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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의 눈에는 부처가 중생이고 부처의 눈에는 중생 또한 부처님입니다.
요즘 많은 학자분들이 문헌적 연구를 통하여 대승경전이 후대사람들에 의해
만들어 졌다고 주장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또한 이러한 주장에 동참을 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우리 중생들은 흔히 모든 일들을 자신들의 상식과 경험속에서
그 진실을 가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상식과 경험에서 벗어나는 일들은 전부다 부정을 하지요.
이것은 중생들의 아만과 고집, 그리고 무지에서 비롯됬다고 봅니다.
대승경전은 분명히 부처님이 친설하신 것입니다.
남방불교에서 대승불교를 부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왜냐면 부처님이 아함경에서 설하신 내용은 삼계내의 중생들에게
생사윤회를 끊고 삼계의 감옥에서 하루 빨리 벗어날수 있도록
화성이라는 방편의 가르침을 펴셨기 때문에 타방국토를 언급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대승불교의 가르침의 대상은 삼계내의 중생들 뿐만아니라
구법계(삼계중생외에 성문, 연각, 보살)중생들에 대한 지극히 원만한
가르침이며, 교화의 범위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작은 지구에
국한되어 있지 않고 온 우주법계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승불교에는 자연히 타방국토에 대한 언급이 없지만
대승불교에는 한량없는 불국토에 대해 자세히 설하고 있습니다.
현대학자들은 자신들의 알량한 알음알이로서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지혜를 헤아리려 합니다.
요즘 학자님들이 드는 대승비불설의 증거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대표적인 두가지만 보면
대승경전이 부처님 열반후 몇백년 뒤에 나왔다는 점과
문헌학적으로 고증한 결과 많은 대승경전에서 사용되는
단어들이 부처님 당시에는 없었던 단어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얻어진 답이 대승경전은 후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위조경전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언듯 들어보면 옳은 말 같이 느껴지겠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앞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범부의 지견으로 부처님의 지혜를 헤아리려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지견들에 대해 우리 불자님들은 부처님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기때문에
수많은 삿된 견해들로 부터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대승불교에 믿음을 내어 기도도 열심히 하고 수행도 열심히 하시다가
심지어 수십년을 공부한 사람들도 이러한 견해들을 듣고 대승에 대한 신심이 사라져서
남방불교의 위빠사나, 사마타 수행을 하시는 분들이 부지기수이지요.
설사 대승에 믿음이 아직 남아있더라도 그것은 단지 대승이 부처님의
친설은 아니지만 대승불교는 부처님의 근본적인 가르침(이타행)을 대변해
후세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 졌다고 믿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금 현재 이시대를 살아가는 스님으로서 이런 견해를 접할때 마다
너무너무 가슴이 아픔니다.
대승불교권인 한국에서 살면서 대승불교를 아무런 꺼리낌 없이
비방하는 모습이 너무나 가슴이 아픔니다.
이러한 현상들을 두고 부처님께서는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오탁악세라고 표현을 한것입니다.
그렇다면 대승불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우리는 불교를 공부할때 자세부터 바로잡아야 합나다.
마음속에 있는 알음알이를 깨끗이 지워버리고 공부를
시작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세속에서 공부를 많이한 사람들이
불교공부도 잘 할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세속에서 공부를 많이 하고
아는것이 많은 사람들을 불법을 만나기 어려운
팔난八難가운데 하나인 世智辨聰으로 칩니다.
왜 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불법의 가르침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항상 자신의 상식과 경험등의 알음알이로만
불교를 이해하려 하기 때문이죠.........
그러니 그들이 이해를 할수 없고 납득을 할수
없으면 당연히 진실이 아니라고 치부해버리지요.
대승경전의 수많은 내용들은 절대 현재 인류가
갖고 있는 기존의 상식이나 경험으로 이해할수
없는 부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특히 20세기 일본과 유럽에서는 대승경전의 진위를 놓고
수많은 연구를 해왔습니다.
