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영화화 한 [아르헨티나 할머니]는 어머니를 잃고 상심에 빠진 한 소녀의 상처 치유기이다. 물 위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가벼우면서도 인상적인 요사모토 바나나의 문체는 무라카미 하루끼 이후의 일본 현대소설의 한 특징을 대변해 주고 있다. 겨울이 배경인 원작과는 달리 여름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소설의 신비하고 매력적인 분위기를 제대로 형상화하지는 못했지만, 상처 치유 과정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가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다.
원작소설의 영화화는, 문자 텍스트와 영상 텍스트의 기본적 차이를 인정하면서 새롭게 각색이 되어야 한다. 이미 원작을 읽은 사람들에게는 원작과 다르다는 항의를 받을 수 있지만, OSMU(One Sauce Multi Use)에서 핵심 콘텐츠 역할을 하는 스토리텔링은 매체를 달리하면서 필연적으로 각색의 과정을 거친다. [아르헨티나 할머니]는 각색이 원작을 뛰어 넘게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문자 언어가 종이에서 걸어나와 입체적 배경을 획득하고, 배우의 대사와 몸짓을 동반해서 스토리가 전달되는 영상적 매력을 갖고 있다. 특히 작품에 삽입된 탱고씬은 매우 강한 울림을 준다.
18살 소녀 미츠코(호리키타 마키 분)는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죽음으로 깊은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그녀를 더욱 좌절에 빠지게 한 것은 어머니의 죽음 이후 갑자기 사라진 아버지의 실종이다. 6개월 뒤, 소도시 외곽에 있는 들판의 한 집에서 아버지가 발견된다. 문제의 그 집은, 미츠코가 어린시절부터 [아르헨티나 할머니]라고 부르던 여인이 살고 있는 곳이다. 들판을 걷는 아이들을 잡아다가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밥으로 준다는 무섭고 신비한 존재, 아르헨티나 할머니 집에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미츠코는 그곳으로 달려가지만, 아버지는 돌아오기를 거부한다.
미츠코를 혼란에 빠트린 것은, 아버지 사토루(야쿠샤 코지 분)가 아르헨티나 할머니와 동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츠코의 친척들은 사토루를 데려오기 위한 방법을 궁리해보지만 사토루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들판 위에 3층으로 세워진 아르헨티나 할머니가 사는 그 집은, 낡고 오래된 건물이다. 집 주변의 정리를 하지 않아서 마당은 잡초로 가득하고 악취가 진동하고 있다. 석공이었던 사토루는 그 집 옥상에서 돌을 쪼으며 우주의 중심인 만다라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시간이 선형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여러 겹으로 쌓여 있다는 이론을 펼치면서, 그는 자신이 만드는 만다라가 우주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원작과는 달리 영화에서는 미츠코의 아버지 사토루가 아내의 죽음 이후 갑자기 실종되는 걸로 설정되어 있다. 온 가족들이 오랫동안 찾아다니다가 우연히 사토루가 아르헨티나 빌딩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원작은 이 부분이 담백하게 처리되어 있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6개월쯤 지나서 사토루는 자신과 떨어져 살고 있는 딸에게 연락을 하지 않고 아르헨티나 빌딩으로 거처를 옮긴다. 영화를 위한 각색 과정에서 지나치게 과장되게 묘사된 사토루의 변신은 원작보다 극적인 변화는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원작의 내면적 흐름에서 벗어나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아르헨티나 할머니]가 갖는 매력은 줄거리 그 자체가 아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신비한 여인, 그녀가 기르는 고양이, 옥상 위에서 그녀가 추는 탱고, 그리고 집에 돌아오기를 거부하고 혼자서 돌을 쪼으며 우주의 중심 만다라를 만들고 있는 아버지,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실종이 겹치면서 심한 성장통을 앓고 있는 소녀 미츠코, 우리가 누구나 성장하면서 겪었던 삶의 방황과 혼돈의 한때를 요시모토 바나나는 스쳐 지나가는 무심하면서도 가슴 한쪽을 울리는 섬세하고 매력있는 문체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각색 과정에서 문체의 매력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스토리텔링은 원작과 비슷하게 흘러가지만 영화적 각색은 눈에 띄지 않는다. 각색은 제 2의 창작이며, 그런 점에서 베스트 셀러를 영화화 할 때, 대부분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모험보다는 흥행이 검증된 원작의 서사구조를 안전하게 따라가는 방식을 취한다. [아르헨티나 할머니]처럼 서사의 큰 뼈대보다 문체의 스타일에 크게 의지하는 소설을 각색할 때는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탱고는 [아르헨티나 할머니]의 한 복판에 서 있는 중심 상징이다. 탱고는 혼자 추는 춤이 아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고 한 몸이 되어 추는 춤이다. 밖에서 보면, 네 개의 다리, 그리고 맞잡은 두 개의 팔, 그러나 하나의 심장으로 움직이는 모습이다. 영화 속에서 오프닝 시퀀스가 지난 뒤 타이틀이 뜨면서 강렬한 탱고 음악이 흘러나온다. 일본의 반도네온 연주자 코마츠 료타가 연주하는 [Nostalgico]다. 들판 한 복판에 우뚝 서 있는 3층 집 옥상에서, 긴 머리를 휘날리며 아르헨티나 할머니(스즈키 쿄카 분)가 혼자 탱고를 추고 있다. 영화 속에서는 신비함과두려움의 대상이었다가, 아버지가 그녀와 동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뒤부터는 증오의 대상이 된 아르헨티나 할머니와 미츠코가 감정적 교류를 하기 시작하면서 탱고를 추는 장면이 다시 나온다. 역시 장소는 그 집 옥상이다.
