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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무아분(究竟無我分) 제십칠(第十七)
이시(爾時) 수보리(須菩提) 백불언(白佛言) 세존(世尊) 선남자(善男子) 선녀인(善女人)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운하응주(云何應住) 운하항복기심(云何降伏其心)이니까.
저 때에,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루어 말씀하되,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녀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였아오니, 어떻게하여 마땅히 머물도록 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 받으오리까.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고구정녕하신 불법을 듣고, 수보리와 및 대중은 금강반야바라밀경이, 어떠한 경인 것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이 어떠한 법 인것과 또 이 경을 수지독송하는 공덕이 얼마나 큰 것을 깨쳐, 이 법의 희열을 크게 감탄하게 되었으며, 자기가 여래 인것도 잘 증득(證得)하였다. 그러나 한가지 실망되는 점이 있었으니, 이것이 무엇일까.
이(理)치로는 비록,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확실히 깨어 얻었으나, 일(事)은 이치와 합일되지 않는 점이다. 마치 대와 죽순과 같이, 대는 똑같은 대이지마는, 죽순을 가지고는 아무것도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죽순이 대 되는 것이요, 소나무가 대 되는 것은 아니니 죽순만 되면 대 되는 것은 시일만 걸릴 뿐이다.
이와 같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치로는 알았으나, 행으로는 이치와 같지 않다는 것이다. 말로는 나도 부처와 같이 행할 수 있지마는 행(行)은 부처와 같지 않다는 것이다. 아(我)가 공(空)하고, 법(法)이 공(空)하고, 공 한것까지 공 한줄도 잘 알지만, 항시 상에 착하기가 쉽다는 말이다. 눈에 아무 경계도 보이지 않고, 귀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고요히 앉아 있을 때에는, 나도 없고 남도 없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의 깨끗한 부처 이지마는, 바람이 치불고, 비가 퍼붓고, 집이 떠내려가고, 번개가 번쩍하고, 우뢰가 소리하고, 천지가 진동 할 때에는 공포심이 일어나고,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생긴다는 말이다. 아무 일 없는 평시에는, 모두 자타가 없는 것 같지마는, 탐진치(貪嗔痴)의 경계를 당하여 보면, 사상(四相)에 착되고 만다는 말이다.
부처님께서 중생을 건지시고저, 그 토록 친절 정녕히 갖은 수단과 갖은 방평으로 상, 중, 하근기를 다 맞추어 정한 법이 없는, 가장 잘 사는, 아뇩보리법을 보여주셨거늘, 누가 제게 있는 제 보리를 보지 못할 사람이 있으며, 제게 있는 제경을 깨지 못할 사람이 누구일 것인가.
그러나 고인의 말씀에도, 얻기는 쉬워도 지키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이 말은, 알기는 쉬워도, 안 것과 같이 행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과연 그렇다. 일생을 두고 수행을 하였다는 이들 중에도, 이(理)와 사(事)가 같지 않고, 아는 것과 행이, 하나가 못되고, 말과 행이 다른 것을 흔히 볼 수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선지식 아닌 것은 아니니, 법을 배우는 자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법에 의지하여야 한다. 지(知)와 행(行)이 일치 되는 것은 깨친 사람으로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왜 그러냐 하면, 오랜 세상을 두고, 다생 다겁으로 내려오면서, 익힌 습기(習氣)라는 것은, 일조일석에 전부 제(除)하여지는 것이 아니므로, 다생(多生)을 두고 닦고 닦아야 제하여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러하므로, 상권 법문에서 수보리와 및 대중은 아뇩보리를 깨어얻어, 본래 주가 없는 마음을 무주에 주할 것을 알았으나, 깨친 바와 같이, 무주(無住)가 않되고 경계를 대하면 곧 상(相)에 주하게 되므로, 다시 부처님에게 똑같은 말로써 물었으나, 뜻은 다른 것이니, 상권에서는, 마음을 주하는 이치를 물은 것이요, 하권에서는 행을 물은 것이다. 행을 떠나서 이치가 없고, 이치를 떠난 행이 없으나, 이(理)와 행(行)을 구별하여 보면 그러하니, 행은 이치의 증거이기 때문에 중생을 교화함에 있어, 증거를 보이지 않고 말로만 설하여서는, 잘 믿어지지 않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필자의 생각에는, 상권에서는 이(理)를 밝히고, 하권에서는 행(行)을 밝힌 것이라고 한다.
불고수보리(佛告須菩提) 약선남자(若善男子) 선녀인(善女人) 발아뇩다라(發阿耨多羅) 삼먁삼보리심자(三藐三菩提心者) 당생여시심(當生如是心) 아응멸도일체중생(我應滅度一切衆生) 멸도일체중생이(滅度一切衆生已) 이무유일중생(而無有一衆生) 실멸도자(實滅度者)니라.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사대, 만약 선남자 선녀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자일진데, 마땅히 이와 같은 마음이 나리라. 내가 응당 일체 중생을 멸도하였으나 일체 중생을 멸도하고 나서는, 실은 한 중생도 멸도 된자가 없다 하리라.
하이고(何以故) 수보리(須菩提) 약보살(若菩薩) 유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즉비보살(卽非菩薩)이니.
어찌한 연고이냐,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니라.
소이자하(所以者何) 수보리(須菩提) 실무유법(實無有法) 발아뇩다라(發阿耨多羅) 삼먁삼보리심자(三藐三菩提心者)니라.
어찌한 까닭이냐. 수보리야, 실로 법이 있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자가 없나니라.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깨친자는, 자기 자심에서 생기는, 모든 번뇌인, 일체 중생을 제도 할 것이다. 이 모든 중생을 하나도 남김 없이 멸도하고 나면, 멸도를 받는한 번뇌 중생도 없을 것이니, 본래 한 법도 없는 것을 깨친자가, 곧 아뇩보리를 깨친자이기 때문이다. 깨친자는 깨침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 중생, 수자상이 있으며, 어찌 보살이라 할 것인가.
수보리(須菩提) 어의운하(於意云何) 여래(如來) 어연등불소(於燃燈佛所) 유법득(有法得) 아뇩다라삼먁삼보리부(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 불야(不也) 세존(世尊) 여아해불소설의(如我解佛所說義) 불어연등불소(佛於燃燈佛所) 무유법득(無有法得)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다.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냐. 여래가 연등불소에서, 법이 있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내가 부처님 말씀하신 뜻을 아는바 같아서는, 부처님께서 연등불소에서, 법이 있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수보리에게 아뇩보리는 실로 법이 있지 않음을, 더 한번 분명히 믿게 하기 위하여, 자기의 과거사를 증거로 들어, 여래가 연등스승님 처소에서 무슨 법이 있어, 아뇩보리를 얻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때에 수보리는 곧 아니라고 대답하였으니, 이는 자기의 증득(證得)한 바나, 실로 법이 있지 않는고로 아뇩보리를 얻었다고 여쭈었다.
불언(佛言) 여시여시(如是如是) 수보리(須菩提) 실무유법(實無有法) 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사대, 그렇고 그렇다, 수보리야, 실로 법이 있지 아니할새, 여래가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느니라.
※이는 부처님께서 수보리 말씀을 인가하시어 암, 그렇고말고, 옳다, 옳다, 하신것이다.
수보리(須菩提) 약유법(若有法) 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자(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 연등불(燃燈佛) 즉불여아수기(卽不與我授記) 여어래세(汝於來世) 당득작불(當得作佛) 호서가모니(號釋迦牟尼) 이실무유법(以實無有法)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시고(是故) 연등불(燃燈佛) 여아수기(與我授記) 작시언(作是言) 여어래세(汝於來世) 당득작불(當得作佛) 호서가모니(號釋迦牟尼)라하시니라.
수보리야 만약 법이 있어,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을진대, 연등불이 곧 나에게 수기를 주어, 네가 오는 세상에 마땅히 불(佛)을 짛을지니, 호를 석가모니라 하지 아니하였을 것이나, 실로 법이 있지 아니함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을새, 이런고로 연들불이 나에게 수기를 주시되, 네가 세상에 마땅히 부처가 될 것이니, 호를 석가모니라 하라고, 이런 말씀을 하셨느니라.
※연등불은 과거 석가모니불의 스승이요, 석가모니는 능히 어질고 고요하여 묵묵하다는 뜻이다. 실로 법이 있지 않다 함은 법이 아니고 무엇인가. 한 물건도 취 하지 않고, 한물건도 버리지 않는 것이 실로 법이 있지 않는 아뇩보리다.
하이고(何以故) 여래자(如來者) 즉제법여의(卽諸法如義) 약유인(若有人) 언(言) 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수보리(須菩提) 실무유법(實無有法) 불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라.
어찌한 연고이냐, 여래라함은 곧 모든 법이 같다는 뜻이니, 설사 사람이 있어 말하되,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할지라도, 수보리야, 실로 불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법이 있지 않느니라.
※여래라는 것은 같다는 뜻이니, 있고 없는 것이 같고, 기쁘고 슬픈 것이 같고, 괴로복 즐거운 것이 같고, 낳고 죽는 것이 같고, 생사와 열반이 같고, 번뇌와 보리가 같고, 부처와 중생이 같아서, 모든 법이 다르지 않다. 다르지 않으므로 같고, 같으므로 하니이고, 하나이므로 하나라는 수(數)도 서지 않는다. 말하자면, 일여하다 하여 여래이다. 그러므로 따로 얻을바 아뇩보리법이 없다는 말이다.
