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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깊은 교제생활이 이루어 지기를 소망합니다. |
미국 코넬 대학교의 실험실에서 있었던 예화를 하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개구리 한 마리를 차가운 물이 담긴 큰 비이커에 넣었습니다. 비이커 밑에는 분젠등을 놓고 1초에 화씨 0.017도씩 데워지도록 불꽃을 아주 작게 놓았습니다. 온도가 서서히 높아지기 때문에 개구리는 온도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비이커에서 뛰어올라 안전한 곳으로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구리는 태평스럽게 앉아 있었습니다. 두 시간 반쯤 지난 뒤 개구리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개구리는 뜨거운 물에 푹 삶아져서 죽어 있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죽은 것입니다. 다윗이 바로 이와 같은 개구리의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안일한 궁정의 환경이라는 비이커 속에서 정욕의 불이 0.017도씩 서서히 다윗을 데우기 시작했지만. 그는 자기가 얼마나 위험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방심하고 있다가 자기도 모르게 당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행복한 여건을 그 분의 이름을 높이는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이런 열망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면 비록 당신 안에 어떤 육체의 정욕이 도사리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가 발악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절대로 주어지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 작은 무너짐이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순전하고 원대한 계획과 축복을 막는 사탄의 커다란 올무였음을 후일에 깨닫게 될 것입니다.
[벧전 5:8-9] (9)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1. '주님의시선' 카페와 카페지기가 섬기는 '마산시민교회'가 더 풍성해 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합니다.
제목: 준비하는 사람들 성경: 마태복음 24:42-51 세상 만사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준비없이 되는 일은 없습니다. 상급 학교 진학도 준비가 필요하고 결혼도 준비가 필요하고 사업도 준비가필요합니다. 그뿐입니까?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준비가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손들에게 유언을 하고 유서를 써서 변호사에게 맡기고 부고 문안을 만들고 장지를 정하는 등, 자기 죽을 준비를 철저히 세심하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죽어 유가족들이 당황하면 안된다는 것이 그 사람의 지론이었습니다. 주님을 여러 차례 준비의 중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역시 깨어 준비해야 될 것을 교훈하신 말씀입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는 말씀은 준비하고 있다가 다시 오실 주님을 영접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다시 오시는가? 오실 것인가? 이천년 전 베들레헴에 오셨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의 재림도 믿어야 합니다. 초림은 믿지만 재림은 믿지 않는다는 것은 예수 전체를 믿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첫째,구약의 예언들 때문입니다.
구약은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기록된 책입니다.
이사야 11:4-5을 보면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심판이나 판단은 재림 주의 특권인 것입니다. 이사야 66:15-16을 보면" 여호와께서 불에 옹위되어 강림하시리니 그 수레들은 회오리 바람 같으리로다. 그가 혁혁한 위세로 노를 베푸시며 맹렬한 화염으로 면책하실 것이라.여호와께서 불과 칼로 모든 혈육에게 심판을 베푸신 즉,여호와께 살육 당할 자가 많으리니"라고 했습니다. "불에 옹위되어 강림하시고" 라는 것은 재림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다니엘7:13을 보면 "인자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라고 했습니다. 인자는 예수님이시고,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것은 주님이 친히 하신 예언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여러 곳에서 여러 선지자의 입을 통해 그리스도의 재림은 예언되었습니다.
둘 째,예수님 자신의 예언 때문이었습니다.
요한 복음14:3에서 주님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작은 계시록이라 부르는 마태 복음 24장과 누가 복음 21장 그리고 마가 복음 13장에서 자세하게 재림의 징조를 밝혀 주셨습니다. 그 누구의 말보다 가장 신빙성이 있는 것은 주님 자신이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신실하심과 불변성을 믿습니다. 그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믿고 또 믿는 것입니다.
