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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건국정신과 현대사회
일본의 고대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는 일본의 개국시조인 진무(神武)가 하늘을 뜻하는 천조대신(天照大神)에게 칼과 거울과 옥(玉:방울)을 받았다고 전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를 삼종신기(三種神器)라고 높이는데, 진품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지금도 청동 거울은 이세(伊勢)신궁(神宮)에, 칼은 아쯔다(熱田)신궁에, 그리고 옥은 현재 일왕이 사는 이른바 어소(御所)에 안치해놓고 있다. 삼종신기 중 일본의 개국시조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핵심은 칼이다. 진무가 곧바로 동정(東征)에 나서는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전쟁을 통해 나라를 개국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하늘에서 강림한 천손(天孫)이 칼로써 세상을 지배한다는 개념의 물건들이다. 우리의 개국시조인 단군도 하늘의 혈통을 계승했다는 천손사상의 산물이지만 단군이 건국한 고조선은 그 이념 체계가 일본과 다르다. 단군의 사적이 실린 최초의 사서는 '삼국유사'인데, 그 「고조선」조에서 일연은 지금은 전하지 않는 '고기(古記)'를 인용해 단군의 사적(史蹟)을 전하고 있다.
“옛날에 환국(桓國)이 있었는데, 서자 환웅이 여러 번 세상을 뜻을 두어 인간세상을 구하기를 바랐다(『古記』云. 昔有桓國.庶子桓雄. 數意天下. 貪求人世)”라는 내용이다. 하늘을 뜻하는 상제(上帝)의 아들 환웅이 세상에 뜻을 둔 이유는 인간세상을 ‘지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하기 위해서’였다는 점이 먼저 다르다. 그 수단도 달랐다. 대부분의 다른 나라 개국시조들도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는 것을 명분으로 삼지만 막상 그 실현 방법은 무력을 통한 정벌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환웅은 이점에서도 확실히 달랐다. 그는 3천 여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 정상 신단수 아래 내려와 신시(神市)를 건설하는데, 이때 그가 거느리고 내려오는 관리들이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이다.
그래서 개천절 노래가 “비, 구름, 바람 거느리고…”라고 시작하는 것인데, 풍백의 백(伯)에 대해서는 『예기(禮記)』 「곡례(曲禮)편」에 “오관(五官)의 우두머리를 백이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우사, 운사의 사(師)에 대해서는 『서경(書經)』 「익직(益稷)편」에 “주에는 12사를 두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풍백은 수상(首相)을 뜻하고 우사, 운사는 그 지휘를 받는 하관(下官)의 명칭이다. 또한 농사(農師), 공사(工師), 어사(漁師), 노사(弩師)라는 말처럼 고대의 사(師)는 구체적인 담당 업무가 있는 전문 관리를 뜻했다. 바람과 비와 구름을 주관하는 풍백, 우사, 운사는 그 이름이 뜻하는 대로 농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벼슬아치들인데, 환웅은 이들과 함께 곡식(穀)과 생명(命)과 병(病)과 형벌(刑)과 선악(善惡) 등을 주관하는 관리들과 함께 세상에 나타난다. 이들이 ‘무릇 인간의 360여개 사를 주관’하는 전문 관리들이다.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하기 위해서’ 내려온 환웅은 그 뜻을 실현하는 방법도 평화적이어서 백성들의 농경 생활에 꼭 필요한 능력을 가진 전문가들과 함께 나라를 건국한 것이다. 3천여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환웅이 건설한 신시(神市)는 무력이 아니라 우수한 영농기술과 각종 전문 기능을 가진 선진조직에 현지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복속(服屬)하면서 건국된 것이다.
역사상의 모든 개국이 무력충돌에 의한 정복이거나 압도적 무력에 눌린 복속인데, 환웅의 경우는 피정복민의 자발적 복속에 의한 개국이었다. 실생활에 유리한 각종 전문지식을 가진 집단이기 때문이니 피정복민의 자리에서 복속이라기 보다는 자발적 수용(受容)에 가까운 것이었다.
환인과 환웅이 뜻을 실현하는 과정도 평화적이었다. 『고기』는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 태백산을 내려다보니, 널리 인간세계를 이롭게 하는 것(弘益人間)이 마땅한지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이타적(利他的) 목적이 환웅과 단군의 고조선 개국이념이었다. 홍익인간을 이념으로 개국한 나라는 고조선밖에 없었다.
개인적, 집단적, 국가적 이기주의와 증오가 횡행한 결과 개인과 국가와 인류 전체가 큰 위기에 빠져 있는 지금 공익적 이념과 그를 실현할 전문조직을 통한 평화적 건국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폭력을 통한 정복과 역시 폭력을 통한 저항으로 영일이 없는 인류에게 환웅과 단군의 이런 평화적 건국이념은 현재에 되살리고 확산시켜야 할 소중한 가치가 아닐 수 없다.
이덕일(역사평론가)
첫댓글 홍익인간을 실천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