수보리(須菩提) 여래소득(如來所得)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어시중(於是中) 무실무허(無實無虛)니라.
수보리야, 여래의 얻은바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이 가운데에는 실도 없고 허도 없나니라.
※한 물건도 취하지 아니하므로, 실다움이 없고, 한 물건도 버리지 아니하므로, 헛됨이 없다는 말씀이시니, 이것을 깨친 것이, 얻을 것 없는 아뇩보리를 얻으신 것이 된다.
시고(是故) 여래설일체법(如來說一切法) 개시불법(皆是佛法)이라 하나니라.
이런고로 여래가 말씀 하기를, 일체 법이 다 이 불법이라고 하니라.
※삼라만상 가지가지의 형형색색 있고 없는 것, 알고 모르는 것, 내지 허공까지라도 모두 이 법에서 나왔기 때문에, 아니, 이 법이기 때문에, 일체 법이 다 이 불법이라고 말씀하시 것이다.
산 푸르고 물 흐르는 것도 이것이요, 구름가고 달 오는 것도 이것이요, 잎 떨어지고 꽃 피는 것도 이것이요, 꾀꼬리 노래하고, 제비 지저귀는 것도 이것이요. 비행기 날고, 기차 달리는 것도 이것이요, 인공위성과 로켓트도 이것이요, 원자탄, 유도탄도 이것이요, 치고, 받고, 싸우는 것도 이것이요, 웃고, 즐기고, 좋아하는 것도 이것이요, 음탕하고, 성내고, 어리석은 것도 이것이요, 계(戒)와 정(定)과 혜(慧)도 이것이요, 정치, 경제, 종교, 문화가 이것이요, 민주주의, 공산주의가 이것이요, 내가 지금 사경하는 것도 이것이요, 독자들이 책을 보고 한줄 한줄씩 읽는 것도 이것이다. 무엇하나 이 밖에 또 다른 것이 있을 것인가. 이러므로 일체 법이 다 불법인 것이니, 불법을 욕하는 것도 불법이요, 불법을 찬하는 것도 불법이라, 불법 외에는 다시 한 물건도 없는 것이다.
수보리(須菩提) 소언일체법자(所言一切法者) 즉비일체법(卽非一切法) 시고(是故) 명일체법(名一切法)이니.
수보리야, 말한바 일체 법이라 한자는 곧 일체법이 아니라, 이런고로 이름이 일체 법이니라.
※말하자니, 일체법이라 한 것이요, 이름하자니, 일체법이라 하였을지언정, 일체법이 일체법이 아니니, 말과 이름에 따라다니지 말라 일체 법에 착할가 두려워 하신 말씀이시다.
수보리(須菩提) 비여인신장대(譬如人身長大) 수보리언(須菩提言) 세존(世尊) 여래설인신장대(如來說人身長大) 즉위비대신(卽爲非大身) 시명대신(是名大身)이니이다.
수보리야, 비컨대 사람의 몸이 장대하다는 말과 같으니라. 수보리, 말씀하되,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인신장대하고 하심은, 곧 큰 몸이 아니라, 이 이름이 큰 몸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하는 말에, 아무개는 사람이다. 대인이다, 하는 말을 하나니, 이것은 그 사람의 키가 큰 것을 말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지혜나, 덕이나, 도량이 큰 것을 지칭하는 대명사임을 알면 따로 강의할 것이 없다.
수보리(須菩提) 보살(菩薩) 역여시(亦如是) 약작시언(若作是言) 아당멸도무량중생(我當滅度無量衆生) 즉불명보살(卽不名菩薩) 하이고(何以故) 수보리(須菩提) 실무유법(實無有法) 명위보살(名爲菩薩) 시고(是故) 불설일체법(佛說一切法) 무아무인무중생무수자(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라하시니라.
수보리야, 보살도 또한 이와 같아서, 만약 이러한 말을 하되 내가 마땅히 무량중생을 멸도 하였다 하면, 곧 보살이라 이름하지 못할지니라. 어째서 그러하냐 하면, 수보리야 실로 법을 두지 아니함이, 이름이 보살이 되나니라. 이런고로 부처님 말씀하시되, 일체법이 나도 없고 남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자도 없다 하니라.
※보살은 자기 본심을 알아 일체법에 통달 무애한 것이어늘, 멸도한 내가 있고, 멸도 받은 중생이 있고, 멸도 시킨 법이 있고, 이를 즐기는 마음이 있으면, 이것이 곧 상이니 걸림이 있는 보살이 아니다. 그러므로 부처가 말하기를 일체법이 나만 없으면, 남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자도 없다 한 것이다.
수보리(須菩提) 약보살(若菩薩) 작시언(作是言) 아당장엄불토(我當莊嚴佛土) 시불명보살(是不名菩薩) 하이고(何以故) 여래설장엄불토자(如來說莊嚴佛土者) 즉비장엄(卽非莊嚴) 시명장엄(是名莊嚴)이니라.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이러한 말을 하되 내가 마땅히 불국토를 장엄하였다 하면 이는 보살이 아니니, 어찌한 연고이냐. 여래가 말씀한 불국토의 장엄은, 곧 장엄이 아니요, 이 이름이 장엄이니라.
※장엄이라는 것은, 좋게 단장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니, 연지 찍고 분 바르는 것으로 알지 말라. 그리고 향등 화촉(香燈 花燭)을 밝히는 것으로도 알지 말라. 불국토의 장엄은 자기 본심의 장엄이니, 본심의 장엄은 한법도 서지 않는 청정본연의 장엄인 것이요, 장엄이란 이름도, 더러운 때가 되는 것이다.
수보리(須菩提) 약보살(若菩薩) 통달무아법자(通達無我法者) 여래설명진시보살(如來說名眞是菩薩)이니라.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내가 없는 법을 통달한 자이면, 여래가 말하기를 참으로 이것이 보살이라 이름하나니라.
※무아법(無我法)을 통달(通達)한 자라야, 참으로 이것이 보살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아법이란 내가 없는 법이니, 내가 없으면 법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 아뇩보리는 쉽게 말하여 잘 사는 법이라고 하였는데, 누가 있어 잘 살며, 잘 사는 법이 설사 있다한들 누구에게 필요하느냐 말이다. 여기서 먼저 무아법을 깊이 알아야 할 것이니 지금까지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이, 전부 무아를 말씀하셨으므로, 보살들은 이미 무아법을 깨쳐 알았을 줄로 생각하거니와, 내가 없다는 것은 참으로 큰나(大我) 참나(眞我)를 뜻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가장 잘 사는 부자가 되려면 먼저 가장 못 사는 가난뱅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니, 한 물건도 갖지 아니한 자가 가장 간뱅이요, 한 물건도 없는 것 없이 다 가진 것이 가장 부자일 것이다.
저 허공은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우주 삼라 만상을 하나도 버림없이, 다 가진 부자가 아닌가. 허공이 이처럼 가장 크게 소유한 것은, 터럭도 없이 비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아뇩보리를 성취할 사람은, 티끌 하나도 가지지 말아야 한다.
가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까지도 마저 없어야 한다. 이것이 무아법, 즉 내가 없는 법이다. 무아법은 이러하거니와, 이 법을 알았다하여 보살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저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하권 법문은 이보다 행에 더 치중하여 착안하신 법문이시다. 그러므로 무아법을 통달한 자라야 보살이라 하셨으니, 통달(通達)이라는 두 글자가 매우 중요한 말씀이시다.
깨침과 같이, 얻음과 같이, 무아법을 그 이치와 같이 걸림이 없이, 때를 따라, 처소를 따라, 자유자재로 무아법을 사용하는 것이 통(通)한 것이요, 이 법으로 목적지인 피안에 이르는 것이 달(達)이 된다. 예를 들면, 국가들 위하고, 민족을 위하고, 사회를 위하고 전 세계 인류의 유익과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희생한 의인 열사, 혁명가, 학자, 예술가, 성현들과 발명가들이 곧 무아법을 통달한 사람들이다. 이들이야말로 내가 없는 법을 알아, 내가 없는 법과 같이 내가 없는 행을 한 전체인 나, 참 나의 영원불멸의 생인 것이니, 어찌 오척단구(五尺短軀)인, 작은 나에 탐착하여 오욕락(五慾樂)을 즐기는, 하루 살이의 구구한 못난 생(生)에 비할바이겠는가. 그러므로 이 무아법인, 아뇩보리를 행하는 사람이야 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일체동관분(一體同觀分) 제십팔(第十八)
수보리(須菩提) 어의운하(於意云何) 여래유육안부(如來有肉眼不) 여시(如是) 세존(世尊) 여래유육안(如來有肉眼) 수보리(須菩提) 어의운하(於意云何) 여래유천안부(如來有天眼不) 여시(如是) 세존(世尊) 여래유천안(如來有天眼) 수보리(須菩提) 어의운하(於意云何) 여래유혜안부(如來有慧眼不) 여시(如是) 세존(世尊) 여래유혜안(如來有惠眼) 수보리(須菩提) 어의운하(於意云何) 여래유법안부(如來有法眼不) 여시(如是) 세존(世尊) 여래유법안(如來有法眼) 수보리(須菩提) 어의운하(於意云何) 여래유불안부(如來有佛眼不) 여시(如是) 세존(世尊) 여래유불안(如來有佛眼)이니이다.
