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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박물관을 탄생케한 다라국(多羅國)의 옥전고분군(玉田古墳群)
2012. 7. 8 소요유적답사회(逍遙遺跡踏査會)에서 합천(陜川)지역의 서원(書院)과 유적(遺跡)을 답사하는 기회에 권오규(權五圭)와 류진환(柳進煥) 나 셋이서 참여하게 되었다. 작년에는 고령(高靈)의 대가야(大伽倻)의 유적 답사에 동참하여 옛 가야국의 새로운 역사적 사실(史實)을 알게 되었다. 한편 이번에는 합천의 박물관을 관람하고 합천에 다라국(多羅國)이 있었다는 새로운사실을 알게 되었다.
합천시가지도 일반적으로 박물관은 관람객의 접근성을 생각해서 그 지역의 중심지(中心地)에 입지(立地)하는것이 일반적인 예(例)인데 합천(陜川) 박물관(博物館)은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합천군 쌍책면 성산리 오지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의아(疑訝) 했으나 전시(展示)된 유물(遺物)에서 시내 중심지에서 외딴 산자락에 소재(所在)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합천박물관1
합천박물관2
합천박물관의 상징인 용봉문양고리자루큰칼
합천(陜川) 박물관(博物館)에 전시된 유물이 옛날 다라국(多羅國)의 고분(古墳)을 발굴하여 고분 속의 부장품(附葬品)을 전시한 것을 관람하고 의문이 풀렸다. 이 같은 이유가 특히 고분 발굴에서 고분군 옆에 박물관이 위치한 고령의 대가야(大伽倻 博物館)과 같은 성격이다. 즉 고분의 부장품이 발굴된 그 지역에 박물관을 건립하였든 것이다.
합천(陜川) 박물관(博物館)은 합천의 전통문화와 역사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제공하고자하는 목적으로 제2차 가야문화권 정비계획에 따라 1998년 건립계획을 수립하여 2004년 10월에 완공하고 같은해 12월 9일 개관했다고 한다.
전시유물의 내용은 가야시대 다라국(多羅國)의 지배자 묘역(墓域)으로 알려진 옥전고분군(玉田古墳群- 발굴당시 옥이 많이 출토되어서 옥전고분이라 명명되었다고 함)의 유물을 상설(常設)전시하고 있으며 신석기(新石器), 청동기시대(靑銅期時代)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오는 합천(陜川)의 유구한(悠久) 역사를 알리는 자료들이 기획(企劃) 전시되고 있었다.
다라국의 위치도 : 출처 enjoyjap.egloos.com
옥전고분 과 다다리의 위치도 : 출처 enjoyjap.egloos.com
다라국(多羅國)의 성립(成立)은 서기 400년 전후 고구려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의 남정(南征)이 불러일으킨 김해(金海)지역의 격심(激甚)한 정치ㆍ사회적인 충격(衝激)의 여파(餘波)로 이 지역 주민의 일부가 합천옥전(陜川玉田)으로 옮겨왔다. 고분의 규모뿐만 아니라 갑옷과 투구를 비롯한 무기, 말갖춤, 장신구 등 부장 유물의 성격으로 보아 이 시기에 <다라국(多羅國)>이 성립되었다고 한다.
다라국(多羅國)의 성장과 발전을 살펴보면 후기가야(後期伽倻)를 대표하는 대가야연맹체(大伽倻聯盟体)의 일원이었던 다라국(多羅國)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전하는 바와같이 541년과 544년 두 차례에 걸쳐 열린 임나부흥회의(任那復興會議)에 참석하는 등 당당한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가야제국 세력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 그것은 옥전(玉田)고분군에서 나온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상징하는 각종 철제품(鐵製品)과 옥(玉)ㆍ유리제품(琉璃製品)에서 증명(證明)되고 있다.
철제품
철제품
말머리 가리개
말머리가리개
왕관
다라국(多羅國)의 대외교류를 살펴보면 다라국(多羅國)은 옥전고분군(玉田古墳群) 출토(出土)유물이 다양한 지역과 연계(連繫)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웃한 가야제국뿐만 아니라 고구려, 백제, 신라, 또 바다 건너 중국 남조, 왜(倭)와도 활발한 교류(交流)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낙동강(洛東江) 수로(水路)를 이용하여 그들이 제작한 철제품(鐵製品)이나 각종 옥제품(玉製品)으로 타지역과 교역하여 경제적 기반을 튼튼하게 하였다.
용봉문양고리자루큰칼
왕관
로만글라스 : 교역으로 수입한 것으로 추정됨
귀걸이
옥전고분군(玉田古墳群)에서는 고리자루큰칼 등 각종 무기, 갑옷과 투구를 비롯하여 말갖춤과 다양한 철제품들이 발견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망치와 집게 등의 단야구(鍛冶具)가 출토되어 이러한 철기들을 직접 이곳에서 생산하였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한편 옥을 다듬던 숫돌들도 발견되어 이곳에서 직접 구슬이 제작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박물관 근처의 안내도
사적 326호로 지정된 옥전고분군(玉田古墳群)은 황강(黃江)변 야산(野山)의 정상부(頂上部)에 위치하여 고총고분(古塚古墳) 27기를 비롯하여 고분의 총수는 약 1,000기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이 유적은 1985년 겨울부터 1992년 봄까지 5차에 걸쳐 경상대학교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發掘調査)된 고분은 모두 146기인데, 유물은 토기를 비롯하여 철제 갑옷과 투구, 각종 무가, 말갖춤, 귀걸이 등 무려 2,500여점이 출토 되었다고 한다.
박물관안에 M3호분을 재현해 놓았다 : 출처 합천활로
박물관안에 M3호분을 재현해 놓았다
이 옥전고분군(玉田古墳群)의 주인공은 <양직공도(梁職貢圖)>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전하는 다라국(多羅國)의 지배자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 고분 연구를 통해 다라국(多羅國) 또는 가야사 전반에 대한 재구성이 어느 정도 가능하며, 출토자료의 대부분이 일본의 중기 고분에서 출토되는 것과 유사하여 한일고분문화(韓日古墳文化)의 비교연구와 이를 토대로 한일고대사(韓日古代史)의 재정립(再正立)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한다.
각종토기
각종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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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곳 앉아서 감상 잘 하였습니다.
자네가 올린 글을 읽고 새삼스레 공부를 하였네.각종자료를 어디서 그렇게 많이 찾아 올렸나.난 그냥 대충 대충 보고나니까 남는게 없던데...고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