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숲에서는 사람의 마을보다 빠르게 봄이 깊어갑니다.
삼월부터 조금씩 입을 열던 산수유 꽃봉오리가 드디어 활짝 피었습니다. 지름 팔밀리미터 크기의 구슬 모양의 자디잔 봉오리를 깨뜨리고 솟아오른 노란 꽃송이들이 제 모양을 드러냈습니다. 넉 장의 꽃잎, 네 개의 수술, 하나의 암술을 갖춘 꽃송이가 마흔 송이 가까이 피었습니다. 영광되이 출산을 마친 산수유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오늘 《나무편지》도 지난 주에 이어 봄꽃들의 소식을 사진 위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봄꽃들이 건네온 다양한 이야기들을 일일이 첨부해야 하겠지만, 분량이 길어져, 성가시게 해드리기보다는 봄의 분위기를 느낌으로 만끽하시기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가지가 갈라질 때, 세 개씩 갈라진다 해서 삼지닥나무라고 불리는 키작은 나무에서 노란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쌉싸름한 특별한 향기를 담고 피어난 삼지닥나무의 꽃이 불러젖히는 봄노래는 느리게 시작됐지만, 그런 만큼 오래도록 화려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을 겁니다.
이 봄, 천리포의 숲에서 가장 흔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 할 만한 수선화 꽃도 한창입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풀꽃인 까닭에 다양한 품종이 있는 꽃이지요. 이 숲에도 다양한 품종의 수선화 꽃송이들이 제가끔 자기에게 주어진 빛깔과 향기로 사람과 더불어 봄바람을 일으킵니다.
올해의 이른 봄에 유난스레 눈에 들어온 풀꽃 종류 중에는 붓꽃 종류가 있었습니다. 대개의 붓꽃 종류들은 좀더 지나야 피어납니다. 키도 크고 꽃송이도 탐스러운 여느 붓꽃 종류들과 달리, 지난 삼월 중순 쯤부터 아주 이르게 피어난 붓꽃 종류들은 키도 작고 꽃송이도 앙증맞습니다.
서둘러 피어난 붓꽃 종류도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가장 먼저 피어난 것은 노란 색의 꽃송이였지만, 전형적인 붓꽃의 빛깔인 보랏빛 꽃을 피우는 종류도 있습니다. 대개는 십 센티미터 미만의 낮은 키로 살짝 솟아올라 작은 꽃송이를 피웠는데, 바람 찬 이른 봄이어서 더 살가웠습니다.
빛깔은 다양하지만 붓꽃의 독특한 생김새는 똑같습니다. 독특한 꽃송이의 구조를 꼼꼼히 살피는 건 조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언제나 신비롭다는 느낌을 주기엔 충분합니다. 꽃잎에 선명하게 올라앉은 얼룩무늬는 대개의 붓꽃 종류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징입니다.
족도리풀이라는 풀꽃을 아시나요? 꽃송이가 족도리 모양을 했다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만, 그 꽃을 찾는 건 쉽지 않습니다. 땅바닥에 납작 붙어서 피어나기 때문에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꽃송이가 자줏빛이라고 하지만, 검은 자줏빛이어서, 검은 흙과 잘 구별되지 않습니다. 곁에 두고도 꽃인 줄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지요.
게다가 꽃송이보다 넓게 돋아나는 잎사귀들 사이에서 피어나는데, 대개는 잎사귀 아래에 숨어서 피어나기에 먼저 잎을 찾은 뒤에 살살 들춰 보아야 찾을 수 있는 재미있는 꽃입니다. 그래도 꽃송이 안쪽에는 여느 꽃들과 마찬가지로 예쁜 꽃술을 갖추고 있어서 꼼꼼히 볼 때 더 흥미롭습니다.
흥미롭기로는 루스커스 만한 꽃이 없습니다. 잎사귀 한가운데에 납작 붙어서 꽃이 피어나는 신기한 식물입니다. 게다가 활짝 피어난 꽃 위쪽으로는 마치 햇빛가리개를 살짝 드리운 것처럼 작은 잎사귀를 올려놓은 모습입니다. 루스커스는 키가 작아서 몸을 낮추어야만 그 꽃을 볼 수 있습니다.
봄에 피어나는 꽃 가운데에 파란 색으로 피어나는 몇 가지 종류 가운데에 무스카리가 있습니다. 고작해야 십 센티미터 높이로 올라온 꽃대궁 끝에 조롱조롱 마치 포도알 맺듯 꽃송이를 피워올리는 예쁘고 예쁜 꽃입니다. 대개는 무리지어 자라는데, 지나는 길섶에 홀로 피어난 무스카리 한 촉이 발길을 멈추게 합니다.
이름만으로 정겨운 우리 풀꽃은 참 많습니다. 그 중에 깽깽이풀이라는 풀꽃이 있습니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식물 2급으로 지정되었던 식물인데, 최근 들어 개체수가 늘어나면서, 지난 2012년에 멸종위기식물 지정에서 해제한 풀꽃입니다. 가는 꽃대 위에 피어난 꽃은 이름 못지않게 예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튤립 꽃의 계절이 다가옵니다. 튤립은 일쑤 축제의 소재가 되곤 하지요. 대개의 축제장에서는 갖가지 튤립을 종류별로 모아 무더기로 전시하는 편입니다. 튤립 빛깔의 화려함을 더 돋보이게 하려는 거죠. 하지만, 숲의 길섶에 홀로 피어난 튤립의 상큼함은 따를 수 없습니다.
바위 틈에서 솟아오른 튤립 꽃 역시 더 없이 싱그럽습니다. 튤립은 관상용으로 장미 못지않게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꽃입니다. 유럽 지역의 사회경제사에는 튤립이 빠지지 않고 나오는데, 그건 사람들의 튤립에 대한 사랑을 경제적으로 이용한 결과입니다.
누가 뭐라 해도 천리포 숲에서는 목련이 가장 대표적이지요. 지난 주만 해도 ‘빅버사’라는 이름의 목련 종류에서 한두 개의 꽃봉오리가 겨우 붉은 꽃잎을 내미는가 했는데, 드디어 꽃잎을 열었습니다. 며칠 안에 빅버사 큰별목련은 아마도 이 숲에서 가장 화려한 나무로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을 겁니다.
흰 색의 목련 꽃이 먼저 피어나고, 그 다음에 붉은 색의 목련이 피어나는 게 일반적인 순서입니다. 그러나 그건 대개의 흐름일 뿐, 모든 종류의 목련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붉은 빛을 한 목련들도 서둘러 꽃잎을 열었습니다. 그 가운데 라스프베리 아이스라는 이름의 목련 종류가 큼지막한 꽃송이를 열었습니다.
‘레오나르드 메셀’이라는 이름의 목련 종류도 꽃을 피웠습니다. 물론 아직 전체 꽃송이의 십분의 일 정도 겨우 피어난 상태지만, 먼저 피어난 몇 송이의 빨간 목련 꽃송이는 참 반갑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처음 맞이하는 반가움은 남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숨가쁘게 봄꽃들을 보여드렸습니다. 하지만, 지난 며칠 새에 만나 함께 이런 저런 숲의 이야기를 나눈 봄꽃들의 절반도 채 보여드리지 못해 아쉽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나무를 만나는 일이 그리움을 마음 깊이 담아두는 일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겨를을 돌아보지 않고 바삐 피어나는 봄꽃들, 짬 되는 대로 더 보여드리도록 하고, 오늘 《나무편지》는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평화로운 봄 맞이하십시오. 고맙습니다.
○●○ [솔숲의 나무 이야기]는 2000년 5월부터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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