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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패러글라이딩 국가대표선발 3차 리그-문경
2014. 10. 9. 목요일 대회 첫째 날.
11시에 오늘의 타스크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12시 문경 단산이륙장 게이트 오픈, 13시 대미산 5km 에어스타트, 포함산, 월악산을 거쳐 주흘산, 백화산, 오정산 고모산성을 지나 수정산을 찍고 문경활공랜드착륙장을 골로 하는 총 거리 66.7km, 실거리 57.6km인 타스크(포인트)가 위원회에 의해 만들어 졌다.
G.P.S.에 담긴 웨이포인트에서 타스크를 선택해 입력한 뒤 오늘의 비행을 예상해 본다.
문경에서는 처음으로 바운더리를 벗어난 크고,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타스크다.
각 팀들은 제각각 모여 오늘의 날씨, 예상고도와 루트, 그리고 써멀(햇빛으로 달구어진 상승열기류) 촉발지점 등에 관하여 의논하며 전략을 세우기 바쁘다. 우리 팀도 현지 팀을 초대하여 써멀 포인트와 현지 팀들도 자주 가보지 못했다는 월악산 공략 방법에 대해서 묻고 나름대로의 계획을 세웠다.
경기에 한두 번 참가한 것도 아닌데 또 신경성 대장염이 도졌다. 게이트 오픈까지는 아직 20여 분이 남았다. 갈까 말까 망설이는데 차츰 잦아들어 다행이다 싶었다.
혹시 산줄이 꼬이진 않았나, 하네스(비행 중에 몸을 지탱해 주는 기구 - 앉거나 누울 수 있음) 상태는, G.P.S는 정상작동을 하는지 한 번 더 확인하고 게이트 오픈을 기다렸다.
12시. 게이트 오픈! 기상예보대로 습도는 약 40%, 풍향은 남동풍이 초당 약 1~2미터, 이슬점 높이는 오전 1.5km 오후 2.0km이상이며 이륙시간 현재 동풍이 초당 2미터로 일정하게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선두 일행과 함께 가뿐하게 이륙했다. 다소 긴장해서였는지 이륙하기전과 다르게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자신감 빡! 시~작!
날씨가 워낙 좋다보니 약 100여 명 선수들이 서두르지 않고 하나 둘 천천히 이륙장을 벗어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동풍이륙, 이륙장 정면 12방향을 기준으로 왼쪽에 있는 스타트 포인트(대미산 850m)로의 근접비행을 위해 운달산(이륙장으로부터 왼쪽으로 약 4km 지점에 위치하며 높이는 1,097m)에서 비행고도 약 1,500m를 획득해 스타트 전 적응비행에서 오늘의 컨디션을 확인해 본다. 오늘따라 날개는 더욱 날렵해 보이고 믿음직해 보인다. 뺨을 스치는 바람이 어느 때보다 경쾌하다.
써멀은 예상대로 초당 3~6미터로 거칠게 캐노피를 쓰다듬기도 하고, 때론 육중하면서도 부드러운 키스를 건네기도 한다. 심장이 콩닥거리고 조종줄을 잡은 손에 땀이 베인다.
약 1,450여 미터에서부터 생긴 구름이, 하나의 써멀컬럼(열 기둥)에서 밀집비행을 해야만 하는 선수 무리를 간간히 삼켰다 뱉어 놓는다. 비록, 오늘은 홀수 날이라 왼쪽으로 돌아야만 하는 좌턴이지만 근접비행을 하면서 왕왕 추돌이나 충돌하는 경우도 없지 않아 이를 피하기 위해 어쩔 수없이 써멀로부터 이탈을 해야하거나, 궤도를 벗어야만 하는데 이는 출발 전에 갖추어야 할 가장 필요한 요건 중에 하나인 최고고도 유지에 치명적이다. 스트레스로 머리카락이 선다. 여기저기서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소리를 지르고 야단이다.
차츰 차츰 구름은 점점 더 짙어지고 범위 또한 넓어지면서 선수들의 비행에 속도가 더해진다.
