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무엇인지 모를 때, 비로소 자기의 옹아리를 들을 수 있다고 오늘도 추풍령 바람은 내게 말한다 저 바람은 한순간도 뭉친 적이 없는 낱낱이지만 형체가 있고 이름이 있고 느낌이 있다 자기가 직접 관여하지 않아도 풀이 흔들리고, 춤을 배우지도 않은 검은 봉다리가 이 세상에 없는 춤을 춘다 내 주위에 있는 나무나 강아지는 매일 해도 좋고 안해도 좋은 일들을 한다 난 그것이 보기 좋아서 한참 그것들을 쳐다보는 것인데, 어쩌다가는 나도 따라서 한다
때가 되면 올 것이 온다
그것은 꼭꼭 숨어도 찾아오고
노래방에서 신나게 까불고 있을 때도 온다
손아귀에서 모래가 빠져나가듯
분명 꼭 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빠져나갈까 봐 손에 힘을 주면
더 빨리 빠져나가는 모래같이
그것은 그것은, 기어이 온다
그것이 오면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살 수 있도록 알려 준
세상을 알뜰하게 살다 간 사람이 남긴
그 감동적이었던 유언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것이 오면
평소에 없던 감정이 생기고
한 20년 넘게 못 본 사람의 얼굴이
참 허망하고 심심한 기분으로 떠오른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나를 배반하거나 한치 차이로 나를 비껴갔으니, 나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는 연습을 했다 나를 눕혀놓고 어느 부위를 잘라도 그 단면에서는 내가 좋아하지 않았던 것들의 선연한 피가 배어나올 것이다 몸의 독기를 독으로 치유하고 슬픔을 슬픔으로 치유하는 이 고약한 전통이여
내 주위의 자연은 나보다 잔인하므로 내가 속으로 누군가를 미워하고 속으로 누군가를 용서해도 이것은 쉽게 잊혀질 일이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연습해서 나는 오늘도 먹고 놀고 일한다
첫댓글 김대호시인 잘 지내시지요?
좋은시 잘 읽고 갑니다
즐거운 주말되시길....
네 감사한 마음입니다
김천은 오늘 봄이 도착했습니다
잘 지내시고 오월 행사때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