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란 무엇인가?
(불교란 무엇인가) 후박나무
1. 우리는 어떤 상태인가?
2. 피해야 할 기준
3. 이해를 해 나가는 기준
4. 맺는 말
1. 우리는 어떤 상태에 있는가?
인간은 무엇을 보든, 듣든 ,생각하든. 희망하든...그것이 나에게 의미가 있으려면 그것이 나에게 이해 되어야 합니다.
이해보다 감정적인 판단이 앞서거나 성급히 움켜쥐려는 욕망을 일으키게 되면 그러한 행동들은 고통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후회하게 됩니다.
붓다의 가르침이란 나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는 길입니다.
“ 단 지 이 해 하 라 ” 그것 뿐 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떠한 꼴을 하고 지금 이 세상에 서 있는지 붓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깟짜야아여! 이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있다(常見)는 견해와 없다(短見)는 견해에 의존해 있다. 그러나 깟짜야나여! 참으로 올바른 지혜로서 있는 그대로 세상의 발생을 관찰한다면 없다(短見)는 견해는 있을 수 없다. 올바른 지혜로서 있는 그대로 세상의 소멸을 관찰한다면 있다(常見)는 견해는 있을 수 없다.]
우리의 인간의 대부분이 이런 有와 無의 관념에 깊숙이 놓여 있습니다. 영원주의常見 의 역사는 인류가 지구에서 생활하기 시작 할때 부터 시작되어 인간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인도에서 살펴보면 고대 베다와 우파니샤드로 이어져 내려오는 바가바드기타의 사상등에서 찾아볼 수 있고 유대교, 기독교, 회교, 쟈이나교는 신이나 신과 비슷한 것들을 상정하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칸트와 같은 위대한 철인들은 영혼을 영원한 실체로서 인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허무주의 短見는 단멸론, 우연론 이라고 불리우는 사상은 붓다시대의 신흥 사문들을 비롯해서 현재의 유물론 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사상들을 전부 붓다는 62가지로 설명하고 있기도 한데 그것을 간추리면 역시 常見과 短見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두 가지 태도를 취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이것은 말 그대로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아무런 노력 없이도 우리에게 다가오는 관념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사유의 한계에서 발견되거나 욕망의 부추김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를 부수어 버리는 바른 이해(정견)와 바른 길(중도)을 제시한 붓다는 정말 희유한 인물로 기록 되고 있습니다.
2. 피해야 할 기준
그러나 바른 이해란 노력없이 자연스럽게 얻어지지 않습니다.
바른이해를 얻기위해 우선 어떤 것들이 바르지 못한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붓다는 이러한 有와 無의 견해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10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전해들은 이야기에 의존하지 마십십요.
둘째: 그 사회의 전통에 의존하지 마십시오.
셋째: 오래된 전설과 신화에 의존하지 마십시오.
넷째: 각 종교성전이 가진 권위에 의존하지 마십시오.
다섯째: 그럴듯한 논리에 의존하지 마십시오.
여섯째: 추론에 의존하지 마십시오.
일곱째: 피상적인 사고에 의존하지 마십시오.
여덟째: 사변적인 지식에 의존하지 마십시오.
아홉째: 가능성이 있는 가설에 의존하지 마십시오.
열째: “이분은 나의 스승이다“라는 믿음에 의존하지 마십시오.
이러한 이유,근거로 이해의 기준을 삼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곰곰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점검해 보십시요.
이 10가지에 포함되는 것들에 의해 판단하고 믿고 이해 하는것은 아닌지...
3. 이해를 해 나가는 기준
이어서 붓다는 객관적인 이해를 위해서 5가지의 기준을 제시 합니다.
진리를 받아들이는 기준 또는 자유탐사 헌장이라 불리우는 가르침입니다.
어떠한 사상이든 원리이든 견해이든
첫째: 괴로움을 증가시키지 않는 것이어야 합니다.
둘째: 결함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상이어야 합니다.
셋째: 지혜로운 사람들에게 인정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넷째: 이러한 사상을 받아들여 경험해 보고 난 뒤에 나 자신과 이웃에게 유익하다
는 것을 알았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십시오.
다섯째: 이러한 사상을 받아들여 경험해 보고 난 뒤에 나 자신과 이웃에게 행복을
준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십시오.
위에서 말한 [지혜로운 사람]이란 앞에서 말한 피해야 할 10가지 기준을 가지고 이해하려는 태도를 가지지 않은 사람입니다.
