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쪼아 먹은 과일이 더 맛있는 이유는? - ♣15.11.04
고등학생 때부터 “이별의 노래”(박목월 작사, 김성태 작곡)를 즐겨 불렀다.
(1).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 바람이 서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후렴). 아~ 아~ 아~ 아 나도 가고 너도 가야지~
(2).한 낮이 기울며는 밤이 오듯이 /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3).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우리라.
그냥 좋은 노래로 불렀는데. 그 가사(詩)가 쓰여진 아픈 사연을 아니 더 감동
되었다. 시인 박목월이 중년이었을 때, 제자 여대생 H양과 사랑에 빠져 모든
것을 버리고, 종적을 감췄다. 그들은 제주도에 있었다. 박목월의 부인이 알고
찾아가, 싸우는 대신 도리어 용돈과 겨울옷을 주고 귀경했다. 이에 감동한 두
사람이 헤어지기로 하고 박목월님이 H양에게 이별의 선물로 이 詩 를 주었다.
모든 이의 심금을 울리는 시(가사)는 이별의 아픔 속에 탄생했음을 알게 된다.
이별은 아프다. 아픔 속에서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이 발휘되어진다. 박목월의
부인이 넓은 마음이었다고 감동하지만, 한편 나는 이런 생각도 했다. 결혼 할
때와 지금, 그동안 박목월은 유명한 시인이 되어 간격이 커져서, 이런 불륜의
일로 박목월의 품위가 낮아져서, 눈높이가 같아지기를 바라는 애틋한 마음~?
신분 차이 때문에 애절한 사랑이 이뤄지지 못하고, 신분이 변화 되면서 굳게
맹세한 사랑이 깨어지는 경우도 있다. *사랑도 서로 비슷해야 튼튼하게 된다.
아픔(고난)은 좋지 않지만, 결국에는 좋은 것을 만든다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
박목월은 정든 여대생 H양과 이별의 아픔으로 인해 불후(不朽)의 명시(名詩),
이별의 노래를 남겼다. 그 시(詩) 하나로 인해, 박목월은 더 유명하게 되었다.
가을 들판에는 먹음직한 과일들이 풍성하다. 흔히 말하기를 “새가 쪼아 먹은
과일이 더 맛있다"고 한다. 새가 맛있는 과일을 골라서 쪼아 먹었다기보다는
새에게 쪼아 먹힌 과일이 그 아픔을 이기기 위해 몸부림치는 중에 더 맛있게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고난을 삶의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로 삼아야 한다.
좋은 것은 좋아서 좋고, 안 좋은 것은 디딤돌이 되어 좋으니, 늘 좋아야 한다.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시편.37:24)
◆.사진- ①.②.③.경주시 불국로에 있는 “동리 목월 문학관”~.(2015.10.24)
소설가 김동리, 시인 박목월은 계성학교 내 선배이다.
④.아사달 아사녀 사랑탑~. ⑤.⑥.신라를 빛낸 인물관~
⑦.⑧.경주 최부잣집 고택~. ⑨.조동화 詩人(목사님)과 함께
⑩.경주 금장대(동국대 옆)~. ⑪.⑫.시인 박목월님의 생가~.
첫댓글 이 칼럼(*글 5단락, 사진 12장)은, "박태원목사, 저 자신"의 수양(수련)을 위해 올려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특히 댓글까지 주신 분은 그것으로 방문 인사와 흔적이 충분하오니,
한줄메모 글은 "사양"합니다. --이곳 카페에 "칼럼 댓글"은 "햇 빛"이고, "한줄 메모글"은 "달 빛"입니다.
나하나 꽃피어(★9번째 사진- 조동화 作) //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 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 //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
지겠느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 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박태원목사 "개인 카페"로 스크랩 해서 옮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