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13.12.19 대림 제3주간 목요일 판관13,2-7.24-25 루카1,5-25
하느님 앞에서(In the eyes of God)
하느님은 당신의 사람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어제의 주인공은 요셉이었고 오늘의 주인공은 즈카르야와 그의 부인 엘리사벳입니다. 오늘 복음 서두의 한 대목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이 둘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들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하느님 앞에서’가 바로 핵심입니다. 영어를 찾아 봤더니 '하느님의 눈 안에서(In the eyes of God)'로 바로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은 삶을 뜻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삶을 살아갈 때 마음의 평화입니다. 사람들 앞에서가 아닌 하느님 앞에서입니다. 하느님 앞을 떠날 때 나를 잊어 방황이요, 세상 것들이 그 삶의 중심이 됩니다. 얼마 전 국민의식조사 결과 팍팍해진 현실을 반영하듯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힘은 돈'이라는 말에 86.8%가 동의했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모든 위인들은 모두 하느님을 힘으로 삼았고,하느님 앞에서 충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살 때 겸손한 삶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살 때 자기를 알아 겸손이요 하느님과 멀어질 때 자기를 잊어 교만입니다. 즈카르야와 엘리사벳 부부는 늘 하느님 앞에서 살았기에 겸손했고 하느님은 이들을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1독서의 삼손의 부모인 마노아 부부 역시 하느님 앞에서 겸손했던 인물들임이 분명합니다. 매일 성전 안에서 공동전례기도 시간 역시 하느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비춰보는 겸손의 수행시간이기도 합니다.
하느님 앞에서 살 때 항구한 삶입니다.
누가 뭐래도 하느님 앞에서 살 때 유혹에 빠지지 않고 흔들림 없이 항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정주서원 역시 하느님 앞에서 항구한 삶을 뜻합니다. 부부들에게 아이가 없는 것처럼 힘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즈카르야 부부와 마노아 부부가 이 어려움을 겪어낼 수 있었던 것도 하느님 앞에서 삶에 항구했기 때문임을 깨닫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지성이면 감천입니다. 하느님은 당신 앞에서 항구했던 즈카르야 부부에게 아들 요한을 선사하십니다. 마노아 부인 역시 주님 천사의 전갈을 듣습니다.
“보라, 너는 임신할 수 없는 몸이어서 자식을 낳지 못하였지만,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우리보다 우리의 처지를 잘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하느님 앞에서 정주의 삶에 항구할 때 하느님은 적절한 때에 응답하십니다.
하느님 앞에서 살 때 깨어있는 삶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살 때 저절로 침묵이요 깨어있는 삶에 흠 없이 살아가는 무죄한 삶입니다. 바로 우리 수도자들은 물론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이 지향하는 삶입니다. 즈카르야 부부에 대한 하느님의 배려가 놀랍습니다. 요한의 출산에 앞서 특별 피정기간을 마련하십니다.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할 것이다.”
하느님은 즈카르야에게 특별 침묵피정 기간을 마련하여 당신 앞에서 충분히 성찰할 시간을 마련해주십니다. 엘리사벳 역시 다섯 달 동안 숨어 지내며 그 깨달음을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
그대로 감사의 고백입니다. 엘리사벳 역시 다섯 달 동안의 특별피정기간 동안 하느님 앞에서 침묵 중에 충실히 깨어 지냈음이 분명합니다.
우리 인생은 햇풀과 같이 덧없이 지나가고 하느님은 영원히 계십니다. 늘 하느님 앞에서 살 때 영원한 삶이요 존엄한 인간 품위의 삶입니다. 주님은 매일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늘 하느님 앞에서 겸손한 삶, 항구한 삶, 깨어있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성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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