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일보/ 2012.10.8(월요일)자
詩가 있는 풍경

바보 이력서
임보
친구들은 명예와 돈을 미리 내다보고
법과대학에 들어가려 혈안일 때에
나는 영원과 아름다움을 꿈꾸며
어리석게 문과대학을 지원했다
남들은 명문세가를 좇아
배우자를 물색하고 있을 때
나는 가난한 집안에서 어렵게
자란 현모양처를 구했다
이웃들은 새로운 터전을 찾아 강을 넘어
남으로 갔을 때
나는 산을 떨치지 못해 추운 북녘에서
반평생을 보냈다
사람들은 땅을 사서 값진 과목들을 심을 때
나는 책을 사서 몇 줄의 시를 썼다
세상을 보는 내 눈은 항상 더디고
사물을 향한 내 예감은 늘 빗나갔다
그래서 한평생 내가 누린 건 무명과 빈곤이지만
그래서 또한 내가 얻은 건 자유와 평온이다
◆시 읽기◆
겉보다 속을 더 가꾸는 사람에게는 지성의 멋과 인품의 향기가 베어난다.
세상을 보는 눈은 항상 더디고, 사물을 향한 예감은 늘 빗나갔다. 그래서 한평생 누린 건 무명과 빈곤이지만, 그래서 또한 얻은 건 자유와 평온이라고 당당히 말하고 있는 시인은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국문학박사로써, 국문학교수로써, 시인으로써의 길을 묵묵히 지켜가는 분이다.
세상적인 출세와 편이를 쫒지 않아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자유와 평온뿐일까?
많은 선각자들이 ‘아는 바보’가 되라 했다. 바보 중에는 '모른다는 것도 모르는 바보’와 잘 안다고 믿고 있는 ‘아는 바보’가 있다. 현대는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 아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아는 것을 행하지 않으면 모르는 바보보다 더 불쌍한 바보가 아니던가. 실행과 실천으로 검증된 지혜를 터득한 현명한 바보가 진정 ‘위대한 바보’일 것이다.
눈을 잃은 사람이 볼 수는 없어도 있는 / 저 언덕 위의 무지개처럼 / 귀를 잃은 사람이 들을 수 없어도 있는 / 저 하늘 속의 천둥처럼 / 우리의 감각으로는 가 닿을 수 없는 / 그런 세상 도 있나니 /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 들리지 않는 것이라고 / 만질 수 없는 것이라고 / 없다 고 이르지 말라 / 저 푸른 구름 위에도 예쁜 / 다락 마을이 있나니... -구름위의 다락마을 (林步)-
○눈에는 ○만 보이고, ○귀에는 ○만 들리는 법이다. 넘치는 세상풍요 속에서 무엇을 듣고,
무엇을 볼 것인가? 무엇을 향해 어떤 가치추구의 삶을 살 것인가?
유 진/ 시인, 첼리스트<선린대학 출강>
첫댓글 존경하는 바보님, 자유와 평온의 나라에 안착하심을 축하드립니다.
저도 이 나라 국적을 갖고자 하는 것 아시지요? 유 시인님 훈훈한 글 감사드립니다.
자유와 평온의 나라에 가까워졌는가 했더니 세파에 흔들려 영일이 없습니다.
미투 임보선생님 말씀에 (그 나라에 가까워 졌는가 했더니 세파에 흔들려 속 타는 이내맘 요즘 바람 잘날 없습니당 ㅎㅎ)
유진 시인, 졸시 거론해 주시어 고맙습니다. 맑은 계절과 함께 좋은 글 많이 쓰시기 바랍니다.
'자유와 평온'을 누리는 바보라면 얼마든지 바보가 되고 싶습니다.
그런 바보가 많은 세상이 어찌 살맛이 나지 않겠는가!
아름다운 바보여!
그런데 헛바보들이 스스로 바보라고 하는 꽃은 정말 보기 힘듭니다.
자유와 평온을 누리는 바보들의 성이 우이도원에 있다지요? ㅎㅎㅎ
아름다운 바보들이라면 그 곳을 알고 있지요.
익어가는 가을, 그 성에서 우리 모두 단풍들어 보게요.
곡차에 단풍 한 잎 띄워 들고!
회장님 "꼴"이죠? 오타 났어용
우이도원 바보들의 성 안에서 자유와 평온을 누리고 계시는 많은 바보님들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이력서 말단에 제 이름도 사인하고 싶은데...사물을 향한 제 예감이 자꾸 맞아서 주저하게 됩니다^^
시와 감상글, 잘 읽었습니다.
바보 이력서 이런것도 있어요 선생님,
사는곳이 어딘겨? /그건 왜 묻는다요
이름은?/ 나는 개똥이 인데요 그건 또 왜요?
가족사항은?/ 왜 자꾸 사생활을 알려고 한다요
ㅎㅎ
ㅎㅎ
내 맘속에 깊이 있는 자유와 평화는 아무도 뺏어갈 수 없습니다
명예와 잘 나가는차를 타고 미끄러지듯 살아가는 인생속에 참 평안이 없으면 그건 지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