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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ra about 1591
Oil on panel, 72.8 x 56.3 cm
Paris, private collection
16세기 서양 미술사를 펼치면 그림을 주제에 의해 구분하는 방식을 당혹스럽게 만든 화가를 발견하게 된다.
그의 그림은 주제를 나누는 것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그가 창안한 그림은 인물화이면서 정물화이고, 정물화이면서 동시에 인물화인 혼성 그림이기 때문이다.
미술 역사상 초유인 '이중 그림'을 창안한 화가의 이름은 바로 주세페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 c.1527-93)다.
16세기 유럽 프라하에서 활동한 아르침볼도는 한 그림 속에 이중이미지가 들어 있는
기상천외한 그림을 창안해서 명성을 얻었다.
예를 들면 그는 식물을 모아서, 물고기를 조합해서, 동물들을 결합해서, 책들을 쌓아서 인물화를 만든다.
The Librarian c. 1566
Oil on wood, 97 x 71 cm
Skoklosters Slott, Balsta
<도서관 사서>라는 이 작품은 특이한 제목에 걸맞게 온통 책으로 조합된 초상화이다.
머리카락은 반달 모양으로 펼쳐진 책이 대신하고, 오뚝 솟은 코는 책을 비스듬히 세워 만들었으며, 뺨에는 작은 책을 살짝 올려놨다.
귀는 책갈피로, 복실복실한 수염에는 앙증맞은 책털이개를 달았으며, 튼튼한 팔에는 커다란 빨간 책을 비스듬히 세웠다.
손가락까지 책 속에 끼워놓은 책갈피로 대신하니 책들은 어느새 멋진 신사로 변했다.
인간의 신체를 책이나 책과 관련된 소품으로 교묘하게 끼워맞춘 것이다.
이 그림을 현대 작가가 그렸다 해도 그 기발함에 놀랄 터인데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이라 하니
형태도 형태려니와 그 기발한 발상에 그저 놀랄 따름이다.
Vegetables in a Bowl or The Gardener 1587-90
Oil on panel, 36 x 24 cm
Museo Civico, Cremona
<야채상>이라는 작품 역시 이에 뒤지지 않는다.
머리는 검은 도기, 눈은 깨진 호두, 코는 잘생긴 당근,
도툼한 입술은 두 개의 버섯, 바알간 볼은 큼직한 양파가 차지했다.
잘 뻗은 수염은 서양 무가,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은 샐러드가 장식하고 있다.
과일과 야채가 적재적소에 잘도 어울린다.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작품을 한번 거꾸로 보라,
이 모든 야채가 까만 그릇에 담겨 있지 않은가!
화면 전체가 색상으로나 구도상으로 어디 한 군데 이상한 곳 없는 완벽한 정물화가 되었다.
Self Portrait about 1575
Pen and blue pencil on paper 23 x 15.7 cm , Prague, Narodni Galerie
1562년 아르침볼도는 프라하 막시밀리안 황제의 궁정에 초빙되어
루돌프 2세의 궁정화가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루돌프 2세 치하에서 그의 역량은 절정에 달한다.
궁정화가란 왕실의 전속 화가를 가리킨다.
유럽의 왕실에서는 13세기부터 궁정화가를 고용했다.
군주의 명예와 권위, 통치력을 선전할 언론 매체가 없던 시절 그림은 가장 효과적인 홍보 수단이었다.
Maximilian II and His Family
Oil on canvas, 240 x 188 cm
Sammlungen Schloss Ambras , Innsbruck
당시 궁정화가의 주요 임무는 황제를 비롯한 통치자와 그 가족의 초상화를 그리는 일이었다.
아르침볼도 역시 황제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그가 그린 초상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초상화와는 전혀 다르다.
당시 모든 화가들은 군주를 신이나 영웅, 초인, 성자로 묘사했다.
그런데 아르침볼도는 그런 관례를 버리고 황제를 식물의 조합체로 표현했다.
Vertemnus 1591
Oil on panel, 70,5 x 57,5 cm
Skoklosters Slott, Bålsta (Stockholm)
<베르툼누스의 모습을 한 루돌프 2세>라는 그림은 앞에서 보여준 <도서관 사서>나 <야채상>과 같은 기법을 취하고 있다.
