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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임에 대해 그것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장소이든간에 적재적소란건 정말이지 매우 아름다운 일임에 틀림이 없다는걸 다시 한 번 실감한 날
코끝엔 적송의 향기 바람결에 스치듯 은은했었다.
순경태후릉을 거쳐 능내리 석실분을 보고 한참을 잣나무숲속에 누워 싱그러운 바람 불어오는 대지에 등을 맡겼다. 그리고 다시 몇발짝 걸음을 옮기노라니 이렇게 한그루 아카샤 나무 수난을 겪으면서도 참 씩씩하게 잘 크고 있었다. 힘을 내서 ㅡ 그 모습 장해 이렇게 담아보았다. 대단한 녀석!!!
며칠 비가 오셨다고 단비가 오셨다고 작은 계곡 물이 흐르는소리 그냥 지나가기 섭하여 잠시 발을 벗고 담갔지만 이런이런 누가 물을 데워놓았던지 시린 발끝은커녕 외려 따뜻한 느낌이면서도 서늘한 감촉에 물장구도 치다
아주 작은 생명들 거미며 나비, 여치. 커단 말벌집등등 친구하다 다시 걷다보니 어제 정기걷기 마지막이란 사실이 있어서였는지 해가지는 마을길도 초창기 옛길을 따라 걷게되는 인연 ㅡ 길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미지의 신세계란걸 새삼 또 다시 실감턴 날
아버지들이 손수 지은 옛 민가 ㅡ 툇마루가 그저 반갑기만 .. 그런데 어? 주인장은 어딘가로 출타중이시고 대문엔 자물쇠가 철커덕 잠겨있어 아무것도 물을 수 없어 툇마루앞 댓돌에 나들배낭 내려놓고 마니산을 바라만 보다가 올려다 본 서까래 ㅡ 반갑고 정답고.
현대의 양옥식 주택에선 맛볼 수 없는 서정 생활의 편리성으로 치자면 많이 뒤떨어진다 고도 하지만 왜 이런집을 보면 그냥 저절로 편안하고 고맙고 기쁜걸까?
거기 누군가 살고있고 현대식으로 바꾸지않고 보존 유지해가는 마음이 그저 스치듯 지나는 길손인 주제건만 괜시리 살갑고 감사한 맘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샘솟듯 솟아 올라온다. 마당가의 해바라기도 이쁘~ 다소 불편터라도 하늘을 가득 들여놓고 살아간 선조님들의 해학담긴 심미안에 혀를 내두르며~ 환호 !!!
툇마루는 손을 본 모습 ㅡ 그랬더래도 툇마루 문화를 유지하고 살아가는것만으로도 그저 끄덕끄덕 ㅡ 참 양지바르고 아늑타 !!!
맨드라미 꽃처럼 어여쁜 인석이 기장이란 곡식이라고... 이쁘이쁘~ !!!!!!!
지금도 수질이 좋아 사용하는 우물가ㅡ는 몇그루의 향나무들이 힘차고 부엌엔 위쪽 우물물을 그대로 흘러들게 해 사용하신다고.. 아유~ 부러워라.
저절로 높은곳에서 낮은대로 흘러들어 주야장창 흘러주니 ~ 저 부석사라는 절엘 가니 부엌에서 바께스로 물을 푸곤하던데... 아마 여자들은 살림을 하든 안하든 주방으로 저절로 흘러드는 물이 최고의 수질까지 자랑하면 모두들 좋아라 할게 분명한데 이 댁이 그렇다고... 물좋고 정자좋고 부자기도 한 삼박자가 척~허니 들어맞은 곳 보통은 두가지를 자랑한다는데 ~
돌절구에 잔디가 올라가 화초로 자라고 양쪽엔 해운정 초석들이 기립해 있는 잔디밭이 바로 옛 해운정터다. 1958년 이곳으로 와 지금까지 살고 계신 주인장께선 이것저것 자상하게 말씀 들려주시는데 그래도 앞마을 신대우선생님의 공숙마을에 대해선 잘 모르신다고 ㅡ
내시 황춘파의 사저로 지어진 해운정은 23살 나이에 갑장 신랑을 만나 시집온 초기에도 있었는데 정자엔 방이 셋 딸려 있어 청소하느라 새댁이 무척 힘들었다신다. 다른 돌들보다 두배는 족히 넘는 이 기둥돌위에 해운정은 지어져 있었다고...
본채는 기둥들만 남기고 거의 다 현대식으로 바꾸어 생활의 편리함을 더하셨는데 대들보대신 가로 두개의 나무를 댔기에 반자를 뜯어내 서까래를 다시 살리면 어떠냐는 말들도 있지만 그냥 그대로 두기로하고 지내신다고 ㅡ 날이 봄안개같지 않았더면 마니산이 바로 눈앞인데 안개가 감추어 선명하게 보이진 않았던 대문안은 이랬다. 아주 정갈한 모습
바깥정자(?)에서 한참을 두분 어르신께 이런저런 이야기 듣다 안채로 들어가니 그냥 시원한 음료수라도 한 잔 하라시던 말씀 무색하게 입안에 사르르 녹는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쑥향 가득한 인절미며 녹두전에 당신이 손수 담근 아삭아작한 오이지까지 곁들여 차려주신다. 그리고 바깥 양반이 많이 아프셨었다는 이야기며 느릅으로 완치시킨 저간 의 이야기들을 웃으시며 담담하게 들려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는데 이번엔 바깥채와 장 독대며 뒤뜰정경들까지 실컷 보라고...