그들의 연구방식은 서양의 진화론적 사상과
현재 잔존하는 문헌학적인 연구였습니다.
결과 대승은 비불설이라는 견해가 대두되면서
전 세계 불교계를 허리케인 보다 더 부섭게 강타하였습니다.
물론 이런한 주장들에 대해 반발을 하신 분들도 계셨지만
대세를 막을수가 없었지요.
마치 저수지 댐을 부수고 흘러나온 홍수처럼 도처에서
범람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 제가 이 글을 쓴다고 해서 몇분이나
대승에 대해 맏음을 낼지 모름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단 한분이라도 이 글을 통해 대승에 대한
믿음을 내신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그렇다면 현대학자들이 범한 오류는 어떤것일까요?
연구의 출발부터 잘못된 것이지요!
다윈의 진화론...
그야말로 20세기를 그의 학술로 휩쓸었습니다.
결과 모든 학문연구를 진화론으로 해석을 하기 시작했지요
그리하여 대승불교의 등장과, 문헌적연구를 통하여
모든 대승경전은 아함경으로 부터 발전되여 후기 대승불교의
중관사상, 유식사상, 여래장사상, 밀교사상등으로 진화발전되였다고
주장을 하게 되였습니다.
그런데 대승경전의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주장하는
경전위조설의 작가는 단 한명도 밝혀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승경전은 절대 위조할수가 없습니다.
대승경전의 내용은 절대 그 경지에 이르지 않고서는
만들수가 없습니다.
현대학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불교에 대한
책을 많이 보고 연구했다고 해서 경전을 만들수
있다고 본다면 큰 오산입니다.
대승경전은 제법실상에 대한 주석서이므로 부처님의 경지에
오르지 않고서는 절대 만들수 없습니다.
설사 그러한 경지에 오르신 뛰어난 선지식이 계셨다 할지라도
당당히게 논문을 쓰시지 부처님의 이름을 빌어 경전을 위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선지식이 쓰셨다면 비록 대승불교를 알리고 부처님의 참뜻을
설했다 할지라도, 이것은 대망어죄를 짓는 것으로
무간지옥에 떨어질 죄에 해당합니다.
이미 이렇게 높은 경지에 오르신분께서 이런 망어죄를 지셨겠습니까???
그러므로 단순히 학술적인 연구를 통해 대승경전이 나왔다는 말은
학자들사이에서나 통하는 얘기가 되야지, 진정으로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은
절대 이런 주장들을 따라서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문헌적연구는 정확한 것일까요?
물론 다 틀렷다는 것은 아닙니다.
참고를 할만한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에 대한 연구는 그 역사를
연구 하는 사람의 마음속의 재창조라는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역사를 쓴 사람의 동기, 학력, 신앙, 각도 등등의
여러가지 제한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과연 수많은 인디안들을 살육하고 그들의 땅에서
나라를 세운 미국에서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역사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19세기,20세기에 서양인들은 아세아를 침략하여 자신들의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선교사들을 먼저 아세아로 퍄견합나다.
왜일까요?
그 나라들을 삼키려면 먼저 그나라들의 문화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서양식 하나님지상의 교육울 받은 그들의 눈에 비춰진
대승경전은 어떤 모습이였을까요?
그뒤로 대승경전에 대한 고증이 시작되지요.
답은 불보듯 뻔합니다.
지장경은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기전에 도리천(욕계제2천)에서
어머님이신 마야부인을 위해 설하신 대승경전입니다.
하늘에서 설하신 대승경전을 현대학자들은 무슨 문헌을 통해 밝힐수 있을까요?
무슨 방법으로 고증을 할수 있을까요?
밝힐수가 없다면 지장경은 저 인도나 중국에서 만들어진 위경일까요?
그리고 화엄경이나 법화경등을 보면 불보살님들의 수많은
불가사의한 경계들이 나타는데 학자들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고증을 할까요?