수보리야 뜻에 어떠하냐, 여래가 육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가 육안이 있습니다. 수보리야, 뜻에 어떠하냐. 여래가 천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천안이 있습니다. 수보리야, 생각에 어떠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천안이 있습니다. 수보리야, 생각에 어떠하냐, 여래가 혜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가 혜안이 있습니다. 수보리야, 생각에 어떠하냐 여래가 법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가 법안이 있습니다. 수보리야 생각에 어떠하냐. 여래가 불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가 불안이 있습니다.
※육안은 일체 유형(有形)의 색상(色相)을 한계 안에서 보는 눈이요, 천안은 가까운 한계가 없이, 중생들의 모든 사물과 업보등을 보는 눈이요, 혜안은 중생들이 모든 근기와 경계를 살피는 눈이요, 법안은 일체법의 실다운 상을 걸림없이 보는 눈이요, 불안은 오안이 구족하여, 시방을 두루 보나, 보는자도 없고, 보이는 경계도 없이, 보는 눈이다.
수보리(須菩提) 어의운하(於意云何) 여항하중소유사(如恒河中所有沙) 불설시사부(佛說是沙不) 여시(如是) 세존(世尊) 여래설시사(如來說是沙) 수보리(須菩提) 어의운하(於意云何) 여일항하중소유사(如一恒河中所有沙) 유여시사등항하(有如是沙等恒河) 시제항하소유사수(是諸恒河所有沙數) 불세계(佛世界) 여시(如是) 영위다부(寧爲多不) 심다(甚多) 세존(世尊)이시여.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냐 항하 가운데 있는바 모래와 같이라고 부처가 이 모래를 말씀한적이 있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이모래 말씀을 하셨습니다. 수보리야 생각이 어떠하냐 한 항하 가운데 있는 모래와 같이, 이와같은 모래등의 항하가 있고, 이 모든 항하에 있는바, 모래 수대로 불세계가 있다하면 진실로 많다 하겠느냐.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많은 수를 말씀하실 때에는 항시 항하 가운데 있는 모래를 비유로 드시었는데, 이번에는 이 항하 가운데에 있는 모래 수대로 항하가 또 그렇게 많이 있고, 또 그 항하마다 낱낱이 깔려있는, 모래 수와같이 많은 불세계(佛世界)가 있다 하면, 어떠하냐 하고 그 엄청나게 많은 불세계를 말씀하심에, 수보리는 즉시 많다고 여쭈었다.
불고수보리(佛告須菩提) 이소국토중(爾所國土中) 소유중생(所有衆生) 약간종심(若干種心) 여래실지(如來悉知) 하이고(何以故) 여래설제심(如來說諸心) 개위비심(皆爲非心) 시명위심(是名爲心)이니.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사대, 저곳 국토 가운데에 있는바, 중생의 여러 가지 마음을 여래가 다 아나니, 어찌한 연고이냐 여래가 말한 모든 마음이 다 마음이 아니요 이 이름이 마음이 됨이니라.
※수보리야, 그와 같이 많은 불세계 가운데에 있는 가지 가지 중생들의 가지 가지 마음들을 여래가 다 아나니, 여래가 다 아는 소이가 무엇이냐. 여래가 말한바 마음이라는 것은, 마음이 아니고, 이름이 마음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마음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항하 모래 수와 같이 많다. 사람은 사람 마음, 하늘은 하늘 마음, 귀신은 귀신마음, 짐승은 짐승의 마음, 새는 새마음, 고기는 고기마음, 벌레는 벌레 마음, 오는 놈은 오는 마음, 가는 놈은 가는 마음, 앉은 놈은 앉은 마음, 섯는 놈은 선 마음, 누운 놈은 누운 마음, 웃는 놈은 웃는 마음, 우는 놈은 우는 마음, 기쁜 놈은 기쁜 마음, 슬픈 놈은 슬픈 마음, 분한 놈은 분한 마음, 참는 놈은 참는 마음, 어진놈은 어진 마음, 악한 놈은 악한 마음, 부한 놈은 부한 마음, 가난한 놈은 가난한 마음, 부지런한 놈은 부지런한 마음, 게으른 놈은 게으른 마음, 큰놈은 큰 마음, 작은 놈은 작은 마음, 둥근 놈은 둥근 마음, 모난 놈은 모난 마음, 긴 놈은 긴 마음, 짧은 놈은 짧은 마음, 밝은 놈은 밝은 마음, 어두운 놈은 어두운 마음, 푸르고, 누르고, 붉고, 희고, 검고, 이루 헤아릴수없는, 수많은 마음들을 그 많은 중생들이 가지고 있다. 이 많은 마음을 여래가 다 안다 함은, 여래의 마음이 곧 중생의 마음이요, 중생의 마음이 곧 여래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마음이 항하사 모래 수와 같이 많은 마음으로 화하고, 항하사 모래 수와 같이 많은 마음이 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다시 또한 마음은 이름도, 형상도, 냄새도, 그림자도 없기 때문에 마음도 아닌 것이다.
소이자하(所以者何) 수보리(須菩提) 과거심(過去心) 불가득(不可得) 현재심(現在心) 불가득(不可得) 미래심(未來心) 불가득(不可得)이니라.
어찌한 소이이냐, 수보리야, 지나간 마음도 가히 얻을 수 없으며, 현재의 마음도 가히 얻을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가히 얻을 수 없음이니라.
※마음, 마음 하지마는 마음을 찾아보면, 마음이 실로 없다. 위에서 항하모래수와 같이 많은 중생들의 가지가지 많은 마음들을 들어서 말하였으나 이것은 다만 말이고, 이름일뿐, 과연 어떤 것이 실로 마음이냐고, 그 실상을 되잡아 물으면, 이것이라고 명확히 보여줄 것이 없다. 연기 나느 것을 보고 불이 있을 것을 짐작 할 수 있으나, 연기는 연기일 뿐이고, 정작 불은 아닌 것과 같이, 중생들의 가지 가지 항하사 모래 수와 같은 씀씀이를 보고, 이것이 모두 마음의 조화인 줄은 짐작 되나, 이것이 정작 참 마음은 아닌 것이다. 마음, 마음 하지마는 이 참 마음을 아는이는 오직 부처 한 사람뿐이다. 아니, 이 부처도 참 마음은 모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법은 모르는데 이르기까지가 구경 목적(究竟目的)이다. 나는 이런말들을 사람들에게 가끔 하고 있다. 다른 모든 학문이나, 지식은, 모르는데서 출발하여 아는데 그치고 말지마는, 불법은 아는데서 출발하여, 모르는데 이르는 것이 구경 목적이라고 한다.
독자여! 이것이 말이 되었는가 아니면 말인가를 한번 생각하여 보라.
알기는 쉬워도, 모르기가 정말 어려운 것이다. 팔만사천의 번뇌망상이모두 아는것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이 아는 것만 죽여버리면, 우리들의 얼마나 편안히 살 것인가. 참 마음이란 우리가 가진 본래 마음이다. 이 마음은 이름이 마음일뿐, 마음도 아닌 마음이다. 그러하거니, 무슨 지나간 마음, 현재의 마음 미래의 마음을 논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과거가 현재 현재가 미래이었으며 미래가 현재, 현재가 과거이어서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가 없거니, 무엇을 일러 과거 현재, 미래를 삼을 것인가, 이와 같이 마음도 마음이 아니요. 삼세도 말뿐이니, 삼세심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이시다.
여기서 독자 여러분에게 덕산선감선사(德山宣鑑禪師)의 이야기를 하여 드리고저 한다. 덕산선감선사라하면, 주금강(周金剛)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로서 금강경으로는 무소부지로 통달하였다는, 자신 만만하신 스님이신데, 그때 남방에서 참선 공부를 하는 선지식들이 있어 문자를 세우지 않고, 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르쳐,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하도록 한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사람들이 운집한다는 말을 듣고, 주금강이 생각하기를 이런 마구니들을 쳐부수어 불법을 바로잡으리라 결심하고, 자기가 손수 지은 금강경 소초(疏抄)를 짊어지고, 남방을 행하던중, 중로에서 떡 장사 노파를 만나게 되었었다. 때마침 한낮이어서 점심을 하고자, 노파에게 점심을 청하였더니 노파가 말하기를, 스님의 짊어진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주금강은 금강경소초(金剛經疏抄)라고 대답하였다. 노파는 다시 말을 이어, 스님에게 금강경에 있는 말씀을 묻고져 하니, 대답을 하여주시면 점심을 올리겠고, 대답을 못하시면 점심을 못드리겠다고 하였다. 이에 주금강은 무슨 말이고 금강경 말이면 물으라고 하였더니, 노파는 이에 금강경에 말씀하시기를, 과거 마음을 가히 얻지 못하고, 현재 마음을 가히 얻지 못하고, 미래 마음을 가히 얻지 못한다 하였다는데, 스님은 어느 곳에다 마음을 점치(點心)시렵니까, 하고물었다. 주금강은 이 말에 가슴이 딱 막혀무엇이라고 대답을 못하고 초조하였다. 이것을 본 노파는 다시 말머리를 돌리어, 남방으로 가면 용담선사(龍潭禪師)라고 하는 선지식(善知識)이 있으니 그리 가시라고 일러주었다. 이에 주금강은 머리를 숙이고, 노파의 말대로 용담선사를 친방하여 처음에 묻기를, 오래 용담이라는 성화를 들었는데, 와서 본즉 용도 보이지 않고, 못도 보이지 않는다고 화살을 던졌더니, 용담선사는 자네가 친히 용담에 왔네, 하고 온화하게 맞아주었다. 오래 오래 밤이 깊도록 서로 담화를 하다가, 주금강이 숙소로 돌아올적에, 밤이 어두어 용담선사가 촛불을 켜서 주금강에게 주었더니, 주금강은 불을 받아들고 방에서 나와, 신을 신자 마자, 용담 선사는 틈을 주지 않고 불을 확 불어 꺼버렸다. 이 순간 주금강은 문득 과거에 보지못한 신천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그 이튼날 자기가 짊어지고 온 금강경소초를, 천부 태워 버리고, 이까짓 문자가 아무 소용 없는 것이요,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도 역시, 한가한 문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하였다 한다.
