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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슈는 중국의 전통 무술로, 우슈란 무술의 중국 발음이다. 중국 선종의 시조 달마선사가 고대 인도의 무술을 응용하여 소림사에서 9년 동안이나 참선 후 승려들의 신체단련을 목적으로 발전시킨 쿵후를 현대적으로 표현하는 경기이다. 오늘날 공식 경기에서는 태권도처럼 두 선수가 맞붙어 기량을 겨루는 종목이 아니라 혼자서 무술이 지닌 예술 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종목이며, 최근에는 실전성을 위해 산타라는 대련 경기도 일부 운영되고 있다.
대한민국에는 광복 후 전국 각처에서 우슈 수련장이 문을 열었으며, 1980년대에는 각종 경기단체가 생겨났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아 경기 대회 때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1994년 히로시마아시아 경기대회서는 태극권(太極拳), 남권(南拳), 장권(長拳)으로 나뉘어 남녀 도합 6개의 금메달을 놓고 기량을 겨루었었다고 위키백과 사전이 설명해 주는 우슈 ㅡ 그 우슈경기가 아시안게임이라는 이름으로 이곳 강화도 고인돌체육관에서 펼쳐진다니 황금들녘 나들길로 향하는 맘 잠시 접어놓고 검술을 겸한 여자 장권을 보고있는 중
사진이 흔들려 제모습을 전하지 못하나 참으로 훌륭한 모습이었다.
일본선수를 첫 시작을로 펼쳐진 여자 검과 함께하는 남권 이선수는 어느나라였는지 기억에 없지만 아주 야무지게 잘하는 모습
대한민국 임성은 선수 ㅡ 검술과 함께하는 남권을 선보이는데 처음선수가 펼쳐보인순간 내지르던 괴성의 소리가 익숙치않아 거부감이 들었는데 한국선수의 경기중 포효하는 소리엔 저절로 온 몸에 소름이 확 돋게하는 무언가 전율케하는 알수없는 힘이 가득들어 있었다.이 때 결과는어찌 나올지 몰랐으니 게임후 결과는 .. 남도와 남권 종합 8위였다고.
칼소리 윙윙 거려선지 날선 칼끝이 경기중인것인데도 그닥
담고싶은 맘이 생기질않아 그냥 경기관전만 하다가 그래도 순간순간 어찌나 날렵하고 민첩하게 움직여대던지 ㅡ 얼마나 애들을 썼을까? 얼마나 많은 땀들을 등줄기로 흘려내렸을까? 칼은 아니어도 남자선수들 장권 그거 나두하고픈 수련인데 ... 이 생에 인연 멀어도 언젠가는 해야지하는..
처음 3년간은 무술로 배우나 그 후론 무공을 향해 나아간다는 몸수련 우슈 지금은 어린 선수들이지만 세월 깊어감에 따라 깊은 내공의 힘속으로 정진하여 세계사에 길이 남는 각 나라의 선수들이길 기원해본다. 장한 선수들 누구하나 빠짐없이
이렇듯 아시안게임이라는 이름하에 비록 잠시지만 같은자리에 함께한 인연에 감사하며 그녀들 모두에게 힘찬박수를 보냈다.
오전 11시가 막 지나 끝난 오전경기는 오후 2시 시상식과 함께 다시 열린다고..
천천이 걸어 점심먹고 와야지 했던 체육관 한켠에 무슨일?
강화 관광안내관에선 강화군과 태국 자원활동을 하시는 님들 강화도 관광안내 설문조사중 조사를 마친 사람들에겐 추첨을 통해 강화섬쌀. 10.000원권 관광안내책자.수자기손수건. 고인돌 한바퀴돌기를 태워주기도하며 아시안게임을 통한 강화도홍보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 울이는데 안내소장님도 밝은 얼굴로 사람들을 맞이하고 계셨다. 그늘에서 쉬며 즐거운시간 되시라는 말씀과 함께.
조용하던 홍보관은 순식간에 할아버지 할매들 장사진을 이루시기도하고
자원봉사자들이며 관계자분들도 각국 선수들이며 응원단들도 차량이용 점심들 하러가는 중
두시간이면 잠시 중성길을 오랜만에 만나도 좋을 듯 싶어 산길로 접어드니 발치엔 햇밤 제멋대로 이리딩굴 저리딩굴 " 나 아람벌어 떨어졌다요." 중 구절초핀 숲길은 솔향 가득한속에 제홀로 깊고
간간이 억새꽃 숲길을 수 놓아 운치를 더했다.
소나무에 등 기대 밤 두알 까먹고 방울토마토 몇개 아직은 숲속인데도 볕이 덥다.
고려궁 성곽길 북서쪽 여전히 복원전인 산성길은 옛 서정 그대로
이가 빠진 달각새맹키루 바닥에 굴러떨어진 성돌이 가을풀을 친구하고
고려궁 성곽길은 이리저리 구불휘어져 옛시절 추억속에 새로운 날들에로의 힘찬도약을 꿈꾸는 이들에게 솔 숲 오솔길의 미학을 설해준다.
