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그리워했습니다. - ♣16.03.02
3월이면 각 학교에는 신입생 입학식이 있습니다. 당시 내가 자란 시골에서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았기에 중학교
입학이 기뻤고, 대학은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겨우 고등학교를 간다
해도, 공고나 상고에 가서 취직을 잘 해야 했습니다.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은
비정상으로 여겼습니다. 나는 폐쇄된 산골마을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당시 우리 마을에 대학 졸업자(재학생)는 아무도 없었으니, 대학 진학은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얼떨결에 인문계인 계성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1학년 실력고사에서는 전교 4등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계성학교는 서울대
특별반을 만들어 집중교육해서 매년 40~50명이 서울대에 진학하는 명문이었
습니다. 그래서 나도 들떠서 자신감을 갖고 서울대에 대한 기대를 가졌습니다.
당시 서울은 구경도 못했고, 서울 거지가 시골 부자보다 더 좋을 만큼 서울이
부러웠으니, 서울이란 대학이 몹시 선망 되었습니다. 더욱이 특설반에 들어온
선생님들은 수입시작 전에, 반드시 서울대 자랑을 했습니다. 특설반 학생들이
다른 대학 인기학과에 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나는
서울대에 완전 세뇌가 되었습니다. 물론 서울대가 좋지만, 그 이상이었습니다.
특설반에서는 고2때까지 고3 과정을 전부 마치고, 3학년 때는 서울대학 입시
모의문제만 풀었습니다. 그 문제집들 구입이 부담되었고 문제집 구입을 못해
성적이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서울대가 좋아서 비인기 사범대에 응시 했지만
낙방을 했습니다. 되는 것이 자랑스럽지, 사실 떨어지는 건 어떤 문(사법고시
~)이라도 쉽습니다. 그래도 산골 놈이 서울대 응시한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남들은 비웃을 일이지만, 내 처지에서는 서울대 사범대학이 늘 그리웠습니다.
^^한 사람이 초등학생 때 짝사랑한 여학생을 마음에 품고 늘 그리워했습니다.
그런데 늘그막에 초등학교 동창회 한다고 연락이 와 참석했는데, 그 여학생도
참석했습니다. 반백년의 세월이 흐른 그녀는 그녀가 아니었습니다. 평생 같이
잠자리를 한 자기 아내보다 못했고 형수님(?)이었습니다. 몹시 허탈했습니다.
*사실은 서울대 사범대, 짝사랑한 여학생~, 모두, 일장춘몽(一場春夢)입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디모데전서.4:15).
◆.사진- ①.계성고 실력고사에서 1학년 전교 4등 상장을 받았다.(1968년)
②.③- 계성학교 식당에서 숙식을 했고, 서울대 특설반에 있었다.
⑤- 딸(서울 숙명여대)이 대리만족을 해 줬다.
⑥.두 손자와 같이, 대구 계성중.고등학교를 방문했다.(2014년)
⑦.계성고 문예공모~, 1,2,3학년 전체 2등 상을 받았다.(1970년)
⑧.공수교육을 수료함으로 수도권(인천) 사람이 되었다.(1976년)
첫댓글 목사칼럼을 매주 수요일 올리다가, 지난해부터 "격주 수요일"에 올렸습니다. 금년 3월부터는 ★매월 첫 수요일에
올리겠습니다. 설교 중에 했던 예화를 중심으로 칼럼을 쓰니 힘들지는 않습니다만, 칼럼의 양이 많은 것같습니다.
목사칼럼의 목적이 저 개인 수양인데, 지금껏 올려놓은 칼럼들을 가끔 읽어도 수양(??)이 됩니다. 양해 바랍니다.
★.박태원목사 "개인 카페"로 스크랩 해서 옮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