법계통화분(法界通化分) 제십구(第十九)
수보리(須菩提) 어의운하(於意云何) 약유인(若有人) 만삼천대천세계칠보(滿三千大千世界七寶)
이용보시(以用布施) 시인(是人) 이시인연(以是因緣) 득복다부(得福多不) 여시(如是) 세존(世尊) 차인(此人) 이시인연(以是因緣) 득복(得福) 심다(甚多) 수보리(須菩提) 약복덕(若福德) 유실(有實) 여래불설(如來不說) 득복덕다(得福德多) 이복덕무고(以福德無故) 여래설득복덕다(如來說得福德多)니라.
수보리야, 뜻에 어떠하냐, 만약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찬 칠보로써 보시하면 이 사람이 이 인연으로써 복을 얻음이 많겠느냐, 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사람이 이 인연으로써 복을 얻음이 매우 많겠습니다. 수보리야, 만약 복덕이 실로 있을진대, 여래가 복덕을 얻음이 많다고 말하지 아니하련만, 복덕이 없는고로 여래가 말하기를 복덕이 많다하니라.
※칠보로 보시하는 복덕은, 상으로써 하는 보시이며, 함이 있는 보시이며 샘이 있는 보시이므로, 이 복덕으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지 못하므로, 복덕이 실지가 없다 말씀하시고, 복덕을 얻음이 많다 하심은 상에 주한 보시복덕, 샘이 있는 복덕도, 복덕은 복덕이므로, 이것은 사량으로 헤아릴 수 있는 숫자의 복덕이기 때문에 많다고 말씀하신 것이요, 참으로 실다운 복덕이면, 얻음이 없이 얻는, 한없는 복덕이므로 많다는 말을 붙일 수가 없는 소이인 것이다.
이색이상분(離色離相分) 제이십(第二十)
수보리(須菩提) 어의운하(於意云何) 불(佛) 가이구족색신(可以具足色身) 견부(見不) 불야(不也) 세존(世尊) 여래(如來) 불응이구족색신(不應以具足色身) 견(見) 하이고(何以故) 여래설구족색신(如來說具足色身) 즉비구족색신(卽非具足色身) 시명구족색신(是名具足色身)이어다.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냐, 부처를 가히 구족한 색신으로써 보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를 구족색신으로써 볼 수 없습니다. 어찌한 연고오리까, 여래께서 설하신 구족색신이 곧 구족한 색신이 아니요, 이름이 구족색신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또다시 상을 여이지 못하는 중생들이, 나의 삼십이상(三十二相)과 팔십종호(八十種好)의 구족한 색신을 탐내어 이것으로써 부처를 본 것으로 알가 염려하시어, 이 말씀을 소보리에게 물으심에, 수보리는 이 뜻을 알고 밖에 나타나는 구족색신을 본 것으로써 부처를 보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니, 이것은 실다운 구족색신이 아니요, 참다운 구족색신은 안으로 정과 혜가 뚜렷이 맑어 만행(萬行)이 청정하여, 시방 세계에 나타내지 아니함이 없으시사, 이것의 이름이 구족 색신인 것을 밝히었다.
수보리(須菩提) 어의운하(於意云何) 여래(如來) 가이구족제상(可以具足諸相) 견부(見不) 불야(不也) 세존(世尊) 여래(如來) 불응이구족제상(不應以具足諸相) 견(見) 하이고(何以故) 여래설제상구족(如來說諸相具足) 즉비구족(卽非具足) 시명제상구족(是名諸相具足)이니다.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냐, 여래를 가히 구족제상으로써 보느냐, 마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를 구족한 모든 상으로써 볼 수 없습니다. 어찌한 연고오리까. 여래께서 말씀하신 제상구족이 곧 구족이 아니요, 이 이름이 제상구족입니다.
※구족색신이니, 구족제상인, 부처니, 중생이니, 보았느니, 못보았느니가 모두가 한 생각의 망동이니, 이것을 모르는 한 사람만이, 가히 여래의 법신을 보았다 할것이다.
비설소설분(非說所說分) 제이십일(第二十一)
수보리(須菩提) 여물위여래작시념(汝勿謂如來作是念) 아당유소설법(我當有所說法) 막작시념(莫作是念) 하이고(何以故) 약인(若人) 언(言) 여래유소설법(如來有所說法) 즉위방불(卽爲謗佛) 불능해아소설고(不能解我所說故) 수보리(須菩提) 설법자(說法者) 무법가설(無法可說) 시명설법(是名說法)이리니.
수보리야, 너는 여래가 이러한 생각을 하되[내가 마땅히 설한바 법이 있다 하면, 곧 부처를 비방하는 것이 되고, 능히 나의 설한바를 알지 못하는 소이 이니라. 수보리야 설법이란 것은 가히 설할 법 없음이, 이 이름이 설법이니라.
※설법이라는 것은 먼저 깨친 자가 아직 깨치지 못한 자를 위하여 깨치도록 말로 일러 주는 것을 설법이라 한다.
그리하여 석가여래가 사십구년 간에 걸쳐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팔만 사천의 법문을 설하신 것이 불교의 경전이다.
이러하거늘, 이 대문에 와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어떤 사람이 여래가 설한바 법이 있다고 말하면, 이것은 곧 부처를 비방하는 것이요, 나의 설한바 뜻이 알지 못한 소이라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설법이 무슨 말씀일까.
저 위에서도 말한바가 있거니와, 불법은 다른 학문이나 지식과 달라서,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요, 바르쳐서 아는 것이 아니요, 아는 것으로써 아는 것이 아니다. 왜그런가하면, 배워서 얻을수 없고, 가르쳐서 얻을 수 없고, 아는 것으로써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법이 필요치 않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이 법은 본래 한 물건도 없다. 한 물건도 없는, 이 자리에 무슨 법이 있고, 법을 설할 자가 있고, 법을 들을 자가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설법이 필요치 않다.
그리고 또 이 자리는, 구태여 말하자면, 성현이니 법부니 중생이니, 내지 개미 벌레까지라도,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고 평등하여차별이 없다. 그러하거늘 누가 깬 자이고, 누가 못 깬 자이며, 누가 제도하고 누가 제도받을 자 인가, 그러므로 설법이 필요치 않다.
이러하므로 석가의 사십구년 설법이, 어떠한 일정한 법이 있어 설한 것이 아니요. 구태여 설법이라는 이름을 부치자면 가히 설할 법이 없다는 말뿐이다. 왜냐 하면 사람 사람마다 주리면 밥 먹고, 목마르면 물 마시는 것이 누구에게 있어서나 동일하기 때문이다.
어찌 사람만 이러할 것이나가, 짐승이나, 새나, 벌레도, 다 그러한 것이다. 그리고 어찌 설법을 입으로만 하고, 말로만 하는 것인가, 보라, 산과 물은 입이 없어도 상주(常住) 설법을 하고 있고, 꽃과 새는 말이 없어도 때를 따라 설법을 하지 않는가.
옛날 현사(玄沙)스님은 법을 설하려고 법상에 올라 앉았는데, 마침 들보 위에서 제비가 지저귀는 것을 듣고 말없이 그대로 내려오셨다 한다. 그르고 구지선사(俱祗(저袛)禪師)는 천룡(天龍)스님에게 한 손가락선(禪)을 얻어 가지고, 일생을 두고 손가락 하나로써 중생을 교화하고도 남았다 한다. 이것이 모두 설법인가, 아닌가는, 독자 여러분의 생각에 맡겨두거니와, 여래의 설하신 법은 천언 만언을 하실지라도 상이 없고 함이 없어, 종일 설하여도 설이 아닌 것이거늘, 상에 속는 부처인 중생들은, 말만 떨어지면 하나 하나의 법을 삼아 병을 만드므로, 자기의 본래성품을 망각하기 때문에, 하신 말씀임을 알아야한다.
