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봉사
무봉사는 신라 36대 혜공왕 9년(불기1317년) 법조선사께서 영남사(지금의 영남루)에 주석하던 중 하루는 하늘나라 큰 봉황새가 춤을 추며 이 절터에 내려앉는지라 대중이 환희하며 큰 상서라 하여 선사를 맏들어 모시었다.
때마침 혜공왕이 영남사에 참배차 왔다가 선사의 법문에 발심하여 그 법은(法恩)을 갚고자 영남사 옆에 암자를 지어 무봉암이라 이름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산 이름을 무봉산이라 부르게 하였다.
지금의 영남루는 예전에 영남사(嶺南寺)라는 절이 있던 곳이다.
영남사는 신라 35대 경덕왕 2년 왕이 초창한 신라5대 사찰 중의 하나였는데 1359년 고려 공민왕 8년에 실화로 전소되자 본존 석가모니불상을 영남사의 암자격인 무봉암에 옮겨 봉안하였고 이때부터 무봉사로 승격하여 불렀다고 한다.
이후 영남사가 전소된 자리에는 누각이 하나 지어졌는데 사찰의 이름을 따 영남루로 부르고 있으며 보물 제147호로 지정되어 있다.
무봉사는 조선 선조 25년 임진왜란의 병화로 전소되었으나 선조 38년 혜징선사에 의해 법당, 칠성각 수월루 및 요사가 중창되었으며 국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호국성사 사명대사의 탄생지인 밀양에 나라를 위한 기도처로 정하고 나라의 근심이 생길 때 마다 정성을 쏟아 오고 있다.
1628년(인조 6) 경의(敬儀)스님이 중창하였으며, 1899년(광무 3) 경봉(慶蓬)스님이 중건하고, 1941년에 대월 스님의 원력으로 풍상에 허물어진 법당과 요사를 중창하였고 1968년 6월24일 본존 석조여래좌상이 보물 제493호로 지정되었다. 1969년에는 도광스님이 범종 2500근을 조성하여 조석으로 예불을 올려 밀양팔경의 하나로 불리었고 1971년에 사명대사 동상과 기념관이 건립되었다.
1976년에 대원 스님이 대웅전 법당 7칸과 요사 5칸을 중창하고 종각, 일주문, 대문 등을 세웠으며 5층석탑과 무봉사 사적비 및 시주공덕비를 세워 1200여년의 역사를 지닌 사찰의 진면목을 비로소 높이기 시작했다.
밀양 영남루
밀양 영남루
보물 제147호.
원래 신라 법흥왕 때 세워진 영남사(嶺南寺)의 작은 누각 자리에 1365년(공민왕 14) 김주(金湊)가 창건한 것이다. 그후 여러 차례 소실과 재건이 거듭되었는데 밀양도호부의 객사 소속으로 된 것은 1611년(광해군 3) 객사를 영남루 북쪽에 새로 지으면서부터이다. 지금의 건물은 1844년(헌종 10)에 부사 이인재(李寅在)에 의해 마지막으로 재건된 것이다.
앞면 5칸, 옆면 4칸의 팔작지붕을 한 중층 누각으로 건물의 기둥이 높고 간격을 넓게 잡아 규모가 크고 당당한 느낌을 준다. 마루가 넓게 깔린 2층 평면은 내외진(內外陳)으로 구성되었으며 주위에 난간을 두르고 기둥 사이의 사면을 모두 개방했다. 공포는 익공양식의 건축으로는 가장 쇠서가 많은 3익공계이고, 천장은 지붕 밑이 그대로 보이는 연등천장에 겹처마 형식으로 처리해 꾸며졌다.
영남루의 동쪽에는 능파각(凌波閣), 서쪽에는 침류각(枕流閣)이라는 2채의 부속건물이 있는데 그 중 낮게 위치한 침류각은 3단계로 낮아지는 계단건물로 연결되어 있어 전체 외관에 변화와 조화를 추구한 점이 주목된다. 또한 '영남제일루'(嶺南第一樓)라고 편액된 누각답게 밀양강을 끼고 절벽 위에서 굽어보는 주변 경관이 뛰어나 진주의 촉석루(矗石樓), 평양의 부벽루(浮碧樓)와 함께 조선시대 3대 누각으로 불린다.
영남루 비
무봉사 일주문
무봉사 중건비
무봉사 금강문
무봉사 요사
무봉사 대웅전
무봉사 오층석탑
무봉사에서 바라다본 전경
무봉사 석조여래좌상
보물 제493호
대웅전에 모셔진 높이 0.97m의 무봉사 석조여래좌상
원래 무봉사의 모찰인 영남사에 있었던 것이나 조선시대 초기에 영남사가 폐사되면서 영남사의 암자인 무봉사로 옮겨와 봉안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화강석으로 된 이 여래상은 보존상태가 원만한 석가여래좌상으로 네모진 얼굴에 가는 눈과 입, 넓적한 코, 짧은 목 등 다소 평판적이면서 단정한 인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인상은 신체에서도 나타난다. 다소 움츠린 듯 위축된 가슴이나 단정한 신체, 형식적이고 이완된 옷 주름 등 단아한 조각미를 나타내고 있는데 이러한 특징들은 단정하고 형식적이며 현실적인 통일신라 말기의 조각수법을 보여주고 있어서 당대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또한 항마촉지인(降摩觸地印)을 하고 있으며 몸 전체가 육중하며 위풍당당하게는 보이지만 각 부분의 입체감이 부족하고, 단순하고 형식적인 표현들이 눈에 띈다.
그러나 광배에 새겨진 연화좌(蓮花座)위에 앉아 있는 약사여래상의 조각은 정성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이 광배가 원래 석조여래좌상에 딸린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특이한 수범의 조각 솜씨를 보이는 희귀한 광배이다.
무봉사석조여래좌상의 광배와 같이 전후면을 조각한 형식과 수법은 경주의 미륵곡불상(보물제 138호)과 경북대학교의 독립광배 등에서만 볼 수 있는 극히 희소한 유형으로 평가되고 있다.
무봉사 대웅전내 지장보살상
무봉사 대웅전내 신중탱
무봉사 대웅전내 관세음보살상
무봉사 대웅전내 칠성탱과 나한들
무봉사 대웅전내 독성상과 독성탱
무봉사 대웅전내 산신탱
무봉사 요사
무봉사 지장전
무봉사 찾아가는 길
무봉사를 찾기 위해서는 먼저 밀양 영남루를 찾는 것이 쉽다.
교동삼거리 신호등에서 좌회전하여 시내로 진입하면 밀양택시 사무실 옆 사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다시 좌회전해서 내일동 사무소에서 직진하면 대중철물이 나타나는데, 이곳으로 진입하면 영남루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