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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예수 내가 만난 첫번째 예수는 부모님 뜻에 따라 정해진 ‘무의식 속의 예수’였고, 두 번째 만난 예수는 주일학교 다니라는 권유가 싫어서 살살 피해 다니던 ‘귀찮은 예수’였습니다. 세 번째 예수는 대학 때 야학하던 곳에서 만난 ‘가난한 예수’였고, 네 번째 만난 예수는 막연한 그리움을 갖게 한 사람을 통한 ‘사람 예수’입니다. 다섯 번째 예수는 사람을 통해 찾은 ‘내 안의 예수’였고 여섯 번째 만난 예수는 고통으로 다가온 ‘고통의 예수’였습니다. 그리고… 일곱 번째 예수는 고통의 강을 건너면서 만난 ‘사랑의 예수’입니다. 그후 찾은 내 안의 주님은 폭풍처럼 열정적이지는 않지만 늘 언제나 고요히, 잔잔히, 인도하시고 붙잡아 주시고 계심을 느낍니다. 살면서 부딪게 되는 크고 작은 우여곡절 속에서도 언제나 감싸주시고 알지 못할 힘으로 붙들어 주십니다. 지금도 나는 희미하고 확실하지는 않지만 알 수 없는 그 힘을 저버릴 수 없고 또 매달리게 됩니다. 언제나 바른 길로 인도하시고 종국은 “매사 잘 되어 가리라” 라는 희망으로 말입니다. 분명한 것은 신앙이란 하루아침에 쌓아 올린 바벨탑이 아닙니다. 아주 긴 세월을 통해 알고, 느끼고, 깨닫고, 성숙해 갑니다. 그래서 신앙은 예습이 없습니다. 오직 복습만이 있을 뿐입니다. 향후 삶의 길에서 또 어떤 예수를 만날지 지금은 모릅니다. 그때마다 내 자신 한 걸음씩 성숙해질 것이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작가 미상/섭리가족 제 64호에서- 이성과 지성이 삶을 성숙하게 하겠지만 돌아보면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된 것은 가슴을 적시는 '아하' 체험을 통해서였습니다.
희망을 품고 떠나야하는 여정 앞에서 사랑의 체험을 통해 신앙의 싹을 틔울 수만 있다면 바람직한 호스피스 돌봄이 되지 않을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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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람은 4가지 부류가 있다지요 1,하늘에 불림과 은총을 받고 태어나서 ,지혜롭고 스스로 태어 날 때 부터 성품이 착하고 곧아 하느님을 알아 섬기는자 2, 살면서 삶속에서 부모와 ,스승에 가르침 속에서 하나하나 배워 가면서 하느님을 느끼고 터득하고 알아 섬기는 자, 3, 하느님으로 부터 매를 맞고 하느님을 알아 열심히 섬기는자, 4, 무지하여 , 매를 맞고도 하느님을 모르는 자, 5, 매를 들어도 소용이 없어 매도 안드시고 그냥 하느님이 버린자 ,,,,,,,,,,,,,,,,,,,,,,나는 어떤 부류일까 ? 생각해 봅니다. 푸르른 여름철의 나뭇잎들은 가을이오면 가지 가지자기만의 빛갈로 물든다지요,
은총안에서 생명으로 태어났으니 하느님께 돌아갈 수 있도록 열심히 살려는 마음만 새기곤 하네요. 그나마도 종종 매를 맞는 덕분이지만... 좋은 말씀 가슴에 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