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경제 살려 차관 갚겠다며 눈물로 지원 호소”
2010.07.02 09:53 입력
경부고속도로 출발점
한서독 정상회담서 통역 맡았던 백영훈씨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1964년 12월 8일 서독의 수도 본에 있는 에르하르트 총리 공관. 3년 전 군사혁명으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과 ‘전후 독일 부흥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르하르트 총리 간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었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추진 중이던 군사정부는 미국의 차관 거절로 자금이 부족했다. 우여곡절 끝에 광부와 간호사 7000여 명을 긴급 모집해 서독에 파견하고 그들의 월급을 담보로 1억4000만 마르크(3000만 달러)의 차관을 얻었다.
(박 대통령) “각하, 우리를 믿어주세요. 군인은 거짓말을 안 합니다. 우리도 독일처럼 분단국가입니다. ‘라인강의 기적’처럼 경제를 살려서 갚겠습니다.”
(에르하르트 총리) “각하, 제가 이승만 대통령 시절 한국에 두 번 갔었습니다. 산이 많던데 그러면 경제발전이 어렵습니다. 대동맥을 뚫으세요. 독일에도 산이 많았는데 1932년 본-쾰른 간 아우토반을 건설했고 1933년 집권한 히틀러가 아우토반을 전국으로 확장, 건설한 것이 경제부흥의 원동력이 됐습니다. 각하께서 내일 그 역사적인 길을 가십니다. 히틀러는 정치는 실패했지만 경제발전의 초석을 닦았습니다. 폴크스바겐 공장 만들고 철강공장 만든 것도 히틀러였습니다. 각하도 고속도로를 만든 다음에 자동차 물동량을 늘리고 제철공장 만드세요. 그리고 일본과 국교를 맺으세요. 지도자는 과거보다 미래를 봐야 합니다.”
(박 대통령) “일본이 사과를 하지 않는데 어떻게 손을 잡겠습니까?” (에르하르트 총리) “아직 사과를 안 했나요?” (박 대통령) “그렇습니다. 우리도 아량이 있습니다.” (에르하르트 총리) “제가 사과시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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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왼쪽)과 에르하르트 서독총리(오른쪽)가 64년 12월 8일 총리공관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왼쪽에서 둘째가 통역관인 백영훈 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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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두 정상 간 대화는 박 대통령 통역관으로 수행했던 백영훈(80·사진) 한국산업개발연구원 원장이 통역했다.
지난 24일 서울 서초동 집무실에서 만난 백 원장은 “그때 박 대통령이 에르하르트 총리에게 돈 꿔달라는 얘기를 몇 번이나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며 “에르하르트 총리가 박 대통령에게 ‘니히트 바이넨(그만 우세요)’이라고 했을 정도”라고 전했다.
에르하르트 총리의 말대로 그 정상회담 직후인 65년 1월 16일 일본 오히라 외무상이 서울에 와서 정식으로 사과했고 한·일 국교 정상화가 이뤄졌다.
박 대통령 일행은 그 다음날 본에서 쾰른까지 20㎞ 구간을 아우토반을 이용해 이동했다. 이 구간은 1928년 착공해 32년 완공한 세계 최초의 자동차 전용 고속도로였다.
박 대통령이 탑승한 벤츠 승용차는 시속 160㎞로 달렸다. 큰 충격을 받을 만했다. 박 대통령은 가는 도중 두 번이나 중간에 차에서 내렸다. 장기영 부총리, 이동원 외무부 장관, 이후락 비서실장도 따라 내렸다. 아우토반을 자세히 살펴본 박 대통령은 “어떻습니까. 좋죠? 히틀러가 했답니다. 우리도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힘든 일입니다. 그 시절이나 가능했지….”
박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동승한 서독 대통령 의전실장에게 처음 건설계획 수립부터 건설 방식, 관리 방법까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통역관이 전해주는 답변을 손수 메모하기도 했다. 백 원장에게 “우리가 여기서 보고 들은 것을 한국에 가서 실현할 것”이라며 결의를 다지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서독 방문 8일간 일과가 끝나면 낮에 들은 얘기를 다 적어내라고 지시하는 바람에 백 원장은 매일 새벽 3시에 잠자리에 드는 강행군을 했다. 대통령 주치의가 놔주는 주사로 근근이 버텼다는 것이다.
