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성 개인전
유토피아, 미래의 세계를 향한
영원한 미완의 도전
김해성은 주로 비둘기나 어린 양 등 기독교적인 세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되,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신화적이고 이상적인 동식물을 상호텍스트적 수사법의 하나인
풍부한 인유법(引喩法)을 통해 자신의 주제와 지향을 형상화하고 있다.
글 | 임동확(시인)
[2009. 10. 28 - 11. 3 인사아트센터 5층]
[2009. 11. 26 - 12. 2 무등갤러리]
[인사아트센터]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02-736-1020
홈페이지로 가기 http://www.insaartcenter.com
김해성의 유토피아 지향은 잃어버린 낙원이나 황금시대를 동경한 결과가 아니다. 당대의 불합리와 부정, 갈등과 증오로부터 해방된 세계에 대한 갈망과 희망의 소산이다.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크고 작은 상처와 아픔이 유토피아적 약속, 말하자면 인간의 자연화 또는 자연의 인간화라는 목표와 맞물려 있어 그의 유토피아 충동 속엔 현실비판이라는 부정의 원리와 이상세계 창조라는 긍정의 원리를 함께 포함되어 있으며 한때 그는 일그러진 한국 현대사의 비극과 그 속에서 망가진 개인과 집단의 문제를 다루며 무한의 욕망과 경쟁에 입각한 한국적 자본주의 사회의 추악함과 천박성을 ‘도시 연작’을 통해 드러낸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위정자와 가진 자의 위선과 허위, 빈부격차와 인간 소외 등을 다루며 첨예한 비판의식을 보여준 바 있다. 자본주의 체제의 집중이자 압축인 현대 도시에 대한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시선을 통해, 근대적 폭력과 그로인한 인간의 소외와 현대인의 분열된 자아상을 폭로하고 고발해 왔던 작가였다. 하지만 김해성은 2천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찢기고 갈라진 디스토피아적인 세계상이나 인간상보다 조화롭고 행복한 유토피아의 세계로의 전회(Kehre)를 보여주고 있다. 미래사회에 대한 비관적이고 음울한 전망의 투사나 부정적 의식 대신 꽃과 새, 인간과 동물이 각자의 고유성을 지켜가면서도 서로 분리되지 않은 채 평화롭게 동거하고 있는 모습이 그의 화폭을 지배하고 있다. 하늘과 대지, 신적인 것과 인간이 대립과 분열보다 무한히 부드럽고 친밀한 관계 속에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
김해성은 주로 비둘기나 어린 양 등 기독교적인 세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되,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신화적이고 이상적인 동식물을 상호텍스트적 수사법의 하나인 풍부한 인유법(引喩法)을 통해 자신의 주제와 지향을 형상화하고 다른 한편으로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와 행동의 연출을 통해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상징물과 그 구성에 활력을 부여하며 직설법적으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전하기보다 역사적이고 신화적으로 이미 잘 알려진 사건이나 사물들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고 모색하는 이상적인 세계에 대한 설득력과 신빙성을 높여 주고 있다.
김해성이 고통스런 현실과의 대면을 피하거나 도피하는 것이 아닌, 그것과의 화해와 평화를 모색하기 위해 시작된 유토피아 세계로의 모험 또는 역정이 의미하는 그의 유토피아는 ‘내일의 진실’은 아니지만, 보다 좋은 내일을 꿈꾸고 상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우린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미래란 시간의 불안정 때문에 언제나 우리가 찾아내려는 것과 다른 것이기에, 설령 그것들이 좌절되었다고 해도 크게 실망할 일은 아니다. 미리 간파된 미래나 예상할 수 있는 유토피아는 더 이상 미래나 유토피아일 수 없는 것이다.
김해성은 죽은 절친한 친구의 죽음을 화려하고 아름다운 화폭의 한 구석에 담아내고 있다. 뜻과 우정을 오래 함께 나눈 한 친구에 대한 그지없는 애도와 그리움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내게 그것은 김해성이 어떤 유토피아도 생사의 고뇌와 사랑과 이별의 슬픔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다가온다. 그야말로 관계의 그물로 촘촘히 얽혀진 세계에서 꿈꾸는 모든 유토피아 속에 어쩔 수 없이 세계의 폭력과 비극성이 함께 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어쩌면 낭만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결코 지고지순하거나 아름답지만은 않은 마냥 척결의 대상이나 해소의 대상인 모순이나 폭력조차 근원적인 차원에서 하나로 맞물려 있는 게 사실일 것이다. 그야말로 무갈등과 무고통의 유토피아를 향한 열정은 헛된 열정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무엇인가. 작가는 그에 대해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유토피아를 향한 노력이지 그 성취는 아니라고 화면 속에 숨겨진 ‘노 젓는 뱃사공’을 통해 넌지시 말하고 있다.
첫댓글 펌합니다.
큰작품위주로 많이하셨네요 마음에너무 와닿는 그림감상 잘하고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