전문적인 탱고 영화가 아니라면, 보통 영화에서의 탱고씬은 이상하게도 옥상, 아니면 들판에서 추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송일곤 감독의 [깃]에서 혼자 사는 소녀(이소연 분)가 자신의 외로움을 이겨내는 방법은 탱고를 추는 것이다. 그러나 탱고는 혼자 출 수 없다. 소녀는 자신의 미래적 모습(배수경 분)을 떠올리며 탱고를 춘다. 그곳도 옥상이다. 또 소녀와 그 집에 머물고 있는 남자(장현성 분)가 탱고를 추는 곳도 우도의 잡풀 우거진 들판 속이다.
자연과 하나 되는 인간의 모습, 그것이 탱고에는 담겨져 있다. 탱고는 분리의 춤이 아니라 통합의 춤이며, 도시의 춤이 아니라 자연의 춤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걷는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몸짓이 탱고에는 담겨져 있다. 뒤죽박죽 뒤엉켜 있는 지저분한 건물처럼 보이는 아르헨티나 할머니의 들판 위 빌딩은, 자연의 생명력이 가득 차 있는 곳이고, 인간이 우주와 소통하는 열린 공간이기도 하다. 탱고는 그곳에서 생명력을 획득한다. 불신의 벽으로 막혀 있던 아버지와 딸이, 증오의 칼날이 번뜩이던 할머니와 미츠코가 서로 소통하는 열린 의식이 탱고다.
아르헨티나 할머니 역의 스즈키 쿄카는 [웰컴 투 맥도날드]에서 라디오 대본을 써서 공모접에 입상한 엉뚱한 작가 역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후, 최양일 감독의 [피와 뼈]에서 폭력적이고 잔인한 성격의 남편 때문에 수많은 상처를 안고 사는 재일 한국인 이영희 역을 맡아 열연한 바 있다. 언제나 그의 연기에 믿음이 가는 일본의 국민배우 야쿠사 코지는 아버지 사토루 역을 맡아, 갑작스러운 아내의 죽음으로 크게 상처를 받은 중년 남자의 내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미츠코 역의 호리키타 마키는 일본의 차세대 선두 주자 중 한 사람이다. 그녀는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실종으로 성장통을 앓는 소녀의 마음을 드러내면서, 따뜻한 감성을 유지하고 있다. 원작의 배경을 겨울에서 여름으로 바꾼 것은, 전체적으로 스토리 자체가 주는 분위기를 톤다운 시키면서 훨씬 대중적 친근함을 줄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떄문이다. 들판 위에 셋트로 지어진 아르헨티나 빌딩도 인상적이지만, 마지막 물 속 장면도 아름답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은 그녀의 데뷔작 [키친]부터 가장 최근작까지 국내에 전부 번역되어 있다. [아르헨티나 할머니]는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지만 우리의 소설 개념으로는 중편 분량에 해당된다. 이 책에서 소설 못지 않게 눈에 띄는 것은 요시모토 나라의 삽화이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이미 [하드보일드 하드 럭](2002년)을 출간할 때 요시모토 나라의 삽화를 함께 한 바 있다. 요시모토 나라의 일러스트나 수채화 풍의 삽화는 팝 아트 이후 순수예술의 미학을 대중적 감성에 접목시킨 네오 팝의 감성적 특징을 갖고 있따. 귀여우면서도 심술궂은 캐릭터의 소녀가 등장하는 요시모토 나라의 그림은, [아르헨티나 할머니]를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들판 한 가운데 서 있는 아르헨티나 빌딩이라든가, 돌고래가 조각된 어머니의 비석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삽화의 이미지는 영화에도 그대로 연장되어 있다.