서독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박 대통령은 고속도로 건설에 몰두했다. 각 나라의 고속도로 건설 공사에 관한 기록을 공부했다.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비밀 유지도 철저히 했다. 고속도로 건설 구상이 미리 알려져 반대 여론이 들끓게 되면 착공도 하기 전에 좌초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박 대통령은 아우토반을 달려 본 지 2년4개월이 지난 67년 4월 제6대 대통령 선거 때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선거공약으로 제시했다. 백 원장은 국내 최초의 민간연구소인 한국산업개발연구원을 설립해 경부고속도로의 타당성 분석과 운영 활성화 방안에 대한 보고서를 내는 등 자문 역할을 했다.
백 원장이 박 대통령 통역관으로 서독을 방문한 것은 그가 대한민국 독일 유학생 1호이자 경제학 박사 1호였기 때문이다. 1955년에 독일 쾰른대 경제학과에 진학해 3년 만에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이듬해 귀국, 29세에 중앙대 교수가 됐다. 경제학 책을 여러 권 집필해 유명해졌다.
하지만 5·16 군사정부에 의해 병역기피자로 몰려 훈련소에 강제 징집됐다. 논산훈련소에서 훈련병으로 있던 그를 박 대통령에게 요청해 발탁한 사람은 신응균 주서독 대사였다. 육군 훈련병에서 하루아침에 서독에 경제사절단으로 가는 정래혁 당시 상공부 장관의 특별보좌관이 된 것이다.
백 원장은 한독 경제협력에 기여한 공로로, 2002년 독일 정부로부터 대십자훈장을 받았다. 그는 “지난해 G20 회의에 우리나라 대통령이 참석한 걸 보고 눈물을 많이 흘렸다”며 “그건 나만이 알 수 있는 대한민국의 고단한 역사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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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박정희 대통령~!
오늘날 그처럼 닮은사람이 반사람만 나와도 좋으련만~!
감동으로 읽고갑니다 고맙습니다 행복하세요~!
나라를위해 일본과 친교했는데 박대통령은 아마 지금 친일파로 기록되있을걸요
저는 아직젊은데에도 이글을 읽으니 눈시울이 뜨거워짐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동적이 였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감명깊은 지난 추억같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 읽어보세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약간의 오점도 남겼지만 애국심과 국민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열정 그 어느구가 이와 같은 심정으로 나라를 생각해낸 대통령이 있었는지 잘 생각해 봅시다 진정한 애국자 박정희 전 대통령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저가 유일하게 존경하는 대통령입니다.
저도 그시절 Seed Money에 참석 하였지요. 우리세든 국가에 요구한게 없었지요, 지금은 이게 멉니까, 사사건건 국가에 요구만 학 국가를 위하여 무언가를 하겟다는 놈은 하나도 없지요.
박정이 버리고개를 해결한 위대한 전대통령지요 그분이 없어트라며 우리나라가 지금비참하지요 하늘이 도우신 인재
지요 우리 국민은 하나같이 종경 해야지됬니다
유덕인 선생님께! 경부고속도로의 출발점을 읽고 넘 감동되어 부산 부민복지관의 홈페이지에 올렸습니다,
무단 복사라고 나무라시면 달게 받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의 초석이 되신 박정희 대통령님께
감사하며 모든 국미들께도 감사합니다. 이웃나라 일본의 재해에도 마음이 아픕니다. 좋은 글감사합
니다. 늘 건강하세요.
제나이 몇인데 이런 숨은 이야기를 이곳을 통해서 이제야 알게되어 죄송하게 생각하지만 그 흘러간 많은 세월속에서 어찌 그 보배같은 뒷이야기들이 감추어졌었을까 자신 부끄럽기 한이 없을 따름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