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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10.17 11:13
전주에서 만나는 한옥마을과 레알 뉴타운
전주에서의 시간은 묘하게 흘러갔다. 느리게 천천히 스며들듯 흘러가다가도 신 나고 빠르게 한바탕 휘저으며 재빠르게 말이다. 전주 토박이라던 택시 기사 아저씨의 느긋한 말투처럼 한옥의 돌담, 기와 한 장의 여유롭게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북적북적 남부시장으로 향하고 어디보다 흥겹게 흘러가는 레알 뉴타운에 당도하게 된다.
전주 소리 축제의 일부분이던 사물놀이팀이 흥겨운 태평소 소리가 빠르게 몸을 휘감으며 지나가고 어디서 들려오는지 아스라이 들려오던 가야금의 튕김 음이 들려오는 순간, 알았다. 전주가 얼마나 매력적인 곳인지. 옛 것을 간직한 전주 그리고 새로움이 살아 넘치는 전주, 전주는 그렇게 이색(二色)적이다.
한옥마을, 기와 아래 또롱또롱 맺힌 옛 이야기들
▲ 전주에서 내가 가장 보고 싶었던 풍경, 눈이 내리면 또 가고 싶다.
전주행이 결정되었을 때 설레던 기분은 여느 여행지와는 또 달랐다. 쉽게 갈 수 있는 국내임에도 '곧'이란 기약 없는 말로 미루고 미루던 나. 그래서 오히려 해외에 비해 국내여행을 많이 하지 못했다.
여행지에 우선순위를 매긴 것도 아니지만, 늘 국내여행은 가까우면서도 멀었던 존재였다. 그래서 더 특별했다. 한옥마을을 걸으면서도 눈이 반짝반짝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오로지 하나. 전주라서.
을사늑약 이후 점점 전주 일대를 채워나가는 일본 상권의 세력에 대항해 오로지 '지키겠다'는 의지로 땅을 사들이고 한옥을 지어 마을을 만들어 나갔다는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뭉클하다는 단어 외엔 표현할 수 없다.
그렇게 이루어낸 곳이기에 오목대 위에 올라서서 오밀조밀 모여있는 한옥의 용마루를 바라보고 있으면 기왓장 하나하나에 남아있는 선조들의 이야기가 그렇게 감동적일 수밖에 없는 거다.
그래서 한옥마을은 그 어디보다 느릿하게 움직이는 게 어울린다. 그 이름의 매력이 알려져 많은 상권이 접어들어 그때의 그 모습 온전히 다 남아있지 않아 아쉬움이 있더라도 조금은 천천히 둘러보고 싶은 곳이 이곳이었기에 조금은 여유롭게 그려놓은 계획은 내려놓고 움직여본다.
꽃망울을 터뜨린 코스모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 뒤로 보이는 기와지붕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도 담장 너머로 보이는 항아리에 담긴 이름 모를 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도 이곳이라서 가능한 시간이다.
걸음을 내딛는 정도에 따라 한옥 마을을 둘러보는 것은 사실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이 시간이 짧게 느껴지면 한옥마을 둘레길인 '숨길'을 걸어봐도 좋고 바로 근처인 자만 마을까지 올라 담장의 그림을 봐도 좋다.
애초부터 계획 짜는 것이 서툰 나는 두서없이 걸어 다니기만 했지만, 그것도 이곳이기에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던가. 그래서 전주가 참 좋았다.
두서없이 한옥마을을 걷다가 발길 닿은 곳들
▲ 남부시장으로 향할 때도 다시 만나게 되는 풍남문
언제나 그 자리에 풍남문
한옥마을로 들어가기 전에 만나게 되는 풍남문은 전주를 둘러싸고 동서남북으로 만들어진 네 개의 문 중 남문. 정유재란 때 모든 문이 화재로 소실되어 버리고 영조 때 '명견루'라는 이름으로 다시 건축되나 다시 화재로 소실되어 버린다. 그 후 다시 관찰사 홍낙인에 의해 풍남문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진 것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사연 많은 건축물.
▲ 영화 '약속'에서 박신양과 전도연이 결혼을 한 전동성당
호남 지역 최초이자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물, 전동성당
한옥마을을 들어가기 전에 만날 수 있는 이곳은 천주교도 순교 터에 그 뜻을 기리고자 지어진 건물로 우리나라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의 한 곳으로 꼽히기도 하며 박신양, 전도연 주연의 영화 '약속'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이날은 때마침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었던지라 하객과 관광객이 섞여 상당히 북적북적한 분위기였는데 그들의 결혼식에 끼어든 느낌이라 축복을 비는 걸로 미안한 마음을 대신했다.
