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과자無空過者라 하니 아하! 아마도 무공해 과자인가보다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경전 내용을 알면서도 이 대목을 읽어내려갈 때면 나는 그 생각을 내곤 했으니까요 이는 나만 느끼는 게 아니라 한국어를 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더러는 그런 생각을 얼마든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루 아시다시피 이 글의 내용은 그런 게 아닙니다 공과空過는 글자 그대로 '시간을 헛되이 보내다'란 뜻입니다 앞에 부정사 무無를 둠으로써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다'지요 그렇다면 이는 한 마디로 게으르지 않고 정진했다는 것입니다
나는《금강경》에서 특히 이 대목을 읽으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곤 했지요 내가 보기에는 최고의 가르침입니다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서 역대조사 천하종사들께서 간곡히 부탁한 말씀 중 늘 빠지지 않는 게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맞습니다 다름 아닌 정진精進입니다 다시 말해 게으르지 않음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쌀 한 톨이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정성이 들어갈까요 어떤 이들은 얘기합니다 한문의 쌀미米자를 파자하면 여든 여덟八十八이 되니 농사란 게 그리 쉬운 것이냐고요
우리 서가모니 부처님께서는 헤아릴 수 없는 아승지겁에 걸쳐 팔백사천만억 나유타의 모든 부처님을 이어 받들면서 정말이지 단 한 순간도 헛되이 보내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죄가 뭘까요 게으름입니다
'파계' 하면 무엇이 생각나시나요 살생하고 훔치고 사음하고 거짓말하고 술 마시는 행위 등인가요 십중대계十重大戒 사십팔경계四十八輕戒와 비구250계와 비구니 348계를 파함인가요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파계는 정진하지 않고 빈둥거림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파계도 게으름을 뛰어넘는 것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살생을 찬탄하고 훔침을 찬탄하는 게 아닙니다 사음하고 거짓말하고 술 마심을 잘한다는 게 아닙니다 그만큼 게으름이란 수행자에게는 그대로가 독약입니다
사람은 게으르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원초적 본능입니다 수행이란 곧 이 원초적 본능을 어떻게 이겨낼 것이며 또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몸소 닦아가는 것이지요 '원초적 본능'이라 하니까 '원초적 공포'가 생각납니다
1996년 그레고리 호블릿 감독에 세계적 배우 리차드 기어와 에드워드 노튼(1969.08.18~ )이 주연을 맡아 열연한 법정 영화《프라이멀 피어Primal Fear》 나의 영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주입시켜 주었습니다 프리미얼 피어, 원초적 공포입니다
원초적이란 경험이전의 세계지요 일반적으로 모든 생명은 경험을 통해 존재나 사물에 대해 끌림을 느껴 가까이하려 하고 두려움을 느껴 멀리하려 하지요 그리고 혹은 그러거나 말거나 아예 관심을 갖지 않기도 합니다
이를 불교에서는 뭐라 하던가요 끌림을 낙수樂受라 하고 싫음을 고수苦受라 합니다 그렇다면 무관심은 뭐라 할까요 불고불낙수不苦不樂受 곧 끌림도 싫음도 아니라 합니다 물론 끌림은 좋은 느낌이고 싫음은 나쁜 느낌이며 두려움이지요
태어나서 한 번도 고양이를 본 적이 없는 쥐입니다 고양이에게 혼쭐이 난 외상Trauma도 전혀 없습니다만 고양이 소리를 듣게 되면 그 자리서 얼어버려 아예 미동도 하려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고양이 숨소리를 듣고 고양이 털이 떨어져 있을 때 냄새만 맡고도 두려움을 느낍니다 실제 고양이 목소리가 아닌 녹음을 들려주거나 고양이 냄새만 묻혀 놓아도 전혀 움직이지 않습니다
오리 새끼가 알에서 부화했을 때 오리 박제를 만들어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보이면 새끼들은 목을 빼고 소리를 지릅니다 엄마 아빠를 찾듯이요 그런데 오리가 날아가는 방향을 거슬러 보여주면 어떤 반응일까요 머리는 짧고 꼬리가 길기에 독수리인 줄 알고 목을 숨기고 조용히 있습니다