가슴까지 보이는 황제의 흉상은 온통 야채, 과일, 곡식으로 뒤범벅되어 있다.
머리는 포도, 체리, 배, 수숫다발로 장식되었고, 이마는 호박, 눈썹은 보리이삭,
눈꺼풀은 완두콩, 두 뺨은 잘 익은 붉은 사과, 입술은 체리, 수염은 수숫다발이다.
아래로 내려오면서 가슴과 목은 다시 한번 호박이나 기타 여러 종류의 꽃으로 마무리되었다.
기상천외한 초상화다!
베르툼누스는 고대 에트루리아의 토속신이면서 들판과 정원의 신이기도 하다.
농사가 생업인 백성들에게 수확을 관장하는 베르툼누스는 가장 친근한 신이면서 경외의 대상이기도 했다.
게다가 이 신은 마음만 먹으면 자유자재로 변신할 수 있는 초능력을 지녔다.
아르침볼도는 대지를 풍요롭게 만드는 베르툼누스가 자신의 모습을 변형시키는 초능력을 지녔다는 점에서 영감을 얻었다.
루돌프 2세의 통치력을 선전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황제를 베르툼누스에 비유하는 것이다.
황제의 덕망 있는 통치로 세상의 모든 것이 비옥하고 풍요로워졌음을 보여주고자 했다면 말이다.
아르침볼도의 괴상한 초상화들은 정물의 축적을 통해 표현되고 있지만 그 자체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 아니라
선정의 결실을 이들 정물을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황제를 칭송하고자 함이었다.
그림 속에 정치적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당시 세속권력의 상징이었던 황제의 모습을 이처럼 온갖 물체로 범벅을 한 데 대한 황제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아이처럼 좋아했다고 한다.
Earth about 1570
Oil on panel, 70.2 x 48.7 cm
private collection
아르침볼도는 이 밖에도 다양한 종류의 사물을 축적시키는 방식으로 여러 점의 초상화를 그렸으며,
거기에 봄, 여름, 가을, 겨울과 같은 계절이나 땅, 불, 물, 공기와 같은 자연을 제목으로 붙였다.
그중에서 <땅>은 육지에 사는 온갖 종류의 동물들,
이를테면 곰이나 사자, 사슴 등이 빼곡히 밀집해서 한 늙은이의 형상을 이룬다.
The Fire 1566
Oil on wood, 66,5 x 51 cm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불>은 불과 연관된 요소들로 조합된 사람의 형상이다.
머리카락은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이고
목은 촛불, 가슴은 대포와 총 등 불을 뿜어내는 무기로 이루어졌다.
The Water 1563-64
Oil on wood, 66,5 x 51 cm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물> 역시 같은 방식으로 온갖 종류의 물고기를 다 보여주는 백과사전처럼 보이는데,
진주목걸이로 장식한 사람의 형상을 이루고 있다.
아르침볼도는 이 같은 방식으로 사계절도 그렸다.
Spring 1573
Oil on canvas, 76 x 63,5 cm
Louvre Museum , Paris
<봄>은 온갖 종류의 꽃으로 장식된 아가씨의 옆모습이다.
머리는 화려한 꽃으로, 얼굴은 창백한 하얀 꽃에 붉은색 꽃으로 볼터치를 주었다.
옷깃은 흰 들국화와 들꽃으로, 몸에는 초록색 톤의 식물들로 옷을 지어 입혔다.
아름답고 싱그러우며 생명이 소생하는 봄의 분위기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Autumn 1573
Oil on canvas, 76 x 63,5 cm
Louvre Museum , Paris
<가을>은 결시의 계절, 무르익은 포도송이와 포도잎으로 머리를 장식하고
잘 익은 호박을 왕관처럼 얹었다.
얼굴에는 수수, 사과, 배, 버섯 등 온갖 과일과 야채가 동원되었다.
가을은 모든 것이 익어가니 갈색이 제격이다.
화면 전체를 가을을 연상시키는 갈색 톤으로 처리하는 것을 이 영리한 화가가 잊었을 리 없다.
Winter 1573
Oil on canvas, 76 x 63,5 cm
Louvre Museum , Paris
<겨울>은 앙상한 나뭇가지로 휑한 머리카락을 대신했다.
