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포의 새벽 편지-266
동봉
제19장. 법계통화분-1
05. 하늘
하늘天과 땅土은 따로 존재할까요
결코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중심으로 하되
움직이는 사람大은 하늘이고
쉬는 사람十은 땅입니다
움직이는 사람은 힘 쓰는 자고
쉬는 사람은 힘 아끼는 자입니다
하늘一을 위로 떠받치려면
어깨 넓이로 다리를 벌려大야
몸의 균형을 잡을 수 있고
땅一 위에 서 있는 자는
다리를 벌리지 않더라十도
얼마든 균형을 잡을 수 있습니다
하늘一은 사람大 위에 있으면서
사람을 포근하게 덮어 주고
땅一은 사람十 아래 있으면서
사람을 편안하게 실어주니
이 2가지 환경이 없다고 한다면
얼마나 아득하겠는지요
그래서 나는 얘기합니다
하늘一과 땅一은 같은 것이라고요
땅은 하늘 속에 있으므로
하늘 떠나 따로 있지 않습니다
우주선을 타고
저 먼 우주로 나아가
생명의 고향 지구를 바라볼 때
지구가 어디에 있겠는지요
발 아래가 아닙니다
지구는 발 아래 있는 게 아닙니다
역시 천체의 하나로서
하늘에, 허공에, 우주에
푸른 별로 두둥실 떠 있습니다
그러니 땅이 곧 하늘이지요
움직이는 사람이든
쉬는 사람이든
사람은 늘 하늘과 땅 사이에서
하늘과 땅을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하늘도 지옥처럼
공간 개념과 존재 개념
그리고 느낌 개념이 있습니다
하늘이 어디에 있는지는
어린 아이라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하늘이 어디있어?"
라고 거듭 물는다면
어른도 답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마치 사람에 대해 다들 알지만
정말 사람이란 뭘까 하고
심각하게 다시 묻는다면
답변하기가 쉽지 않듯이 말입니다
하늘의 우리말 어원은 뭘까요
한울입니다
한울이란 큰 울타리입니다
지구를 감싸고 보호하는 한울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감싸안는 한울
뭍의 생명 물의 생명을
한아름으로 보호하는 한울입니다
띄어쓰기 한 울이 아니라
붙여쓰기 한울입니다
중간 말을 생략하면
한울이 마침내 하늘로
언어의 변천을 거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얘기하는 하늘은
우주가 아니고
대류권6~20k
성층권50km
중간권85km
열권690km
외기권10,000km입니다
대류권은 지표면으로부터
비행기가 다닐 수 있는 고도고
성층권은 기상관측기구가 떠서
임무를 수행하는 고도며
오존층도 여기 들어있습니다
중간권은 유성이 쏟아지고
열권의 아랫 부분 100km까지는
카르만 선Von karman line이라 하여
오로라가 활동하는 높이입니다
그리고 그 위로는
우주왕복선이 오가는 고도입니다
외기권은 지표로부터
690km 높이에서 시작되기에
지구대기권이라기보다는
우주로 보는 게 맞습니다만
외기권이라 하여
지구대기권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2013년 10월에 상영한 영화
그래비티에 의하면
"지구로부터 600km,
소리도 산소도 없다
우주에서의 생존은 불가능하다"
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산드라 블록
조지 클루니가 주연을 맡고
에드 헤리스 등이 출연한 그래비티,
2014년에 상영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와 함께
무게감 있는 천체물리학 영화지요
한울의 범위는
일차적으로는 지구대기권입니다
지구대기권도
그다지 좁은 구역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울'이 아닌
변천된 이름씨 '하늘'로 볼 때는
울타리란 개념이 사라졌기에
우주로 확대시킬 수가 있습니다
참고로 지구대기권에서
대류권을 채우고 있는
공기의 양이 어느정도일까요
지구 질량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6자(6×10의24승)kg입니다
그렇다면 지구 질량의
약 100만 분의 1인
500경(5×10의18승)kg이
곧 공기의 질량입니다
둘째는 존재 개념입니다
공간 개념으로 볼 때와 달리
존재 개념은 신의 설정이 가능하지요
인간 아수라 아귀 축생
성문 연각 보살 부처 등과 같이
존재 개념일 때
하늘 그 자체가 신이고
신이 그대로 하늘인 셈입니다
나는 앞서 지옥을
존재 개념으로 볼 수도 있다 했는데
이는 하늘도 똑 같이 적용됩니다
사람이라는 존재처럼
지옥이란 존재
하늘이란 존재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옥에 떨어지고
천국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지옥이란 고통스런 존재