세 째, 사도들의 증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증거한 사도들은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서 모셨던 제자들과 바울 사도였습니다. 마태는 마태 복음에서, 마가는 마가 복음에서,요한은 요한 복음과 계시록에서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을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가 쓴 베드로 전·후서에서, 바울은 바울 서신 도처에서 재림을 증거 했습니다. 몇 군데 예를 들겠습니다. 디모데 전서 6:14을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라고 했고 베드로 전서 1:7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라고 했고 1:13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전서5:4을 보면 "목자 장이 나타나실 때"라고 했습니다. 베드로 후서 3:10절을 보면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라고 했습니다. 그뿐입니까? 사도행전 1:11을 보면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승천 장면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에게 흰 옷 입은 천사가 해 준 말씀이었습니다. 이처럼 철저한 삼겹 증거와 증언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증언을 믿지 않는 사람은 예수 자신을 믿지 않는 사람일 것입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는 수만명의 유대인들이 강제 수용되어 있었습니다. 그곳 수용소 벽에는 유대인들이 쓴 낙서들이 이곳 저곳에 남아 있는데 한 곳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은 언제 오십니까? 마태 복음 24:36을 보면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했습니다. 본 구절의 해석에 대해 주경가 엘포트(Alford)는 예수님의 완전한 복종과 겸손을 뜻한다."고 했습니다. 특별한 계시를 받았다는 이유나 하나님과의 영통을 했다는 이유로 재림 날짜를 예견하거나 예언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지금까지 주님의 재림 날짜를 예언한 사람치고 실수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여러 차례 예수님의 재림 일자를 예언하고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다가 패가 망신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2:2을 보면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3을 보면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매혹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주인이 먼 곳으로 떠나며 종들에게 집안 일을 잘 돌보고 재산 관리을 바로 하라는 당부를 했습니다. 마태 복음 24:47을 보면 주인이 천천히 오리라 하여 다른 종들을 때리고 친구들과 어울려 주색 잡기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24:50을 보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라고 했고 51절을 보면 "엄히때리고"라고 했습니다. 우린 여기서 주님의 재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아직 멀었다고 여겨 타락하고 제 멋대로 살다가 갑자기 주님이 오셨을 때 겪게 될 심판을 생각해야 합니다.
성탄을 축하하고 기뻐하는 사람들이라면 다시 오실 주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합니다. 마치 결혼식 날을 기다리는 신부처럼 그날을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되 졸면서 기다리면 안됩니다. 깨어서 기도하고 준비하고 기다려댜 합니다.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깨어서 준비하는 사람만 주님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4·19혁명으로 철옹 성같았던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고 새로운 정권이 시작되었습니다만 정치 싸움으로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그러다가 일어난 것이 5·16이었습니다. 단단한 단구에 까만 색안경을 낀 박정희 소장은 혁명의 영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내건 구호는 부정 부패의 척결이었고 경제 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순환입니다. 여러 차례 반복된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꿈꾸던 지상 낙원, 파라다이스는 실현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정도 그대로 있고 비리도 그대로 있습니다. 새 정부가 안고 있는 과제 역시 어떻게 경제를 회복할 것이며 부정과 비리의 뿌리를 뽑느냐입니다.
민족 운동가였고 교육가였던 남궁억 선생이 1931년 연희 전문 학교 졸업식에 참석해 다음과 같은 축사를 했습니다. 교문을 나서려는 여러분의 방향은 어디입니까? 교육의 혜택도 못받고 문화의 혜택도 모르고 헐벗고 굶주린 핏기 없는 창백한 얼굴을 가진 동족들이 목자 없이 방황하고 있는데 이 가련한 양들을 구원하러 내 고장의 농촌으로 발길을 재촉하지 않으렵니까? 우리는 강한자에게 붙어서 부스럭지 권세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약한자를 도와 같이 강해지는 것이 우리의 과업이요 사명이라 생각합니다"라고.... 정치가 새 나라를 만들고 정권이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새 나라와 새 땅을 만드는 두 가지 세력이 있습니다.
첫째는 내가 새로와 지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하십니다 주님께서 다시오시는 목적이 여러가지 입니다. 예를들면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를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시기 위해 오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2을 보면"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라고 했고 14:3을 보면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처소는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주님과 함께 사는 나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 위해 재림하신다는 것입니다.
새 아파트에 입주한 사람들은 경제적 여건 때문에 쓰던 가구들을 그대로 들어 놓은 집도 많지만 그러나 새 집엔 새 가구며 새 집기들을 들여 놓기 마련입니다. 커튼도 전에 살던 집에 걸었던 것을 그대로 떼다가 걸진 못합니다. 우리가 들어가 살게 될 그곳은 새 나라, 새 땅, 새 세계, 새 집입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 살려면 내가 새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새 사람이 됩니까? 우리는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다시오실 주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합니다.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 살 준비도 해야 합니다. 준비된 사람만 주님을 영접할 수 있으며 그 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