말라 비틀어진 나무줄기가 주름살투성이의 얼굴을 나타내고 있으며,
노란 밀짚은 몸통이 되어 차가운 몸을 그나마 덥혀줄 것 같다.
Summer 1573
Oil on canvas, 76 x 63,5 cm
Louvre Museum , Paris
사계는 인생의 네 단계에 대한 우의이기도 하다.
봄은 유년, 여름은 청년, 가을은 장년, 겨울은 노년이다.
물론 물, 불, 땅, 공기와 같은 자연요소들은 당시 널리 알려졌던 인간의 기질 사상에서 나왔을 것이다.
The Four Seasons in a Head 1590
Oil on Wood 60.4x44.7cm
Private Collection
여기서 사계절이나 물, 불과 같이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로 그려진 인물의 주인공도 다름아닌 황제라고 한다.
황제의 모습을 이처럼 표현한 것은 세상을 다스리는 황제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서,
황제에 대한 최대의 찬사였다.
국정을 책임진 황제가 나라를 잘 다스리면 백성들은 생업인 농사에 전념할 수 있다.
백성들이 땀 흘려 농사를 지으면 해마다 풍년이 들게 마련이다.
아르침볼도는 국가의 최고 경영자인 황제가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해서 풍성한 수확을 거두었다는 점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통치자의 초상화를 온갖 동식물과 자연물로 구성한 것이다.
Fruits Basket 1590
Oil on Wood, New York at French & Company
한 그림을 두 가지 주제로 해석할 수 있는 아르침볼도의 초상화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식물과 인간은 별개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식물이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르침볼도의 초상화를 감상하고 나면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 변화가 생긴다.
자신의 눈에 비친 세상 만물의 외양과 내면이 다를 수 있다는 것,
즉 상대의 실체를 파악하려면 가까운 거리에서 대상을 탐색하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전체를 조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Le Sommelier 1574
Oil on Wood 87.5x66.6cm
Private Collection
또한 그의 작품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무한한 도전의 결정판이다.
그는 누구도 생각지 못한 획기적인 방식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개척해 나갔는데,
이 같은 방식이 당시 궁정에서 통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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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프라하의 루돌프 2세 궁정은 이탈리아의 르네상스에 이어
유럽에서 가장 활발한 문예진흥이 이루어졌던 곳으로, 제2의 르네상스가 한창이었다.
당시 유럽 각지에서 활동하던 화가들은 바로 이 프라하의 궁정에서 자신의 재능을 황제에게 바쳤다.
재능 있는 화가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후원한 당시 궁정의 예술후원 정책 아래에서
아르침볼도와 같은 파격적이고 실험주의 작가의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
참고도서: 고종희님의 "일러스트레이션 미술탐사" 中 일부발췌
Cook about 1570
Oil on panel, 52.2 x 41 cm Stockholm, private collection
Jurist 1566
Oil on canvas, 64 x 51 cm
Sweden, Gripsholm Slott, Statens Konstsamlingar
The Seasons Pic 1
Oil on canvas 73 x 94 cm
Private collection
The Seasons Pic II
Oil on canvas 73 x 94 cm
Private collection
The Seasons Pic III
Oil on canvas 73 x 94 cm
Private collection
The Seasons Pic IV
Oil on canvas 73 x 94 cm
Private collection
Air
Oil on Canvas 74,5 x 56 cm.
Coleccion Privada. Basilea. Suiza.
Portrait of Adam 1578.
Oil on Canvas . 43 x 35,5 cm.
Coleccion Particular. Basilea. Suiza
Portrait of Eve 1578.
Oil on Canvas . 43 x 35,5 cm
Coleccion Particular. Basilea. Suiza.
The Lady of Good Taste
Oil on Canvas .
Whimsical Portrait
Oil on Canvas .
The Sense of Smell
Oil on Canvas .
Spring 1573
Oil on canvas 63.5 x 75.946 cm Private collection
Summer 1573
Oil on canvas 63.5 x 75.946 cm Private collection
Autumn 1573
Oil on canvas 63.5 x 75.946 cm Private collection
Winter 1573
Oil on canvas 63.5 x 75.946 cm Private colle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