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9편에서 소개한 高爲邦 사장의 후반부 이야기를 끝으로 중국함정 단원을 마친다. 겉으로는 법을 집행하는 척하면서 즉, 가짜로 법을 집행하면서 진짜 속으로는 강도질을 했던 사례이다.
高사장은 1997 년 北京과 天津 사이에 있는 河北省 三河市 燕郊개발구에 ERP 공장 爲邦複合材料(廊坊)有限公司를 세우고 강화유리섬유플라스틱 (중국인들이 흔히 말하는 뽀리깡) 제품을 만들어 미국으로 수출하였다.
9 편에서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高사장의 부하 직원이었던 曾念慶은 高사장의 서명을 위조해서 은행과 짜고 융자를 받아 자기 공장을 세워 똑같은 제품을 만들어 같은 바이어에게 수출했다.
당시 高사장은 중국의 사법에 대해 몰랐다. 曾念慶의 문서 위조죄만 밝혀내면 曾을 감옥에 집어넣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曾을 처벌하는 것은 高사장에게 별 이득이 없었다. 젊은이의 인생을 망치는 것도 그를 후계자로 키워보려던 초기의 애정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高사장은 曾의 부모에게 연락해서 부모가 曾의 행위를 고쳐주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曾의 부친 曾紹金은 당시 지질탐사기술원의 원장이었고 모친 宋國耀도 중국 지질과학원의 고급 엔지니어로 부모들이 모두 고급 지식계층이었다.
특히 曾紹金은 중국공산당 중앙의 핵심인물로 권력파에 속해 있었다. 아버지 曾紹金은 그의 아들 曾念慶이 서류를 위조해서 불법 대출을 받아 별도의 회사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들을 불러 야단쳤으며 당장 공장 문을 닫으라고 야단쳤다. 그리고 高사장에게 다시 이런 문제가 생기면 직접 자기에게 연락하라고 보장했다.
高사장은 아버지의 확답을 듣고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공안국에 고발하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曾念慶은 이를 고마워하기는커녕 1999년 음력설 공장이 3주간 장기 휴가를 보내는 시간을 이용해서 공장을 급습했다.
1999년 2월 21일은 정부기관들까지 모두 쉬는 날이었는데 曾念慶은 中意뽀리깡 公司의 총경리인 岳紅軍, 岳紅軍의 심복들과 법원 친구들을 3대의 승용차에 나누어 태우고 공장에 들이닥쳤다. 그리고 별도로 40 여명의 인부들과 16대의 대형 트럭을 몰고 왔다.
이들은 河北省의 省都 石家莊에 있는 中意 공장에서 高사장의 공장까지 3시간 동안 달려온 것이다. 岳紅軍의 친구인 법관 2명은 법을 집행한다는 구실로 수위에게 공장 문을 열라고 명령한 다음, 공장 내의 모든 재물과 완성품, 원자재, 기계설비, 금형까지 싹쓸이 해갔다. 모든 물건들을 岳紅軍의 石家莊 공장으로 가져간 다음 이들을 이용해서 똑같은 제품을 만들어 미국으로 수출했다.
이러한 행위는 가짜로 법을 집행하고 진짜로는 강도질을 한 것으로 수도인 北京에서 불과 30 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일어났다.
岳紅軍의 친구 법관들이 가짜법관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소속이 冀州 인민법원이었고 따라서 燕郊개발구, 北京, 石家莊 등은 冀州법원에서 관할할 수없는 지역이었다. 특히 그들은 법집행 문서도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사후에 燕郊개발구에 왔었다는 사실도 감히 말하지 못했다. 그들이 따라온 목적은 그저 강도질을 편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岳紅軍은 武漢대학교의 겸임교수였고 중국 뽀리깡 협회의 이사였다. 그가 싹쓸이 도둑질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자신감이 없었더라면 이러한 강도질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高사장의 공장 재산들을 싹쓸이 해가기 바로 전날, 冀州법원의 張법원장은 岳紅軍의 사무실에 함께 모여 싹쓸이 도둑질 작전을 모의했기 때문이었다.
高사장이 경찰에 신고했으나 경찰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 뒤로 한참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高사장은 全國人民代表大會(국회와 같은 입법기관)의 劉義 부비서장(부의장)이 燕郊개발구 부주임인 劉韋에게 전화를 걸어 동 사건이 경제 분규이니까 燕郊개발구 정부가 나서서 관여하지 말라고 압력을 넣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부기관이 나서지도 않고 경찰도 장물을 수색조차 하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曾念慶과 岳紅軍은 완제품을 40피트 컨테이너 4개에 실어 미국으로 수출하는데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
高사장은 나중에 黑道의 영향력을 빌려 三河市 公安局 徐錦文 국장을 설득해서 曾과 岳을 체포하도록 요청했으나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曾念慶이 잠시 구금되어 있었으나 曾의 아버지 曾紹金은 자기 아들을 빼내기 위해 다음과 같이 거짓 증언을 하였다.
즉, 공장 싹쓸이 전날 저녁 아들 曾念慶이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현재 岳에게 붙잡혀 있기 때문에 전혀 움직일 수 없다"라고 말했다고 위증했다. 그리고 "다음날 岳紅軍에 의해 高사장 공장으로 강제로 끌려가 공장의 재물을 옮겨왔다." 라고 거짓말했다.
끌려가서 도둑질 했다는 이 증언으로 曾念慶은 겨우 30일 동안만 구금되었다가 풀려났다. 병이 들었다는 이유로 取保候審 (먼저 풀어주고 나중에 심사하는 제도) 조치를 받았다.
만일 曾念慶이 정말 납치된 것이라면 어떻게 아버지에게 전화할 수 있었겠는가? 왜 아버지는 아들이 납치되었다는데 왜 공안에 신고하지도 않았는가? 동 사건은 권력자의 개입으로 시간만 질질 끌다가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로 曾念慶은 죄를 벗고 풀려난 것이다.
또 岳紅軍이 죄를 벗고 풀려난 이유는 曾의 거짓 증언과 상충되고 있는데 이 역시 또 하나의 웃기는 코메디라고 말할 수 있다.
岳의 회사 고급간부 5명이 경찰에 제출한 서면보고 중에 "高사장의 공장 물건을 강제로 운반해 오기 전날 회사 내에서 모의를 할 때 曾念慶이 岳紅軍 총경리에게 40 여명의 인부와 16대의 대형 트럭들을 자기가 제공하고 일체의 모든 책임도 자기가 지겠다." 라고 말했기 때문에 岳紅軍은 죄가 없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하면 어린 강도와 늙은 강도 두 명이 함께 도둑질을 했는데 어린 강도는 늙은 강도에게 끌려가 억지로 강도질을 했다는 이유로 석방되었고 늙은 강도는 어린 강도가 모든 책임을 진다고 말했기 때문에 죄가 없다고 풀려난 것이다.
얼마나 웃기는 코메디인가....
三河시 공안국, 검찰원, 법원 모두 三河시 政法委 서기가 관할한다. 三河시의 상급기관은 廊坊시이다. 廊坊시의 상급기관은 河北省이다. 河北성 政法委의 서기는 河北성 사법기관의 최고 지도자이다.
그런데 河北省 政法委 서기인 펑文海가 사법기관의 최고 지도자라는 권력을 이용하여 동 사건을 계속 방해하면서 曾과 岳 두 사람을 계속 비호하였다. 이로 인해 하급기관들은 아무도 감히 동 사건을 제대로 처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