▲ 가운데로 난 신도(神道)로는 다니면 안된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왕의 초상화)을 모신 곳, 경기전
한옥마을 입구에서 만날 수 있는 두 곳 중의 하나가 경기전으로 역사에 대한 흥미가 없다면 지나칠지도 모르지만, 조선왕조 500년 역사의 시작을 알린 태조를 만날 수 있는 곳이기에 특별하다.
실제로는 이것보다 훨씬 큰 규모였다는데 일제시대 때 일본인 소학교를 세우기 위해 절반 정도가 잘라나갔다고 한다. 왠지 보듬어 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생각보다 오랜 시간 발길을 옮기지 못했나 보다. (입장료가 1,000원밖에 하지 않으니 개인적으론 한번쯤 둘러보았음 하는 곳이다.)
▲ 단풍이 질 때 이곳을 찾는다면 그 매력은 배가 된다.
▲ 마루에 몸을 누이고 한 숨 쉬어가는 시간
누구나 쉬어가면 좋을 이곳, 오목대
왜구를 정벌하고 개성으로 돌아가던 길에 이성계 장군(훗날 태조)이 연회를 열어 자축하며 훗날 조선 건국의 야심을 품기도 했던 곳, 후에 그의 생각대로 조선을 건국하고 나서 그곳에 정자를 지어 붙인 이름, 바로 이곳 오목대다.
이곳은 그가 쉬어갔던 것처럼 전주를 느긋하게 걸어 다니다가 지칠 때 즈음 쉬어가기에 최고의 장소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한옥마을의 풍경을 눈에 담기도 좋지만, 정자 위에 올라 마루에 몸을 뉘어보면 정말 꿀맛이다.
▲ 수학하는 학생들로 가득했을 명륜당
드라마에 나와 더 유명해져 버린, 전주향교
조선 시대 지방양반들의 자제들이 공부하기 위해 만들어진 향교 성균관.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 나오며 전주향교는 그 드라마의 배경이 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보호수로 지정되었을 만큼 오랜 시간 동안 그 자리를 지킨 다섯그루의 은행나무가 이곳을 드나든 사람을 계속 지켜봐 왔을텐데 그 세월의 변화가 어땠을지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곳이었다.
레알 뉴타운, 진짜가 나타났다!
"진짜 레알이요? 리얼이 아니고?" 한옥마을 구경을 느긋하게 끝내고 다음 장소를 향해 갈 때였다. 처음 레알 뉴타운이란 이름을 들으면서도 그러려니 했던 건, 리얼을 '레알'로 발음하는 시쳇말 때문에 그냥 애칭 같은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선명하게 적혀있던 '레알 뉴타운'이란 글자를 봤을 땐 깜짝 놀랄 수 밖에. 진짜가 나타났다. 레알 뉴타운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 4월에서 11월 동안은 매주 첫째, 셋째주 토요일에 야시장이 열린다.
레알 뉴타운, 혹은 '청년몰'로 불리는 이곳은 전통의 이미지가 강하던 전주에 새바람을 불러 일으킨 공간이다. 톡톡 튀는 디자인과 키치한 분위기, 젊음이 가득한 이곳은 남부시장 2층에 자리 잡은 공간으로, 원래 상인들의 창고로 쓰이던 곳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전통시장을 살리고 청년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시작된 문전성시(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 프로젝트를 통해서 이렇게 특별한 곳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레알 뉴타운, 혹은 '청년몰'로 불리는 이곳은 전통의 이미지가 강하던 전주에 새바람을 불러 일으킨 공간이다. 톡톡 튀는 디자인과 키치한 분위기, 젊음이 가득한 이곳은 남부시장 2층에 자리 잡은 공간으로, 원래 상인들의 창고로 쓰이던 곳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전통시장을 살리고 청년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시작된 문전성시(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 프로젝트를 통해서 이렇게 특별한 곳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 모아 말한다. "적당히 벌고 아주 잘살자." 이 문구를 보는 순간 짠한 감동을 한 건 단순히 이곳에 대한 설명을 좋게 늘어놓기 위해서가 아니다. 한창 생각 많고 앞으로의 해야 할 일들에 대한 걱정이 많은 요즘의 내게 꼭 들었으면 하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었다. 아등바등 돈을 벌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벌면서 즐겁게 잘 사는 것, 그래도 괜찮다는 위로처럼 들렸기에 나는 감격했다.
