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아시아 여행기13
1월 9일(토) 다섯째 날
잠에서 깼다. 열차는 계속 덜컹거리며 달리고 있다.
01:53 어느 역에 오래 정차하고 있다. 커튼을 젖히고 살펴보니 쑤랏타니(Surat Thani) 역이다.
쑤랏타니는 방콕에서 651km 떨어진 태국 남부 관문 도시다. 꼬 싸무이나 꼬 팡안으로 가는 길목이다.
뜨거운 물을 한 컵 가져와 차를 만들어 마신다.
꿈이 생각난다. 태은이가 음악회에서 공동 우승을 해서 파티를 열었고, 우리얼 답사 동호회 회원들과 공동으로 답사를 다니는 내용이다.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무의식 바닥에 있던 것들이 이럴 때 가끔 나타난다.
우물에 두레박을 던져 넣었을 때 아래에 깔려있던 것들이 위로 올라오듯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직장일과 교원평가 대응은 어떻게 할 것인가.
카페 탈퇴한 회원은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그동안 쓴 글까지 모두 삭제한 까닭이 무엇일까?
이런 저런 상념이 뒤죽박죽이다.
깜박 또 잠이 들었나 보다.
05:10 무슬림 가족 아이들 얘기 소리에 잠을 깼다.
여자와 아이들 소리는 톤이 높아 잠을 금방 깨게 만든다. 꿈은 계속 이어진다. 비몽사몽. 창밖은 여전히 어둡다.
05:30 아직 날이 밝지 않는다. 하현달이 보인다. 음력으로 25일이다.
무슬림 가족이 내렸다. 바닥에 기어다니는 바퀴벌레가 또 최후를 맞이한다.
무슬림 가족 자리에 서양 남녀가 자리 잡았다. 입구 쪽에서 온 것인지 새로 탄 건지는 모르겠다.
여섯 시가 지나면서 하늘이 붉어지기 시작한다.
06:42 Ban Ko Yai 역 지날 때 해는 떠올랐다. 고무 나무 농장들 사이로 비치는 아침 햇살이 부서진다.
머리에 불을 켜고 새벽부터 고무 채취 노동자들 모습이 종종 보인다.
아래쪽 침대 위력이 지금부터다. 윗침대에서는 이런 풍경을 보지 못한다. 겨우 100 바트 차이다.
전망, 조망권이라는 게 이렇게 중요하다.
군데 군데 산이 보인다. 날이 밝으니 승무원이 침대를 의자로 개조하기 시작한다.
07:03 핫야이(Hat Yai)로 들어선다.
이곳에서 열차를 분리한다. 말레이시아로 가는 열차만 따로 떼어내는 것이다.
우리가 탄 2호차를 포함해서 객차 두 량만 버터워쓰까지 간다.
우리가 탈 때 물과 맥주를 너무 적게 준비했다. 기차 안에서 뜨거운 물을 얻으려고 하니 한 컵에 10 바트를 달라고 한다.
태은이가 목말라 한다. 나는 맥주가 부족하다. 그래서 역 매점에서 맥주와 물을 사오기로 했다.
시간이 충분할 듯해서 나는 내려서 보급품을 사러 갔다. 마침 1,000 바트 고액권을 냈더니 거스름 돈이 없어 시간이 좀 지체되었다.
맥주와 물을 들고 기차가 서 있는 곳으로 가는데, 분명히 기차가 있어야 할 자리에 철길만 보인다.
저 멀리 세 량 기차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나는 갑자기 사태가 심상찮다는 걸 눈치 챘다.
그냥 냅다 기차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주변엔 사람도 없어 어떻게 도움을 청할 처지도 못된다.
얼마나 뛰었을까, 역원이 보인다.
헤이~소리를 질러 내가 저 차를 타야한다고 하니, 웃으면서 손짓으로 기차가 돌아온다고 한다.
그제서야 조금 안심이 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달리면서 만감이 떠올랐다.
이러다가 이산 가족이 되면 세오녀랑 아들과 어떻게 만나지?
세오녀는 어떤 행동을 취할까?
기차가 뒤로 다시 오는데, 출입문 쪽에 둥근 세오녀 얼굴이 보인다. 얼마나 반갑던지 눈물이 나려고 한다.
나를 놀라게 한 기차는 뒤로 돌아와 나를 태우고 다시 출발했다.
시간을 보니 07:21. 불과 십여 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아침 무사 생환 기념 맥주를 마신다.
08:04 국경 근처 역에 선다. 많은 파인애플 짐을 싣는다. 출발하던 기차가 다시 서더니, 모두 내리라고 한다.
국경에서 출입국 수속을 밟아야 한다. 모두 짐을 들고 내린다.
말레이시아 입국할 때는 가방이나 짐은 모두 개방해서 살핀다.
내 배낭 속에 든 맥주를 보더니 ‘술을 마시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 아닌가’ 한다.
나는 웃는다. 아침부터 힘을 빼서 다시 올라가서 나머지 한 병을 마셔야겠다.
이민국 직원은 ‘아리가도우’라며 여권을 돌려준다. 한국 여권인 줄 알면서 그가 내뱉는 말은 일본어다.
이곳에는 환전소도 있고, 음식을 파는 매점도 있다.
작년 말레이시아 여행 때 남은 링깃이 있기에 따로 환전하지 않는다. 이런 곳에서 환전하면 환율이 가장 나쁘다.
08:38 다시 기차에 타서 아침 식사를 한다. 어제 태국 방콕에서 사온 닭고기와 스티키 라이스가 아침 메뉴다.
* 이 글은 2010년 1월 5일(화)부터 2월 4일(목)까지 30박 31일간 연오랑 세오녀 태은(중2) 가족의 여행 기록입니다.
* 여행한 곳은?
포항-서울
인천-태국 방콕-말레이시아 피낭-쿠알라룸푸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반둥-족자카르타-발리 우붓
타이완 타이중-타이페이
서울-옥천-대구-포항
첫댓글 태국돈과 말레이시아 돈의 환전은 국경이 제일 좋던데요.
태국 10밧을 말레이시아 1링깃으로 해 줍니다.
구멍가게 아줌마들도 그렇고.
저는 거꾸로 말레이시아에서 태국으로 버스로 넘었는데 끄라비에 가니 은행 환율이 9 : 1로 떨어지더라구요.
핫야이에서 바꾸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바트로 링깃을 바꾸지는 않았고, 오직 달러 환율만 살펴봤습니다.
우와... 여행기 다 읽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