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 기대승이 퇴계선생에게 올린 편지 - 고봉집
지난번 사단ㆍ칠정의 설에 대하여 저의 말이 막혀서 통하지 않는다는 것도 헤아리지 않고 좁은 소견을 차례로 개진하여 거의 남김없이 토로했던 것은 오직 가르침을 받아 참으로 옳은 것을 구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 더러 서로 다른 의논이 없지 않았던 것은 대개 저의 소견에 따라 발언한 것일 뿐 감히 고의로 어지럽게 하려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보내 주신 절구(絶句) 한 수(首)를 받아 보니 망연자실하여 다시 여쭙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랫동안 감히 여쭙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건대 선생님께서는 한가한 사이에 깊이 완색(玩索)하시어 조예가 더욱 정명(精明)해졌을 것이고, 저도 한적한 틈에 때때로 다시 사색해 보니 자못 지난날의 설에 궁구하지 못한 바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감히 〈후설(後說)〉1편과 〈총론(總論)〉1편을 기술하여 품달(稟達)하려 하였으나, 인편이 없어 부치지 못했었는데 이번에 아울러 올립니다. 바라건대 살펴 주심이 어떻겠습니까.
퇴계선생이 기대승에게 답한 편지 - 고봉집
앞서 보내 준 사단ㆍ칠정에 대한 총설과 후설 두 가지 설을 반복해 연구해 보니, 옛사람이 이른 바 “처음에는 의견이 들쭉날쭉하여 달랐으나 끝내는 난만(爛慢)하게 의견이 같아졌다.”는 말이 참으로 허언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지난번 편지에서 대략 말하였으나, 오래지 않아 다시 생각해 보니 미진한 바를 공에게 알려 주어야 할 듯하므로 지금 말하는 바입니다. 공의 글에 희ㆍ노ㆍ애ㆍ낙을 인ㆍ의ㆍ예ㆍ지에 배속시켰다고 하였는데, 진실로 그와 흡사함이 있습니다만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지난날 〈천명도(天命圖)〉 속에도 희ㆍ노ㆍ애ㆍ낙이 인ㆍ의ㆍ예ㆍ지와 근사함으로 인하여 시험 삼아 분속하여 기록한 것뿐, 참으로 정해진 분속이 있어 배합되는 것이 마치 사덕(四德 측은ㆍ수오ㆍ사양ㆍ시비)이 인ㆍ의ㆍ예ㆍ지와 배합되는 것과 같다고 여긴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공의 말에 “이(理)가 발한 것이란 오로지 이만을 가리켜 말한 것이고, 기가 발한 것이란 이와 기를 섞어서 말한 것이다.” 하였는데, 내가 일찍이 이 말을 가지고서 근본은 같으나 지엽이 다르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나의 의견이 진실로 이 설과 같은 것은 이른바 ‘근본이 같다’는 것이지만, 공이 이 설로 인하여 드디어 사단ㆍ칠정을 반드시 이ㆍ기에 분속해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은 이른바 ‘지엽이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지난날 공의 견해와 논의가 이번에 보내온 두 가지 설처럼 막힘없이 통하고 시원하였다면 어찌 지엽이 다름이 있겠습니까.
일찍이 우리 두 사람이 왕복 논변한 글을 가지고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때때로 보면서 잘못된 곳을 고치고자 하였으나, 간혹 수습해 싣지 못한 것이 있으니 한스럽습니다. 병인년(1566) 동짓달 초6일에 황(滉)은 절하고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