재활용 가구와 자재들을 구해다가 직접 하나하나 자기들 손으로 뚝딱거려 만든 손때 가득한 인테리어를 보고 있자면 젊다는 혈기 하나로 전주시장의 전통을 망쳤다거나 그 명맥을 해친다는 이야기는 절대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시장의 매출을 늘리고 청년층의 시장 유입률을 높여 시장의 터줏대감 어르신들의 생각을 바꾸고 있을 정도라니
이곳은 전주에서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매력적인 공간이 아니겠는가. 나는 전주가 더욱 좋아졌다.
즐겁게 레알 뉴타운을 홈쳐보다
건강한 레몬 오미자차 한잔 마시고 피로야 저리 가라, 카페 차와 CHA WA. 훈남 두 명이 함께 열심히 운영중이던 카페 차와. 그래서인지 어느 곳보다도 꽉 차 있는 카페였다. 전날 막걸리 투어의 여파로 피곤함이 가시질 않아서 커피가 아닌 레몬 오미자차를 마시면서 힘을 냈던 곳. 얼마나 많은 이들의 손을 탔을지 모르는 '손대지 말아 주세요 타자기'가 근사하던 창가 자리가 탐났지만, 차를 다 마시고 일어날 때 즈음 되어서야 자리가 비워졌다.
니들은 참말로 열심히다, 청춘식당
앞서 말한 막걸리 투어의 여파로 '낮술 환영'이란 문구를 보면서도 설레는 마음과 달리 향하지 못했던 청춘식당. 어디선가 떼어와 단 문짝과 삐뚤삐뚤한 글자로 쓰여진 간판이 어찌나 마음에 들던지. 낮술 한잔 걸치면서 하하 호호 웃는 사람들을 부러운 눈으로 살펴보며 다음엔 꼭 들르리라 마음먹었다.
아날로그적으로 한판 붙어볼까, 같이 놀다 가게
같이 놀다 가라고 말을 걸어주는 가게 앞에 섰다. 무엇을 하는 곳인가 슬쩍 들여다보니 조그만 테이블에 사람들이 모여앉아 무언가를 한다. 다시 가게 밖을 살펴보니 조그맣게 보드께임방이라고 적혀 있다. 그 이름 참 오랜만이다. 보드게임. 친구들과 전주를 와야지 생각하던 차에 여길 들어가면 정말 제대로 왁자지껄하게 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 나만의 '파리지옥' 화분을 만들 수 있다.
다음엔 꼭꼭 들어가 보고 싶어요, 범이네 식충이
그동안 수많은 포장 가능이란 문구를 봤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다. 파리지옥 포장 가능이라니. 파는 식물도 특이하고 그 문구 또한 마음을 사로잡아 가게 안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쉬는 날이었다. 레알 뉴타운의 가게들은 일요일과 월요일에 주로 쉬기 때문에 그 외의 요일에 가야 제대로 다 볼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청춘식당에 이어서 가봐야 할 곳이 한 곳 더 늘고 이렇게 레알 뉴타운에 또 다시 와야겠다고 다짐한다.
전주 유일의 멕시코 음식점, 까사 델 타코
이 가게야말로 레알 뉴타운에서 가장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질문 하나하나 정성껏 대답해 주는 그의 마음씨와 말솜씨에 반한 것도 사실이고, 음식이 하나같이 맛있었기 때문. 이미 콩나물국밥과 어제 남은 술빵으로 배를 채울 만큼 채우고 갔음에도 나초와 퀘사디아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어 치우고 닭봉에 안 마시겠다던 맥주까지 2캔을 마셔버렸으니 이것이야말로 대단한 맛집이 아닌가 싶다.
아쉽게도 아직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 곳도 더 남아 있고, 이번에 찾아가 보지 못한 장소도 생겼다. 전주라서 눈을 반짝이며 시작한 여행은 예상대로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어 즐거웠고, 예상치 못한 재기발랄함에 신이 나기도 했다. 한옥 지붕 아래 매달렸던 옛 선조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개성 넘치는 친구들이 만들어나가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았던 시간. 옛날의 멋과 지금의 멋이 채워 나가는 이색(二色)적인 매력의 전주는 그래서 그 어느 곳보다 이색(異色)적이다. 그리고 나는 그 전주가 정말 좋았다.
전주여행을 계획하는 당신에게
1. 전주 역 앞에 있는 관광안내소에 꼭 들려서 지도를 챙기면 교통안내에서부터 한옥마을투어 정보까지 한번에 얻을 수 있다.
2. 아주 잘 만든 전주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 http://tour.jeonju.go.kr/index.sko
3. 진짜로 마음에 든 이곳, 남부시장 2층 청년몰 레알뉴타운 홈페이지 : http://simsim1968.blog.me/
1% 소소한 이야기 : 10월 24일부터 27일까지 전주 비빔밥 축제를 개최! 또 가고 싶다. http://www.bibimbapfe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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