자 그러면 이러한 피해야할 기준과 선택해야할 기준으로 받아들인 이해는 어떠한 것이어야 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언어문자는 알음알이요 이해는 하는 것만으로는 별 이익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해가 힘이 없다고요?
보십시요. 다음과 같은 결과들이 이해의 힘입니다.
첫째: 이렇게 살아야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살아야 한다는 확신이 생기게 합니다.
더 이상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것이 올바른 길인가? 하는 의문을 갖지 않게 됩니다.
둘째: 영원한 나라는 생각이나 나를 있게 하는 외부의 절대적인 힘이 있다는 생각에 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바깥의 어떤 힘에 매달리고 구원을 청하는 행위를 그만 두게 됩니다.
셋째: 그리하여 결국에는 자유와 평화를 얻게 됩니다.
4. 맺는 말
처음에 언급 했듯이 인간은 이해 하지 못한 것에는 만족할 수 없고 행복해 할수도 없습니다.
그러한 행복은 다가올 때는 기쁨을 주지만 떠나갈 때는 크나큰 아픔을 남깁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이해 될수 없는 사상들이란 항상 사람들의 시선을 과거나 미래로 데려 갑니다. 이들은 죽은후나 미래를 위해서 살도록 강요하기 때문에 현실을 파악할수 없게 만들고 지금 여기에 살수 없도록 합니다.
그러나 지금, 여기가 아니라면 그대는 그대 일수 없습니다.
지금, 여기가 아니라면 그대의 과거와 미래는 무의미 합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이해 하지 못하면 그대는 용서 할 수 없습니다.
이해 할 수 없으면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제 맘껏 생각하고 추측하고 행동해 보아도 남는 것은 후회와 허무 뿐입니다.
우리는 이해 한 만치 딱 그 만큼만 우리는 말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해 한 만큼 딱 그 만큼만 우리는 행동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안목이 유일한 자신의 감옥입니다.
세상은 이해하는 만큼 보이고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 만큼
나는 세상 속으로 들어 가게 됩니다.
첫댓글 사람이 살아가는것은 현명하고 어질게 지혜롭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이렇게 늘상 듣는 말,실천하고자 하는데도 잘 안되는 것,이것을 알기위해 사람은 무엇을 해야할까....몸으로 느끼고 받아들이는 모든 것은 순수하다.다만 순수하지 않은것은 생각과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양심의 거울이다.화내지 않고 분노하지 않고 감정을 앞세우지 않도록 사는것,그것이 자연스러운 삶 그 자체다.어떠한 사실을 책이나,관계나,역사나,위인전이나,경전이나,수행과 명상,등등의 총체적인 경험을 통하여 왜곡되어 있는 자신의 생각이나 양심의 거울을 닦아 나가고,왜곡되게 받아 들여놓은 것들을 바로 잡아 나간다.
경험을 통하여 무엇인가 자신에게 저장되어도 생각이나 양심(본질)이 어리섞으면 그 경험의 체계도 제대로 인식되지 않아서 바르게 저장되어 진다고 볼수없다.스스로가 체득된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과 양심을 통하여 알게되고 받아들이고 변화 하는것..이것을 이해할때 변화할수 있다.왜,생각과 양심을 바르게 늘 잘 관리해야 하는지를 알아가기 때문이다.사람은 몸으로 느끼고 받아 들이는것은 순수하지만,생각과 양심이 오염되어 있으면,사실을 사실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왜곡되거나 각색을 하게된다.그러다보면 사실은 사실을 벗어나 마음이 일으키는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여 감정적인 상태로 남게된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무명때문에 생각이나 양심이 얼룩져 있다면 마음이 일으키는 갈등을 그것이 자기가 스스로 일으키는 감정이고 생각이라고 판단하고 그대로 행하게 되는 위험이 있다.그러나 사실은 마음은 그저 일어나는 감정을 충실히 수행할뿐이다.이렇게 마음이 일으키는 그것들을 통하여 또한 생각할 꺼리들을 제공받게 된다. 그 제공되어지는 생각은 바른것인가 그른것인가의 판단은 이성이 하게된다.이성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양심(본성)이 바르게 서 있어야 한다.왜곡됨 없이 그릇됨없이 사실(법)을 그대로 인지하고 판단하는 기능이 좋아야 한다.