이시(爾時) 혜명수보리(慧命須菩提) 백불언(白佛言) 세존(世尊) 파유중생(頗有衆生) 어미래세(於未來世) 문설시법(聞說是法) 생신심부(生信心不) 불언(佛言) 수보리(須菩提) 피비중생(彼非衆生) 비불중생(非不衆生) 하이고(何以故) 수보리(須菩提) 중생중생자(衆生衆生者) 여래설비중생(如來說非衆生) 시명중생(是名衆生)이니라.
제때에 혜명 수보리 부처님께 사루어 말하되 세존이시여, 단지 중생이 오는 세상에 있어, 이 법 설하심을 듣고, 믿는 마음을 내오리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수보리야 저희가 중생이 아니며 중생 아님도 아니니, 어찌한 연고이냐, 수보리야 중생 중생이라함은, 여래의 말로는 중생이 아니라, 이 이름이 중생이니라.
※수보리는 후세 중생들이 이러한 심심 미묘한 법문을 듣고, 믿는 마음을 낼는지 걱정되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는 저희들이 중생도 아니오, 중생 아님도 아니라고 하시고, 이 까닭은 중생 중생이라고 여래가 말한 것은, 중생이 아니고 그 이름만이 중생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뜻은, 중생이 아니라 함은 , 사람마다 본래 성불하였으므로 중생이 아니라는 것이요, 중생 아님도 아니라는 것은, 자기 자성이 틀림 없이 부처인줄은 알았으나, 마치 죽순이 대 구실을 못하듯이 부처가 부처 노릇을 못하고, 육진경계(六塵境界)에 속아 탐진치(貪嗔痴)의 번뇌를 일으키므로 중생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중생이 아닌 자는 부처이니 부처가 부처를 믿거나, 구할 필요가 없고, 중생은 중생이니, 부처가 되기 위하여 부처의 말을 믿고, 육파라밀(六婆羅密)을 닦아 아뇩보리(阿耨菩提)를 성취할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러므로 아니라는 중생이나 옳다는 중생이나 다 이름만 중생이지 중생이 아닌 것이다.
무법가득분(無法可得分) 제이십이(第二十二)
수보리(須菩提) 백불언(白佛言) 세존(世尊) 불(佛)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위무소득야(爲無所得耶) 불언(佛言) 여시여시(如是如是) 수보리(須菩提) 아어아뇩다라삼먁삼보리(我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 내지무유소법가득(乃至無有所法可得) 시명아뇩다라삼먁삼보리(是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라.
수보리 부처님께 사루어 말하되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심은 얻은바 없음이 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사대 그렇다. 그렇다. 수보리야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내지, 작은 법이라도 가히 얻음이 없었을새, 이, 이름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니라.
※위세서 중생이 아니고, 중생 아님도 아니라는 말씀은, 둘이 다 중생이고 둘이 다 부처라는 말씀이시니, 말하자면 부처와 중생이 부처인 중생과 중생인 부처이니 오직 하나임을 밝히시고, 이 대문에 와서 수보리는 다시 묻기를, 그러면, 부처님께서 얻으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얻은바가 없기 때문입니까, 한즉, 부처님께서는 수보리의 묻는 말을 옳다고 긍정하시었다.
그러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는 어떻게 성취하였을까, 위에서 몇 번 말하였거니와, 불법은 말이 아니고, 문자가 아니고 철학도 아니고 종교도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있다. 없다. 아니다. 기다 함이 다 거짓이다. 말이나, 문자나, 명사를 따라다니다가는, 백천겁을 불교에 몸을 받칠지라도 불법과는 거리가 십만팔천리(十萬八千理)로 멀어지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알아도 아는 것이 없이 알고, 얻어도 얻는 것이 없이 얻는 것이 불법(佛法)이니 작은 법을 즐기는 자들은 항시 상에서만 취(取)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 제이십삼(第二十三)
부차수보리(復次須菩提) 시법(是法) 평등(平等) 무유고하(無有高下) 시명아뇩다라삼먁삼보리(是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 이무아무인무중생무수자(以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 수일체선법(修一切善法) 즉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수보리(須菩提) 소언선법자(所言善法者) 여래설즉비선법(如來說卽非善法) 시명선법(是名善法)이니라.
다시 또 수보리야, 이 법이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을새, 이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이름한 것이니, 나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자도, 없으므로써, 일체 착한 법을 닦으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나니라. 수보리야 말한바 착한 법이란 것은, 여래의 말로는, 곧 착한 법이 아니라, 이 이름이 착한 법이니라.
※불법은 마음법이다. 그러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마음법이니, 이 법은 성현이나, 범부나, 더하고, 덜함이 없고, 깨친이나 깨치지 못한이와, 있고 없음이 없고 사람이나 곤충이나, 높고 낮음이 없이, 본래 평등한 것이요, 본래 구족한 것이다. 그러나 부처와 중생이 다른 것은, 부처는 깨끗한 본 마음 그대로 일체, 거슬리는 경계나, 순한 경계에도 물들어 더럽히지 않고, 중생은 본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일체 역순(逆順) 경계에 부딪치는 때마다, 부딪치는 곳마다, 변하고 변하여, 더러워지므로, 자기 자성이 부처인줄을 알면서도, 앎과 행이 일치하지 못하나니, 이것이 걱정인 것이다.
예들 들면, 모든 법의 공한 이치를 확실히 깨달아, 자기 자성이 부처님을 본 사람에게 향하여, 어떤 사람이 와서 머리를 좀 빌려달라고 청하는 이가 있다하면, 주저하지 않고 얼른 허락할 수 있겠느냐 말이다. 이것이 곧 깨침과 행이 일치하지 못한 것이다. 이것이 곧 아뇩보리를 성취하지 못한 것이다. 이것이 곧 부처를 이루지 못한, 부처인 중생이다. 이것이 곧 이치로는 사상(四相)이 공한 것을 알고, 입으로나 붓으로는 얼마든지 공한 것을 말하고, 기록하지마는,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딴판이란 말이다.
이러므로 약간의 공리(空理)를 알았다고 [내노라]하지말고, [선지식이다]자처를 하지 말고, 육도 만행의 갖은 선법을 닦아, 역순 경계에 조금도 동요되지 않고, 물들지 않고, 더럽히지 않고, 때를 따라, 처소를 따라. 중생의 근기를 맞추어 자유자재하여사, 이것을 가히 수행한 사람이라고 이름할 것이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이름할 것이니. 선한 법을 닦아도 선한 법에 무심하므로 선법이 아닌 것이다.
복지무비분(福智無比分) 제이십사(第二十四)
수보리(須菩提) 약삼천대천세계중(若三千大千世界中) 소유제수미산왕(所有諸須彌山王) 여시등칠보취(如是等七寶聚) 유인(有人) 지용보시(持用布施) 약인(若人) 이차반야(以此般若) 바라밀경(波羅蜜經) 내지사구게등(乃至四句偈等) 수지독송(受持讀誦) 위타인설(爲他人說) 어전복덕(於前福德) 백분(百分) 불급일(不及一) 백천만억분(百千萬億分) 내지산수비유(乃至算數譬喩) 소불능급(所不能及)이니라.
수보리야, 만일 삼천대천세계 가운데 있는바, 모든 수미산왕과 같은 칠보 무더기들을 어떤 사람이 가져다 보시 할지라도, 만약 다른 사람이 이반야바라밀경에, 내자 사구게등만 수지독송하여, 남을 위하여 일러주면, 이 앞에 복덕으로는 백분의 하나도 미치지 못하여, 백천만억분과 내지 숫자나 비유로써 미치지 못할바이니라.
※부처님께서는 도 다시 간절하신 마음으로, 이 경을 가지는 공덕이 한이 없음을 말씀 하셨으니, 칠보(七寶)는 값이 있는 보배요, 사구게는 값이 없는 보배인 까닭이다.
값이 있는 보배는, 아무리 많아도 쓰고 쓰면, 다할 날이 있고, 값이 없는 보배는 아무리 쓰고 써도 다함이 없는 소이이니, 어찌 칠보 보시로서 사구게의 공덕에 비할바이랴.
화무소화분(化無所化分) 제이십오(第二十五)
수보리(須菩提) 어의운하(於意云何) 여등(汝等) 물위여래(勿謂如來) 작시념(作是念) 아당도중생(我當度衆生) 수보리(須菩提) 막작시념(莫作是念) 하이고(何以故) 실무유중생(實無有衆生) 여래도자(如來度者) 약유중생(若有衆生) 여래도자(如來度者) 여래즉유아인(如來卽有我人) 중생수자(衆生壽者) 수보리(須菩提) 여래설유아자(如來說有我者) 즉비유아(卽非有我) 이범부지인(而凡夫之人) 이위유아(以爲有我) 수보리(須菩提) 범부자(凡夫者) 여래설즉비범부(如來說卽非凡夫) 시명범부(是名凡夫)니라.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냐, 너희들은 여래가 이런 생각을 갖는다고 이르지 말라. [내가 마땅이 중생을 제도한다]고 수보리야, 이런 생각을 가지지 말라 함은, 어찌한 소이이냐, 실로 여래가 제도할 중생이 없음이니, 만약 여래가 제도할 중생이 있다 하면, 여래가 곧 아인, 중생, 수자상(我人衆生壽者相)이 있음이니라, 수보리야, 여래의말에 내라고 있는 것은, 곧 내가 있음이 아니거늘, 범부들이 내가 있음을 삼느니라. 수보리야 범부라는 것도, 여래의 말씀에는 곧 범부가 아니고 이 이름이 범부 이니라.