하늘이란 즐겁고 행복한 존재로
몸을 받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는 하늘의 느낌 개념입니다
하늘의 느낌은 어떨까요
행복감일까요
즐거움 또는 기쁨일까요
지저분한 느낌일까요
시기 질투가 만연한 세계일까요
아니면 그냥 그저 그러한 곳일까요
어떤 종교에서나 마찬가지로
하늘은 기쁨이 충만하고
행복이 넘치고
진리만이 가득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기 다녀온 사람이 있습니까
기쁨 행복 진리 즐거움 등이
이미 꽉 차 있는 세계가 맞습니까
나는 얘기합니다
지옥이 기성세계가 아니라
거기 가는 자에게 마춤형이듯이
하늘도 하늘에 태어나는 자에게
마춤형으로 다가온다고요
마음이 지옥이라면
하늘도 지옥일 것이고
마음이 하늘이라면
지옥도 하늘일 것입니다
06. 성문
서방정토 극락세계가 아닌 이상
우리 사바세계에서
성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문은 글자 그대로
부처님의 가르침聲을
제 귀로 몸소 들은聞 자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지
지금은 워낙 오래된 까닭에
부처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서방정토 극락세계의 경우
아미타 부처님이 성불하신지
10겁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설법하고 계시기 때문에
거기에는 성문이 있겠지만
여기 사바세계는 불가능합니다
그래도 부처님의 경전을 통해
공부하는 학인들을
성문으로 생각할 수는 있겠지요
교학승이 곧 성문이라고요
하지만 정확하게는 성문이 아닙니다
07. 연각
독각獨覺이라고도 하지만
부처님의 말씀, 경전과 상관없이
연기緣起의 도리를 깨달아
높은 경지에 오른 이이기 때문에
인연연緣 깨달을각覺 연각이지요
불립문자不立文字
경전 논리에 따르지 않고
직지인심直指人心
마음의 세계에 바로 들어가
견성성불見性成佛
성품을 보고 부처를 이루는
이른바 선객禪客이 연각입니다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선승을 연각에다 대느냐고요
선승이 연각보다 낫다는 것인지
연각보다 못하다는 것인지
나는 그 구분을 모릅니다
굳이 연결을 짓는다면
성문은 학승이고
연각은 선승이라는 것이지요
08. 보살
범어 보리살타의 준말로
보리는 깨달음이고
살타는 중생이란 뜻입니다
완전한 깨달음을 지향하면서도
중생들을 저버리지 않는 구도자
불교의 맛은 바로 보살입니다
성문 연각이니
비구 비구니니
장로 장로니니
또는 선남자 선여인이니 하더라도
보살이란 개념처럼
불교를 포근하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보살의 원어를 따라
보리살타라고 부르거나
보디사트바라고 부르더라도
우리가 줄여서 부르는
'보살'이란 소릿값을
뛰어넘는 것은 결코 없습니다
보살이라는 소릿값에는
'보살피다'라는 아름다운 움직씨가
먼저 턱 떠오릅니다
스스로를 보살피되
누구에게나 마음이 열려 있는가
자기 자신의 행동과 언어와
마음가짐에 문제는 없지 않는가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스스로를 컨트롤하며
잘 참고 견뎌내는가를 살핍니다
스스로를 보살피되
헤아릴 수 없는 전생에
보살행을 닦은 부처님처럼
정진은 여일한지
고요히 자아를 되돌아보고
인생관과 세계관에 있어서
확고한 아이덴티티를 지녔는가를
끊임없이 살피고 또 살피기에
이를 우리는 보살이라 합니다
이처럼 여섯 가지 바라밀을
완벽하게 몸에 익히고
자연스레 언어를 구사하며
저절로 마음이 열리는 구도자가
다름 아닌 보살입니다
보살은 보살피는 사람이지요
덕목은 늘 육바라밀입니다
바라밀이 무엇입니까
프리즘Prism입니다
좀체 컬러를 보이지 않는 햇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가시적 빛깔을 드러내듯이
육바라밀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보살은 이웃을 보살피고
생명들을 보살피는 자가 됩니다
보살은 자신을 보살피는 동시에
육바라밀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다른 이를 보살피는
볼룬티어Volunteer가 됩니다
독지가요 지원자인 볼룬티어는
자아를 비우지 않고는
나눔을 실행할 수 없고
계를 지니고
인욕하고
정진하고
선정을 닦고
지혜를 바르게 닦을 수 없습니다
사성육범이라는 십법계에서
보살이 중심이 되는
대승불교는 그래서 맛있습니다
최상승을 지향하는 불교
역시 최상의 맛은 보살입니다
09/23/2015
한가을秋分
곤지암 우리절 선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