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팔공지맥 제 2구간(장곡산휴양림-갑령재) 2012년 12월 15일, 1,565회 산행
코스 :장곡산휴양림-690봉-임도-785봉-화산-감자골도로-갑령재(하산) 14,7km/6시간40분,
도상거리에 비해 많은 시간이 걸린것은 땅도 질었지만 짙은 안개로 인한 독도 미숙도 요인중 하나이고 산길이 너무 미끄럽고 시작부터 경사가 심해 초반 체력을 過用한 원인도 있는것 같다.
前구간 산행을 마친 장곡산 휴양림 입구에 도착과 함께 산행은 시작된다.
어제 비가내려 눈은 대부분 다 녹았으나 짙은 안개로 인한 시계가 좋지못했다.
아래에서는 맑고 기온도 높아 산행하기 아주 좋았다.
임도끝에서 왼쪽 급경사로 어프로치 했지만 미끄러워 정말 힘 들었다.
마루금에 올라서니 비로소 편안한 산길이라 아주 상쾌한 마음으로 힘차게 발돋움한다.
준희 선배님의 고마운 흔적.
날씨는 맑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안개는 짙어진다.
살구재에 선 김성미씨와 하문자씨.
2007년(황금돼지해) 1월 8일 이곳을 지났는데 기억이라곤 유독 이 나무만 나는것 같다.
아무 돌아보아도 살구나무는 보이질 않네........,
살구재를 지나 조금 오르면 임도를 만나는데 임도따라 우측으로 가도 되지만 지맥은 직진 올라야 한다.
삼각점을 보고 우측으로 직진한다.
임도를 만남과 동시 육군 제 3사관학교 훈련장으로 들어가게된다.
정문까지 계속 임도를 따른다.
훈련장 정문이다.
정문이 사찰의 일주문같기도 하네......
대구 소방의회에서 세운 조림기념비.
소하 2년 4월 13일 세웠고 그 면적은 169정보에 달한다고 적혀있다.
사진 안찍을수 없지요.
785.1봉 삼각점,
2007년 1월 종주때 같이 작업한것입니다.
오늘의 최고봉 화산입니다.
화산에서 내려오다 채소밭을 만나면서 길을 좀 찾았지요.
결국 도로를 따라 마을회관앞을 지나기도 했답니다.
짙은 안개로 인해 뭐가 보여야 길을 찾지요.(이럴때 GPS가 절대 필요하지요)
폐교된 화산분교입니다.
이 앞으로 내려와야 하는데 돌아온 셈이죠.
예전 지났던 길의 흔적은 하나도 모르겠고 이렇게 밭으로 개간되어 있네요,
722,9봉에 있는 산불감시초소,
표지판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것이 고맙기도 합니다.
글자를 알수없는 삼각점.
바로 아래에 있는 통신탑.
450,8봉에서 바라본 28번국도,
28국도,(고도가 낮아지니 시계가 트인다)
460,8봉 가는길의 바위 모습,
갑령재 도로모습,
2007년 이도로가 한창 공사중 이었는데....
갑령육교
도속도로 수준인 국도,
도로 이정표.
산행을 마친후 저곳에서 식사를 함,
휴게소, 주유소, 모두 문 닫음.
(산행후기)
몸이 무리한 운동과 욕심을 견디다 못해 자꾸만 꾀를 부리려 한다.
새 신발 탓인지는 몰라도 왼쪽 발목이 시큰거려 경사 길을 내려올 때는 통증에 중심잡기가 좀 힘들기도 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눈바람에 상당한 추위를 느끼기도 하였는데 어제 종일 내린 비로 눈도 대부분 다 녹고 날씨도 따뜻하여 오늘은 봄 산행 같은 느낌의 산길이기도 했다.
대신 얼었던 땅이 녹아 경사 길은 미끄럽고 흙이 질퍽거려 종주에 많은 불편을 느끼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짙은 안개 때문에 주변의 정경(情景)을 관찰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서운하기도 하였지만 비 안 맞고 종주를 한다는 것에 다행으로 생각하기도 했었다.