개나 고양이 등을 높은 곳에서 살짝 밀면 떨어지지 않으려 앞다리에 힘을 줍니다 원초적 두려움 때문입니다 자벌레를 비롯한 어떤 곤충도 나뭇가지 끝에서 더듬이나 머리를 내밀어 닿는 게 없으면 더 이상 진출하지 않습니다
"게으름은 원초적 본능입니다"
1년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나는 한 마디도 보태지도 않고 그렇다고 지울 생각도 없습니다 있었던 그대로를 여기 올립니다
참으로 희유한 일이었지요 교통사고로 열 달 가까이 왼 팔을 뻗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며칠 전 병원에서도 흉부 X-Ray 찍을 때 왼팔을 올리지 못해 생고생했는데 저녁에 꿈을 꾸고 나서 왼팔이 뻗어집니다 누군가 내 어깨를 만졌습니다
처음에는 손으로 꼭꼭 누르고 주무르더군요 고사리 손으로 만지는 아이의 손길이었습니다 그러더니 점차 강도가 세졌습니다 심지어 나를 엎드리게 하고는 보드라운 발로 자근자근 밟기 시작했습니다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남자는 아닌 듯싶었습니다 화양연화花樣年華라도 좋습니다 아마 10분쯤 지났을까 나의 왼 팔 나의 왼 손등이 뒤로 해서 내 허리에 닿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희유한 일입니다
팔을 뻗는 것은 그만 두고라도 허리 뒤로 돌려 뒷짐을 짚을 수 없었고 심지어는 앞으로 팔짱을 끼는 것도 불가능했는데 이제 그게 가능해진 것입니다 꿈에서 깬 이후로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선세先世의 죄업으로 악도惡途에 떨어질 것인데 금생에 남에게 "저 놈 저거《금강경》에 완전히 미친 놈" 이라면서 놀림 받는 것 하나만으로 그 큰 죄업이 다 소멸하고 내세에는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리 고생하던 왼팔을 뚝딱 고쳐 준 꿈의 그는 누구며 어떤 존재였을까요? 아직 완치는 아닐지라도 치유의 손길이 더 있었으면 합니다 아! 그는 관음이었을까 보현이었을까 문수동자였을까 목소리는 들려주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나는 그 사고로 다시 살아나지 못한 채 저승으로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교통사고 나서 다치는 것으로 과거생에 지은 죄를 다 녹이고 새롭게 태어난 것입니다
결코 꼭 사고만이 아닙니다 죄업의 소멸과 아울러 게다가 사고날 당시도 좋고 1년 전도 좋고 지금 이 때도 좋으니 어디《금강경》한 번 해설하라고 부처님께서 삶을 연장시키셨습니다
정진精進이 무엇입니까 정밀精하게 나아감進입니다 내재된 원초적 본능인 게으름을 물리치는 방법은 정진이지요 정밀精하다는 것은 앞서 얘기했듯 농사 짓는 농부가 여든 여덟米 번의 손길을 주되 늘 사랑靑스런 마음이고 진進은 새隹의 날개짓辶입니다
땅 위를 걷는 경우에 있어서는 우리 사람들이나 새나 동물들이나 심지어 저 작은 곤충들까지도 걷다가 쉬고 싶으면 멈춰도 됩니다 자동차도 마찬가지입니다 졸음쉼터에서 길가에서 휴게소에서 그냥 쉬면 됩니다 그러나 하늘을 나는 새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습니다
새들도 곤충들도 최첨단 과학의 결정체 비행기도 하늘을 날다가 좀 쉬고 싶다고 해서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출 수는 없지요 정진의 정精도 그러하지만 정진의 진進은 멈춤없음입니다
수행자에게 있어서 게으름은 어떤 독보다 무섭습니다 몸과 목숨을 통채로 앗아가는 상신실명喪身失命은 게으름보다 더한 게 없습니다 다시 얘기하지만 액체를 기체로 만들기 위해서는 중간에 열원을 끊을 수는 없습니다 불을 꺼버리면 100°C의 물이라도 곧바로 열은 떨어지고 다시 액체로 남을 수 밖에 없으니까요
살생 훔침 사음 거짓말 음주 등이 불계를 깨트리는 것이기에 어느 것도 권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파계보다도 우선하는 파계는 게으름입니다 게으름은 속도의 느림이 아니지요 굼벵이의 속도가 느리다고 거북이의 속도가 느리다고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더딤이지 게으름은 아닙니다
게으름은 수행에서 마음을 거두어버림입니다 게으름은 끓고 있는 물에서 열원인 불을 아예 빼버림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무량 아승지겁을 닦으시면서 팔백사천만억 나유타 수의 모든 부처님을 받들고 모시고 이어가셨습니다 그것이 중요한 덕목의 하나이셨지만 무공과자, 곧 단 한 순간도 헛되이 보낸 적이 없으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