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잘살수록 더 많이 투표하는 현실. 경제적 양극화는 투표율에 그대로 반영된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도 대세론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 토요일, 싸우스 캐롤라이나 주 공화당 대통령 예비 선거에서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이 대세론의 주인공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12% 차이로 따돌리고 승리했다. 예상외의 결과. 1980년 이후 싸우스 캐롤라이나 주 예비선거에서 1위를 차지한 후보는 결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던 만큼 롬니의 대세론에는 제법 큰 금이 갔다.
달변가이기도 한 깅리치 전 하원의장은 경선 승리 연설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엘리트 계층은 미국인들에게 미국인임을 포기하게 하였다.”라며 자신이 중산층과 서민의 편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 깅리치 스스로 공개한 2010년 세금 환급 내용을 살펴보면 당시 그가 벌어들인 연간 수입은 약 36억 원으로 미국 연방 국세청 자료 를 기준으로 한 미국 상위 1% 평균 소득 11억 2천만 원의 약 3배 금액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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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트 깅리치 싸우스 캐롤라이나 주 예비 선거 승리 연설 영상.
미국이든 한국이든 정치인이 말하는 중산층과 서민은 자신들의 삶과 괴리된 레토릭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괴리감은 미국 유권자의 정치 참여율이 낮은 중요 요인이다. 정치와 자신의 삶을 연관짓지 못하는 유권자는 자신의 참여가 정치에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 믿는 정치적 효능감이 낮다. 미국 인구 통계국 자료 를 보면 지난 2010년 중간 선거에서 미 유권자가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 2위로 (16%) “나의 투표가 어떠한 변화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을 꼽았다.
실제로 올해 초 여행 중 필자의 호텔방을 청소하시던 중년의 흑인 여성은 “정치엔 관심이 없어요. 정치는 돈 많고 힘센 사람들 뜻대로 되는 거고 저희 같은 사람의 투표는 세어지지도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녀는 평생 단 한 번도 투표한 적이 없다고도 했다.
미국의 투표율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은 편이다. 2008년 대선에서 오바마 열풍으로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던 당시에도 투표율은 64%에 그쳤다. 1987년 직선제 이후 최저 대표율을 기록한 지난 한국 대선 투표율 63%보다 겨우 1% 높은 수치. 참고로 2007년 5월 프랑스 대선 결선 투표율은 84%였다.
하지만 미국의 낮은 투표율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유권자의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가 투표율에 그대로 반영된다는 점에 있다. 인구 통계국 자료 를 살펴보면 2008년 미국 대선에서 연소득 10만 불 이상의 유권자 투표율은 73%로 대단히 높았지만 연소득 2만 불 이하 유권자의 투표율은 33%, 3만 불 이하 유권자의 투표율은 37%에 불과했다. 또한 미국의 경제적 불평등은 인종 문제와 밀접히 연관되는데, 빈곤층 비율이 높은 흑인의 경우 2008년 평균 투표율은 64.7%로 백인의 66.1%보다 1.4% 낮았다.
매 선거에서 한국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와 타워팰리스 주민들이 기록적인 투표율을 기록하듯, 미국에서도 잘사는 사람이 더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투표한다. 그리고 이런 투표의 계급적 양극화는 미국의 빈곤율에도 그래도 반영된다.
작년 하반기 미국 인구 통계국 조사 를 살펴보면 미국의 빈곤층은 (4인 가족 최저 생계비 2만 3천 불 이하) 5,082 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6%에 달했다. 이는 1993년 이후 최고 수준인데 여기에 다시 피부 색깔을 넣어 구분하면 흑인과 히스패닉계의 평균 빈곤율은 무려 26%에 달하지만 (흑인 27% 히스패닉 25%) 백인과 아시아계의 빈곤율은 10%와 12%로 뚝 떨어진다.
미국에선 경제적 불평등이 투표율과 빈곤율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그리고 투표하지 않는 계층에겐 그 어떤 권리도 보장해주지 않은 미국 정치의 냉정하고 참혹한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최근 한국에선 소셜미디어의 보편적 사용과 나꼼수 현상으로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20~30대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소위 말하는 각성한 대중. 이들의 정치 참여로 예상되는 높은 투표율이 한국 사회의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는 사실 확실치 않다. 다만 투표하지 않는 유권자가 맞이한 미국의 현실은 참혹하다.
필자 또한 재외국민 선거를 통해 19대 총선에 투표할 계획이다. 자동차로 투표함이 있는 시카고 총영사관까지는 왕복 14시간. 불편하고 힘들 테지만 4년 가까운 미국 유학생활을 통해 느낀 가장 중요한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반드시 투표하라! 그리고 반드시 심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