성게를 강의해 왔으므로 우리 독자가 잘 아시다시피 필자는 각종 경전을 『대승기신론』이란 탁월한 불교이론으로 그 해석의 정사(正邪)를 밝혀 이를 바로잡아 정론(正論)을 펴기 위한 작업을 계속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필자가 주석한『금강경』이나『법성게』,『종밀의 선원제전집도서』,『육조단경』및『원각경』등 작업에서 우리 독자는『대승기신론』이 경전의 해석에 얼마나 확고하고 명백한 기준이 되는지를 확인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필자는 1996년부터 강남대학교 종교철학과에서『대승기신론』으로 강의를 시작한 이래, 모든 경전의 핵심을 관통하고 있는 기신론에 심취하여,『대승기신론강의』를 시작으로 이를 주석하고, 영역(英譯)하고, 366수의 게송을 짓고,『대승기신론』을 한눈으로 볼 수 있는 ‘대승일심법계도’를 그리면서 이를 책으로 엮고 발표한 지 벌써 15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1400년 전『대승기신론』주석의 양대 거장인 ‘원효·법장의 주석비교’에 이르기까지『대승기신론』에 대한 기초학문의 주석은 거의 완성되었다고 보고, 이제 이를 활용한 각종 경전(經典)의 해석을 통하여 그동안의 사견(邪見)들을 치유할 기회와 사명(使命)이 필자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하여 앞으로도 이 작업은 계속할 것입니다.
이『원각경』을 주석함에서 있어서도, 원각경 하나하나의 구절마다『대승기신론』의 이론으로 해석되지 않는 것이 없었으며, 그럴 때마다 그동안 이 경전을 주석한 많은 이들이 기신론에 의한 안목으로 스스로의 주석서에 나타난 사견(邪見)들이 치유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필자는 그 중 큰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주석한 부분에 대하여 이를 일일이 지적하지 못하였으나, 그 일부는 여기에서 직접 다루어 문제를 제기하고 독자로 하여금 이해할 수 있도록 그 근거를 제시할 것입니다. 아울러 모든 부분에서『대승기신론』의 이론으로 뚜렷한 해석의 근거로 제시할 것이므로『원각경』의 정론(正論)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선 불경(佛經)의 해석은 이치에 맞아야 합니다. 나도 모르고 써 놓은 글을 남이 어떻게 보고 알겠습니까. 어떤 글을 읽어보면 우리말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부처님 말씀이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언어는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스스로가 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어느 내용을 해석하는 데는 반드시 근거 있는 말로 이치에 맞는 해석이어야 누구나 납득할 수 있게 됩니다. 역경(譯經)과 해석은 그 만큼 어려운 것입니다.
부처님의 역사(役事)는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하나의 등불이 켜지면 차례차례로 다른 등에 불이 붙여져 다함이 없는 것처럼, 불(佛)의 마음의 등불도, 이 사명(使命)의 등불도, 사람의 등에 다음에서 다음으로 붙여져서 영원히 꺼질 줄 모를 것입니다.
대승기신론연구회장
百鍊 全 鍾 植 합장
첫댓글 감사합니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_()_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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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