성공을 위해서는 학벌이나 배경 인맥 등을 중요한 요인으로 생각 하겠지만 긴 인생에 있어 어떤 고난과 어려운 시련이 닥쳐도 이를 이겨내는 힘이 더 중요하듯 우리 산꾼들에겐 해 내고야 말겠다는 끈질긴 인내심과 건강한 정신력이 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나 역시 산악랜드와 인연을 맺은 지가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1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동안 여러 선배님과 김부장 내외분, 특히 두 분의 산행대장님은 우리 대원을 위해 정말 많은 애 써왔는데 오늘로서 그 직(職)을 그만 두겠다니 많이도 서운 했던 게 사실이다.
물론 내가 없어도 지구는 계속해서 돌아갈 것이고 세월은 흐르고 흘러 모든 것이 스스로 해결될 것이며 아침이 되면 절로 해는 솟아오를 것이다.
허지만 박대장님과 백대장님에게 그동안 수고했다는 한마디로는 도저히 보상할 수 없는 빚 같은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에 갑자가 찬바람이 가슴을 후려치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고 감사했습니다.
마음의 짐이 있다면 부담 없이 다 내려놓으시고 가벼운 마음으로 자주 만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다.
어차피 우리는 세월에 다 속아 산다는 속담처럼 하루가 다르게 달라져 가는 세월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충분히 느끼는게 사실이니까........,,
* (화산)은
경북 군위군 고로면과 영천시 신녕면의 경계에 자리한 해발 828.1m의 산이다.
북쪽 자락인 화북리에 삼국유사의 著者인 일연이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머문 인각사가 자리하고 있다.
보각국사 일연은 (1206 ~ 1289) 고려 희종 2년 당시 경주의 속현이었던 장산군(지금의 경산)에서 아버지 김언필과 어머니 이 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이름은 見明이었고 9살에 무량사에서 공부를 시작하여 14살엔 설악산 진전사로 出家하여 수족계를 받았다.
1227년 僧科의 최고 시험인 選佛場에서 장원 급제에 해당하는 상상과(上上科)에 합격했다.
가는 실파뿌리 같은 희미한 흔적의 산길이 제법 나를 괴롭힌 하루였지만 마친 후의 후련함 은 오랫동안 미뤄왔던 머리를 깨끗이 자른 그런 기분이었다.
애써 지은 채소농사를 제대로 수확 하지 않고 버려둔 것이 못내 아까워 보이기도 했지만 지난 종주 때보다 더 많은 밭이 묵어 있는 것을 보니 또한 허전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숲은 옛날부터 心身의 安息處로 여겨 피로에 지친 환자들의 요양소로 이용해 왔으며 세계 각국에서도 각종 질병의 치료 센터로 활용 하고 있다고 한다.
숲은 단순한 산림욕의 효과에 그치지 않고 건강 치유를 목적으로 한 의학적인 숲은 생명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산에서 산 짐승이라도 만나면 그리운 친구를 만난 기분이고 괜히 기분이 좋아지며 편안해지는 자연의 효과를 바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어렵게 폐교된 학교 앞에 도착 지난날의 기억을 되살린다.
많이 돌아왔음을 직감적으로 느끼며 안개도 안개지만 많이도 달라진 지형에 어쩔 수 없는 생고생 이었다.
한 20여분 죽을힘을 다해 새로 개간된 밭길로 오르니 산불초소와 통신탑이 있는 722,9봉을 지나가니 냉장고 및 폐품들을 버려놓은 임도가 나와서 참으로 황당했다.
우리는 나무를 보면서도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겠거니와 숲만 보고 文化를 보지 못해서도 안 될 것이다. 숲속의 작은 새 소리가 음악 예술의 始初라고 한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씨앗이 자라 거대한 巨木이 되고 그 나무는 인간의 感興을 자아내는 훌륭한 文化的. 藝術的. 自然美를 일깨워 줄 것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숲을 가꾸고 아끼는 문화시민이 되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있을 때 잘 하란 노랫말처럼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면서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건강하고 밝은 내일을 기약하는 오늘산행에 감사하며 또 다음 산행을 기약한다.
아름다운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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