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아시아 여행기12
1월 8일(금) 넷째 날
웰컴 사왓디 인에서 체크아웃 했다. 300 바트 보증금은 잊지 않고 돌려 받아야 한다. 시간 여유가 있으면 한국에서 예약하지 않고, 현지에서 숙소를 구하는 게 좋다. 하지만 좋은 숙소를 찾기가 쉽지 않다. 마음에 드는 숙소는 일찍 방이 차버린다.
태은은 길거리 음식점으로 점심 먹으러 가고, 우리는 디디엠에 가서 순두부 찌개를 시켰다. 무선 인터넷을 쓸 수 있고, 한국말로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어 한국 업소를 가끔 이용하는 게 좋다.
말레이시아로 가는 기차는 오후 두 시 사십오 분에 출발한다. 스무 시간 이상 걸리는 기차라 미리 먹을 것을 좀 챙겨가야겠다. 시장에 가서 도시락과 닭고기, 초밥, 스티키 라이스를 산다. 후알람퐁 역까지는 택시로 이동한다.
맥주를 사려고 역 앞에 있는 세븐일레븐에 들어갔다. 그런데 맥주를 팔지 않는다고 한다. 오후 2시가 넘으면 태국에서는 술을 팔지 못한다. 할 수 없이 옆집 가게에 들어가서 맥주를 샀다. 가격이 좀 비싸지만 이 집은 술을 판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에 남긴다.
기차에 오른다. 침대칸이지만 낮에는 의자에 앉아 있는다. 서로 마주 보면 앉는데, 왼쪽 태은 자리는 아랫칸이고 오른쪽 자리는 윗칸이다. 윗칸보다 아랫칸이 더 비싸다. 비싸더라도 아랫칸 침대가 훨씬 좋다. 자리도 넓고 침대 상태에서도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볼 수 있다. 윗칸은 침대로 만들면 그냥 누워서 자는 도리 밖에 없다.
이제 편안하게 맥주도 마시면서 경치를 보며 졸다가 잠이 오면 자고, 배가 고프면 먹을 거리들을 하나씩 챙겨 먹으면 된다. 제주 삼다수도 멀리까지 왔다. 물론 내용물은 태국 물이다.
15:31 Bang Bamru(?) 역을 지난다. 철길 따라 계속 공사중이다. 철길을 넓히려는 모양이다.
기차 타고 외국에 가는 일은 우리 나라에서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기차로 말레이시아로 가는 길이 신기롭다. 태국에서 라오스나 캄보디아까지 기차를 타고 갈 수 있다. 하지만, 종점에서 내려 다시 뚝뚝이나 도보를 이용해서 넘어가야 한다. 말레이시아까지는 그대로 철길이 이어지니까 국제 열차가 달리는 것이다. 미얀마도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철도 여행은 막혀 있다. 미얀마가 육로 국경을 개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얀마 국경 소수 민족과 미얀마 정부는 전쟁 중이다.
우리 나라도 남북 관계가 개선되어 경의선이나 경원선 철도가 이어지고, 중국과 러시아를 통해 유럽까지 기차를 타고 여행갈 날이 언젠가는 오겠지. 오래 살아야 볼 일이다.
이 기차엔 어김 없이 바퀴벌레가 공생한다. 눈에 보이면 새끼라도 어쩔 수 없다. 식당칸에서 저녁과 아침 주문을 받으러 다닌다. 도시락도 팔고, 맥주도 판다. 싱하 맥주가 120 바트다. 얼음을 주기는 하지만 밖에서 사오기를 참 잘 했다.
하늘이 흐리기만 하지 비는 내리지 않는다. 이제 기차 안에 있으니 비가 맘껏 쏟아져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15:51 Sala Ya 역이다. 태은 앞에는 서양 총각이 앉아 있는데 책을 열심히 읽고 있다.
서로 대화를 나눔직도 한데, 한 마디도 없이 멀뚱 멀뚱.
16:22 나컨 파톰(Nakhon Pathom). 구름 없는 맑은 하늘로 돌아왔다.
16:50 우리 쪽으로 햇빛이 비취기 시작한다. 아마 기차가 이제 남쪽으로 방향을 튼 듯하다. 이 기차 화장실에서는 샤워도 가능하다. 뜨거운 물도 잘 나온다. 1996년 대우중공업에서 만든 전동차다.
17:13 라차부리(Rachaburi)에 도착했다. 잽싸게 장사꾼들이 먹을 거리를 가지고 올라왔다. 겨우 4분 정차하는데도 기회를 노린다.
이제 석양이다. 논에는 걷이 끝난 뒤 소들만 뛰놀고 있다.
17:44 카르스트 지형에서 볼 수 있는 산들이 지나간다. 태양은 동그랗게 붉은 기운을 내며 하루 일정을 마감할 준비를 한다. 서서히 빛을 잃으니 푸르스름한 기운이 사방에 깔린다.
18:00 하늘엔 붉은 기운이 거의 사라진다. 형광등 가로등 불빛이 빛나기 시작한다. 차내 안내 방송이 없이 조용하다.
18:06 야시장 불이 밝혀진 마을을 지나간다. 하늘은 이제 회색이다.
18:21 벌판에 기차가 정차한다.
18:30 아까 주문한 저녁을 배달하기 시작한다.
19:00 기차 의자를 침대로 바꾸기 시작한다.
19:02 후아인에 정차한다. 우리도 저녁을 먹는다. 음식이 맵다. 하긴 ‘매워야 맛이지(Not Spicy, Not Tasty)' 태국 속담이다. Mai phet, mai arawy.
세오녀가 또 바퀴벌레를 두 마리나 잡았다. 숙면을 방해하는 요 녀석들 걸리면 영락없는 신세가 된다. 눈앞에 다시는 나타나지 말아라.
* 이 글은 2010년 1월 5일(화)부터 2월 4일(목)까지 30박 31일간 연오랑 세오녀 태은(중2) 가족의 여행 기록입니다.
* 여행한 곳은?
포항-서울
인천-태국 방콕-말레이시아 피낭-쿠알라룸푸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반둥-족자카르타-발리 우붓
타이완 타이중-타이페이
서울-옥천-대구-포항
첫댓글 바퀴벌레라... 무시하고 여행해야겠지요... 그래야 마음이 편안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