스타트 시간이 까지는 약 5분이 남았다. 선수들은 점점 스타트 실린더(이륙장으로부터 약 9.8km 떨어진 대미산 - 대미산 5km 지점.)로 다가간다. 약속이라도 하듯 대형은 더욱 더 조밀해지고, 선수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기에 여념이 없다. 출발 직전, 선수들은 최고고도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고도가 높을수록 게임 전반에 대한 더 많은 정보(선수들의 움직임, 지형의 조망, 바람의 방향과 성질, 구름이 생기고 소멸하는 높이 등)와 훌륭한 시야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13시. 스타트! 탱탱했던 고무줄이 튕겨졌다.- 13시 직후에 5km 실린더를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면(13시 이전에 들어가면 실격) 이때부터 스타트가 되고, 다시 실린더 2km 지점까지 가면 G.P.S상의 바늘이 다음 포인트(포함산 962m)를 가리킨다.
출발 직후 선두그룹이 두 갈래로 나뉘었다. 지난 모든 게임에서 일등를 고수하고 있던 진글라이더팀(제조사인 진글라이더로부터 후원을 받는 선수들로 이루어진 팀)이 대미산 포인트를 왼쪽에 두고 오른쪽을 공략한다. 망설일 것 없이 기수를 왼쪽으로 돌려 대미산 포인트를 오른쪽에 두고 왼쪽, 포함산 쪽을 향해 선두로 치고 나갔다. 3단계까지 있는 엑셀러레이터에 힘을 가했다.
그런데 가속을 하면서 G.P.S.를 보니 비행속도가 50km를 넘지 않는다. 그럼 바람방향이 동풍에서 북서로 바뀐 것인가? 순간, 내가 루트를 잘못 선택한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위에서 보는 지형은, 설사 서 내지 북서풍으로 맞바람이 분다해도 동서로 길게 뻗은 대미산에서 포함산(6.5km 구간)간 산세는 써멀이 올라 올 거라는 확신을 주는 형세였다. 또한 생각보다 맞바람이 세지 않아서 더욱 확신을 갖게 했다. 위 두 산을 잇는 능성이에 도착하기 직전 약 1,000m 높이에서 써멀 히팅! 뒤따르던 십여 명의 선수들이 밑으로 들어와 써클링을 한다.
한데 어울어진 선수들의 형형색색 날개들의 써클링이 가을 산의 단풍보다 화려하다. 내심 쾌재를 부르며 고도를 약 1,580m까지 끌어 올려놓았다. 써클링을 하고 있는 사이 어느새 진글라이더팀들(5~6명)과 블랙이글팀(2~3명)이 추월하여 포함산을 공략한다.
선두와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써멀을 중간에서 잘라야 했다.
선두그룹과 적정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일진에 속해 있는 선수들은 10년 이상 또는 20년 이상 동안 우리나라 국가대표 자리를 고수하며 패러글라이딩에 관한 온갖 노하우를 습득하고 있으며, 비행 내내 대회 주파수와 함께 따로 자기들만의 라디오 주파수를 공유하며 시시각각 전해지는 따끈따끈한 정보들을 서로 주고받을 뿐만 아니라, 다가올 정보들을 예측해 가며 팀비행을 하기 때문에 한번 놓치면 게임 내내 이들을 따라 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선두그룹과 일정거리를 유지하면 비록 무전기에서 전해지는 소리는 공유할 수는 없지만 시각으로 정보를 공유할 수 있어 좋은 결과를 얻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선두그룹이 포함산 오른쪽에서 써멀 히팅! 잽싸게 그 밑으로 들어가 같이 써클링을 시작했다. 포함산(962m)에서 월악산(1,094m)으로 이어지는 구간(9.4km)의 산세가 비록 처음이지만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써멀을 감으면서 자꾸 월악산 쪽으로 눈이 간다. 고도 1,400m에서 다른 선수들보다 먼저 길을 잡았다. 왠지 자신이 있었다.
다른 선수들이 1,500m 이상의 고도를 잡고 있다가 먼저 출발하는 날개를 보고 잽싸게 뒤따라온다. 눈치가 18단인 선수들이다. 이들은 늘 날개 한 두 대를 앞서게 하고 그 날개가 열을 잡으면 잽싸게 위로 들어와 같이 열을 잡고, 열을 잡지 못하면 서로들 다른 방향을 잡아 써멀 히팅 확률을 높인다.
