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어미
이지엽
가래로 뻘을 파서 남자들은 쉬 잡지만
여자들은 힘이 딸려,
몸뚱아리가 연장이여
팔 걷고 쑤셔 넣다보면 어깨까지 다 닿는겨
줄에다 산 낙지를 묶어서 손에 달고
살째기 집어넣으면
속에치 꼬셔 나오제
으찌나 잽싼지 몰라 깜빡 하믄 나만 망해불어
알 까고 죽은 낙지는 살 썩어도 냄새가 안 나
알 보듬느라 묵지도 않고
헛껍딱만 남은 겨
세상에 모든 어매라는 것이 다 같은 거 아녀
빨래 두레 밥상
이지엽
바구니 가장자리 빠래를 빙 걸쳤다
옹기종기 모여앉은 두레밥상 머리 같다
색 색깔 적나라하게
까발려도 다 괜찮겠다
잘 묵어라 남자란 뿌리가 실해야 혀
아버지 반바지가 한 말씀 하신다
건성인 아들 런닝구 예 예
발이 먼저 나간다
아가 바뻐도 밥은 꼭 챙겨 묵거라
할머니 고쟁이가 또 펄럭대며 지청구다
손수건 말아 싼 지폐
꼬깃꼬깃 감추던
꽃무늬 팬티 보고 말이 많은 양말들
땡땡이면 어떻고 레깅스면 어쩌랴
한 가족 죄다 볕을 쬐고 있다
가을 꼬득 해지고 있다
금쇄동
이 지 엽
살며 하늘 그리운 날 혹 있을지 모르지만
심중에 못 다한 말 그 말 같은 붉은 설움
예 와서 다 쏟아놓고 눈 들어 산을 보게
병풍바위 두른 배경 달뜨듯이 살아가도
생은 늘 배반한 듯 거꾸로만 달려가고
오늘의 기와 파편들 꽃밭인 듯 구름인 듯
말하거나 웃지 않아도 짐짓 거기 풍경 밖을
이쯤에서 모른 채 눈 감고 돌아 선다면
절정은 늘 후렴같고 몸 떨리는 시위 같아
평화가 눈물겨운 기도의 제목이 될 때
물매화 자주쓴풀 그예 싱그런 계곡이여
감춰둔 비밀을 풀어 절벽처럼 가을이 깊다
온 몸으로 우는 꽃
이지엽
1
동백꽃은 백악기쯤 큰 새 울음 살고 있다
우항리 남쪽 바닷가 섬들 죄다 울리고
초록의 생생한 눈짓
잎잎마다 반짝 거린다
2
저 은백의 투신 봐라 뚝뚝 져 다시 사는 꽃
남도 땅 끄트머리 불새가 날아들어
바닷가 돌에 피는 꽃
온몸으로 우는 꽃
3
아이들은 서로 안고 눈 빠지게 기다렸다
꼭 올 거야 기우는 난간 깍지 끼고
사랑해 고등학교 2학년
착한 눈빛들이다
4
상처의 가슴들을 둥글게 감싸 안아
정박아 몸짓으로 네 슬픔을 저장한다
흰 눈발 고해苦海의 항로
하늘로 가는 배 한 척
토란 잎 우산
이지엽
가을비 그제부터 사슴사슴 내리더니
오늘은 작정한 듯 나절가웃 내리신다
누에들 뽕잎 쓸듯이
속삭이듯 내리신다
당숙모 어딜 가시나 토란 잎 우산 쓰고
또로롱 또르르 구르는 빗방울
봐라야 천연 방수다
더 좋은 거 너 봤냐
막내가 손바닥 들고 뛰어간 방둑길 건너
초록하늘 펼쳐들고 단풍물빛 차려입고
비 맞는 어깨와 큰 등짝
뒷모습 내내 아릿하다
ㅡ『불교문예』(2015, 봄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