우리의 삶은 이렇게 유지된다.마음이 동기부여를 하고 생각이 그것들을 정리하거나 왜곡하고,양심은 양심의 정도에 따라서 선택을 하게된다.나의 양심은 어느정도인가....그 정도에 따라 나의 삶은 결정된다.나의 사고도,삶의 방식도,행위도,언어도,습관도,관계도.....이것을 아는것이 이해라고 생각한다.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이해해야 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바른 이해를 하기위한 기준은 이미 붓다가,수많은 사람들이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생각은 이러한 기준에 위해서 볼때 자신의 생각은 그 기준들을 충족하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동안 제가 이해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는것을 글로 올려 보았습니다. 생각을 글로 정리하여 표현하려니 조금은 어렵네요...잘 표현되었는지도 모르겠고,또한 내가 이해하고 있는것이 맞는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다만 계속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것이겠죠...한가지..착각했던것은 화나 분노나 증오나 미움은 그때 당시에 마음만 잘 관리하면 그런 마음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거라는 오류에 빠져 있었네요...아니란걸 알면서 왜 생각은 그렇게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네요...인간이 일으키는 감정은 몸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 있는한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
...다만 그 일어나는 마음 상태로 인한 괴로움을 줄이기 위해 애쓴다는 것,....마음에 일어나는 변화들로 인하여 생각이 고통받지 않으려면 양심(본성)에 상태를 잘 관리해야 한다는것,어리섞음에 휩쌓여 있지 않고,양심에 상태가 양호하면 마음이 일으키는 변화에 크게 동요되지 않는다는것,..마음은 그저 관조해야하고 그것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말을 조금은 이해할것 같기도 한데....아마도 더 많은 노력이 있어야 될것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두 님들 차한잔 올립니다..._()_
저도 한잔 올리지요^^ 이번에 마련한 맛있는 궁정보이산차로 올리지요...향과 맛이 일품입니다용..
아란도님이 사용한 양심 ,마음, 생각, 이성, 본성을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을까요? 그러면 글이 명확 해 질것 같은데...그리고 아란도님이 지적한 [바른 이해를 하기 위한 기준은 이미 붓다가,수많은 사람들이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라는 글처럼 저는 다만 붓다가 제시한 기준을 "아주 객관적이다 ,이 보다 더 명확 한것은 없다 "라고 이해 하고 이글을 썼습니다. ...그렇치 않다 라든가 ,과연 그렇다...라는 댓글이 없는게 아쉽네요. 여기가 소위 마음을 터놓고 아닙니까?^^..()
^^;한단어라......무엇이 있을까요.....불성,참나,진리,진아....등등은 읽는분들이 너무 많이 접해서 진부할거 같기도 하고..(ㅋㅋ하하)....불법을 잘 모르시는 분들은 이해하기 어려울것 같고(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면서도 보는 분들이 저의생각을 쉽게 이해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그래야 지적도 가능하니..근데 오히려 더 꼬인것 같네요^^;)...
또 한편으로는,양심은 이러한 단어들과 같이 지혜라는 단어로 통합할수도 있으나,마음과 생각 이성을 다른 단어와 똑같이 묶어서 본다면 조금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들이 많으나,어찌 되었든 미세하게 보았을때에는 그 기능들이 조금은 다르다고 볼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혹여 제게 오류가 있다면 바로 잡아 주시소사....^^()
저는 위에서 그모든 마음의 활동을 [이해] 라는 말에 담아 보았습니다. 그러한 이유는 다른 말보다 (본성,마음,자성,불성등등...)오해 없이 받아들일수 있는 말이라 그렇습니다. 이렇게 이해하는것이 수행이다.불교다. 라는 말이 이글의 요지인데 ...그래서 일부러 다른용어들의 사용을 피했습니다. 이러한 용어의 차이점을 잘알고 말을 잘 사용하자는 것이 이글의 의도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지금 여기에서 이해되는 말 이외에 , 죽은 후의 식의 문제, 전생의 문제, 깨달음에 관한 토론,선문답...등은 하지 않을려고 합니다. 그런 주제와 언어들은 우리의 토론이 관념으로 흐르게 합니다. 불교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그리고 모든종교를 설명하는데 있어서...그리고 살아가는데 있어서 저는 이렇게 언어를 잘 가려서 사용할려고 노력합니다. 나가세나 존자는 밀린다 왕에게 출가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 이미 일어난 고뇌는 없애고 앞으로 일어날 고뇌를 만들지 않는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