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사자암
사찰의 창건은 신라 성덕왕 19년(720년) 의신조사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사찰의 초창과 고려조에 대한 역사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사찰의 역사에 대한 기록은 조선중기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여지도서에 의하면 “중사자암은 현 동쪽 35리 속리산아래에 있다. 元宗大王 願堂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원종은 선조의 아들로서 조선의 16대왕인 인조의 아버지이다. 원래 정원대원군이었으나 인조 즉위 후 왕으로 추존된 분이다. 따라서 중사자암은 인조의 지원에 의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중사자암은 인조 19년(1641년) 에 창건되었는데 이때 인조의 형인 능원대군과 능창대군의 청에 따라 지선(智禪)스님이 일을 감독하고 낙성일에 능원대군이 용화에 있는 전답을 절에 희사했다고 한다. 능창대군은 1615년 광해군 시기에 이미 사망했기 때문에 능창대군에 의했다기 보다는 그 가문에 의한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옳다고 하겠다. 이후 영조 33년 (1757년)에 중사자암을 중수하였는데 명례궁으로부터 궁감 이수창과 주지 현익에게 감독하도록 하였다하며 또 헌종 3년(1837년) 대차여신영원과 총섭 하운을 파견하여 다시 중수했다고 한다. 이후 고종 24년 (1887년) 중사자암을 다시 크게 중수한 사실이 있다고 한다. 이후 일제강점기 및 한국전쟁 등 사회의 혼란과 더불어 사찰은 일시 폐사되게 되었다. 기존에 화려했던 전각들은 모두 폐허로 변했다.
현재의 중사자암은 1957년 새롭게 건립한 것이다. 이후 1985년 종현스님이 사찰을 중수했으며 1986년에는 삼성각을 새롭게 건립했다.
중사자암 입구 바위
중사자암 입구 사자바위
중사자암 입구
중사자암 법당가는 길
중사자암 감투바위
중사자암 인법당
중사자암 해우소
중사자암 비
중사자암 인법당내
중사자암 인법당내 신중탱
중사자암 비
중사자암 찾아가는 길
법주사 산내암자이며 문장대 오르는 길에 자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