※이 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을 주하고, 마음을 항복 받기 위하여 사상(四相)을 여의도록 하신 법문이시니, 우리의 본마음인 보리(菩提)가 본래 상이 없기 때문에 본마음에 돌아가도록 하신 것이 부처님의 뜻이거늘, 범부들은 이것을 망각하고, 나를 말하면, 아상에 걸리고 중생이라고 말하면 중생에 걸리고 범부라 말하면, 범부에 걸리나니, 여래의 말씀이신 나나, 중생이나, 범부는 이름만 다른 한 사람임을 알면 명상에 속지 않을 것이며, 상을 여인자라 할 것이다.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 제이십육(第二十六)
수보리(須菩提) 어의운하(於意云何) 가이삼십이상(可以三十二相) 관여래부(觀如來不) 수보리언(須菩提言) 여시여시(如是如是) 이삼십이상(以三十二相) 관여래(觀如來) 불언(佛言) 수보리(須菩提) 약이삼십이상(若以三十二相) 관여래자(觀如來者) 전륜성왕(轉輪聖王) 즉시여래(卽時如來) 수보리(須菩提) 백불언(白佛言) 세존(世尊) 여아해불소설의(如我解佛所說義) 불응이삼십이상(不應以三十二相) 관여래(觀如來)니이다.
수보리야, 뜻에 어떠하냐, 가히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본다 하겠느냐. 수보리 말하되, 네, 네,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사대, 수보리야, 만약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본다 할진대, 전륜성왕도 곧 여래이겠구나, 수보리, 부처님께 사루어 말하되 세존이시여 내가 부처님의 설하신바 뜻을 아는바 같아서는, 응당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본다고 못합니다.
※전륜성왕은 사주세계(四洲世界)를 맡아 다스리는 대왕(大王)이니, 부처님과 같이 삼십이상이 구족하다.
이 경 첫머리에서 이와 같이 내가들었사오니...로부터 지금까지 내려온 설법에서 불법이 무엇인가를 대강 짐작하였을 것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무엇인 줄도 알았을지니, 이 대문의 강의에 있어 구구한 설명을 피하거니와 부처님이 왜 이토록 말이 많으신가를 생각하여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단하선사(丹霞禪師) 이야기를 참고로 하나 하기로하자. 옛날 단하선사라는 조사(祖師)스님이 한분 계시었는데, 어느해 겨울 몹시 추운날, 어느 절에를 찾아 가시었다. 방에를 들어가 본즉, 삼척냉방이요, 주인도 어데를 가고 없으므로, 불을 좀 때려고, 밖에 나와서 나무를 찾은즉, 나무도 없었다. 마침 법당을 들어가 본즉, 커다란 목조불상(木造佛像) (나무로 조성한 부처님)삼존(三尊)이 계시므로, 목불 한불을 업어다 부엌에 놓고, 도끼로 쪼개서 불을 넣고, 뜨뜨한 방에 누어 잠이 들었다. 그제야 주인이 돌아와서 방에 들어와 본즉, 의외에도 방은 쩔쩔 끓고, 알지못하는 객승 한분이 코를 골고 있었으므로, 객승을 흔들어 깨워가지고, 나무가 없는데 어떻게 방을 더웁게 했느냐고 물은즉, 단하선사는 법당에서 목불을 한분 가져다 땠다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들은 주인은, 깜짝 놀래어, 큰소리로, 중놈이 부처님을 패서, 불을 때는 놈이 어데가 있느냐고 꾸짖었다. 이말을 들은 선사는, 아무 말도 없이 부엌으로 가서, 부지깽이로 다 타버린 재를 허적허적 하므로, 주인이 어이 없어, 그무엇을 하는 것이냐고 다시 물은즉, 선사는 사리(사리는 구슬이니 부처님이나 수행이 높은 스님에게서 나오는 정신의 결정인 구슬임)를 찾노라고 대답하였다. 주인은 또 다시 어이 없어, [이 중놈아 목불에서 무슨 사리가 나올 것이냐]고, 말한즉, 선사는 주인을 보고 그러면 나머지 두불상을 마저 패서 불을 때어야겠다고 하였다 한다. 그 당시 주인은 눈썹이 다 떨어지고 말았으며, 그리하여 단하선사의 목불을 때었다는 말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독자여! 여기서 조심하여야 할 것은 부처님의 뜻이 어데있는가를 알아야 할 것이고 부처님의 말만 따라다니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실다히 상을 여인 사람이라면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본다는 것이 무슨 허물일 것인가. 상이 상이 아닌 줄만 안다면, 상으로써 여래를 볼것이요. 상을 여의고서야만, 여래를 본다는 것이 도리혀 허물 되는 말이다.
왜냐 하면, 상과 상 아님을 둘로 보는 소이이니, 우리 문중에는 하나도 허물 되거니, 둘이 있을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불법은 물론 마음 법이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곧 부처인 것이니, 마음 밖에서 부처를 구함은 옳지 않다. 그러므로 자기의 참 부처를 알지 못하고, 삼십이상의 거룩한 상모가 부처인줄로 믿어, 공양승사를 한다든지, 더구나 나무나, 돌이나, 흙이나, 쇠나, 금으로 조성한 불상을 부처로 믿어, 공양승사를 하고, 기도를 한다든지, 염불, 참선을 하는 이들 중에도, 부처가 보이기를 기다리고 있다든지 하는 것은 어리석은 중에도 더 어리석은 일이요, 미신 중에도 더 큰 미신이다. 그러나 이보다도 더 크게 고치지 못 할 어리석은 병이 있으니, 이것은 다소 불교를 안다는 이들 중에 있는 병이다.
내 마음이 참 부처요, 불상은 우상(偶像)이라하여, 공양승사는 말 할 것도 없고, 기도나 예배를 하지 않는 것이다. 자기만 하지 아니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하는것 까지도 비방을 하고있는 사람이 있다.
이 것이 참으로 불법을 아는 사람이냐, 아니냐, 하는 것을 금강경을 본 독자 여러분에게 물어보고 싶다. 마음이 부처라 하니, 마음이 무엇인가 물론 불교서적을 다소 본 사람이라든지, 문자를 아니 읽었다더라도 참선이나, 염불을 좀 한 사람이면 누구나 한결 같은 소리로, 마음이란 이름도 없고, 상도 없고,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고 방원장단(方圓長短)도 없고, 청황적백도 없는 것이 마음이라고 대답 할것이다.
이경을 읽으시는 독자 여러분도, 이경에서 마음이란 이러한 것임을 짐작하였을 줄 안다. 그러면 이렇게 안것이 마음을 안 사람인가. 아니다. 마음이란, 이름도 있고, 상도 있고, 소리도 있고, 방원장단도 있고, 청황적백도 있는 것이 마음이다.
다시 말하면 다 없고, 다 있는 것이 마음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마음이 부처인 줄을 확실히 알았을진대 목불은 마음이 아니고 무엇이며, 토불, 철불, 금불은 마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절하는 것은 마음이 아니고 무엇이며, 기도나, 공양승사는 마음이 아니고 무엇인가. 사람이, 나무나 흙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우상이라고 하는 것은 불교를 모르는 삼척동자도 아는 것을 어찌 마음이 부처인 줄을 아는 사람들이 할 말이겠는가.
그러므로 모두가 병이다. 중생들이 이 병을 떼기 위하여, 부처님께서 간절하신 마음으로 중언 부언 하신 것이니, 부처님의 뜻을 취하고 부처님의 말만 따라다니지 말기를 부탁한다.
이시(爾時) 세존(世尊) 이설게언(而說偈言)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시인행사도(是人行邪道)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니라.
저 때에 세존께서 계를 설하여 말씀하시되, 만약 모양으로써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구하면,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함이라,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하느니라.
※중생의 가장 많은 병이, 상에 착하는 병이기 때문에, 상 있는 나를 본 것으로써 상 없는 참 나를 본 것을 삼지 말라, 상에서 나를 보고, 구하려고 하는 사람은, 바른 도를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여래를 보지 못한다는 말씀이시다.
무단무멸분(無斷無滅分) 제이십칠(第二十七)
수보리(須菩提) 여약작시념(汝若作是念) 여래불이구족상고(如來不以具足相故)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수보리(須菩提) 막작시념(莫作是念) 여래(如來) 불이구족상고(不以具足相故)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수보리(須菩提) 여약작시념(汝若作是念)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 설제법단멸(說諸法斷滅) 막작시념(莫作是念) 하이고(何以故)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 어법(於法) 불설단멸상(不說斷滅相)이니라.
수보리야, 네가 혹시 이 생각을 가지되[여래는 구족상을 쓰지 아니한 연고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하느냐, 수보리야. 여래가[구족상을 쓰지 않는 고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이런 생각을 하지 말라. 수보리야, 네가 혹시 이런 생각을 하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자는, 모든 법이 단멸됨을 말하는가, 이 생각도 두지 말지니 어찌한 연고이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자는 법에 단멸상을 말하지 않느니라.
