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앞날 되시기를][꿈은 이루어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백두산 천지
[ 영원히 살 것처럼 계획하고, 하루 살다 죽을 것처럼 실천하라.]
[ 이상 없는 현실은 무의미하고 현실 없는 이상은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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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이던 국가던 자신의 잘못은 솔직히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그 자신과 세상을 위해서 좋은 일인 것 같습니다.
일본 왕족 중 한사람이 임진왜란 때 그의 조상이 저지른 짓에 대해서
사죄를 했다는 기사를 소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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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왕족, 교토 ‘귀무덤’ 첫 참배 “임진왜란 만행 사죄드립니다”
한국 시민단체 주최 위령제 참석
나시모토 씨 “과오 잊지 않을 것”
[동아일보 2010-08-12]
민병선 기자
“임진왜란 때 저희 조상이 저지른 만행을 대신 사죄합니다.”
11일 오전 일본 교토(京都) 미미즈카(耳塚·귀무덤)에서는 한국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이사장 한양원)가 주최한 ‘이총 위령제’가 열렸다.
2007년부터 해마다 광복절 즈음에 이곳에서 열린 행사는 올해 의미가 각별하다.
일본 왕족으로는 처음으로 나시모토 다카오(梨本隆夫) 씨가 헌작(獻爵·잔을 올림)·헌화하고
조상의 잘못을 사과했기 때문이다.
일본 왕족 나시모토 다카오 씨가 11일 오전 교토에서 열린 ‘이총 위령제’에 참석해
무릎을 꿇고 제단에 잔을 올리려 하고 있다. 교토=민병선 기자
미미즈카는 임진왜란 때 왜군이 조선인 12만여 명의 귀와 코를 묻은 무덤이다.
왜군은 전리품으로 무거운 머리 대신 귀와 코를 베어 소금에 절인 뒤 일본으로 가져왔다.
무덤 100m 앞에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신으로 모신 도요쿠니(豊國) 신사가 있다.
무덤은 1969년 일본 국가 사적으로 지정됐다.
나시모토 씨는 왕가(王家)의 11개 가문 중 하나인 나시모토미야(梨本官)의 6대 종손.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1901∼1989)가 그의 고모할머니이다.
그가 대표를 맡고 있는 나시모토미야기념재단은 한일강제병합 시기에 신사에 합장된 조선인의 위패와 유골을
한국으로 송환하는 사업을 전개하는 등 양국의 관계 개선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일본 교토에 있는 귀무덤.
분향과 헌작에 이어 염경애 명창이 판소리로 추모시를 낭독했다.
“400년 동안 타국 땅에 묻힌 이 원통한 심정을 어찌 다 말로 하리오….”
우리 가락과 어우러진 애달픈 시가 울려 퍼지자 행사장은 일순간 숙연해졌고 사람들은 눈가를 훔쳤다.
청어람우리춤연구회 단원들은 살풀이 군무로 원혼을 달랬다.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 속에 2시간 넘게 진행된 행사에는 교토, 오사카(大阪)민단 관계자 등 재일동포 100여 명도 참석했다.
왕청일 교토민단장은 “세월이 지날수록 일본인과 동포들도 미미즈카의 존재를 잊고 있다”며
“일본이 침략의 과거를 반성할 때만 동반자로서의 새로운 한일 관계가 정립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 이사장은 “어제 일본 총리가 지난 역사를 사죄했다는 소식을 접했는데 오늘도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며
“일본에서는 차마 참석하기 곤란한 행사에 함께한 나시모토 씨의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고 말했다.
한 이사장은 일본 정부에 이총의 한국 이장(移葬)을 협조해 달라고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뒤 나시모토 씨에게 성명서 전달을 부탁했다.
나시모토 씨는 “서울 남산의 단군 사당을 철거하고 신사를 세운 것 등 우리 조상이 저지른 많은 과오를 알고 있다”며
“한국인의 눈물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교토=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기사출처 - http://news.donga.com/3/all/20100812/304567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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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기사에서 일본 왕족인 나시모토 씨도 얘기한 것처럼
일제는 당시 서울 남산에 있던 단군 사당을 철거하고 일본신사를 세웠다.

제6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앞서 복원된 광화문의 현판제막식이 열리고 있다.
조선(朝鮮) 태조(太祖)가 한양에 도읍을 정한 뒤
경복궁 북쪽의 북악산과 남쪽의 남산에 국사당(國師堂, 國祀堂)을 짓고
단군임금과 여러 호국 신(神)들을 모셨는데
일제가 1925년에 이 국사당을 인왕산으로 옮겨버리고
그 자리에 일본신사를 세웠다.
위 사진의 왼쪽에 보면 지금은 헐린 조선총독부 건물이 보이는데
이 건물은 일제가 남산 국사당 자리에 있던 일본신사를 정면으로 바라보게 지어졌다.
이는 경복궁의 중심축과는 조금 어긋나 있다.

그림출처 - 중앙일보
위 그림에서 빨간 선이 경복궁의 중심축.
1968년 복원되었던 (콘크리트로 만든) 광화문은 조선총독부 건물에 맞춰 짓다 보니
원래의 방향에서 조금 틀어져서 남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에 복원된 광화문은 원래대로 관악산을 바라보게 지어졌다.
이는 경복궁의 중심축과도 일치한다.
출처 - 중앙일보
원래 광화문을 포함한 경복궁의 중심축은 북악산과 관악산을 관통한다.
일제는 총독부 건물을 그들이 만든 조선신궁(일본신사)가 있는 남산을 향하게 했고
광화문은 경복궁 동쪽으로 옮겨버렸는데 6.25 때 누각이 불탔고
1968년 총독부 건물 앞에다가 누각을 콘크리트로 복원했지만
총독부 건물에 맞춰하다 보니 역시 남산을 향하게 만들어졌는데
이번에 원래대로 목조건물로 원래 자리에 원래 방향대로 복원된 것.
광복 65년만의 쾌거라 하겠고 민족정기를 위하여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
그림출처 - 중앙일보
첫댓글 이제야 우리나라의 기운이 바로 서려나 봅니다.
늦은 감은 있지만 반갑고 기쁩니다.
우리나라 만세
대한민국 만세
광복65년이 되어서도 일제잔재를 청산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이 정상적인 국가인지 한숨만 나옵니다.정말 더디게 갑니다.세월은 빠른데...
결국 할아버지가 후손이 사는 집안 보수에 목재를 대셨군요.
우리나라 만세 ! 대한민국 만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