풋바를 밟은 발 끝에 힘이 실린다.
월악산 초입에서 써멀이 만들어지리라 싶은 형세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예상 써멀포인트에서 열이 튀었다. 1,080m에서 써멀링이 시작되었다. 생각과는 다르게 강하고 지속성을 갖는 열이 없다. 그런데 어느새 약 10여 대의 날개가 300m 높이로 도착해 위에서 열을 감는다. 위에 있는 선수들이 고도 약 1,600m에서 월악산에서 충주호 쪽으로 약 1.5km 떨어진 턴포인를 찍고 돌아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모든 감각이 바리오의 상승음을 쫓는 귀와 조종줄을 잡은 손끝에 집중된다. 괜히 마음이 조급해진다. 분명 강하고 지속성이 있는 열기류가 있을 법한데 1,300m 이상의 고도를 올리지 못하고 아등바등, 무엇이 문제일까.
웅장한 월악산 영봉 바위 위에 울긋불긋 수많은 등산객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 여유를 갖자. 위에서 내려다 본 월악산은 바위들의 절벽으로 이루어진 험하고 웅장한 산인 듯하다. 등산객들에게 다가가 큰소리로 야호를 외치며 양손을 흔들었다. 우렁찬 반응과 응원에 몇 번의 근접비행으로 다시 인사를 건네고 나서야 온 몸에 힘이 빠진다.
일단 턴포인트를 찍고 들어갈 때와는 반대쪽인 영봉 뒷쪽으로 나오며 강한 열을 잡을 수 있었다. 고도 1,550m 획득하고 월악산에서 백화산 구간(22.6km) 쪽을 보니 선두와의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풋바에 가속을 더했다. 그런데 속도가 시속 70km에 가깝다.
문경이란 곳은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비행하는 장소마다 바람방향이 다른 것에 항상 놀라곤 한다. 이륙할 당시 단산은 분명 동풍이었는데, 대미산은 서나 서북서풍인 듯했고, 월악산은 북서풍인 듯하다.
헬맷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요란하다. 선두그룹이 열사냥을 시작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다시 거리가 좁혀졌다. 포함산 오른 쪽에서 선두그룹의 써멀링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포함산 못미처 만수봉 바로 앞에서 눈에 익은 날개의 상승이 눈에 띤다. 선두그룹보다 상승이 훤씬 빠르다. 생각할 것 없이 그 밑으로 파고들었다.
순식간에 또 고도 1,540m를 올려 먼저 주흘산(1,106m)에 도착했다.
서너 번 비행하면서 보았지만, 이번에는 그야말로 주흘산을 제대로 감상했다. 주흘산 영봉에서 주봉을 잇는, 북쪽과 동쪽으로는 깎아지른 절벽(위에서 보아도 더럭 겁이 난다), 그리고 서쪽과 남쪽으로는 조령산(1,025m)과의 계곡을 이루며 울창한 숲이 대비되는 산세가 아주 빼어나고 멋진 산이다.
영봉 위에서 고도 1,630m를 획득했다. 진글라이더팀들의 새빨간 날개와 블랙이글팀들의 연두색와 노란색 캐노피가 원을 그리며 상승 중이다.
진초록 풀이 가득한 어항 속에서 금붕어들의 유영이 황홀하다.
시선은 다시 백화산을 보고 어느 부분에서 열이 튈지 가늠해 본다. 바람이 서풍이고, 타스크포인트가 백화산 정상이 아닌, 정상에서 동쪽으로 뻗은 능성이의 낮은 부분이어서 열이 올라오더라도 약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뿔사! 실수였다. 주흘산에서 고도를 1,800m 이상을 잡고 백화산포인트를 그냥 스쳐 바로 오정산 고모산성으로 들어갔어야 했다.