이 수작업의 석공은 지금 어디에 계신지 모르지만 어딘가 후손들이 잘들 살고 계시겠거니.. 그나저나 다시 이 돌기둥위에 정자 한채 지어지는 행운이 비록 개인사저이긴해도 강화도에 생겨돌길 바래본다. 정자에서 바라보는 마니산의 비개인 운무의 운치도 무척 근사할텐데 싶고
강도팔경 연미정자 저절로 생각나게하는 ... 해운정 ㅡ 간척이전 바다였을 당시의 모습 그리고 이곳에 하곡 정제두선생님께서도 발걸음 하셨을 모습 스치듯 다가온다. 물론 당시는 해운정이란 정자는 아니 지어진때이지만 그 풍광은 가히 절경이었으리라고...
이젠 주름지고 백발 성성한 나이가 되었지만 두분 23살 시절 장가드시러 간 삼산 어류정에서의 모습이시라고.. 50여년 전이라신다. 지금 모습은 사진으로 담지말라시며 이 사진은 담아도 좋다고 흔쾌이 허락하시며 웃으신다.
동갑에 호랑이 띠신데 중절모에 옥양목두루마기 그리고 안엔 명주 바지저고리를 입으셨고 신부님은 공단치마에 분홍빛 저고리였는데 흑백이라 칼라풀하진 않아도 삼촌께서 한 컷 담아 주신거라고 카메라로.. 58년도에 이곳으로 이사와 결혼했는데 연애하신거냐고 여쭈니 웃으시며 연애는 무슨? 중매라시며 얼굴 딱 한번보고 1년뒤 시집오시던 날 두번째로 보셨단다. 아저씨는 참 잘 생겼는데 당신은 못생겼다고.. 그러나 친정 엄마가 딸이 셋인데 못생겨도 괜잖으니 그저 복 들만 많으라고 늘 기도하셨는데 93세 장수하시고 돌아가셨다고. 엄마기도 덕분에 세 딸 모두 잘들 산다시며 이런저런 가족사 아저씨 집안이야기며 당신친정인 어류정 이야기등등 석모도에 염전이 생기기전 두개의 섬이었던 시절 학교 다니느라 무척 애먹었다시며 그래도 청춘시절 이야기하시는 얼굴엔 흐뭇한 웃음이 떠날줄 모르시고.. 해운정 옛터 너무나 좋아서 바위솔샘 모시고 다시 찾아뵙 겠다고 여쭈니 아무때라도 지나다가 들리라시며 마침 시할머니 제사라서 두부며 녹두전등등 마련 베보자기로 덮어놓으셨는데 귀한 날 찾아왔으니 가다가 출출하면 먹으라시며 녹두전과 쑥인절미를 싸 주신다. 엄마맘 !!! 울엄마도 당신 찾아오는 길손들께 늘 저리하셨는데... 삼산 어류정 엄마도 그 러셨다시며 그런 엄말 보고 자라선지 당신도 항상 집에오는 사람들 그냥 보내지 않는다고 ㅡ 현대식 캡스경비구역과는 참 판이하게 다르다. 우리 선조들식 삶의 모습은.
주름진 손 가만 잡으며 감사인사 올린뒤 대문을 나서 잔디밭에서 또 한참을 있었다. 언제 보았다구 사람들은 그리 살가운것일까? 마당가득은 물론이요 안마당이며 뒤뜰가득 하늘을 들여놓구 사는이들은 !!! 그동안 몇차례 주인이 바뀌어왔다는 해운정 지금 이분들이 사시기전에도 당시 어떤 부자가 살다 다시 또 다른 부자로 그 주인을 바꾸고 다시 현 이분들께서 60년 가까이 살고 계시다는데 참 활달하고 넉넉 한 가운데서도 저절로 고고한 기품 깃들겠구나싶은 멋 역시 결코 잊지못할 풍류의 정자자리였다.
연자방아도 쌍으로.. 돌절구는 또 어찌그리 많으신지
세상엔 태산준령을 품고 살아가는 분들이 얼마나 지천이신걸까?? 산다는 것 그 것만으로도 충분히 풍류인 한국적 멋이 왼종일 발치를 떠나지 않던 날 ㅡ 굴암돈대는 지금 복원공사중 소꿉모습은 사라지고 !!!
한국의 아름다운 섬 강화도 심도기행 화남길위에서 단기 4347 갑오년 칠월 스므여드레 아침 춤추ㅡ는 꽃길의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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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강화사의 기록에 의하면 강화도엔 정자가 무려 연미정,이섭정,보만정,해운정을 비롯하여
대흥정,칠간정,도화정,이화정,강정자원정,제승정,독야정,가리정,오두정,추풍정,식파정, 접연화앙산정
혜산정,추포정,두운정,삼괴정,반환정,해산정,팔각정,능파정,애련당,오수당,구춘당,임계초당,하곡초당,해운당,만취당에 별장
서실등등이 산재해 있었다는데 지금은 그 모습 남아있는 곳이 참 ㅡ 아쉽기만 .. 자꾸 하나씩 복원되었으면 싶다. 뜻있는 이들이 재물도 넉넉하면 새로라도 지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희망사항 ㅎㅎ 정자문화 전라남도 가면 넘넘 좋던데 ~ *^ㅡ^*
정겨운 민가 보고 싶어라 어느 고운 님께서 살고 기실까?
같이 함 가입시더~ 참 고운분들이 살더이다 그곳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