그것은 단지 대승불교에서 만들어낸 날조된 경이라고요?
대승경전에서만 나오시는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지장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아미타불, 약사불, 미륵불, 연등불.............등등 불보살님들이 전부 대승에서 만들어낸 픽션이라요?
그렇다면 인도, 중국, 한국, 일본등에서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불보살님들을 친견하고 대대로 내려온 영험록, 왕생록들이 전부 픽션일까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저의 주변에도 관세음보살님과 지장보살님을 친견하신분들,혹은
가피를 받은신 분들이 많은데 다 거짓일까요?
법화경을 읽다보면 비파라는 악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비파의 "탄생"연대를 고증해보면
부처님이 열반하신후 2,3백년후인 서역에서 최초로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그러니 학자들의 말대로 법화경은 "위경"일수 밖에 없지요!!!!!
문헌적인 연구는 대체적으로 이런 식이였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간과해서는 안될 점이 있습니다.
부처님이설법하실때 참석했던 청중들은 인간뿐만이 아니라
천상의 천인등인 천룡팔부중들도 함께 있었습니다.
천상에는 수많은 악기가 있는데 하늘의 악사에게는
비파가 있을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세계는 끊임없이 윤회를 합나다.
지금 현제 인류전에도 수많은 인간들이 존재하였다고 경전에는 전하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석가모니부처님 전의 부처님으로 가섭불시대가 존재했고
앞으로 미륵불의 시대인 용화회상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비슷한 삶을 살고 업을 짓기때문에
살아가는 환경도 비슷한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과 같은 삼세를 훤하게 꿰뚤어 보시는 분들이
보는 세상은 현재 우리들의 상식과 경험을 초월한 부분들이 수없이
많지요.
그런데 어떻게 대승경전에 사용되는 어휘들이 부처님 당시에 없다고 해서
부처님의 일체지를 의심하고 부처님설이 아니라고 단정 지을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현대학자들의 오만과 무지에서 비롯된것이 아닌지요???
그렇다면 경전의 진위를 단지 대승에 대한 믿음만으로 밀어 부쳐야 할까요?
경전에 대한 의심을 어떻게 해야 해소 시킬수 있을까요?
불교에서는 의심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다만 불교에 대한 (특히 대승경전)충분한 연구와 이해가 없이
다른사람들의 입을따라 함부로 비방하는 것은 절대로 삼가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대승에 대한 믿음을 무너뜨리는 것은 그 사람의
법신혜명을 죽이는 것과 같아서 무간지옥의 업을 짓는 행위입니다.
제 말을 안 믿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꼭 대승을 비방할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역대 조사스님들께서는 철저한 수행과 증득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통해 대승불교가 부처님의 친설이며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근본뜻이 대승에 있음을 증명하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중국 수나라때 지자대사께서 공부를 하시려고
스승인 남악혜사대사를 찾아가셨는데 지자대사를 본 순간
"옛날에 영산회상에서 함께 법화경을 들은 숙세의 인연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구나!"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중에 지자대사께서 법화경을 독송하시다가
藥王菩薩本事品중에서 "이것이 진정한 정진이요,
참된 법으로 여래께 공양하는 것이니라 .是眞精進, 是名眞法供養如來."
이 대목에 이르러 활연개오 하였는데 바로 선정에 드시니
부처님께서 영축산에서 아직 법화경을 한창 설하고 계셨다는 것입나다.
시간이란 불교의 각도에서 볼때 추상적인 개념에 불과합니다.
세친보살의 百法에서보면 불교적이 용어로 불상응행법이라고 합니다.
시간이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의 찰나찰나 변화속에서 만들어낸
추상적인 개념이라는 것이지요.
경전에 보면 사천왕들이 사는 세계의 하루는
인간세상의 50년이라고합니다.
그 위의 도리천의 하루는 인간세상의 백년이라고 합니다.