고려궁 성곽길을 쓰는 아저씨는 심근경색후 지금은 맨발로 이 길을 걸으시려고 시간이 날 때마다 점심시간 올라오셔서 쓸고 후다닥 샤워하시고 오후 출근하러 가신다고.
이 길을 다니시며 건강을 회복하셔서 지금은 외려 아픈사람들을 도와주시는 복지일을 하신단다. 민둥산시절이던 70년대 초 우덜이 심은 나무라고 여쭈니 맞다고 그시절 그 땐 민둥산 벌거숭였다구.
물병의 주인장은 중성을 향해 올라가시며 아버지 잘 계시냐고 물으신다. 어데요? 작년 이맘때 바로전 돌아가셨는걸요. 아침 잘 드시고 장에 가서 녹두 1되 사오시고. 아이구 저런 그래서 그렇게 안 보이셨구나하시며 잘 댕겨가라시고... 읍내서 가게하시는 아저씨다.
오른쪽 샛길로 내려가면 바로 진고개너머다.
먼발치 피어있는 보라빛 야생화가 강렬한 한 낮의 가을볕아래 그래도 눈맞춤하고 가라고.
15살 어린청춘 얼기설기 정자에서 바라본 읍내 관청리 정경이다.
ㅡ 위쪽이 얼기설기 정자 .. 군산이 고향이신 할아버지 한분이 몸이 아파 40년전 이곳 강화도로 오셨는데 15년전 이 정자를 손수 지으셨단다. ㅡ
올라가 보아도 되느냐고 여쭈니 흔쾌이 끄덕이시며 나무 조심밟고 올라오라신다. 정자엔 티비가 두개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뉴스를 보시며 민주당 영근알맹이들은 다 없어지고 하며 혀를 차신다. 뭔가 맘에 영 안드시는가보다. 그러나 할아버지 꽃밭은 얼마나 소박하고 수놓은 듯 정갈하던지 ... 가을 채소들이 도래도래 자라고 있었다. 이빠게.
아침 일출과 월출이 정말 근사할 정자였다. 정자앞으로 몇동의 빌라가 가을볕속에 조용했고. 마치 온 겨울내내 난방을 안해도 해만 나면 봄 날처럼 따뜻할것만 같았는데 조용하고 주택가론 아주 그만이구나 싶은 곳이었다. 언젠가 다시 한 번 가 보아야겠다는 생각 절로들던.
향교길에서 옛 서문교회 넘던 언덕배기 길옆 1974년 중학교 3학년때 담임샘이셨던 수학선생님 김수범선생님이 언니랑 같이 살았던 집 어쩜 옛모습 그대로 한개도 변하지않고 이렇게 잘 있는지 반갑기만 ㅡ 그러나 지금 그 수호신 이셨고 지금도 여전히 내 인생의 수호신이신 선생님은 돌아가시고 안계시다. 백석 교감선생님 이 되신 몇달 뒤 55세의 나이로 이승을 하직하시고 지금은 언니랑 은영이만 둘 은영이는 샘의 딸
바로 이곳에서 언니가 지어준 점심에 누룽지맛있게 먹고 후식으로 배를 깍아주셨는데 젓가락을 엇겨쓰는탓에 영 집어지지않고 빠져나가자 언니가 이렇게 하면 된다고 가르쳐준 배운곳인데 대문 안 오른쪽 작은방에서 선생님각시를 우리는 모두 그냥 언니라고 불렀었다. 사모님이라 아니하고. 언니도 은영이두 보면 좋아라실텐데... 보고프네. 선생님두 글쿠
심도일지를 향해 가는 중 길가의 전보선대 ㅡ 언젠가는 인석들도 옛날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될테지? 사람이 안사는것도 같은데 풀숲속에 옛 민가한채 참 낙낙타 !!!
붉은 후박열매도 곱고
지름길로 가다보니 이렇게 옛 공장담장 여전쿠
막 궁궐주택을 지난 중이다.
여자부문 금메달은 말레이시아 타이쵸수엔 선수였다고. 오후 다시 가야지했는데 또 다른여정으로 그리하지 못하고 시상식은 패스 월요일 오전 수련중이신 해녕스님과 다시 가 보기로 약속하고 Good ㅡ bye bye !!!
한국의 아름다운 섬 강화도 심도기행 화남길위에서 단기 4347 갑오년 구월 스므하루 춤추는 꽃길의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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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봤습니다. 여자부분 금메달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그러게요. 기합소린 금메달감인데 동작이 조금 덜 따랐던가 봅니다.
그 기량 높이하여 세계대회에선 기왕이면 금메달을.. 하여튼 참 잘 보았던 순간이었는걸요 샘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