※업장이 두터운 사견 중생들은 말만 떨어지면 병을 이루어, 한 병을 고치면 또 한 병이 생기고, 그 병을 고치면 또 다른 병이 생기어, 성할 날이 없으모로, 이 병을 고치기에 갖은 고심과 갖은 노력을 다하신, 대의왕(大醫王)의 대자대비하신 은혜를 또 한번 생각 하여볼 것이다.
불수불탐분(不受不貪分) 제이십八(第二十八)
수보리(須菩提) 약보살(若菩薩) 이만항하사등(以滿恒河沙等) 세계칠보(世界七寶) 지용보시(持用布施) 약부유인(若復有人) 지일체법무아(知一切法無我) 득성어인(得成於忍) 차보살(此菩薩) 승전보살(勝前菩薩) 소득공덕(所得功德) 하이고(何以故) 수보리(須菩提) 이제보살(以諸菩薩) 불수복덕고(不受福德故) 수보리(須菩提) 백불언(白佛言) 세존(世尊) 운하보살(云何菩薩) 불수복덕(不受福德) 수보리(須菩提) 보살(菩薩) 소작복덕(所作福德) 불응탐착(不應貪着) 시고(是故) 설불수복덕(說不受福德)이니라.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항하 모래와 같은 세계에 가득찬 칠보로써 보시에 가져다 쓸지라도, 만약 다른 사람이 있어 일체 법에 내가 없음을 알아, 인(忍)을 얻어 성취하면, 이 보살이 앞에 말한 보살의 얻은 공덕보다 승하리라. 어찌한 연고이겠느냐, 수보리야 이 보살은 복덕을 받지 않는 까닭이니라. 수보리 부처님께 사루어 말하되, 세존이시여, 어찌 보살은 복덕을 받지 않는다 하시나이까. 수보리야 보살의 지은바 복덕은 응당 탐내고 착(着)함이 아닐새, 이런고로 복덕을 받지 않는다 말함이니라.
※언제나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사랑하시는 자모이신지라 한 중생이라도 더 믿도록하고, 더 건지려는 생각이 노바심절 하신지라, 또 다시 이 경 가지는 공덕을 말씀 하시되, 어떤 사람이고 일체법이 내가 없는 것을 알아, 인을 성취하면 칠보로 성취한 사람의 공덕보다 승하다 하시고, 칠보 보시 보다, 승한 소이는 이 보살은 복덕을 받지 않는 까닭이라고, 어어서 말씀 하시었다. 그러면 이 대문에서는 [忍]이 무엇인 것과, 보살은 어찌하여[복덕을 받지 않는다]고 하시었는가, 이것이 중요한 뜻이나 이 경의 설법이 모두 상 없는 것을 주로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물질로 보시하거나, 법으로 보시하거나, 상관 없이 하면 복덕을 짛어도 짛는 것이 아니요, 복덕을 받아도 받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복덕에 탐착하지 않고 무심히 하는 까닭이요, [인(忍)]이란 뜻은 한자(漢字)로는 [참을인(忍)]자 이지마는, 뜻으로는 [인칠인(印)]자의 뜻과 같으니, 쉽게 말하여, 우리가 중요한 일에 중요하게 쓰는 인(印)이니만큼, 아무나 함부로 파서 쓰는 것도 아니요 인(印)은 나를 대표하는 것이므로, 일반이 나를 인증하여주는 거짓 없는 실다운 것이 된다. 그러므로 일체 법이 내가 없음을 알아 인(忍)을 성취하였다는 것은, 곧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없음을 이치로만 안 것이 아니라, 앎과 행이 둘이 아니어서 지행이 일치 되어가지고, 다시 동요됨이 없고, 속임이 없고, 굳어져서 다시는 변함이없이 여여하여, 어떠한 곳, 어떠한 때에나 다시는 낳고 멸함이 없고, 더하고 덜함이 없이, 요지부동으로 하나가 된 것을 인이라 하는 것이니, 이치가 그러하니만큼, 행도 하나가 됨을 말하심이다.
위의적정분(威儀寂靜分) 제이십구(第二十九)
수보리(須菩提) 약유인(若有人) 언(言) 여래약래약거(如來若來若去) 약좌약와(若坐若臥) 시인(是人) 불해아소설의(不解我所說義) 하이고(何以故) 여래자(如來者) 무소종래(無所從來) 역무소거(亦無所去) 고명여래(故名如來)니라.
수보리야,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되, 여래가 온다거나, 간다거나, 앉는다거나, 눕는다거나 하면 이 사람은 나의 말한 바 뜻을 알지 못함이니라. 어찌한 연고이냐 여래라는 것은 온 바도 없으며, 또한 가는 바도 없는고로, 이름이 여래라 하나니라.
※오고 와도 옴이 없고, 가고 가도 감이 없고, 앉고 누워도 앉고 눔이 없이, 오고, 가고, 앉고, 눕고 하는 것이 곧 여래인 줄을 알면, 가히 이 경을 수지 독송 하였다 할 것이다.
일합이상분(一合理相分) 제삼십(第三十)
수보리(須菩提) 약선남자(若善男子) 선녀인(善女人) 이삼천대천세계(以三千大千世界) 쇄위미진(碎爲微塵) 어의운하(於意云何) 시미진중(是微塵衆) 영위다부(寧爲多不) 수보리언(須菩提言) 심다(甚多) 세존(世尊) 하이고(何以故) 약시미진중(若是微塵衆) 실유자(實有者) 불즉불설시미진중(佛卽不說是微塵衆) 소이자하(所以者何) 불설미진중(佛說微塵衆) 즉비미진중(卽非微塵衆) 시명미진중(是名微塵衆) 세존(世尊) 여래소설(如來所說)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 즉비세계(卽非世界) 시명세계(是名世界)니.
수보리야, 만약 선남자, 선녀인이 삼천대천세계로써 부셔서 먼지를 만들면, 뜻에 어떻다 하겠느냐, 이 먼지들이 진실로 많음이 되겠느냐. 매우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어찌한 연고이냐 하면 만약, 이 먼지들이 실다히 있는 것이진대, 부처님께서 곧 이 먼지들이라고 말씀하시지 아니할 것입니다. 어찌한 소이이냐 하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먼지들은 곧 먼지들이 아니요, 이 이름이 먼지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 하신 바 삼천대천세계도, 곧 세계가 아니라, 이 이름이 세계입니다.
※먼지도 먼지가 아니요, 세계도 세계가 아니라면 이것이 무엇인가. 모두다, 거북털과 코끼뿔인 것이다. 거북털과 토끼뿔이 실다운 것이 아닌줄 알면, 먼지도 세계도 실이 아닌 것을 알 것이다. 중생들의 마음 가운데에는 삼천대천세계도 격립되어 있고, 불가설 불가설의 미진 수의 중생들이 일일 일야에도 만번 낳고, 만번 죽고 한다. 그러나 먼지가 모여서 세계를 이루고, 세계가 부서져 먼지가 되는 것이므로 먼지나, 세계가, 따로 제실상이 없듯이, 중생들의 마음 가운데에서 일어나는 무량한 세계라든지 한없이 일어나고, 죽고 하는 번뇌가 모두 허환하여서, 그저 이름이 먼지요 세계이지, 참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이고(何以故) 약세계(若世界) 실유자(實有者) 즉시일합상(卽是一合相) 여래설일합상(如來說一合相) 즉비일합상(卽非一合相) 시명일합상(是名一合相) 수보리(須菩提) 일합상자(一合相者) 즉시불가설(卽是不可說) 단범부지인(但凡夫之人) 탐착기사(貪着其事)니라.
어찌한 연고입니까, 만약 세계가 실다히 있는 것일진대, 곧 이 한뭉치의 상이라 할 것이다, 여래의 경계로는, 한뭉치도 곧 한뭉치가 아니요, 이 이름이 한뭉치의 상입니다. 수보리야, 일합상 한뭉치란 것은, 곧 가히 말로 못할 것이거늘, 다만 범부의 사람들이 그 일에 탐착하나니라.
※먼지고, 세계고 하는 것이 거짓 이름뿐이니, 만약 실상인 세계가 있다 하면 이것은 한 뭉치의 상이라고나 말할 것이다. 그러나 여래의 경계에서 보면, 한 뭉치는 말도, 말로 한 뭉치이지, 한 뭉치도 아니라는 것이니, 한 뭉치라는 것은, 번뇌와 보리가 둘이 아니요, 중생과 불이 둘이 아니요, 상과 비상이 둘이 아니라는 말이다.
