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라슨의 오프 오프 브로드웨이 뮤지컬 [렌트]는 10년전인 1996년 초연되어 퓰리처상 드마마 부문, 뉴욕 비평가협회상, 토니상 4개 부문 등 수많은 상을 휩쓸었고 지금까지 15개국 언어로 25개국을 돌며 4천회 이상 공연되었다. 나도 6년전 예술의 전당에서 국내 초연될 때 [렌트]를 처음 보았고 신문에 공연평을 쓴 바 있다.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지 10년 만에 영화로 리메이크 된 [렌트]는 무대 위에서 공연되었을 때의 기본 정신을 잃지 않고 있지만 제한딘 공간인 무대를 벗어나 스크린으로 옮겨진 매체의 변동만큼 달라진 부분도 있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1,2편을 만든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이 연출한 뮤지컬 영화 [렌트]는 브로드웨이 힛트 뮤지컬의 영화화라는 어려운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한정된 공간, 그러나 집중력과 생동감은 더욱 높아지는 무대 공연의 특성을 스크린에 어떻게 옮겨 놓을 것인가, 감독의 고민은 거기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 [렌트]는 실험이나 모험 대신 성공적인 브로드웨이 무대를 스크린으로 충실하게 옮기는 데 주력한다. 배우들도 영화를 위해 새롭게 캐스팅 하지 않고 뮤지컬 [렌트]의 오리지널 멤버들을 대부분 그대로 출연시켰다.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서 새롭게 탈바꿈시킨 조나단 라슨의 [렌트]는 뉴욕의 젊은 예술가들이 많이 사는 이스트 빌리지를 배경으로 예술가들의 열정과 꿈, 희망과 절망을 그린 이야기이다. 이런 소재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렌트]에는 현재 뉴욕 젊은이들이 갖고 있는 삶의 고뇌와 무게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 여기서 [현재]라는 단어의 유효성은 1996년 현재를 말한다. 10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보면 조금 낡은 구석도 보인다.
마약과 에이즈, 동성애, 가난,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인정받지 못한 젊은 예술가들의 열정과 방황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는 [렌트]는 동시대 젊은이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IT 산업을 중심으로 정보화 사회가 진행되고 레이저 아트나 신개념 예술감각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요즘 시점에서 보면, 시대의 변화를 따라오지 못하는 뒤떨어진 감각도 보인다. 언제까지나 동성애, 마약, 에이즈를 이야기해야만 젊은 세대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인가?
여전히 그런 것들은 삶의 중요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러나 10년 전과는 확실히 모든 것이 변했다. 아쉽게도 영화 [렌트]에는 지난 십 년 세월의 변화가 담아져 있지는 않다. 그렇다고 빠른 가속도를 갖고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져서 모든 것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뮤지컬 [렌트]의 주재가 당대의 문제에 치우쳐 있을수록 그 유효성은 짧을 수 있다는 뜻이다.
[렌트]의 주인공들은 이스트 빌리지의 낡은 빌딩에 세를 내어 살고 있는 7명의 예술가들이다. 영화감독 지망생인 마크(안소니 랩 분)는 록 아티스트인 모린을 사랑한다. 그러나 모린(이디나 멘젤 분)은 흑인 여자 변호사인 조앤(트레이시 톰스 분)과 사랑에 빠진다. 8미리 무비 카메라로 친구들의 열정적 삶을 다큐멘타리로 찍고 있는 마크는, 재능있는 작곡가이자 가수인 로저(아담 파스칼 분)라는 룸메이트와 함께 산다. 로저에게는 아래층에 세들어 사는 클럽의 스트립 댄서 미미(로자리오 도슨 분)라는 여자 친구가 있지만 미미는 마약중독자다.
또 남자 동성애 커플인 콜린스와 엔젤도 있다. 콜린스는 철학교수다. 그는 노상강도를 만나 곤경에 처해 있을 때 거리의 악사인 엔젤을 만나 도움을 받는다. 그 인연으로 콜린스는 엔젤과 특별한 관계를 갖기 시작한다. 엔젤은 남자지만, 여자로 보일만큼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인 거리의 악사다. 그는 AIDS 환자로서 점점 죽음에 가까워져 간다.
여자 동성애 커플인 모린과 조앤 그리고 남자 동성에 커플인 콜린스와 엔젤이 [렌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뉴욕 이스트 빌리지의 젊은 예술가들 사이에서 만연되고 있는 동성애 문제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모린과 조앤의 약혼식 장면은 영화의 백미이기도 하는 데, 양가 부모와 친구들이 참석한 가운데 화려한 홀에서 거행되는 공공 변호사 흑인 조앤과 록 아티스트인 백인 모린의 약혼식은 두 사람의 말다툼으로 엉망이 되어 끝난다. 모린은 구속받지 않고 늘 자유롭고 싶어 하고, 조앤은 그런 모린 때문에 괴로워 한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결별을 선언하지만 그러나 결국 서로를 잊지 못하고 결혼에 성공한다.
그들은 모두 가난하다. 집세가 몇달치 밀려 있다. 건물은 철거당할 위기에 있다. 모린은 철거 반대 시위를 공연으로 만들어서 진행하려고 한다. 집주인 베니는 모린의 공연을 막아주면 집세를 면제해 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모린을 사랑하는 마크, 그리고 마크의 룸메이트인 로저는 베니의 제안을 거절한다. 모린은 변호사인 조앤의 도움을 받아 성공적으로 공연을 한다. 공연이 끝난 후 파티를 할 때 베니가 나타나서, 자신이 미미와 연인 관계였다고 폭로하며 파티를 엉망으로 만든다.
[렌트]의 힛트곡인 [I Should Tell You] 등을 오리지널 뮤지컬 멤버들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는 것도 황홀하다. 그러나 가령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영화로 옮겨 성공한 [캬바레]처럼 영화만의 독창적 연출은 별로 없다.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은 무대의 영화화에 모험을 하지 않았다. 감동적인 브로드웨이 공연을 충실하게 스크린으로 옮기는데 주목할 뿐, 영상만의 독특한 매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연출적 장치를 계산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카메라는 무대 공간을 벗어나 자유롭게 움직이고, 집단 군무도 등장하지만, 이미 약발이 다해가는 [렌트]의 현실성을 대체할 수 있는 그 무엇에 대한 고민은 없다.
영화 속에서 눈에 번짝 띄는 장면 중의 하나는 마크와 조앤이 [탱고 모린]을 부를 때이다. 모린을 사이에 두고 전 애인인 마크와 현 애인인 조앤이 함께 모린에 대해서 노래를 하는 이 장면은 탱고 음악으로 만들어져 있고, 집단 군무의 탱고씬도 등장한다. 아메리칸 힙합 스타일과 뒤섞인 탱고다. 감각적인 정통 아르헨티나 탱고에 비해서 아메리칸 탱고는 힙합춤의 굴절과 꺾기가 가미된 춤 양식을 갖고 있다.
[렌트]의 작곡가인 조나단 라슨은 [렌트]가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라가기 2주전, 대동맥혈전으로 갑작스럽게 쓰러졌다. 그리고 불과 36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렌트]에는 꿈과 희망을 갖고 현재의 누추한 삶을 이겨내는 가난한 예술가들의 열정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