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29 행하라 빌4:8~9절
* 예수가 있는 자
예수님을 믿는 성도를 가리켜 예수님이 있는 자라고 합니다. 행3:6절을 보면 “네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라고 합니다. 지금 이 사도들에게는 은과 금은 없거니와 라고 합니다. 즉 이 세상에 다른 것은 없다 해도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예수님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거룩한 존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자들에게 꼭 있어야 하는 숙명적인 것이고, 필연적인 생명 그 자체입니다. 예수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그러한 존재가 아닙니다. 이 세상의 것이 다 없다‘ 해도 예수는 꼭 만나야 하고 간직해야 하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을 보고 예수의 이름으로 칭함 받는 자, 또는 예수가 있는 자라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믿는 자라고 말 할 때에 그 신앙이란 어떤 종교 의식을 따라 사는 것을 말하기 보다, 예수가 없었던 자가 예수님을 소유해서 예수가 있는 자로 사는 것을 믿음이라고 말하고 신앙이라 합니다. 인간이 지금까지 비참하고 불행하게 살아온 것은 예수가 없는 자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꼭 예수님을 믿어 예수가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 믿는 성도에게 예수님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 마음에 있는 예수
본래 우리인간의 마음의 자리는 예수님의 자리입니다. 예수님이 계셔야 할 인간의 마음에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죄악으로 가득 하게 됩니다. 막7:20~23절을 보면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고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롬1:21절에서 마음이 미련하여 지고 어두워 졌다고 말하고 28절에서는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29~31절을 보면 각양 죄악으로 가득한 자들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십계명을 통해서 하지 말라고 하시는 여덟가지 계명으로 이미 우리 인간 속에 내장 된 죄 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을 예수님은 마12:34절에서는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실상이고 인간의 마음입니다. 마음이란 인격의 근원이고 거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인간의 근원이 되는 마음이 어둡고 삐뚤어져 있으니 어떻게 제대로 된 인생의 삶을 살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러한 자들을 향하여 롬2:5절에 심판의 날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다고 말하고 또 하나님이 노아 때에 홍수로 세상을 진노하시게 된 것은 창6:5절에서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해서 세상은 심판을 받아 망하게 됩니다. 지금도 인간들의 마음은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기 때문에 언제나 하나님의 진노가 머리위에 쌓여 있습니다.
이렇게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 전혀 희망 없는 인간들의 마음에 롬5:5절을 보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의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라고 하십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소식입니까? 그 누구도 열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을 성령이 감동하시어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긍휼을 부워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은혜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 성도들에게 예수님이 마음에 있는 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음에 가장 귀한 보배로 자리 할 때 이러한 자를 의로운 자, 힘 있는 자 풍요로운 자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마5:1~12절에서 예수가 있는 자를 그 마음에 천국이 있다 하시고, 또 죄 때문에 두렵고 떠는 애통하는 마음이 되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뜨거워진 온유한 자라고 하시고, 의를 사모하고 필요로 해서 주리고 목말라 하는 마음이고, 십자가의 긍휼로 죄에서 의의 자리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긍휼의 은혜를 보이는 긍휼의 마음이 되고, 그리스도만 용납함으로 청결한 마음이 되고, 하나님과 소통하는 화평의 마음이라고 하시면서 바로 이러한 자들이 복이 있다고 산상 설교 중에서 가르치고 계십니다.
예수가 마음에 있다‘라는 말은 예수님이 보배라는 말인데 보배라는 말은 예수님께 내 마음을 다 빼앗겨 졌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마6:21절에서는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하십니다. 즉 마음에 예수님이 보배로 자리하고 있는 자는 이미 그 마음이 천국을 누리고 있다’라는 말입니다. 히3:1절에서는 우리의 대 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 마음에 무엇이 자리하고 하고 있고, 누가 여러분의 마음의 주인 되어 있습니까? 성령의 은혜로 십자가의 은혜를 깨달은 성도라면 그 마음에 예수님으로 가득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깨달아 예수님께 감격되고 매료되어 예수님을 항상 목말라하고 배고파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자리는 예수님의 자리입니다. 예수님이 내 마음에 자리 할 때만 가장 평안하고 행복하며 힘이 넘치는 복 있는 자가 될 것입니다.
* 삶에 있는 예수
성도의 마음에 계시는 예수님은 마음과 생각에 머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 장본인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은 자기 마음에 자리한 가장 귀한 보배가 된 예수님을 위해서 어떻게 행하고 살았는지를 오늘 본문9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발견한 예수, 자기의 마음에 보배로 자리한 예수, 자신의 생명이 되고 의가 되시며 자랑거리가 된 그 예수님을 빌립보 교인들에게 가르치고, 보여주고 삶이라는 행함을 통해서 증거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도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고 합니다. 우리 성도들 마음에 과연 예수님이 보배로 자리하고 계시다면 이 예수는 우리의 삶에서 나타나고 보여지게 됨으로 예수가 있는 삶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행하라’는 말은 삶의 일부를 고치고 수정할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로 인한 새로운 인생, 새로운 삶의 길을 갈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새로운 피조물 된 사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하며 그리스도가 삶의 중심이 되어 있는, 십자가의 가치를 나타내도록 하기 위해서 ‘행하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정신이 다르고 가치관이 달라야 합니다. 성도에게는 삶의 원칙이 있고,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그 기준과 중심은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빌립보의 성도들이 바울에게 배우고 들은 것이 성도로서 행해야 할 규칙과 어떤 규정들의 목록을 하나하나 가르치고 제시한 것이 아니라 앞서 말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였던 것입니다.
1:20절의 말씀대로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라는 말씀대로 우리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의 원칙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인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오직 우리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가 주장되고 세워지는 일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가 보여지는 것인가?’를 마음에 두고 그리스도의 마음이 어떤 마음이었는가를 생각한다면 그 행할 바는 자연히 알 수 있어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에서 강압적인 규례와 제도를 만들어 놓고 성도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억압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세우기 보다는 목사가 경영하는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일이 아닌지 점검해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목사말을 듣지 않으면 구원을 못 받는다‘거나, 복을 받지 못한다는 등의 위협을 하고 있는데 그런 것은, 성경이 아닙니다. 행함은 짐이 아니라, 사명과 평강입니다. 9절 마지막에 보면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는 말을 하십니다. 이 말씀은 이미 예수가 마음에 있는 자는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예수가 있다’라는 말은 용서가 있고, 희생이 있다‘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삶으로 예수가 있는 성도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입니다~~^^ 목사님 잘 지내시죠?? 글은 좀 퍼가겠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