어째서 그러냐 하면, 번뇌를 버리고 보리가 따로 없으며, 생사를 떠나서 열반이 따로 없으며, 중생을 버리고 따로 불이 없으며, 상을 떠나서 상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니, 번뇌니, 보리니, 생사니, 열반이니, 중생이니, 불이니, 상이니, 비상이니가 모두 한덩어리, 한뭉치인 세계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 한더어리 상이라는 것도, 여래의 경지에서 보면 한덩어리가 아니요 거짓 이름한 것이니, 이 자리에는 아뇩보리니, 저 언덕이니, 부처니, 여래니 하는 것까지도, 모두 죄가 되는 망설이기 때문이다. 독자는 이 경[본심]의 진리를 묵묵히 참고하여 보라. 어찌하여 모두 마구니의 말이 된다는 것인가, 그러므로 일합상이란 이치는 마로 다 할 수 없거늘, 이것을 모르는 범부들은 이치와 일이 하나인 줄은 알지 못하고, 그 일에만 탐착하고 있으며, 하나인 줄을 알았다는 사람도 하시 둘이 되어, 아는 것과 행이 일합이 못 되니 불법을 공부한다는 자, 어찌 아는 것으로써 만족을 삼을 것인가.
실로 육도만행을 닦고 닦아, 백천생을 단련하여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될 큰 원(願)을 세워야 할것이다.
지견불생분(知見不生分) 제삼십일(第三十一)
수보리(須菩提) 약인(若人) 언(言) 불설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佛說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수보리(須菩提) 어의운하(於意云何) 시인(是人) 해아소설의부(解我所說義不) 불야(不也) 세존(世尊) 시인(是人) 불해여래소설의(不解如來所說義) 하이고(何以故) 세존(世尊) 설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說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즉비아견(卽非我見) 인견(人見) 중생견(衆生見) 수자견(壽者見) 시명아견(是名我見) 인견(人見) 중생견(衆生見) 수자견(壽者見)이니이다.
수보리야, 만약, 사람이 말하되, 부처가 나라는 지견과 남이라는 지견과 중생이라는 지견과 수자의 지견을 말하였다 하면, 수보리야, 뜻에 어떠하냐, 이 사람이 나의 말한바 뜻을 안다 하겠느냐, 아니라 하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이 여래의 설한바 뜻을 알지못한 것입니다. 어찌한 연고이냐 하면, 세존께서 설하신 아견, 중생견, 수자견은 곧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이 아니요 이 이름이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인 것입니다.
※사은 밖에 나타나는 것을 말하고, 지견은 손에서 헤아리는 것을 뜻한 것이나, 안에 있으면 밖에 나타나고, 밖에 나타나면 안에 숨어 있을 것이니, 상이 없으면 견(見)도 없는 것이요, 견이 없으면 상도 없는 것이다.
저 위에서 말씀하신 아상도, 곧 상이 아니요, 인상 중생상 수자상도 상이 아니라는 말씀이나, 말은 달라도 뜻은 한가지이니, 구태여 문자 해석에 구구할 것은 없는 것이다.
수보리(須菩提)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 어일체법(於一切法) 응여시지(應如是知) 여시견(如是見) 여시신해(如是信解) 불생법상(不生法相) 수보리(須菩提) 소언법상자(所言法相者) 여래설즉비법상(如來說卽非法相) 시명법상(是名法相)이니라.
수보리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자는, 일체법에 응당 이와 같이 알며, 이와 같이 보며, 이와 같이 믿어 알아, 법상을 내지 말지니라. 수보리야, 말한바 법상이란 여래의 말로는 곧 법상이 아니라. 이 사람이 항시 자기를 미(迷)하고, 물건만 쫓아다니면, 경계를 당할 때 마다 마음이 항시 시끄럽고, 천파만랑(千波萬浪)의 파도(波濤)중에서도, 자기를 매(昧)하지 아니하면 마음이 항시 고요하여, 편안한 것이다. 그러므로 잘 살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일체 경계에 부딪힐 때 마다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고, 이렇게 믿어 마음을 동하지 말지니라, 마음을 동하지 말라는 말도, 중생들의 말로는 벌써 동한 것이 된다.
이것으로써 하권 처 머리에서 수보리가 물은바 [잘 살려는 마음을 내었다면 어떻게 응당 머무르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으오리까]를 매잘라 말씀하신 것이다.
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 제삼십이(第三十二)
수보리(須菩提) 약유인이만무량아승지세계칠보(若有人以滿無量阿僧祗世界七寶) 지용보시(持用布施) 약유선남자(若有善男子) 선녀인(善女人) 발보살심자(發菩薩心者) 지어차경(持於此經) 내지사구게등(乃至四句偈等) 수지독송(受持讀誦) 위인연설(爲人演說) 기복(其福) 승피(勝彼) 운하위인연설(云何爲人演說) 불취어상(不取於相) 여여부동(如如不動)이니.
수보리야, 만약 사람이 있어, 무량 아승지 세계에 가득찬 칠보로써 가져다 보시에 썼다 할지라도, 만약 선남자, 선녀인이 보살심을 발한자 있어, 이 경을 가지되, 내지 사구게만이라도 수지독송하여, 남을 위하여 연설하면 그 복덕이 저보다 승하리라. 어떻게 하는 것이 남을 위하여 연설 함인고. 상을 취하지 아니하여, 여여부동 할지니라.
※독자여! 어떤 것이 상을 취하지 않는 것인가, 상을 상으로 알고, 상으로 취하는 것도 상이요, 상을 상 아닌 것으로 알아, 상을 취하지 않는 것도 상이다. 상에 착(着)하는 것도 상이요, 상을 여이었다 함도 상이니, 어떤 것이 상을 취하지 않고, 여여하여 동하지 않는 것이냐 본래 한 물건도 취하지 않고, 한 물건도 버리지 않는 것이, 상을 본래 취하지 않는 것이된다. 취하지 아니하려는 생가으로 취하지 않는 것이 아니요, 버리지 아니하려는 생각으로 버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본래 그 자리가 그러한지라, 우리들의 행하는 것도 그 자리와 같이 그렇게 행하고 움직이지 말라는 말씀이시다.
지극한 도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오직 간택(揀擇) (분별하는 것)하는 것을 혐오(嫌惡)한다고 고인이 말씀하시었으니, 간택하는 마음만 없으면, 이것이 곧 부처요, 이것이 곧 불법이요, 이것이 곧 바라밀이요, 이것이 곧 가장 잘 사는 법이다.
그러므로 공부가 다른 것이 공부가 아니라, 여여부동(如如不動), 마음을 동하지 않는 것이 공부요, 수행이, 다른 것이 아니라, 어떠한 경우, 어떠한 때를 당할지라도, 제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 수행이요, 도인이, 다른 것이 도인이 아니라,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기쁘고, 성내고, 슬프고, 즐거웁고, 헐고, 찬하는 경계에 처하여 조금도 흔들림이 없어, 여여부동 하는 것이 도인이요, 부처가 다른 것이 부처가 아니라, 내가 부처라는 생각을 가지지 않는 것이 부처인 것이다. 부처라는 생각을 가지면 이것은 벌써 부처가 아닌것이 되고 만것이다.
하이고(何以故)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하라.
어찌한 연고이냐, 일체 함이 있는 법은, 꿈이요, 환이요, 거품이요, 그리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 같나니, 응당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질지니라.
※함이 있는 법이란 것은, 나고, 멸하는 법이니, 변하고, 움직이고, 있다, 없다, 하는 상에 취하는 마음과 일과 경계등을 말함이다. 곧 유심으로 하는것은, 모두가 함이 있는 법이니, 이 법은 실답지 못하고 허망하여, 꿈과 같고, 환과 같고, 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고, 아침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으니, 낳고 멸함이 없고, 있고 없음이 없고, 크고 작음이 없고, 밝고 어둠이 없고, 얻고 잃음이 없는 적멸무위의 법을, 나도 알고, 남도 알리어 나도 행하고, 남도 행하도록 하여,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하나도 빠짐 없이, 이 하염없는 안락국토에서 자고 먹고, 먹고 자고, 영원히 잘 살도록 하라는 부처님의 간절하신 위촉이 이 대문에 은근히 숨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불설시경이(佛說是經已) 장노수보리(長老須菩提) 급제비구비구니(及諸比丘比丘尼) 우바새우바이(優婆塞優婆夷) 일체세간천인아수라(一切世間天人阿修羅) 문불소설(聞佛所說) 개대환희(皆大歡喜) 신수봉행(信受奉行)하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여 마치시니, 장노 수보리와 및 모든 비구, 비구니며, 우바새, 우바이며, 일체 세간에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등이, 부처님의 말씀하신 바를 듣고, 다들 크게 환희하여, 믿어 닦고, 받들어 행하니라.
※비구니는 여자 비구란 말이요, 우바새는 청신사(淸信士)요, 우바이는 청신녀(淸信女)이다. 이 윗대문까지 부처님께서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을 설하여 마치시니, 그때 대중에 장노 수보리를 비롯하여, 모든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며 일체 세간에 천인아수라(天人阿修羅)들이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실상묘법을 듣고, 크게 무위법(無爲法)의 법열(法悅)에 환희하여 불퇴전(不退轉)의 원력(願力)으로써 믿어 가지고 받들어 행하다.
이상 금강반야바라밀경 해설을 마침니다
불자님들 성불합시다 虛 心 합장
첫댓글 마하반야바라밀_()_
감사합니다 南 無 阿 彌 陀 佛 _()_
감사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_()_
감사합니다 南 無 阿 彌 陀 佛 _()_
감사합니다~ 南 無 阿 彌 陀 佛 ()()()
감사합니다, 南 無 阿 彌 陀 佛 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