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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건설 회장 이봉관 장로가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집무실에서 건축에서 느낀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설명하고 있다. 강민석... ‘역경의 열매’란 이름으로 삶을 돌아볼 제안을 받았을 때 가진 생각은 딱 한 가지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기업을...
1945년 해방둥이로 태어난 이봉관 장로의 백일 사진. 명품 옷을 입고 사진을 찍을 만큼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풍족함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서희건설 제공 나는 1945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전주이씨 양녕대군 후손으로 태어나 부유한 삶을 보장받은 소위 ‘금수저’...
지난해 10월 이봉관 장로(오른쪽)가 경주시청을 방문해 이 지역 중·고등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서희건설 제공 경주 시내에서 30리(약 12㎞) 길을 걸어 내려가 도착한 곳은 지금의 내남면에 해당하는 소재지였다. 전쟁 피란처로 택해 들어간 곳은 말 그대로 첩첩산중이었다....
이봉관 장로(앞줄 오른쪽 세 번째)가 대학 졸업식 때 가족과 함께한 모습. 어머니(앞줄 오른쪽 두 번째)는 이 장로의 어린 시절 ‘인내’의... 그런 어머니는 내가 숱한 역경 속에서 끊임없이 키워 온 ‘인내’의 원천이었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미션라이프 홈페이지 바로가기]...
이봉관 장로가 2009년 8월 청운교회 새벽기도회에서 대표기도를 하고 있다. 고된 유년 시절, 교회에 가는 것은 이 장로의 유일한 행복이었다.... 그 후로 이 찬송은 삶의 고난과 역경이 찾아올 때마다 부르는 내 인생의 애창곡이 됐다. 주일학교 선생님들은 어머니를 만날 때마다...
이봉관 장로 중학교 시절 모습. 서희건설 제공 고집을 피워 초등학교 4학년에 입학하긴 했지만 성경공부로 한글만 뗐던 나는 읽고 쓰는 것 말고는 아는 게 없었다. 특히 수학 시간에는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멍하니 칠판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숫자는 알아도 ‘더하기’ ‘빼기’...
[역경의 열매] 이봉관 <7> 학업 중단 위기에 어머니까지 병환으로 쓰러져
2005년 10월 경북 경주 문화중·고등학교 개교60주년에 참석한 마리엘라 프로보스트 사모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이봉관
장로(뒷줄 오른쪽 두 번째). 서희건설 제공 원대한 꿈을 갖고 중학교에 입학했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시골에서 경주 시내까지
20리(약 8㎞) 이상 되는 길을...
[역경의 열매] 이봉관 <8> 꿈 잃고 주님 잊은 채 지낸 대학시절 부끄러워
이봉관 장로의 포스코 재직시절 모습. 그는 대학 졸업 후 1970년 공채 2기로 포스코에 입사해 13년간 몸담았다. 서희건설 제공 프로보스트... 앞으론 어떠한 역경이 와도 다시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라고 결단했다. 그날 이후 하루하루가 기쁨으로 시작됐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역경의 열매] 이봉관 <9> 믿음을 자본으로 기업 운영… 잇단 위기 견뎌내
1983년 7월 ‘유성화물(현 유성티엔에스)’ 직원들과 함께 시무예배를 드리는 모습. 서희건설 제공 포스코(POSCO)에 입사할 때만 해도 ‘어떻게 하면 정년까지 다닐 수 있을까’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하지만 회사 생활 10년이 넘어 가면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단조로운 일상에 회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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