법화경을 보면 수많은 보살들이 나타나 부처님을 찬탄하는데만
50소겁이란 시간이 지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광장설(넓고 긴 혀)을 내미시어 삼천대천세계를 덮고
다시 넣는데 천만년이 지났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법화경을 설한 시간을 8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것은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신통력으로 긴 시간을 8년이란 세월로
압축시켰기 때문이지요?(長劫入短劫)
그렇지 않고서야 저희 같은 중생들이 어떻게 들을수 있겠습니까!
이런 내용들을 학자들이 어떻게 증명할수 있겠습니까?
현재 중생들이 봤을때는 법화회상이 벌써 끝난것 같지만
다른 차원의 세계에서 볼때는 한창 법화경이 설해지고 있다는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부지런히 수행을 하여 법화삼매를 증득하기만 하면 바로
그자리에서 영산회상에서 법화경을 설하는 부처님을 친견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修證의 길을 택하지 않고 문자의 연구와 치우친 소견에 빠진
어리석은 중생들의 알음알이로 어떻게 알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과 조사님들의 이러한 간절한 가르침과 엄연한 증거가 있는데에도
이러한 말씀들을 믿지 못한다면 선근이 없는 一闡提가 아니고서야 무엇이겠습니까?
경전에 의심이 있으신분들은 함부로 입 밖으로 내시지 마시고 수행을 통하여
증명을 해보시기 바람니다.
법화삼매를 닦던 해인삼매를 닦던, 염불삼매를 닦던지 꼭 해보세요!
삼매를 얻으실때 반드시 의심이 사라지실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그 말도 안되는 성경의 말들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데
우리 불교인들은 수행은 하려하지 않고 대승불교를
조선시대 유생들이 불교를 이단으로 취급하듯이 비방만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그리고 학자들은 조로아스터교의 빛의 신에서 따온것을 아미타불이라고 한다고
하셨는데 이 말은 그냥 무시 하셔도 됩니다.
이런 학자들은 자신들의 무지를 지혜로 삼는 무리들이기 때문에
따져봐야 시간만 낭비 할뿐, 그 시간에 염불이나 더 하시는게 좋을듯
싶습니다. 일말의 가치도 없는 말들이니 신경을 쓰지 마십시오.
해마다 전세계에 얼마나 많은 불자들이 극락왕생을 하는대요!
정토수행을 하는 스님으로서 간곡히 말씀드립니다.
옛날 조사스님들께서는 그냥 조사가 된것이 아닙니다.
철저한 수행을 통해 몸소 체득한 진리를 아낌없이 저희와 같은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베푸신 것입니다.
부디 부처님과 조사스님들의 말씀을, 특히 정토수행을 하신다니
정토삼부경과 정토종의 조사스님들의 말씀을 금과옥조로 여기시고
현재 난무하는 어떠한 邪說에도 넘어가시지 않기를 바람니다.
제가 하는 말에 책임을 지겠습니다.
혹 제 말이 거짓이라면 제가 지옥으로 가겠습니다.
끝으로 모든 정토를 닦는 법우님들께서 수많은 생을
닦아오신 수승한 선근과 공덕으로 만난 정토수행을 어떠한 어려움에서도
포기하지 마시고 백년뒤에 다 함께 극락세계에서 만나 축배를 들수 있는
그날까지 열심히 정진합시다.
나무아미타불()()()
첫댓글 -()()()_ 감사합니다 좋은 말씀 새기겠습니다
(1) 자유 게시판의 "대승 불교의 정체성 / 마성스님" (번호 59983)과 (2) 종합불교강좌 게시판의 "불설과 비불설을 결택하자" (번호 2857)도 꼭 함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자세히 언급하여 주신 자비심에 감사드립니다. 특히 염불행자들이나 대승불교를 신행하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대승불교와 아미타불에 대한 확실한 신념을 가지지 아니하면 말법시대의 혼란의 파도에 휩쓸려서 어느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위태위태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부디 정법의 깃발이 침몰되지 않고 오래토록 중생계와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