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느닷없이 어느 날, 운명처럼 혹은 도둑처럼 찾아온다. 사랑에는 공식이 없다. 열정적일 때 속도도 빨라진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100가지 모두를 아름답게 볼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상대방이 가진 취미까지도 맞을 때 사랑은 더 깊어진다. 무엇보다도 사랑은 터무니가 없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마냥 미소 짓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눈도 멀어야 하며, 나이도 명예도 따지지 말아야 하며, 서로에 대한 백치 같은 정신세계의 사랑을 가질 때에야 완벽한 사랑은 열리게 된다.
비올라를 전공한 ‘김영주(당시 27세)’는 어느 날, 문득 악기 값이 비싸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연주할 악기를 직접 만들어 보자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수소문 끝에 찾아 간 바이올린제작실에서 수습을 하던 중, 어느 겨울 날, 창문을 열어 놓고 사무실 책상서랍을 정리하다가 바람에 파랑새처럼 나풀나풀 날다가 떨어진 편지 한 장을 발견하게 된다.
‘살아생전, 아버님께서 쓰시다가 다락에서 잠자던 바이올린을 정성껏 수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기회 닿는 대로 찾아뵙겠습니다.’ 라고 제작실 선생님에게 보낸
단아한 글씨가 순간 김영주의 가슴을 멈추게 하였다. 얼마 후, 낯선 남자의 전화를 선생님 대신 받게 된다. 언제 시간이 되면 방문하겠다는 남자, ‘이종원(당시 37세)’는 느닷없이 그 다음 날, 불쑥 방문하였다. 이종원이 미국 시카코에서 바이올린 제작학교를 졸업했다는 것을 알게 된 김영주는 “나도 내가 연주할 악기를 직접 제작하고 싶다. 일단 만나자.” 라는 발칙한 제안을 하였다.
3개월 뒤, 독일 미텐발트 바이올린 제작학교를 입학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김영주는 3개월 동안 이종원과 교제를 하였고, 독일로 떠나는 며칠을 남겨 두고 이종원으로 부터 가지 말아 달라는 부탁과 함께 장미꽃 한 송이를 받게 된다.
운명인지, 미텐발트 학교로부터 김영주 입학불허 통지가 왔다. 이유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였다. 그 당시, 김영주에게는 바이올린 제작만이 그녀의 꿈이자 희망인지라 절대 포기할 수가 없었다. 결국 이종원의 도움으로 이종원이 졸업한 미국 시카코 바이올린 제작학교에 입학 하게 된다. 이미 학교에서는 김영주가 이종원의 약혼녀라는 소문이 퍼져 있었고, 이종원의 철저한 사랑의 덫에 걸리게 된 셈이었다. 이미 사랑의 늪에 빠진 이종원은 김영주에게 편지를 보냈다. 1년만 수료하고 돌아와서 나와 결혼 하면 꼭 졸업을 시켜 주겠노라는 약속과 함께 김영주는 한국으로 돌아와 이종원과 결혼을 한다.
바이올린은 만든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또한, 연주자의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너무 덥거나 추운 곳에서는 바이올린을 만들기가 어렵다. 산성비에 오염되지 않은 지역인 시베리아, 독일, 유고, 체코 등지의 전나무로 앞판을 대고, 단풍나무로 뒤판과 옆판을 대어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바이올린이 탄생된다.
바이올린처럼 이종원과 김영주의 사랑도 오염되지 않은 흡사, 전나무인 남편 이종원과 단풍나무인 김영주의 사랑으로 잘 조율 된 하나의 바이올린이 탄생되었다. 그 사랑으로 이 세상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딸 ‘현빈(12세)’이라는 바이올린과 둘째 딸 ‘채빈(7세)’이라는 바이올린을 제작하였다.
음악회를 관람하고 밤 9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 서초동 악기점을 찾았다. 1층에는 다른 악기점이었고, 2층에 마련된 제작실 겸 연주실이었다. 작업실이 어찌나 깨끗하고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는지 부부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 엄숙함마저 느껴졌다. 1층 계단 아래서부터 은은한 원두커피 향내와 바이올린 연주음악이 흘러나왔다.
안경너머 이종원의 섬세하고 예리한 눈빛이 불빛에 더 반짝거렸다. 조금 후, 짧은 컷트머리를 한 멜빵바지의 김영주가 생기발랄하게 활짝 웃으며 나왔다. 15년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지금 영화를 보고 있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생물학과를 다니던 이종원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켜는 바이올린 소리를 무척 사랑했다. 대학1학년 때, 빈 강의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어디선가 ‘바하의 무곡 샤콘느’가 들려 왔다. 소리를 따라 가보니 학교 정문 앞, 어느 집 2층에서 비추이는 그림자와 바이올린 소리에 매료되었다. 바이올린을 켜는 그림자와 음악은 이종원의 삶을 180도로 바꿔 놓았다. 다락방에 있던 아버지의 스스키바이올린이 생각나 꺼내 만져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전공을 바이올린제작으로 바꾸기로 결심하고, 먼저 직접 연주할 바이올린을 제작하게 위해 다니던 직장을 뒤로하고 미국 시카코행 비행기를 타게 된다.
사람마다 지문이 틀리고 개성이 다르듯이, 바이올린 역시 지문과 개성이 다 틀리다. 제작자에 의해 다르고, 또 연주자에 의해 달라지듯이 이종원과 김영주 부부의 사랑도 각기 다르지만 바이올린이라는 매개체에서 시작 되었고, 전나무와 단풍나무를 합한 바이올린처럼 조화를 잘 이루며 바이올린처럼 살고 있다. 서초동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 맞은 편 ‘이종원 현악실’이라는 이름의 현악기 제작실을 내고, 큰 딸, ‘현빈’이는 첼로를, 둘째 딸‘채빈’이는 바이올린을 아빠, 엄마한테 배우며 주일이면 온 가족이 교회에 나가 작은 오케스트라의 일원으로 또한 가족연주예배로 하나님께 봉사하고 있다.
* 08’ . 3. 18
* (사)정해복지...떡뽁이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첫댓글 그림과 더불어 있으니 더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