비행은 직관과 그리고 가능성에 염두를 두고 - 가능성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 즉 확실한 써멀포인트, 써멀의 강약, 바람방향, 지형 등 - 그 가능성이 80% 이상의 요건이 충족되었을 때 출발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고도가 충분치 못하고 선두에 있다면 궂이 빨리 출발할 이유가 없다. 먼저 한 두 대의 날개를 보내고 난 다음 앞서 간 날개가 써멀을 히트하는 것을 보고, 뒤에서 충분히 고도를 올린 다음 앞장 선 날개가 써멀링하는 실린더 위로 들어가면 훨씬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설픈 자신감과 직관만으로 백화산 동쪽에 있는 봉우리에 도착을 하니 아니나 다를까 열이 미약하다. 3분 이상을 열을 찾아 헤매보지만 강한 열은 없다. 어느새 5대의 날개들이 다가와 위와 아래 여기저기서 열 사냥을 시작한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또 1,120m에서 백화산을 벗어나 오정산 고모산성(4.7km 구간)으로 섣부르게 먼저 출발했다.
경력이 짧아서인가. 돌이켜보면 이런 말이 생각나기도 한다. ‘빨리가려면 혼자가고 멀리가려면 함께 가라’는 격언에도 있듯이 비록 경쟁하는 사이이기는 하지만 서로 도움을 주고받아야 하는 게 상식인데 너무 결과에 연연해 하다보니 이런 상황에 이르렀지 않나 약간의 후회가 밀려온다.
고모산성에 도착하니 기대와는 다르게 열이 없다. 오후 3시가 되니 벌써 써멀이 약해 바리오의 상승음이 희미하다. 차고 있던 발라스트(강한 상승열기류에 의해 생길지도 모르는 날개접힘을 방지하고, 속도를 더하기 위해 차는 물백)에서 최소한 4kg 정도를 뺐어야했다. 맥시멈이 115kg인 캐노피에 114kg은, 상승열기류가 강한 비행초기에는 써멀테크닉만 확실하다면 최고의 조건이지만, 비행 후반에는 상승기류가 약해지기 때문에 비행도중 그 무게를 줄여주어야 상승을 배가할 수 있었다.
뒤따르던 날개들이 추월하여 상승음만을 남기고 골 방향을 향한다. 약 5분 이상 오정산 여기저기를 헤매다 고도 1,300m를 간신히 획득하고서야 수정산(580m, 오정산 수정산 10.8km 구간)으로 방향을 잡았다. 단산(956m) 초입에서 고도 1,220m 획득, 수정산 포인트를 찍고 착륙장 골인!
먼저 도착한 선수들이 맥주캔을 들고 와 축하의 악수를 건네주었다.
7위!
짜릿하다! 올 해의 목표인 한 타스크에서 Top 10에 진입!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아쉬움이 없지 않다. 조금만 더 냉철한 판단과 상황에 집중했더라면 좋았을 걸... 선두와 차이는 약 8분. 2시간 17분의 레이스는 약간 느린 감이 없진 않다.
아쉬움을 접고, 더 나은 내년을 기약하며, 올 해의 경험은 내년 비행에 탄탄한 기초가 될 것을 확신한다.
첫댓글 중계하듯 레이스의 상황이 다 담겼네요.
역시 대단하네~
차근차근 읽어내려가는데 마치 내가 비행을 하고있는듯한 착각이 들 정도네..
이런게 진정한 비행일텐데 나는 아마 경험해보지 못할것같구먼....
글을 읽는데 마치 직접 비행하는듯한 착각을 하면서 머리끝이 찡해지는 느낌이 드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천하의 하종형님도 이륙전엔 긴장하시는군요.^^ 멋진 비행 잘 봤습니다.
비행일지도 역쉬 멋지십니다.~~
리그전 칼럼니스트네요. 연재 부탁드립니다 ~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은, 우리 회사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법원사람들'의 '테마가 있는 글'에
기고을 해야한다는 과제를 받고 어떻게 쓸까?하다
이렇게 써보았는데,
비행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공감을 할까 의문이 들고,
그분들도 관심을 가져줄까 걱정이 좀 됩니다 ㅠ.ㅜ
하지만, 써놓고보니 뿌듯하기도 하고 옛날 비행일지도 떠올려지고 ㅋㅋㅋ
생생한 비행일지 잘읽고 퍼갑니다~ 멋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